날씨가 꽤 쌀쌀하다. 많이 늦었지만 드디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다! 사계절의 변화, 시간의 숙성. 이 지극히 당연한 이치를 로맨스에 넣은 영화가 있다. 2010년에 개봉해 많은 이들의 인생 영화로 남은 <500일의 썸머>가 그 주인공. 더위 때문에 많이 고생했지만, 이렇게 막상 계절이 지나니 조금은 그리운 '썸머'를 다시 생각해보고자, 오늘의 OTT 명예의 전당은 <500일의 썸머>를 살펴본다.
<500일의 썸머>의 관전포인트

<500일의 썸머>는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톰(조셉 고든 레빗)과 썸머(주이 디샤넬)의 500일 동안 다사다난한 연애사를 담은 로맨틱 코미디다. 구성이 특이하다. 그들이 처음 만났던 1일부터 모든 것을 정리한 500일까지 순차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극의 성격에 따라 랜덤으로 시간을 이동한다. 이별을 감지한 원인과 그 결과, 사랑의 설렘 가득했던 기대와 무너져버린 현실 등 다양한 구성으로 극적인 재미를 늘린다.
연애를 한 이들이라면 공감 100배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낼 이야기도 작품에 빠져들게 한다. 사실 톰과 썸머의 연애담은 평범하다. 우연히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데이트를 하고, 결국 사귀기로 한 우리 시대의 많고 많은 연애 스토리 중 하나다. 하지만 이런 평범함이 자신의 이야기라면 특별한다. 앞서 소개한 시간 이동은 물론 뮤지컬과 패러디, 화면분할 등 흥미롭고도 현실적인 구성으로 톰과 썸머의 이야기를 우리의 이야기로 만든다.

이 작품 덕분에 조셉 고든 레빗에 입덕한 분들이 많으실 테다. 조셉 고든 레빗은 평범한 남자가 연애를 시작하면서 겪는 감정 변화를 완벽하게 보여준다. 자신의 인생에 '썸머'가 있었던 분이라면 극중 톰이 타인이 아닌 자신의 아바타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조셉 고든 레빗의 평범하고도 특별한 연기가 일품이다.
썸머 역의 주이 디샤넬 역시 매력 넘쳤다. 썸머의 신비하고도 불안정한 모습을 호기심 가득하게 표현해 작품의 상징적인 의미를 더한다. 유난히 맑은 눈망울이 썸머의 이미지와 닮아서 많은 이들의 마음을 흔들기도 했다. <500일의 썸머>에는 반가운 얼굴도 있다. 톰의 동생이자 연애 조언자로 나오는 클로이 모레츠의 어린 시절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어른들도 고개를 끄덕일 연애학개론 명대사를 줄줄 내뱉으며 만만치 않은 연기 내공을 자랑한다.


톰과 썸머는 '스미스'를 즐겨 듣는다는 이유로 가까워진다. 그만큼 영화에서 나오는 모든 노래들은 톰과 썸머의 또 다른 대화이자 감정 교류다. 영화 오프닝을 장식한 'US', 톰과 썸머를 잇게 한 'There Is A Light That Never Goes Out', 세상이 내 것 같았던 톰의 마음을 노래한 'You Make My Dreams Come True',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그 당연하면서도 위대한 가치를 말했던 엔딩곡 ‘She's Got You High’ 등, 작품을 다 보고 나면 영화 평점 사이트보다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를 먼저 가게 만들 것이다.
<500일의 썸머> 명장면

평범한 연애담을 기발하게 보여주는 구성답게 인상적인 장면이 많다. 이중 톰이 썸머와 사귀고 난 뒤 세상이 내 것 같았던 마음을 표현하는 뮤지컬 장면이 먼저 눈에 띈다. ‘You Make My Dreams Come True’가 흐르면서 현재의 기분을 마음껏 즐긴다. 재미있는 것은 이걸 완전히 역전시키는 삭제 장면이 있다는 것. 음악은 똑같이 ‘You Make My Dreams Come True’가 흐르지만, 전반부의 모든 장면이 반대가 된다. 사람들은 자신을 비난하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더 이상 한 솔로가 아니다. 썸머만 옆에 있다면 세상이 정말 아름다웠는데, 톰은 그것이 영원하지 않음을 절실히 느낀다. 해당 영상은 유튜브 등지에서 만날 수 있으니 참조.

에디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면. 썸머와 이별 후 식음을 전폐한 톰이 자신이 근무하는 카드 회사에 가서 속마음을 털어놓는 부분이다. 톰은 카드에 적힌 격려와 고백 같은 문구가 실은 이런 마음을 직접 전하지 못한 이들의 비겁한 거짓말이라고 열변을 토한다. ‘사랑’에 큰 아픔을 겪은 뒤, 이 단어가 얼마나 의미 없음을 깨닫고 자학하는 모습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짠하게 한다.

마지막 엔딩 장면은 이 영화의 핵심을 그대로 보여준다. 여름이 자니고 가을이 오듯이, 사랑에 한 번 실패했지만, 또다시 좋은 인연은 찾아올 것이라는 메시지가 연애에 아팠던 모든 이들을 위로한다. <500일의 썸머>가 왜 로맨틱 코미디 장르 역사에 빠질 수 없는 작품임을 증명하는 순간이다.
<500일의 썸머> 당시의 인기는?

<500일의 썸머>는 사실 역대급 흥행이나 세계 영화제에 길이 남을 수상을 한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750만 달러라는 초 저예산으로 만들어 전 세계에 60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알짜배기 흥행에 성공했다. 67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최우수 영화상(뮤지컬/코미디), 최우수 남우주연상(조셉 고든 레빗) 후보에 오르며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무엇보다 이 작품을 계기로 영화팬들이 오래 사랑할 이들이 주목을 받았다. 앞서 소개한 조셉 고든 레빗은 <500일의 썸머>의 성공을 발판 삼아 <다크 나이트 라이즈> <인셉션> 등 블록버스터 영화에 주요 캐릭터로 출연했고, 지금은 할리우드 대표 배우로 성장했다. 마크 웹 감독 역시 메이저 스튜디오의 러브콜을 엄청나게 받았다. 이후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 등 프랜차이즈 영화의 메가폰을 잡았고, 이후 인디와 메이저를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2025년 개봉 예정인 디즈니의 <백설공주>로 오랜만에 컴백할 예정이다.
국내에서 <500일의 썸머>은 2010년 1월 21일에 개봉, 당시 13만 7,500명을 동원했다. 그리 인상적인 흥행은 아니었지만, 뒤늦게 영화를 본 이들의 좋은 반응과 입소문이 돌면서 놓치지 말아야 할 로맨틱 코미디로 자리 잡았다. 그로부터 7년 뒤 2016년 6월 29일 재개봉을 했는데, 오히려 재개봉 스코어(15만 3500명 동원)가 본 개봉보다 더 많은 관객을 모으기도 했다. 그만큼 <500일의 썸머>가 오랫동안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다.
<500일의 썸머>는 지금 OTT 어디에서 볼 수 있나?
한 편의 연애학개론 같았던 <500일의 썸머>는 지금 디즈니+에서 서비스 중이다. 이 작품은 보면 볼수록 많은 것이 보인다. 1일부터 500일까지 순차적으로 톰과 썸머의 이야기를 구성해보는 것도 좋고, 썸머의 입장에서 톰을 바라보는 재미도 있다. 연애를 처음 시작하는 이들에게는 밑줄 그을만한 참고서였으며, 연애를 정리한 이들에겐 상대를 향한 반성문 같은 영화, <500일의 썸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