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영화. 어쩌면 뻔하게 보일 이 단어. 여기에 신연식이란 이름이, 그리고 한국영화사상 최초의 배구 소재라는 설명이 덧붙으니, 궁금증이 동하지 않고 못 배긴다. 영화 <1승>은 신연식 감독 필모그래피 최초의 상업영화다. 올해 먼저 선보인 드라마 <삼식이 삼촌>도 규모가 컸지만, 적어도 영화라는 매체에선 이 <1승>이 그에게 가장 큰 도전이었을 것이다. 송강호라는 듬직한 파트너가 함께지만, 본인 커리어 사상 최초의 스포츠영화이자 한국영화 최초의 배구영화니까.
그렇게 참 독특한 포인트를 가진 <1승>은 참 유별나다. 그저 1승을 거두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꼴찌팀의 모습을 그리지만, ‘노오력’을 하라고 하지도 않고 날 선 갈등이 난무하지 않는다. 신연식 감독이 그리는 배구영화는 빼어난 테크닉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인간’을 지켜보라고 넌지시 말한다. 스포츠영화로서의 쾌감만큼, 이 시대의 관객에게 주는 메시지 또한 강렬하다. 12월 4일 개봉을 앞둔 <1승>의 신연식 감독을 12월 2일 모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오랜만에 개봉한다. 기분이 어떠신지.
늘 비슷한데, 1년에 작품 두 개는 좀 벅차긴 하다. (신연식 감독-송강호의 드라마 <삼식이 삼촌>이 2024년 5월에 공개됐다-편집자 주)
<1승>을 할 당시엔 이 정도 규모의 영화는 처음이었을 텐데,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은 따로 하지 않았다. 늘 똑같은 마음인데, 작품마다 하는 이유와 목적이 있어서 거기에 맞춰 형식과 예산을 생각한다.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이지만, 투자자가 무조건 손해 본다면 제 돈으로 하고. <동주>처럼 5억에 흑백으로 한다 하면 나머지를 다 포기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는 늘 있는데, 거기에 부합하는 형식과 예산을 정한다. 예산이 먼저 있는 게 아니고,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까 그렇게 됐다. <1승>은 스포츠인데 또 팀 단위 스포츠라서 그만큼 필요한 예산과 형식이 필요해서 한 거지 계산한 건 아니다.

올해 공개한 두 작품 모두 송강호 배우와 함께 했다.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의미도 있고 부담도 있다. 혼자 망하는 건 부담이 없는데(웃음) 선배님 커리어에 제가 흠집 내면 안 되니까 부담이 있었다. 하지만 부담이 있다고 피할 수는 없다. (송강호는) 누구나 함께 작업하고 싶어하는 배우인데 선배님하고 연달아 하게 된 기회를 부담이 된다고 안 할 수는 없다. 부담됐다고 말하고 다니는 것도 행복에 겨운 얘기다.
송강호 배우와 함께 하니 작품으로만 보는 것과 다른 점이 있었나.
너무 많이 다르다. 저도 관객 입장에서 선배님 연기를 봤는데, 현장에서 감독이니까 이래서 선배님이 훌륭한 배우구나를 구체적으로 알겠더라. <1승>과 똑같다. 저 선수 잘한다, 그 결과만 보는 거고 몇 년 동안 갈고닦고 교정하고 장단점을 적용시키는지를 모르지 않나. 선배님도 연기 잘한다 하면서도 왜 잘하는지 몰랐다. 작품을 같이 하면서 그걸 알게 돼 공부도 됐고 재밌었다. 단순히 연기를 대하는 자세가 아니라 기술적으로 기능적으로 준비하시고 현장에 적용하니 이렇구나 하는 걸 느꼈다. 예를 들면 첫날 첫 테이크를 가는데, 테이크마다 소리를 갈아 끼워서 확인해보더라. 너무 충격적이었다. 보통 모니터링에서 대사 확인이면 문장이나 단어를 확인하는 정도다. 송강호 배우는 여기서 음을 확인한다. 본인 딕션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 여러 테스트를 하는 거다. 그러니 선배님 대사는 밀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송강호니까, 대사를 잘 치니까 (생각)하고 말지만 정상급 플레이어들은 이렇더라. 김연경 선수가 왜 공격을 잘하나 그런 걸 본 느낌이었다. 선배님의 영업 비밀인데 말한 건 아닌가 싶다.(웃음) 어디선가 상을 받고 오셔도 그런 걸 계속 디벨롭하신다. 몇 년간 작업하며 본 송강호 배우는 그렇게 본인 연기 기술의 노하우를 갈고닦는다.
사실 저희 VIP 시사 직후 뒤풀이 때 이정은 선배님이 물어보셨다. 영화에서 김우진 감독(송강호)이 첫 세트에 환호하다가 두 번째 세트에서 다리가 풀리는 장면 어떻게 짰냐고. 촬영 때 송강호 선배님이 너무 환호하실래 오케이는 했지만 걱정됐다. 첫 세트에 이만큼 환호하면 뒤에 어떡하지? 선배님도 생각 안 난다고 하셨는데, ‘일단 할게요’ 하시더라. 그래서 촬영을 시작하니 다리가 풀리는 연기를 하셨다. 이게 선배님의 다른 지점이구나 (싶었다). 이정은 선배님도 더 센 거를 생각했는데, 더 약한 걸 했으니 물어본 것 같았다. 그래서 송강호다. 송강호 선배님도 계산하고 하실 때가 있지만 이런 발상의 전환은 본능인 것 같다.

김연경 배우가 특별출연했다. 진짜 본 김연경 선수는 정말 달랐나.
정말 다르다. 이번에 관중석이 아니라 코트에서 같은 눈높이로 처음 본 것이다. 정면에서 보니까 정말 달랐다.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김연경 배우가 본인의 유튜브 채널에 <1승> 프리뷰를 올렸는데, 특히 김우진 감독의 대사가 실제배구팀 감독처럼 정말 현실적이라고 했다. 참고한 부분이 있나?
자료를 많이 본 것도 맞지만, 배구인들로 둘러싸인 현장이었다. 감독님들, 선수분들 모두 많았다. 군대 가서 지역마다 사람이 섞이면 사투리도 섞이지 않나. 모델 출신, 선수 출신 배우들이 있으니 몇달 같이 지내면서 구분이 없어지고 자연스럽게 섞였다.
시은미 선수 캐스팅도 그렇고 전문 배우로만 캐스팅하지 않았다.
시은미 선수는 처음에 상대팀 ‘블랙퀸스’ 세터로만 캐스팅했다. 그런데 제가 처음에 잘못 판단한 거였다. 배구가 이렇게 어려울지 몰랐다. 배우가 배구를 배우는 것보다 배구선수가 연기를 배우는 편이 빠른 거였다. 거기다 우리 영화는 배구선수가 배구선수를 연기하는 거라 그나마 나았다. 배구를 몇 달 배워서 안된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그리고 놀라웠던 건 신진식 감독님, 김세진 감독님, 김연경 선수 등 다 출연한 분들이 다 연기를 너무 잘하셨다. 끼도 많으시고. 심지어 노래도 잘하신다. 그래서 같이 노래방을 가면 박정민 배우가 ‘쟤 왜 잘해’ 이 대사를 하게 되더라.

스포츠영화에서 언더독 서사는 많은 편이다. 이 영화만의 차별점을 두고 싶었던 부분은?
전 일상에서 일어나는 희로애락이 그냥 일어나는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기자들도) 매주 일하시지 않나. 매번 시사 보고 기사 쓰고 영화 보고. 스포츠 기자들은 매일 누구는 이기고 지고를 쓴다. 그게 일상이다. 그 일상이 그냥 되는 게 하나도 없다. (배구에서 승부가 갈리는) 그 0.5초 빵하는 순간이 우리는 기사로 휙 지나가지만 선수들의 운명은…. 영화감독도 그렇다. 한 끗 차이로 흥하는 영화, 망하는 영화가 있다. 개봉 시기, 캐스팅, 구성 등등. 작은 것 하나가 한 사람의 운명과 우주의 흐름을 바꾸는데, 그 무수히 많은 순간이 찰나의 순간으로 지나가지만 어떤 노력과 과정이 있는지 모른다. 그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스포츠영화니까 루저들이 한 번 이기고 말겠지 할 것이다. 핑크스톰이 이긴 것도 기사 한 번 나고 일상처럼 지나갈 것이다. 그렇지만 이 사람들이 그 한 번을 이기기 위해 무엇을 했냐, 구체적으로 우리가 그것을 봤느냐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송강호 선배님이 칸에서 상을 받았다, 이건 결과다. 그걸 받기 위해 30년간 구체적으로 뭘 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정말 마음에 안 드시면 후시까지 요청한다. 과정이 아니고 ‘그 한숨소리 마음에 걸리는데 다시 한번 녹음하겠다’ 그런 전화를 하신다. 정상급 플레이어들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과에 있어 누가 무엇을 했는지 보여주는 것. 그게 <1승>에서 제가 포커싱한 부분이고 스포츠영화로서 다른 작품과 가장 변별력이 있는 부분이다.
그럼 스포츠영화로서 매력을 놓치지 않기 위해선 어떤 부분을 고심했나.
여자배구를 보시는 분이라면 당연히 랠리 시퀀스를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정말 묘미다. 자주 있진 않지만, 가끔 2~3분 랠리 상황이 벌어질 때가 있는데, 그걸 꼭 하고 싶었다. 장면을 만들고자 선수들이 안무 연습하듯이 연습했다. 그럼 제가 연습 때 촬영팀과 CG팀이랑 보고 카메라 포지션을 정한다. 와이어캠이란 장비를 썼는데 비싼 장치에다 설치하는 데 일주일이 걸린다. 컴퓨터에 정해진 위치를 입력하면 와이어캠이 동시에 움직이면서 360도를 담는다. 카메라는 입력한 대로 움직이기에 배우들이 한 명이라도 벗어나면 두 달 연습한 것과 몇천만원이 날아간다. 옛날 예능 ‘99초 스탠바이 큐’처럼 다시해야 했다.(웃음) 돈과 시간을 다 날리면 데미지가 너무 컸다. 그 장면을 찍을 때 모니터 6개를 동시에 봤다. 한 명이라도 실수하면 큰일 나니까. 벌벌 떨면서 봤는데, 첫 테이크에 오케이가 났다. 배구라는 스포츠의 묘미를 담을 영역이 많은데, 예산과 시간이 좀 많으면 더 많이 했을 것 같다. 하지만 한계가 있는데 취사선택을 했다. 랠리 시퀀스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생각했다.

박정민 배우는 시나리오 나오기 전부터 <1승>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동주> 당시와는 상황이 어땠나.
<동주> 때만 해도 박정민 배우가 그렇게 알려진 배우가 아녔다. 그래서 박정민 배우와 하고 싶은데, 그래서 이 친구가 좀 올라와줘야 하는데 걱정했었는데, 그 걱정이 무색해졌다. 많이 성장해줘서 힘이 된다. 같이 하고 싶은데 안 유명해지면 어떡하지 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다.(웃음) 몇 년 만에 만났는데 성장해있고, 현장에서 많은 경험을 쌓았구나 싶다. 현장에서나 홍보할 때나 노련해진 모습이 뿌듯하다. 제가 만난 배우 대부분 그렇지만 박정민 배우도 정말 치열하다. 송강호 선배님도 연기에 대한 목마름이 한도 끝도 없다. 박정민 배우도 못지않다. 만족을 모른다. 제가 영화에 쓴 “이기는 사람들은 이기기 위해 모든 걸 포기한다”는 대사를 그냥 넣은 게 아니다. 제가 보는 정상급 사람들은 항상 그렇다. 하고 싶은 걸 다 하는 사람이 어딨나. 공통적으로 느낀다. 송강호 선배님, 변요한, 박정민, 서현우 배우 모두 그렇다.. 겪어보니 그렇다. 이유가 있다. 잘한다 못한다가 아니라 자기 업에 대한 애티튜드가 다르다. 저는 재능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고 본다. 영화감독이라면 세 작품까지다. 현재 주연급 연기자 중 재능 없는 사람은 없다, 거기까지 간 거니까. 하지만 오랫동안 활동하는 배우라면 재능만으로 되는 건 아니다. 감독도 그렇고. 치열한 생존의 노하우나 태도가 있다.
그렇지만 노력을 한다고 해도 올바르지 않은 방향으로 노력하면 성과가 없을 수 있다.
사실은 거기서 재능이 결부되는 거 같긴 하다. 올바르지 않은 방법으로 할 수도 있는데, 재능 있는 사람은 올바르지 않다는 걸 빨리 깨닫는다. 송강호 선배님도 하시다가 이렇게 하면 안 돼, 그 감각이 빠르시다. 제가 경험한 좋은 배우는 대체로 그랬다. 노력했는데, 잠깐, 이게 아닌 거 같아. 이걸 빨리 판단한다는 거 같다. 재능이라면 이게 재능의 영역이다.
주연 배우들의 티키타카가 좋은데 이걸 이끌어내기 위해 어떤 걸 신경 썼나.
최고의 가수들이 듀엣 하는데 낄 필요 있나.(웃음) 곡 잘 쓰고 무대 잘 만들고 조명 안 꺼지게 한 것이다. 음, 포인트라면 이런 게 있다. (박)정민 씨랑 송강호 선배님의 장면은 박정민 서브, 송강호 리시브라고 생각하고 썼다. 두 분을 믿고 쓴 거다. 어떤 공도 받을 수 있는 송강호와 구석에라도 공을 때릴 거다라고 믿은 박정민. 100% 신뢰했다. 의심은커녕 기대하면서 모니터를 봤다.

창작자로서 배구 중에서도 여자배구에 집중한 이유도 궁금하다.
우스갯소리로 아무도 안 해서 했다고 하긴 하는데,(웃음) 저의 천성이 그렇다. 재미없는 건 못하겠다. 스포츠영화는 하고 싶은데 남들이 안한 걸 해보고 싶어서, 배구라는 종목이 영화로 하긴 힘들다는데 할 수 있다면 기술적으로 될 것 같다 (생각했다). 옛날이라면 이런 랠리도 못한다. 기술이 받쳐주는 시대니까, 영화 속에서 배구라는 종목의 다이내믹함을 구현할 수 있는데 이제 막 가능해진 것 같으니 남들보다 빨리해야겠다 싶었다.(웃음) 시나리오로는 여러 버전이 있었다. 감독이 젊은 버전도 있고, 여자팀의 여자감독, 남자배우의 남자감독도 있고. 제 선입견일 수 있는데, 감독과 팀이 동성인 것보다 남녀를 섞으면 재밌을 것 같았다. 그리고 송강호 선배님과도 촬영 전 이런 얘기를 했다. 송강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포스터에 젊은 여자와 같이 나온 게 많지 않다. (<1승>의 여자팀-남자감독이) 그림상 신선했다. 우리가 안본 그림이어서. 한편으론 너무 우락부락한 남자배우가 감독에게 대드는 그림이 위화감을 줄까 걱정도 있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렇지만 랠리 시퀀스가 가장 컸던 것 같다. 그걸 영화적으로 구현하고 싶었는데, 남자배구에선 2분짜리 랠리가 안 벌어지니까.
마지막에 가장 강한 팀과 맞붙는 것도 클리셰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차별점은 극복하는 과정에 두고 싶었다. 카드 게임처럼 좋은 패가 나와서 우연히 강자를 이긴 게 아니니까. 나와 비슷한 상대를 이기기 위해선 성장하는 폭이 적다. 강한 상대로 얘기해야 했다. 무엇을 구체화시켜서 이 사람들이 자기를 성장시킬 것인가. 그 대상이 있어야 한다. 저는 클리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과는 이기거나 지거나 둘 중 하나니까. 그 결과만 갖고 얘기하면 안 되고 이야기가 함유한 것이 무엇인지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을 매치포인트까지 가는 격전이 아니라 조금 빨리 끝낸 건 특이했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경기들에서 약팀이 강팀 이길 때, 이런 경우가 많다. 특히 배구는 흐름의 싸움이 크다. 어느 맥락에서 어느 팀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김우진 감독이 계획한 흐름대로 가는 것이 중요했다. 제가 표현하고 싶은 건 핑크 스톰 팀이었다. 이 팀에선 단점을 말 안 한다. 다 단점이 많으니까. 다 이상하다 소리 듣는 사람이라 누구도 이상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준다. 우리는 장점과 단점이라고 말하는데, 그게 아니라 그 사람의 특질이라고 생각한다. 그 개개인의 특질을 어떻게 조화시켜 1승을 쟁취하느냐가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각자의 단점이 어떻게 연동되는지, 그게 핑크 스톰으로 구성돼 상대를 이겼는지로 보길 바랐다.

유키(이민지)가 다시 일어날 때 박정민 배우의 대사 “믿고 있었다구!”는 스포츠물의 아이콘 같은 대사다.
시나리오엔 없었다. 원래는 넘어진 유키를 향해 오겡기데스까~하면 유키가 일어나면서 와따시와 겡기데스~ 하는 거였다. (해당 대사는 일본영화 <러브레터>의 가장 유명한 대사다-편집자 주) 그런데 선을 너무 넘는 것 같아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며 그 정도로 했다. 박정민 배우가 '있었다규'로 해서 더 잘 살렸다.
김우진 감독의 전사를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한 이유도 궁금하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애니메이션으로 경기 장면을 할 때 실사로 못하는 컨티뉴이티를 실현할 수 있다. 제일 하고 싶었던 카메라워크는 카메라가 하늘에서 공 바로 위를 쫓아가는 것이었다.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며. 실사로 하려면 몇 억 깨지겠더라. 너무 하고 싶은 시퀀스 몇 개도 포기했는데, 그걸 애니로는 할 수 있었다. 또 플래시백은 대역을 써야 하는데, 애니메이션으로 하면 송강호 선배님과 김홍파 선배님을 닮게 그릴 수 있다. 타 영화와 변별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관객들에게 영화 전체의 톤을, 브랜딩을 알려주는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배우 중에 모델 차수민도 있다. 장윤주 배우의 추천이었는지.
아니다. 다른 배우들도 추천 받고 그러지 않았다. 전에 모델들하고 브랜드 광고 시리즈를 한 인연으로 에스팀엔터테인먼트 운동회에 간 적이 있다. 거기서 운동하는 걸 보고 캐스팅했다. 그 운동회는 아마 <나 혼자 산다>에도 나왔을 것이다.
감독님의 작품 중 가장 대중적인 영화다. 심경 변화가 있었던 건가 싶다.
심경 변화는 아니다.(웃음) 김우진 감독처럼 계획이 있다 계획대로 안될 뿐. 제 인생계획은 ‘40살까지 말도 안 되는 거 하자’. 40살까지는. 그래서 후회가 없다. 300만 원 가지고 독립영화도 찍고 원 없이 이상한 짓은 다 했는데, <동주>로 빚을 갚고 번 돈으로 기독교 영화도 만들어서 다 털었다. 그래서 이제 마흔 넘었으니까 상업적인 걸 하고, 그게 잘 되면 이상한 거 해보고.(웃음) 그래서 대중적인 <1승>하고 <거미집>하고 <삼식이 삼촌>을 하려 한 건데 그게 순서가 바뀐 거다. 코로나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계획은 하지만 계획대로 안됐다. 내 나름 인생설계에 다 있었다.
그럼 다음엔 어떤 작품을 준비 중인가.
아주 이상한 건 안 할 거 같다.(웃음) 영화를 하려고 생각하는 아이템 3개 중 하나를 할 거 같다. 드라마 대본을 써야 하는 게 있는데, 연출은 아닐 것 같다. <삼식이 삼촌> 하면서 이빨이 4개 빠졌다. 황동혁 감독(<오징어 게임>)처럼 잘 될 줄 알았다.(웃음) 이 빠진다고 다 잘 되는 게 아니더라.(황동혁 감독은 <오징어 게임>을 준비하며 치아가 7개 빠졌다-편집자 주) <1승> 개봉하면서는 담낭을 뗐다. 감독들이 이러고 산다. 그래서 더 이상 이상한 영화는 안 할 거 같다. 조금 괴상한 건 있는데… 그걸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뮤지컬이다, 그래서 작곡 공부를 하고 있다. 제 주변 사람들이 인정하는 게 제가 하겠다 했을 때 못한 건 없다. 망해서 그렇지…. 예를 들어 이준익 감독님이랑 ‘5억짜리 흑백영화’(<동주>) 한다고 했을 때 다 거짓말이랬다. 송강호 선배랑 배구영화한댔을 때도 그렇고. 400억 짜리 시대극(<삼식이 삼촌>)도 그렇고. 결국 하긴 다 했다.

<삼식이 삼촌>은 감독님 필모그래피를 떠나 산업에서도 정말 큰 작품이었다. 반응을 보셨을 때 어떠셨는지.
10부작으로 쓰고 만든 걸 16부작으로 만들어서 낯설었다. 그게 아쉽다. 송강호 선배님하고 같이 했다는 건 후회가 없다. 하고 싶어서 했다. <1승>을 촬영하면서 선배님을 더 알게 되고 쓴 작품이라, 더 그랬다.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른다. 선배님이랑, 혹은 그런 작품을 언제 할지 모르니까. 할 수 있을 때 해야 했다. 선배님이나 저나 성향이 안 해본 걸 도전하는 걸 좋아해서. 후회 자체는 없다. 즐겁게 했다.
배구계에선 이번 영화 반응이 어떤가.
(VIP 시사 때) 김연경 선수 등 배구스타들이 많이 왔다. 그분들 눈에 영화 속 우리의 플레이가 어떨까 우려가 있었는데, 오히려 이 정도 구현하는 것이 어렵다는 걸 더 잘 아는 분들이라 더 많이 놀라셨다. 저걸 어떻게 했냐고. 참, 유키 역의 이민지 배우는 CG가 거의 없다.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몰라주면 너무 억울하겠다 싶어서 많이 말해두겠다고 했다. 경력이 없는 사람이 그만큼 한다는 건 배구선수들이 더 잘 안다. 그분들이 더 많이 인정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