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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가족〉양우석 감독 "김윤석 배우, 다른 작품에서는 볼 수 없던 '이효리 눈웃음' 지어"

김지연기자
〈대가족〉 포스터
〈대가족〉 포스터

<변호인>, <강철비>, <강철비2: 정상회담> 등 매번 시대에 걸맞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감독이 이번에는 시대를 막론하고 변치 않는 화두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12월 극장가를 찾아왔다. 영화 <대가족>은 스님이 된 아들(이승기) 때문에 대가 끊긴 만두 맛집 ‘평만옥’ 사장(김윤석)에게 세상 본 적 없던 귀여운 손주들이 찾아오면서 생각지도 못한 기막힌 동거 생활을 하게 되는 가족 코미디 영화다. 얼핏 <대가족>은 <변호인>과 <강철비> 시리즈와는 달리 휴먼 드라마이기에 양 감독이 파격적인 작품을 만들었다고도 보일 수도 있으나, <대가족>에서 양우석 감독은 그의 전작과 같이 사회적인 고민을 담아냈다. <대가족>은 구세대, 현세대, 미래세대의 가치관과 가족관이 충돌하고 뒤섞이는 이야기이자, 즉 ‘가족에 대하여’ 생각해보고자 이야깃거리를 던지는 영화이기도 하다. 연이은 비상계엄령 선포와 해제로 나라가 뒤숭숭했던 5일 오전, 양우석 감독을 만나 영화 <대가족>과 그의 전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양우석 감독.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양우석 감독.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양우석 감독님의 이전작과 <대가족>은 색채가 확연히 달라요. 어쩌면, 코로나19 이후 달라진 관객들의 취향 변화 때문일 수도 있을 텐데요. 이번 <대가족>은 같이 웃고 우는 그 공동의 경험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탄생한 작품 같다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혹시 <대가족>을 쓰실 때부터, 그런 극장 관람 태도의 변화를 염두에 두고 쓰셨나요?

제가 <변호인> 때 많은 지지, 응원과 사랑을 받아서, 제가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를 생각했는데요. <변호인>이 왜 이렇게 많은 지지와 응원을 받았는지를 생각해 보니까, 그때 우리에게 필요했던 얘기여서 그런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어요. 지금까지도 저는 <변호인>이 굉장히 비정치적인 영화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 영화가 나온 시기가 IMF 시기 때 청소년기를 보냈던 분들이 사회에 나올 때였어요. IMF를 감수성이 예민할 때 겪다 보니까, ‘살아남아야 돼’라는 생각이 있었던 거죠. 미국이 80년, 극심한 불경기를 겪었을 때 미국 청소년들이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던 영화가 <13일의 금요일>과 <나이트메어> 였어요. 그 영화가 잘 된 이유에 대해 한 평론가님이 희대에 남을 명칼럼을 써주셨는데, ‘두 주인공이 죽지 않고 살아난다는 게 청소년들에게 굉장히 강한 인상을 줬다’라는 거였어요. 아마, 우리 IMF 때 청소년들도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죽지 않고 사는 게 정말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순응해야 한다’. 9급 공무원 100만 준비 시대가 그때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변호인>은 한 줄로 압축하자면, 법조인이 법을 지키지 않는 무도한, 무법적인 정권에게 ‘법을 좀 지키세요’라고 강력하게 항의하는 얘기예요. 잘못된 건 항의하고 고쳐야 사회가 발전을 하니까. <변호인>도, <강철비>도, 그 당시 우리 사회에 필요한 얘기, 담론이 생겼으면 하는 얘기였고요. <대가족> 역시, 지금 대한민국 사회의 최대 화두, 사실 가장 압도적인 화두인데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게 가족의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가족에 문제가 있다’라는 게 아니고, 가족의 형태, 관계, 의미는 안 변하거든요. 예를 들면 장례 문화도 가족의 행사인데 진짜 안 변하거든요. 인류학자들이 고민해 본 결과, 인간이 가장 안 바꾸는 보수적인 문화가 장례 문화이고요. 한국의 가족 관련한 통계를 보면 전 세계가 놀라잖아요. 그런데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을’ ‘어떻게’보다는 ‘왜’를 물어봐야 하는데, 그러려면 ‘가족이 우리한테 어떤 의미지?’를 물어봐야 하는 것 같아요. 가족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부터. 개인들에게 ‘알아서 가족을 잘 꾸리세요’라고 숙제처럼 던져줄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양우석 감독.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양우석 감독.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전작 <변호인>은 법정 드라마, <강철비>는 전쟁 액션 영화인 반면, <대가족>은 코미디 드라마입니다. <대가족>은 전작과 다르게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영화도 아니고요. <대가족>을 쓰고 연출하며, 어떤 고민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장르는 관객분들이 소화하기 편하게, 그들에게 통하게 만들기 위해서 영화가 120년 동안 진화시켜 온 게 ‘장르’라는 생각이 들어요. <대가족>은 코믹 가족 휴먼드라마라고는 하는데, 개인적으로 저는 성장, 화해 드라마라고 생각해요. <대가족>은 저한테 조금 무거운 숙제였어요. <변호인>이나 <강철비>는 강렬한 사건이 있는 반면, <대가족>은 아니에요. 우리가 서로의 가족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욕망이 있잖아요. 저는 모든 가족이 결핍과 욕망이 있다고 봐요. 모든 분이, ‘내 가족이 조금 더 이랬으면 어땠을까’ ‘내 가족은 이게 부족하네’라고 느끼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대가족>의 함무옥(김윤석), 함문석(이승기), 민국(김시우), 민선이(윤채나)도 모두 욕망과 결핍이 다르죠. 민국, 민선이의 경우에는 가족 해체가 일어났어요. 사고로 인해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심지어 그 둘이 헤어져야 하니 2차 가족 해체가 온 거죠. 어마어마한 결핍을 해결하지 못하면 다시 가족이 해체를 당하니까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옥에게 간 거죠. 한편, 함무옥은 굉장히 과거 지향적으로 가족을 봐요. 1950년대에 가족을 다 잃었는데, 아들은 스님이 된다고 출가를 해버렸어요. 그런데 갑자기 손주들이 찾아오니까, 굉장히 전통적인 방식으로 ‘내 피니까 내 가족이다’라는 식으로 아이들을 챙겨요. 그런데 사실 그들이 피나 DNA를 나누지 않았잖아요. 무옥의 꿈속에서, 그의 부모님이 ‘너는 우리가 키운 게 아니고 세상이 키워줬다’라는 말을 했는데, 그때 함무옥이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해요. 결과적으로, 함무옥의 성장 이야기예요. 또, 2000년 때만 해도, 50대 중후반의 나이가 사랑을 한다는 건 ‘남사스럽다’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방 여사(김성령)와는 서로 호감이 있는 관계였지만, 과감하게 사랑을 한다며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도 아이들이라는 존재가 오면서였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 돈도 쓰게 됐고, 그간은 자기에게 생긴 재산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고 그냥 본능처럼 살아가는, 함무옥은 그냥 본능만 남은 사람이었으니까요. 본능처럼 돈을 모으고, 본능처럼 내 핏줄만 챙기고. 평만옥 주변에 건물이 올라갔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갇힌, 옛날식 사고방식으로 살던 사람인데, 함무옥이라는 인물이 성장하면서 가족의 영역도 계속 넓어졌다고 생각해요.

함문석(이승기)이라는 캐릭터는 스님이 됐어요. 그런데 머리 좋은 사람들은 뭐든지 머리로만 이해하려고 그러잖아요. 함문석은 아마 들어가서 불교도 머리로 이해했을 것 같아요. 그러다가 속세에 일이 터진 거죠. 소위 말해 업보가 생긴 거죠. 함문석이라는 캐릭터는 사실 불교에서 말하는 생로병사를 다 겪어요. 그걸 관객들에게 푸시 하지 않고 이미지로 처리하기는 했지만. 불교에 ‘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 事事佛供, 곳곳에 부처님 일마다 불공)’이라는 말이 있어요. 짜장면 배달부를 보면서, ‘저런 분이 부처다’라고 깨닫는 거죠. 부처는 속세에도 있고,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는 모든 분들이 사실은 다 부처의 마음이고, 예수님의 마음이구나, 하고 깨닫는 거죠. 그리고 나중에는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에게 보였던 욕망과 집착도 사랑의 다른 형태였구나, 아버지가 보여줬던 욕망과 집착이 저렇게 승화가 되었구나, 그런 걸 깨달으면서 속세에 와서 두 명의 부처님을 본 거죠. 영화의 마지막 대사 ‘아버지 덕분에 이제 붓다를 알겠다’는 대사가, 가족의 가장 본질적인 거라고 봐요. 자비와 연민, 사랑이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거니까요. <대가족>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아버지와 아들이 화해하는 얘기예요.

〈대가족〉
〈대가족〉

말씀하신 것처럼, 불교에 대한 공부를 굉장히 많이 하신 것으로 보여요. <대가족> 속 문석은 스님이기도 하고, 극 후반부에 불교의 말씀을 인용한 장면이 다수 등장합니다. <대가족>에 불교를 접목하게 된 과정에 대해 들려주신다면요.

저는 원래 인류학, 철학, 종교에 관심이 있어요. 이 작품을 하면서 대한민국 불교의 구성, 구조를 공부했고요. 그리고 ‘다르마’(dharma: 불교의 ‘법’)란, ‘바뀐다’ ‘치환된다’라는 것을 뜻해요. 우주의 법칙을 인간 세상에 적용한 게 다르마인 거고, 그래서 양자역학과 굉장히 비슷해요. 실제 물리 법칙을 인간에 적용한 게 다르마인 것이고요. 또, 한 부모님 밑에 있다가, 몇십 년이 지나서 본인이 부모님이 되어 가정을 이어나가는 게 불교에서 말하는 다르마고. 나의 위치가 바뀌는 것이 불법이고, 진리라는 것인데요. 저에게도 <대가족>의 화두는 다르마였어요. About family, 즉 가족에 대하여 뭐가 변했는지를 같이 고민하자는 거죠. 저는 정답은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어찌 됐든 인연이라고 하는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으니까.

〈대가족〉
〈대가족〉

김윤석 배우가 <대가족>의 주인공 함무옥을 맡게 된 과정도 궁금합니다.

<대가족> 시나리오가 나오고 나서 제일 먼저 드렸어요. 영화는 드라마랑 다르게, 캐릭터를 설명할 시간이 많지 않은데, 김윤석 배우의 최대 장점은 관객들에게 해야 할 설명을 그냥 순식간에, 본인이 이미지를 만들어서 설명을 해버린다는 거예요. 이분은 뭘 해도 장인 같잖아요. <타짜>만 보더라도, 이분은 그냥 등장하자마자 타짜잖아요. 그래서 <대가족>에서도 만두피에 만두 속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만두 장인처럼 보이고. 모든 연출자들이 다 같이 한번 일해봤으면 하는 배우니까 당연히 제일 먼저 시나리오를 보냈고요. 김윤석 배우가 대단한 건, <대가족>에서 함무옥이 손주를 봤을 때, 하회탈처럼, 소위 우리가 말하는 ‘이효리 눈웃음’이라고 보이는 웃음을 지어주셨어요. 다른 표정들은 김윤석 배우가 나오는 다른 영화에서 봤을 텐데, ‘가족에 대한 욕망과 결핍이 가득한 사람에게 손주들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를 너무 정확하게 보여주는 거죠. 제가 제일 좋아하는 ‘배우’에 대한 표현 중 하나가, ‘배우는 우리가 잃어버린 표정을 보여주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왜냐면 우리가 모두 삶이 바쁘다 보니까,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잘 모르고 살잖아요. 함무옥이 그런 하회탈 표정을 지으니까, 그다음 감정선이 관객에게 와닿는 거고. 본인께서 어떤 표정으로 관객들과 소통할지를 정확하게 알고 연구해서 오셨어요.

〈대가족〉
〈대가족〉

말씀하신 것처럼, 김윤석 배우는 <타짜> 등, 장르적인 작품에서 선 굵은 캐릭터를 많이 연기해온 터라, <대가족>처럼 웃음과 감동을 담당하는 소박한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사실이 꽤 놀랍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사실 <완득이>나, <남쪽으로 튀어>, 혹은 김윤석 배우 본인이 연출하셨던 <미성년>을 보면 충분히 그런 모습이 많이 보여요. <대가족> 캐스팅은 한 30개월 전에 시작하고, 촬영은 25개월 전부터 시작했는데요. 그때가 영화, 드라마 합쳐서 400편은 찍을 때라, 모든 배우들이 스케줄이 2~3년 차 있을 때였어요. 그런데 김윤석 배우가 본인 스케줄을 다 ‘째고 째서’ <대가족>을 하시겠다고 하셔서 기적적으로 찍을 수 있었어요. 제가 그렇게까지 해주신 이유를 물어보니, 본인은 시나리오가 귀하다, 너무 자극적인 작품들이 많은데, 오히려 이렇게 슴슴한 작품에서 배우 자신이 자기를 표현하고 연구하고 넓혀보기에 좋을 거라고 하셨어요.

 

문석 역으로는 단박에 이승기 배우를 낙점하셨다고 했어요. 1순위로 이승기 배우를 떠올린 이유는요.

이렇게 묘사하는 게 조금 손해긴 한데,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때 누가 봐도 훌륭한 유전자고, 똑똑하고, 키 크고, 어머니들이 가장 바라는 엄친아와 같은 캐릭터를 딱 써놨어요. 누가 봐도 ‘결혼은 저 남자랑 하고 싶어’하는 느낌. 영화를 보시면 알겠지만, 함문석은 조금 허당끼가 있어야 하거든요. 이승기 배우가 이전에 예능에서 보여줬던 이미지도, ‘완벽할 줄 알았는데 허당이네?’ 이런 느낌도 좋았고요. 또, 예전 90년대 홍콩 배우는 노래도 하고 연기도 하는 분들이 많았잖아요. 그래서 90년대 홍콩 스타 같은 분이, 가장 세속적인 분이 스님 역을 하면 파격적인 느낌일 것 같아서 제안했는데 과감하게 선택해 주셨어요.

〈대가족〉촬영장의 양우석 감독
〈대가족〉촬영장의 양우석 감독
〈대가족〉
〈대가족〉

<대가족>은 2000년을 배경으로 합니다. 그래서 인물들이 구식 핸드폰을 쓰고, 과거에 볼 수 있었던 차량을 모는 모습이 재밌기도 한데요. 특히나 2000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삼은 이유도 궁금합니다.

2000년은 참 묘했던 게, 원칙적으로는 20세기잖아요. 그런데, 유엔에서 2000년을 21세기라고 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2000년은 20세기이면서 21세기였고, 저는 그게 딱 좋았어요. 그래서 20세기의 가족관에 천착해 있던 함무옥과 21세기에 어른이 될 민국, 민선이의 상황을 한번 바라보자 싶었어요. 함무옥 같은 사람은 2000년에 많았어요. 2000년은 X세대를 넘어 Z세대가 막 태어날 때고. 25년 전이면 그렇게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시기예요. 그리고 저에게 <대가족>의 마지막 엔딩 씬은 정해져 있었거든요.

 

재밌는 건, 양우석 감독님의 나이대와 극중 함문석의 나이가 겹친다는 건데요. 함문석은 86학번이고요. 감독님 본인이 함문석의 가치관, 그리고 그 위 세대가 함무옥의 가치관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텐데요. 본인이 자라오면서 경험했던 가치관의 충돌이 영화에도 녹아든 건가요?

솔직히 제 얘기는 아니고요. 기자님들 앞에서 하기는 좀 민망한 얘기긴 한데, 고등학교 때 제 짝이 의대를 갔어요. 그때의 제 짝이 영감을 많이 주긴 했습니다. 그 친구가 정말 키도 크고 잘생기고, 정말 ‘엄친아’ 였어요. 이 친구를 보호하기 위해서 여기까지만 얘기하겠습니다. (웃음)

〈대가족〉
〈대가족〉

<대가족>의 전반부는 빵빵 터지는 반면, 후반부는 자연스럽게 눈물을 자극합니다. 코미디는 굉장히 연출하기 어려운 장르이기도 한데요. 코미디와 감동을 넘나드는 구성을 짤 때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보통은 만들 때부터 장르가 있죠. <변호인> 때는 심플했어요. 가장 잘 만든 법정 드라마 중 하나가 되고 싶었고요. <강철비>는 누가 뭐래도 전쟁 액션 영화죠. 그런데 <대가족>은 달라요. 저는 이를 물고 신파를 다 들어냈어요. 그런데 울컥하고 감동한다면, 본인 내부의 가족에 관한 경험이 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모두가 가족은 있는데, <변호인> <강철비>의 상황에 처할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 중에 몇 분 안 계시죠. 그런데 모두가 가족에 대한 생각이 있기 때문에, 본인이 본인 마음속에 있는 가족을 꺼내는 거예요. 단언컨대 가족은 우리 모두에게 콤플렉스이고 트라우마이며 욕망과 결핍의 대상이니까요. 완벽한 가족이 있는 지구인은 저는 없다고 봐요. 그래서 영화를 보면 내 가족이 어쩔 수 없이 소환이 돼요.

그리고 저도, 배우분들도 인위적으로 코미디를 짜지는 않았어요. ‘화장실 씬’ 같은 경우에만 서비스처럼 하나 넣은 거고, 사실 나머지는 코미디라기보다는 당연히 발생하는 일이에요. 손주들이 함무옥에게 찾아왔으니 아들에게 전화해야 하는데 아들이 안 받고, 직장에다 전화를 해야 하니까 방송국에다 전화한 거죠. 그래서 저는 배우분들에게도 ‘본인들대로 진지하시면 된다’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리고 함무옥이 휴지를 절약하자며 ‘작은 건 한 칸, 큰 건 두 칸’이라고 하는 부분은, 제가 예전에 IMF 때 방송국에서 일할 때, 절약하자는 의미에서 실제로 만든 파일럿 프로그램에서 착안한 거예요. ‘구두쇠 열전’이라는 이름으로, 절약하는 사람들을 찍었는데요. 예를 들어, 아들에게 절대 과자를 안 사주시고 달걀만 주시는 분이 계셨어요. 그런데 정말 그중에는 함무옥처럼 작은 건 한 칸으로 해결을 해야 하고, 큰 건 한 칸으로 해결하는 분이 계셨어요. 그분이 워낙 유쾌하셔서 재미는 있었는데요, 어찌저찌 프로그램은 버리게 됐죠. 그때 인상이 하도 강해서 함무옥 캐릭터에 갖다 쓴 거예요.

 

특히나, 민국, 민선 두 손주 역을 맡은 김시우, 윤채나 배우가 연기를 굉장히 잘하더라고요.

오디션을 보고, 두 부모님들에게 말씀을 드린 건 연기 연습하지 마시고, 두 아이가 진짜 남매처럼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영화에 들어갈 때 두 아이는 굉장히 남매처럼 친해졌어요.

양우석 감독.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양우석 감독.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변호인>의 송강호 배우와 비슷한 시기에 극장에서 만나게 됐어요. 송강호 주연의 <1승>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을 하게 됐는데요. 소감이 어떠신가요.

<1승>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할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어요. <하얼빈>은 저희 세트장 옆에서 찍어서 조우진 배우님이 놀러 오기도 하셨는데(조우진은 양우석 감독의 <강철비>에 출연했었다-편집자 주), 그래서 <하얼빈>과는 비슷한 시기에 개봉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앞으로 계속 영화를 하면서, 감독님이 목표하는 바가 있다면 뭔지 들려주세요.

10년은 우리 사회에 필요한 얘기를 하는 것, 그리고 나머지 10년은… 사실 대한민국의 콘텐츠 수출 사업이 미국 다음으로 크거든요. 물론 1위랑 차이가 많이 나기는 하지만, 콘텐츠 수출로 여기까지 온 건 놀라운 일이죠. 그래서 힘들게 여기까지 오긴 왔는데, 게임이나 케이팝은 그래도 안정권에 있는 반면, 영화와 드라마는 증발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까지 위기가 온 것 같아요. 그런데 2000년대 후반에 갑자기 대한민국에 몇만 개 있었던 비디오 가게가 순식간에 증발을 해버렸어요. 그러니까, 영화 산업은 한 번 증발을 겪었어요. 그리고 흔히 우리가 말하는 OECD 선진국들은 극장보다 부가판권으로 이익을 벌었어요. 그런데 대한민국은 그때 비디오 산업이 증발을 하고, 대부분의 이익을 극장에서 벌었어요. 사실은 어떤 느낌이냐면 네 발 짐승이 사냥을 하는데, 한국은 발 세 개가 잘리고 한 발로 움직이고 있었던 산업인 거예요. 그런데 코로나19 때 그 나머지 한 발마저도 심각한 타격을 입은 거죠. 그래도 수십 년에 걸쳐서 여기까지 왔고, 저만 하더라도 처음부터 영화 산업에 투신하지 못했어요. 왜냐하면 영화 산업이 존재하지 않아서.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방송국에서 일을 하다가, <쉬리> 등의 영화가 나오면서 이쪽으로 왔어요. 그래서 그다음 10년은 이 산업의 증발을 막던지, 아니면 같이 산화하던지. 그걸 위해서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대가족〉촬영장의 양우석 감독
〈대가족〉촬영장의 양우석 감독

아까 말씀하셨던 것처럼, <변호인>은 법정 드라마로, 법을 지키지 않는 정권에게 법을 지키라고 말하는 영화입니다. 또, 지금도 북한의 위협은 계속되고 있고요. <변호인>과 <강철비>를 만든 감독으로서, 지금 이 시국에 말씀하실 것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저는 다른 일을 하다가 (비상계엄 선포를) 전화받고 알게 됐는데요. 제가 “걱정하지 마시라, 3일 안에 원상복구된다”라고 말했어요. 제가 교과서적으로밖에 얘기를 할 수 없던 게, 아까 학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제가 학교를 다닐 때 87년에 헌법이 바뀌었기 때문에, 그다음 해에 ‘무조건 시험에 나온다’해서 ‘계엄 해제 정족수 2분의 1’ 달달달 외웠던 거예요. 실제로 일하고 집에 돌아가니까 계엄 해제 의결이 났더라고요. 80년대는 정치권력이 시장 권력을 압도할 수 있는 시기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시장 권력이 더 큰 시기라서 그런 일(최악의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또, 전쟁을 고민하시는 분들께는.. 제가 <강철비2: 정상회담>를 만든 게 그런 이유이기도 한데, <강철비>는 남북이 어떤 것을 결정하면 할 수 있다는 느낌을 풍겼었거든요. 그런데 그게 정말 거짓말이라, <강철비>에서 그런 뉘앙스를 풍겼던 게 저에게는 양심의 가책 같은 거였어요. (그래서 <강철비2: 정상회담>을 만들었습니다.) 남북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한반도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지정학적 문제가 걸려 있어서, 이제는 전쟁 못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