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기사 카테고리

Movie & Entertainment Magazine from KOREA
>인터뷰

[인터뷰] “한국 호러 드라마의 기준이 되고 싶었다” 〈조명가게〉강풀 작가

추아영기자
〈조명가게〉강풀 작가
〈조명가게〉강풀 작가

강풀 작가의 작품에는 언제나 사람이 중심에 서 있다. 인류가 알 수 없는 사후 세계조차 그에게 있어서는 그저 “사람 사는 곳”일 뿐이다. 강풀 작가에게 미지의 사후 세계는 도리어 창작의 토대가 되어 주었고,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소중한 것을 지켜내려는 인물들의 절절함과 휴머니즘을 배가시키는 공간적 설정이 된다. 시리즈의 초반부, 호러와 서스펜스 장르의 색이 짙게 배여 있는 <조명가게>는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강풀 특유의 휴머니즘으로 물든다. <조명가게>도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한 이들의 분투를 담고 있다. 강풀 작가는 인터뷰에서 <조명가게>를 “사랑하는 가족이나 연인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를 만나 시리즈 <조명가게>와 그의 예술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조명가게〉
〈조명가게〉

<조명가게>가 디즈니플러스 역대 최다 시청 기록 2위에 올랐습니다. 1위 또한 2023년에 흥행한 작가님의 작품 <무빙>인데요. 1위, 2위를 둘 다 독식하신 소감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기쁘죠. 사실 <조명가게> 이야기 전개 방식이 조금 낯설잖아요. 앞부분에 인물 한 명 한 명을 다 짚고 넘어가니까요. 저는 시작할 때부터 이 드라마의 진짜 이야기는 5화부터 시작된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1~4화까지 시청자분들이 잘 따라와 주셔야 5~8화에서 진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텐데’라는 걱정을 했죠. 되게 위험한 시도일 수도 있는데 저는 이 이야기를 그렇게 하고 싶었거든요. 근데 시청자분들이 다 따라와 주시고, 또 좋은 결과까지 나왔다고 하니까 요즘은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너무 다행이에요. ‘안 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도 했었는데, 너무 다행입니다.

말씀하는 걸 들어보니까 부담감이 많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부담감이 있었죠. <무빙> 같은 경우는 진입 장벽이 낮잖아요. 같은 장르물이긴 하지만 초능력물이고, 또 보여줄 만한 것들이 많이 있잖아요. 액션도 있고, 하이틴, 멜로 같은 것도 있으니까요. 근데 <조명가게>는 호러물이고, 호러물은 진입 장벽이 높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쓰면서 왜 호러물인 드라마가 많이 없는지 알겠더라고요. 호러물은 어떻게 보면 가장 영화에 적합한 장르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귀신의 정체가 밝혀지면 더 이상 안 무섭잖아요. 대부분의 호러물이 귀신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부터 약간 맥이 풀리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귀신들이 막 초능력을 부리잖아요. 유리창 깨고 이러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런 쪽으로 가고 싶지 않았어요. 결국 작품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까 앞부분에 한 명씩 개인적인 사연을 다 짚어가는 이야기 방식을 택했어요.

사실 요즘같이 드라마계가 많이 위축되어 있고, 제작 편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쉽지 않은 시도였어요. 그럼에도 5화부터 이야기가 재밌어지려면 이 사람들이 누구이고, 뭘 하고 있는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전통적인 드라마 흥행 공식하고는 많이 다르죠. 이런 거를 받아준 디즈니한테도 고마워요. 만화를 그릴 때는 이런 두려움이 없었어요. 나 혼자 망하면 그만이니까 그런 두려움이 전혀 없었는데, 시리즈를 작업할 때는 너무 많은 자본이 들어오고, 팀 작업이기도 해서 두려웠죠. 또 저는 만화를 오래 그려 왔기 때문에 저의 독자분들이 제 성향을 알거든요. ‘앞부분에 다 알려주지 않아도, 뒤에 나오겠구나’ 이렇게 알면서 보는 게 있는데, 드라마는 이제 겨우 두 번째 작품을 쓴 사람이기 때문에 전개 방식에 있어서 이견도 많이 있었고, 저 자신도 스스로 의심을 많이 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러 장르로 시작된 멜로를 한번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조명가게〉
〈조명가게〉

<조명가게>의 시작점에 대해서 묻고 싶은데요. 임사 체험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처음 아이디어를 얻으신 건가요? 아이디어를 펼쳐 나가는 과정에서 작품의 큰 틀은 어떻게 구성해 나갔는지도 궁금합니다.

저희 아버지가 작은 개척 교회의 목사이셨어요. 제가 만화가를 하기 전에 저희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요. 요즘에는 중환자실에 들어가기 되게 어렵지만, 그때는 한 이십몇 년 전이니까 중환자실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그때 중환자실에 들어가서 의사 선생님이랑 다른 환자의 보호자가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제가 <조명가게>에 썼던 대사를 들었어요. “이제는 환자분이 살고자 하는 의지가 중요한 것 같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때는 제가 만화가를 하기 전이었는데도 그 말이 되게 인상 깊었어요. 제가 20대였을 때인데, ‘환자가 의식도 없는데 의지가 어떻게 있을 수 있을까’란 생각을 했었어요. 이후에 저한테는 두고두고 좀 많이 따라다닌 말이 됐죠. 이 경험이 <조명가게>의 출발이 됐어요.

그리고 장르를 호러로 정했는데, 사실 작가 입장에서 호러는 굉장히 좋은 장르예요. 귀신, 심령은 밝혀진 게 없잖아요. 그래서 창작하기 가장 좋은 소재라고 생각했어요. 귀신 이야기에 관심이 많기도 하고요. 귀신도 죽기 전에 사람이었을 거 아니에요. 또 저는 겁도 없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한번 접근을 해보자고 생각했죠.

시리즈가 공개되면서 원작도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이 작품이 독자나 시청자들에게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제 만화가 항상 클래식이 되기를 원해요. 그 당시에 유행하는 만화로 그렸다가 사람들이 다시 보지 않는 만화를 그리고 싶지 않았어요. 나중에 꺼내 봐도 재밌는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이야기 자체에 힘을 줘서 만화를 그렸었거든요. 우리 <조명가게> 드라마도 클래식이 될 것 같아요. 부끄러워서 남한테는 얘기를 못 하고, 우리 감독님께만 얘기했어요. “나는 <조명가게> 드라마가 이후에 나오는 모든 한국 호러 드라마의 기준이 되고 싶다”고요. 나름의 야망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저희 작품이 제일 잘났다는 게 아니라 나중에도 계속 호러 드라마가 나올 거 아니에요. 그러면 <조명가게>가 기준이 되는 거죠. <조명가게>보다 재밌다고 해도 상관없고, 재미없다고 해도 상관없는데, 기왕 작품을 하는 거 하나의 기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했었어요. 근데 저는 이 드라마가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조명가게〉
〈조명가게〉

<무빙>에서 만났던 배우 김희원 씨와 이번 작품에서는 감독으로 만나셨잖아요. 두 분의 호흡은 어떠셨어요? 또 큰 프로젝트에 감독으로서는 신인인 김희원 씨를 믿고 맡긴 이유도 궁금합니다.

진짜로 너무 좋았어요. 제가 처음 김희원 감독님한테 연출 한번 해보시는 게 어떻냐고 제안했어요. 근데 아무 근거 없이 제안을 할 수는 없잖아요. 사실 <무빙> 끝나고 나서 <조명가게>를 쓸 때, 김희원 감독님이 연출에 관심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감독님이 인터뷰에서 말씀을 안 하셨던 것 같은데 감독님이 호러 장르 비슷한 작품의 연출을 생각하시고 계셨어요. 그때 이분도 이런 곳에 관심이 있구나 싶었죠.

그리고 제가 드라마는 <무빙>이 처음이지만, 그 이전에 제 작품을 영화화한 게 8편이 되잖아요. 현장에 갈 때마다 감독님들과 교류를 하게 됐어요. 그때 ‘감독이 결정하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수십 가지의 선택의 순간이 있는데, 그 순간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끌고 가는 게 감독의 가장 큰 역할이더라고요. 이건 진짜 힘든 직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현장 경험이 많은 분이 필요했어요. 또 <조명가게>는 사람을 다루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 어떤 작품보다 배우들이 연기를 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김희원 감독님이 베테랑 배우시잖아요. 배우들을 가장 잘 이해하고 연출에도 어느 정도 뜻이 있으신 분이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감독님께 제안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감독님과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제가 사실 <무빙> 때는 각본을 너무 세세하게 썼거든요. 각본을 막 콘티 짜듯이 엄청 세세하게 썼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냥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했어요. 제가 새벽에 출근하는데, 감독님도 새벽에 출근한 적도 되게 많아요. 심지어 감독님 집은 종로고, 저희 집은 강동구 고덕동이어서 굉장히 멀잖아요. 그런데도 뭐 하나가 마음에 걸리거나 이야기를 해야겠다 싶으면 정말 서슴없이 찾아오셨어요. 크랭크인 하기 전에 가족 말고 가장 많이 만난 사람이에요. 그 열정이 정말 대단했어요. 작품 생각을 너무 많이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제가 잠깐 일상적인 얘기를 하면, 다시 <조명가게> 얘기로 돌아올 정도로 머릿속에 작품 생각밖에 없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굉장히 신뢰하게 됐고, 작품 공개 이후에 감독님이 연출에 대한 호평을 받게 되어서 너무 기뻤어요.

감독님이 말씀하시기로는 강풀 작가님이 <무빙>에서 가장 연기를 잘한 배우로 김희원 배우를 말씀하셨다고 하셨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보통 작가들은 배우들 만나면 다 그렇게 얘기하는데요. (웃음) 사실 <무빙>에서 희원 감독님이 했던 역할이 가장 어려웠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 초능력자들인데 초능력도 없고, 무조건적인 목표가 있다기보다는 심리적으로 갈등하는 캐릭터고, 가장 평범한 사람이기도 하잖아요. 촬영장에서 감독님이 연기하는 걸 봤어요. 학교에서 희원 감독님이 연기를 하셨는데, 너무 자연스러웠어요. 20~30명 정도 되는 학생한테 가르쳐주면서 연기를 하시는데 그게 너무 인상적이었고, 우리 <무빙>의 배우들인 (이)정하 씨나 (고)윤정 씨, (김)도훈 씨 이런 친구들을 잘 아우르면서 연기하는 걸 보니까 진짜 학교 선생님 같더라고요. 그때부터 마음이 조금씩 끌렸던 것 같아요.

〈조명가게〉
〈조명가게〉

<무빙>을 하고 나서 차기작으로 <조명가게>를 하신 이유가 있나요? <무빙> 시즌 2를 바로 시작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무빙> 거의 촬영 막바지에, 후반 작업 때 <조명가게>를 쓰기 시작했거든요. 솔직히 <무빙>이 이렇게 잘 될 줄 몰랐어요. (웃음) 그리고 <무빙>이 잘 돼서 <무빙> 시즌 2를 하자는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나왔더라도 아마 저는 <조명가게>를 했을 것 같아요. 저는 만화를 그릴 때도 계속 장르를 왔다갔다 했었거든요. 한 번은 순정 만화, 한 번은 호러물 그리고 초능력물을 그리곤 했었는데요. 저는 제가 가장 하고 싶은 작품을 하는 게 저의 보람이에요. 저도 쓰면서 재밌어야 하니까. 그리고 <조명가게>는 드라마로 더 깊은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조명가게>를 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많이 놀라더라고요. “<무빙>을 했으면 다음에는 당연히 <무빙 2> 아니야?”이런 말을 저에게 많이 했는데, 그때까지는 결정된 사항도 없었고, 차기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조명가게>를 너무 하고 싶었어요.

〈조명가게〉강풀 작가
〈조명가게〉강풀 작가

<무빙> 때는 캐스팅에 적극적으로 관여를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이번에는 어느 정도로 캐스팅 논의를 같이하셨나요?

<무빙> 때는 뭘 몰라서 좀 적극적으로 했고요. 그때는 좀 저질렀어요. 제가 막 미리 전화해서 해달라 그랬었는데, 이번에는 전부 다 같이 의논했어요. 이번 배우 캐스팅에 대해서는 감독님한테 의존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좀 잘못 알려진 게 있는데 박혁권 배우 같은 경우는 제가 추천했거든요. 근데 알고 보니까 감독님하고 되게 친하신 분이더라고요. 제가 박혁권 배우를 추천한 이유는 그분의 주름살이 너무 좋았어요. 박혁권 배우가 맡은 오승원 버스 기사가 많이 우는 역할이잖아요. 계속 사과를 하는 역할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박혁권 배우를 적극 추천했었어요.

또 한 분은 이자람 배우 있잖아요. 전대 조명 가게 사장은 제가 먼저 추천을 했죠. 이자람 씨는 국악계에서는 너무 유명한 분이지만, 이쪽에서는 좀 낯선 얼굴이고, 전대 사장은 여성분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위엄 있고, 카리스마가 있는 배우면 좋을 것 같았는데 딱 이자람 배우가 생각났죠. 다른 모든 배우들은 전부 논의를 거쳤어요.

〈조명가게〉
〈조명가게〉

혹시 출연한 배우 중에 이 배우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연기를 너무 잘해서 놀란 배우도 있을까요?

생각도 못 한 건 아닌데 (김)설현 씨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감독님이 여러 캐스팅 안을 갖고 왔을 때 설현 배우를 말씀하시더라고요. 저는 솔직하게 마지막으로 설현 씨의 연기를 본 게 <살인자의 기억법>과 <안시성>이었어요. 지영 역할은 굉장히 쓸쓸하고, 처연한 느낌도 나야 하고, 애쓰는 역할인데, 설현 씨한테는 젊은 20대 여성의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감독님이 뭔가를 보셨겠지라고 믿고 갔죠. 그런데 현장에 갔다가 깜짝 놀랐어요. 지영이가 앉아 있더라고요. 현장에서 설현 씨가 쉴 때마다 진짜 지영처럼 혼자 조용히 앉아서 계속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거예요. 그 모습이 너무 인상 깊었어요. 이번 작품으로 설현 씨가 진짜 좋은 배우였구나 깨달았죠. 저도 일반 대중이었기 때문에 몰랐던 것을 감독님은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현민(엄태구)이 지영이를 진짜 사랑한 게 맞는지 추측이 난무하거든요. 이 부분에 대해서 작가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다양하게 생각을 할 수 있겠죠. 정말 기울어진 사랑일 수도 있는 거고, 다르게 생각하면 현민은 가장 큰 사고를 당한 사람이잖아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위험했던 사람인데 지영이가 계속 생명을 연장시켜서 기어이 살려냈어요.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과 다른 뭔가가 더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거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답하고 싶지 않아요. 왜냐하면 이 드라마 전체의 마지막 엔딩이 지영이의 궁금증으로 끝나잖아요. 지영이도 끝까지 궁금해서 결국 현민이를 따라간 것인데, 이에 대한 답을 작가가 나서서 줘버리면 작품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게 아닌가 싶어요. 심지어 배우들도 궁금해했는데 대답을 안 했어요. 이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있는데, 저는 그 무엇도 다 틀렸다고 보기는 힘든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엄태구 씨한테 많이 고마워요. 우리 드라마에 나오는 모든 캐릭터들은 정말 다 지고지순하게 나오고 정말 애달픈 사랑을 하고 있잖아요. 근데 극 중에 나와 있는 모든 사랑의 종류가 다 이러했다면, 드라마가 약간 붕 뜨지 않았을까요? 오히려 현민의 결말이 판타지로 뜰 수 있는 드라마를 현실로 내려오게 해 주지 않았나 생각해요. 하지만 결코 현민이가 지영이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조명가게〉
〈조명가게〉

웹툰에서는 다뤄지지 않았던 원영(주지훈)의 서사와 양 형사(배성우)의 서사도 드라마에 추가됐는데요. 원작에서는 없던 서사를 이번 작품에서 추가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웹툰을 쓸 때는 주 2회 연재를 해야 하니까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는 뺐어요. 가장 많이 아쉬웠던 게 조명 가게 사장의 이야기를 아예 다루지 못한 거였어요. 이 사람이 왜 저기에 앉아 있고, 뭘 하는 사람이었는지에 대해 그려내지 못한 부분이 굉장히 아쉬웠었어요. 그리고 웹툰 ‘조명가게’에도 양성식 형사가 나와요. 마지막에 에필로그에만 나오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좀 더 적극적으로 등장시키고 싶었어요. 그래서 양성식 형사와 김대명 씨가 연기한 김상훈이라는 캐릭터의 서사를 넣었어요. 김상훈 캐릭터는 예전에 제가 그렸던 ‘아파트’의 이야기를 그대로 가져온 거예요. 그래서 이야기를 좀 더 풍성하게 하고 싶었고, 사람이 더 많아 보이게 하고 싶었어요.

물론 웹툰 작업을 하실 때 마감에 더 쫓기셨겠지만, 드라마 작업도 시간제한이 있잖아요. 이번에는 어떤 부분을 더 강조하고, 어떤 부분을 빼셨는지 궁금합니다.

이번에는 뺀 게 없는 것 같아요. 그게 OTT의 강점인 것 같아요. 만약에 이 작품이 TV 공중파 채널에 편성되었다면, 60분 안에 맞춰야 되잖아요. 근데 <조명가게>는 앞부분 회차가 45분, 44분이고, 마지막 화는 1시간 17분이에요. 약간의 자유가 주어져서 OTT가 저한테 가장 적합한 매체인 것 같아요. 웹툰도 어떨 때는 길고 어떨 때는 짧은 것처럼요. 저는 한 회에 반드시 담아야 될 얘기가 있으면 길어지거나 아니면 짧아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또 작가 입장에서는 표현의 수위도 얼마든지 조절 가능하잖아요. 그래서 그런 부담감이 없었던 것 같아요.

〈조명가게〉
〈조명가게〉

작가님의 작품 대다수가 소시민의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시리즈화한 <무빙>의 인물들도 사실은 초능력자이지만, 겉으로는 일상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현실에 얽매여 살아가는 소시민들입니다. <조명가게>에서도 주요 인물이 다 소시민들인데, 그들을 반복해서 그려내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을 쓰는 게 목표예요. 재벌을 잘 이해하지 못하죠. 재벌로 살아본 적이 없어서. (웃음) 그리고 항상 글을 쓰거나 만화를 그릴 때도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를 항상 궁금해했어요. 저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다 평범한 사람들이고,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는 게 제일 좋아요. 그러다 보니까 엄청나게 대단한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직까지는 제 작품에서 안 나왔죠.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무빙>도 같은 생각이었고, <조명가게>도 같은 생각이었는데, 저는 그들처럼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거든요. <조명가게>는 사랑하는 가족이나 연인을 살리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잖아요. 평범한 사람들이 그렇게 애쓰는 모습을 한번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일부러 재벌을 제 작품에서 배제하지는 않았습니다. 필요하다면 그들의 이야기를 하겠지만 아직까지는 제 이야기 속에서 그런 직업군이나 상류층이 필요하지는 않아서 안 쓴 것뿐이지 일부러 빼거나 그러진 않았습니다.

〈조명가게〉
〈조명가게〉

쿠키 영상에서 박정민 씨가 등장해서 많은 시청자들이 열광을 했잖아요. 영탁 역으로 박정민 씨를 캐스팅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김희원 감독님 인터뷰를 봤거든요. 일주일 전이라고 말한 거는 감독님이 헷갈리신 거고요. 저는 사실 박정민 씨를 3년 전에 섭외했어요. 언제 섭외했냐면은 <무빙>할 때 했어요. 주변 분들께 소개를 좀 해달라 해서 정민 씨와 한 번 밥을 먹은 적이 있었어요. 그때 제가 <무빙>이라는 드라마를 쓰고 제작에 들어갈 건데, 그 이후에 <타이밍>이라는 만화가 있다. 거기서 되게 중요한 역할인데 나는 정민 씨가 그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얘기했죠. 그 자리에서 정민 씨도 그 만화를 안다고 해서 얘기를 주고받았었어요. 사실 저는 <무빙>에서부터 박정민 씨를 카메오로 출연을 시키고 싶었어요. 근데 당시 제작 여건에서는 <무빙>이 얼마나 더 갈지 모르는 상황이었어요. 다행히 <무빙>이 잘 됐으니까 <조명가게> 이후에 <무빙 2>도 나오겠다는 안도감 그리고 자신감이 생겼고, 정민 씨한테 바로 전화했었죠. <조명가게> 쿠키에 영탁이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죠.

박정민 배우를 3년 전부터 낙점을 하실 정도로 작가님께서 그에게 매료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조명가게>를 할 때는 원작 만화 속 인물과 배우들의 싱크로율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근데 이상하게 정민 씨는 제 만화 속 영탁이와 좀 닮았어요. 코도 좀 크고 약간 비슷하게 생겼어요. (웃음) 그런 것도 있고, 제가 영탁이라는 캐릭터에 되게 애정을 갖고 있는데요. 왜냐하면 영탁이는 하기 싫은데 하는 사람이거든요. 얘는 원래 본성이 너무 착한 애인데 ‘다 귀찮고 하기 싫은데 어떻게든 해보자’ 이게 얘의 대표적인 대사예요. 본성이 착해서 하기 싫지만 마지못해하는데 열심히 하는 사람인 거죠.

또 제가 생각하는 초능력자는 프로처럼 ‘내가 해볼 거야’ 막 이렇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아니면 할 사람이 없겠구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그리고 싶었어요. 저는 정민 씨라면 그런 인물이 너무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었어요. 처음부터 김영탁이라는 역은 박정민 외에 다른 사람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이제야 얘기할 수 있어서 너무 속 시원해요. 오늘 처음으로 얘기하는 거거든요.

〈조명가게〉
〈조명가게〉

강풀 작가님의 세계관을 관통하는 한 가지 키워드를 뽑으라고 하면 휴머니즘일 것 같은데요. 앞으로도 이 주제를 계속 파고들 것인지, 작가님께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만화를 오래 그리고 이야기를 계속 썼었는데요. 저는 만화가인데 그림을 잘 못 그리잖아요. 그래서 항상 이야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오랫동안 했었어요. 근데 이야기는 누구나 다 쓸 수가 있더라고요. 사건도 누구나 만들 수 있고, 어떤 이야기의 구조를 만드는 것도 다 할 수 있는데요. 결국 어떤 사건을 쓰든 간에 가장 중요한 건 그 안에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똑같은 사건도 어떤 사람이 겪냐에 따라서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거기서 오는 재미가 달라지고, 의미도 달라져요. 저는 작품을 통해서 계속 사람을 탐구하는 것 같아요. ‘제 작품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더라도 어떤 사람이 기억에 남는다면 그게 진짜 성공한 작품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어요.

각본가로서의 활동을 활발히 하고 계시지만, 웹툰 팬들은 웹툰 작가로서의 복귀를 기다리고 있는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계획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모르겠어요. 나 진짜 어떻게 해야 돼. (웃음) 솔직히 말해서 <무빙>이 끝날 때까지만 해도 제가 잠깐 다른 일을 한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각본가를 직업으로 받아들인 지가 얼마 안 돼요. 처음에는 만화를 돌아가야 할 고향처럼 늘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은 여기까지 온 이상<무빙 2>를 써야 하는 상황인 거고, 언제까지 할지 모르겠지만 만화로 과연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어딜 가든 <히든>(웹툰 ‘무빙’과 ‘브릿지’의 속편)에 대해 물어보시는데,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도망 다녀요. (웃음)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극본 쓰는 일이 너무 재밌지만, 막연하게 힘들 때마다 만화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불쑥불쑥해요. 하지만 어느 것에도 제한을 두고 있지는 않아요. 이러다가 갑자기 만화를 할 수도 있는 거죠. 근데 일단 시작한 일이니까 이 일을 마무리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