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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변과 타자를 바라보며 쌓아 올린 켈리 라이카트의 '나타내기' 〈쇼잉 업〉

추아영기자
〈쇼잉 업〉포스터
〈쇼잉 업〉포스터

믿고 보는 켈리 라이카트와 미셸 윌리엄스 감독-배우 듀오의 4번째 협업 영화 <쇼잉 업>이 1월 8일 개봉한다. <쇼잉 업>은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상의 크고 작은 문제들로 골머리를 앓는 포틀랜드 지역 예술가 리지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이번 작품에서 미셸 윌리엄스는 자신의 일상과 예술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분투하는 조각가 리지 역을 맡았다. 현대의 미국을 불안정하게 살아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왔던 켈리 라이카트는 이번 영화에서 한 예술가의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통해 자신의 예술관을 전한다.  

리지(미셸 윌리엄스) - 〈쇼잉 업〉
리지(미셸 윌리엄스) - 〈쇼잉 업〉

조각가 리지(미셸 윌리엄스)는 코앞으로 다가온 전시 준비로 바쁘지만, 자신의 생활과 가족 문제로 인해 작업에 열중할 수 없다. 2주째 수도 문제로 온수가 나오지 않아 집주인인 동료 예술가 조(홍 차우)와 이따금 실랑이를 벌이고, 가족과는 크고 작은 문제로 갈등을 빚는다. 설상가상으로 그녀의 반려 고양이 리키가 열린 창문 틈으로 들어온 비둘기를 공격해 날개를 꺾는다. 리지는 다친 비둘기를 창밖에 던져서 책임을 회피하려 하지만, 다음 날 조가 자신의 집 화단에서 발견한 비둘기의 간호를 리지에게 맡기면서 다시 책임을 떠안는다. 작업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휴가까지 낸 리지의 노력은 헛수고로 돌아가고, 결국 그녀는 비둘기를 돌보면서 작품을 만든다.  

 

천재 예술가의 상을 깨트리다

〈쇼잉 업〉
〈쇼잉 업〉

<쇼잉 업>은 숱한 이야기 속에서 묘사되는 천재 예술가의 상을 깨트린다. 신성한 영감을 받아 범접할 수 없는 예술 작품을 만드는 천재 예술가의 상은 18세기에 정립된 이후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예술적 창조를 선택받은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신성한 능력으로 여기고, 천재 예술가를 찬양한다. 우리가 찬양해 마지않는 예술가로는 베토벤, 미켈란젤로, 반 고흐와 같은 광기 어린 천재 남성 예술가들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쇼잉 업>의 조각가 리지는 앞서 언급한 천재 예술가의 모습과 지극히 다르다. 그녀는 일상의 스트레스에 짓눌려 가벼운 미소조차 짓지 않는다. 졸업한 예술학교에서 일을 해야만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자신의 처지를 답답하게 여기기도 한다. 자연히 주변인들에게도 친절하지 않고 항상 날이 서 있다. 켈리 라이카트는 일상의 곤란에 빠져 허덕이는 생활인이자 생계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인 예술가의 모습으로 천재 예술가 신화를 깨부순다.  

션(존 마가로) - 〈쇼잉 업〉
션(존 마가로) - 〈쇼잉 업〉

또 감독은 여러 인물의 모습으로 예술의 면면을 스케치한다. 작업에만 몰두하고 싶은 리지의 바람과는 달리 그녀의 주변에는 자꾸만 신경 써야 할 일이 늘어간다. 아픈 비둘기를 간호해야 하고, 은퇴한 아버지 집에는 떠돌이 부부가 찾아와 기거한다. 또 정신병을 가진 괴짜 예술가 오빠 션(존 마가로)이 소동을 일으킨다. 과거 대지 예술가였던 션은 리지와 대조적인 예술가상으로 그려진다. 감독은 그를 과거 천재 예술가의 행보에 빗대어 비판적으로 묘사한다. 션은 난데없이 정원의 땅을 파고 구덩이를 만든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가 삽질을 이어간다. 그는 리지의 걱정 어린 시선과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의식에 휩싸여 작업을 이어가는 션의 모습은 광기 어린 천재 예술가의 모습과 흡사하다. 리지는 엄마에게 기이한 행동을 일삼는 션에 대한 걱정을 토로하지만, 그녀의 엄마는 “문제없는 사람도 있니?”라고 되묻는다. 리지 엄마의 대사는 천재 예술가의 기행을 예술성의 분출로 미화해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을 드러낸다.  

리지와 조(홍 차우) - 〈쇼잉 업〉
리지와 조(홍 차우) - 〈쇼잉 업〉

자신의 세계에만 골몰하는 션과 달리 리지는 그녀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을 묘사해서 작품을 만든다. 리지는 마감을 앞둔 탓에 타인과 소통하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지만, 오히려 그들과의 소통은 그녀의 작품 안에 녹아 들어 있다. 그녀는 평소 예술학교 안에서 작업에 열중하는 예술가 지망생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기도 했다. 그녀의 세심한 관찰은 자신의 작품 안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리지의 전시에 초대된 사람들은 리지의 조각상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낯익어한다. 주변과 타인을 세심하게 바라보는 리지의 예술은 예술의 한 줄기인 사실주의와 닿아 있다. 반면에 시대를 앞서나가는 창의적인 예술가로 평가를 받았던 션의 예술은 전위예술에 가깝다. 또한 리지와 션의 아버지는 은퇴한 도예가로 전통적인 예술가로 그려진다. 켈리 라이카트는 전통에서 사실주의와 표현주의, 아방가르드 등으로 갈라진 예술 사조의 발전 과정을 리지를 둘러싼 인물들의 모습으로 그려낸다.  

 

주변의 세계에 눈감지 않는 굳은 의지

〈쇼잉 업〉
〈쇼잉 업〉

 

한편, 타자의 모습을 묘사한 리지의 예술은 켈리 라이카트 감독의 작품과도 같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에서 비롯된 라이카트의 사실적인 영화는 21세기 미국을 떠도는 불안정한 사람들의 고된 삶을 그려왔다. 켈리 라이카트의 느린 롱테이크는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금전적 빈곤과 정서적 공허함을 포착한다. 또 그녀의 영화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패닝과 트래킹은 여러 사람들의 삶을 펼쳐낸다. 켈리 라이카트는 이번 영화에서도 패닝과 트래킹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사람들에게 왜곡되어서 인식되는 예술가의 창작 과정과 일상을 드러낸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카메라는 예술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보여준다. 카메라는 직물 공예를 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천천히 트래킹 숏에 담아내다가 이를 여러 번 반복한다. 감독은 반복된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예술은 반복되는 노동일뿐이라는 메시지를 드러낸다. 그녀의 카메라는 이상화된 한 명의 천재 예술가가 아닌 묵묵히 자신의 작업을 해나가는 여러 예술가의 모습을 담고 있다. 

비둘기와 리지의 반려 고양이 리키 - 〈쇼잉 업〉
비둘기와 리지의 반려 고양이 리키 - 〈쇼잉 업〉

<쇼잉 업>은 리지라는 예술가의 성장을 따라가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 비둘기는 현실에서처럼 가장 하찮은 존재로 그려진다. 반려 고양이 리키가 비둘기의 날개를 꺾었을 때, 하나의 해프닝으로 여기는 리지의 무심한 반응은 그 대상이 비둘기이기에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리지는 뒤늦게나마 비둘기를 돌보면서 자신의 책임을 다한다. 켈리 라이카트 감독은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존재 비둘기로 사회에서 소외되어 가시화되지 않은 타자의 상징물로 내세운다. 조금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비둘기는 말할 수 없는 동물, 인간에 의해 파괴된 자연으로 표상된다. 영화의 초반부는 리지가 우리를 둘러싼 자연, 생태의 문제에는 무심한 예술가였음을 알려준다. 오프닝 씬에서 조각 작업에 열중하는 리지의 모습을 담아내던 카메라는 비스듬히 대각선 아래로 움직여 비둘기 무리를 포착한다. 비둘기를 바라보지 않고, 작업에만 열중하는 리지의 모습은 그녀가 생태주의적 시각이 결여된 예술가임을 말해준다.  

〈쇼잉 업〉
〈쇼잉 업〉

대지 예술가인 션은 리지보다 생태주의적인 예술가이기도 하다. 정원에서 구덩이를 파던 그는 리지에게 “말하지 않은 것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리지는 대지의 목소리가 들리냐는 그의 물음에 들리지 않는다고 답한다. 션의 대사는 켈리 라이카트의 모든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를 담고 있다. 소외된 이들에 대한 감독의 시선은 생태 전반으로도 향한다. 자신의 일상과 예술 사이에서 간신히 균형을 맞추던 리지가 비둘기를 돌보면서 주변의 세계를 돌아보는 예술가로 성장하는 모습은 나를 둘러싼 주변의 세계에 눈 감지 않겠다는 켈리 라이카트의 굳은 의지를 투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