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상반기 한국 드라마는 판타지 장르의 전성시대였다. 타임슬립, 초능력, 나이 변신 등 다양한 판타지적 요소들이 현실의 아픔을 녹여내는 장치로 활용되며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특히 이러한 판타지 요소들은 세대 갈등, 취업난, 결혼과 이혼 등 우리 사회의 현실적인 문제들과 절묘하게 결합하며 공감과 위로를 전달했다.
상반기 최대 화제작은 단연 tvN의 <눈물의 여왕>이었다. 560억 원의 제작비를 투입한 이 작품은 최고 시청률 24.9%를 기록하며 tvN 역대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고, 넷플릭스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어 <선재업고튀어>는 비교적 낮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화제성으로 '입소문 드라마'의 성공 모델을 보여주기도 했다.
한편, 주목할 만한 점은 웹소설 원작 드라마의 약진이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 <웨딩 임파서블>, <선재업고튀어> 등 인기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들이 연이어 성공을 거두며 새로운 드라마 원천 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이들은 기존 드라마에서 보기 힘들었던 파격적인 설정과 전개로 신선함을 더했다.
씨네플레이와 함께 안방극장을 뒤흔든 2024년 상반기 TV 드라마를 함께 훑어보자.
*이하 소개되는 작품들은 첫 방송 시점을 기준으로 한다.
1월 <내 남편과 결혼해줘>

tvN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은 2024년 1월의 안방극장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1월 1일 첫 방송한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전국 5.2%의 시청률로 시작해 최종화에서는 11.9%를 기록하면서 역대 tvN 월화드라마 평균 시청률 1위를 달성했다.
아픈 여주인공과 남편과 절친의 불륜에 타임슬립 설정까지, 소위 ‘막장 드라마’의 요소를 지닌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동명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이 웹소설은 2020년 연재를 시작해 엄청난 인기를 모은 바 있다. 원작의 캐릭터를 빼다 박은 것 같다는 평을 들은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인생 2회차를 사는 여자 강지원 역에 박민영이, 분노 유발자 남편 박민환 역에 이이경이, 친구의 모든 것을 빼앗고자 하는 정수민 역에 송하윤이 캐스팅되었다. 여기에 강지원에게 찾아온 새로운 사랑 유지혁 역을 나인우가 맡으며 완벽한 구도를 만들어냈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만화적인 연출과 독보적인 캐릭터성으로 강한 중독성을 호소하는 마니아층을 형성함과 동시에 부족한 개연성과 늘어지는 전개 속도로 비판을 사기도 했다. 온라인상에서는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 대해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미친 중독성'이라는 평이 주를 이루었다. 원래 스타(인기 작품)는 까와 빠를 모두 미치게 만드는 것이라더니.
2월 <웨딩 임파서블>

전종서가 첫 TV 드라마에 도전했다. 2018년 이창동 감독의 <버닝>으로 데뷔해 이충현 감독의 영화 <콜>(2020)로 퇴폐적이고 기묘한 이미지를 구축했던 그가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로 로맨틱 코미디 장르로 영역을 넓히더니 tvN 드라마 <웨딩 임파서블>로 안방극장에 진출한 것이다.
<웨딩 임파서블>은 앞서 소개한 <내 남편과 결혼해줘>의 후속작으로 전작의 인기에 가려질까 방영 전부터 우려를 샀다. 게다가 배우 전종서와 함께 주연을 맡은 남자 배우 문상민과 김도완이 아직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라이징 스타였기에 그 걱정은 커졌다. 그럼에도 <웨딩 임파서블>은 3%대의 시청률로 평이한 수준을 유지하며 선방했다.
송정원 작가 동명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웨딩 임파서블>은 무명 여배우 나아정(전종서)이 오랜 친구이자 재벌 3세인 이도한(김도완)과 위장결혼을 하게 되고 이를 도한의 동생 지한(문상민)이 반대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나아정과 러브라인이 있는 상대가 ‘시동생’ 지한이라는 것이다. 스포일러가 될 법한 인물들의 숨겨진 사연이 있으니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직접 확인해 보기를 바란다.
3월 <눈물의 여왕>

2024년 3월 9일 첫 방송한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은 ‘센세이션’ 그 자체였다. 560억 원이라는 대규모 제작비를 들인 이 작품은 첫 방송 시청률 5.8%로 시작해 4회 만에 12.9%를 기록했고 방송 12회 만에 20.7%를 기록하며 역대 tvN 드라마 시청률 2위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국내뿐만이 아니다. 3월 마지막 주에는 넷플릭스 비영어권 TV 시리즈 부문 1위에 오르는 등 해외 팬들의 큰 사랑을 받기도 했다.
<눈물의 여왕>은 퀸즈 그룹 재벌 3세이자 백화점의 여왕 홍해인(김지원)과 용두리 이장 아들이자 슈퍼마켓 왕자 백현우(김수현), 3년차 부부의 위기와 재결합 이야기를 그린 로맨틱 코미디다.
이 작품에 주된 인기 요인은 주연 배우 김지원과 김수현의 ‘사약 케미’덕이다. 두 배우 모두 긴 공백기를 거쳐 <눈물의 여왕>으로 화려하게 돌아왔다. 배우 김지원은 2022년 가장 큰 사랑을 받은 JTBC <나의 해방일지> 이후 약 1년 10개월 만에 복귀하며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 평범하고 우울한 현대인의 전형으로 대변되었던 <나의 해방일지> 속 김지원은 고고하면서도 까칠한 홍해인을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백현우 역의 김수현 역시 3년 만의 복귀작이다. 김수현은 <눈물의 여왕>에 대해 고심 끝에 선택한 작품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낸 바 있다. 그리고 확실한 ‘잭팟’을 터뜨렸다.
4월 <선재 업고 튀어>


앞서 소개한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와 함께 올해 상반기를 이끈 드라마 쌍두마차는 단연 <선재업고튀어>이다.
지난 4월 8일 첫 방송한 <선재 업고 튀어>는 시청률과 화제성의 극명한 대비를 보여준 작품이다. 불과 5%대의 시청률에도 작품에 대한 온라인상의 반응은 뜨거웠다. <선재 업고 튀어>는 드라마 화제성 조사에서 4주 연속 1위를 기록했으며, 주연 배우 변우석과 김혜윤은 각각 출연자 화제성 1, 2위를 차지했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 기준)
2019년 공개된 김빵 작가의 웹소설 「내일의 으뜸」을 원작으로 하는 <선재업고튀어>는 아이돌 가수 류선재(변우석)를 살리기 위해 15년의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간 열성 팬 임솔(김혜윤)의 이야기를 그린 판타지 로맨스이다. 타임 슬립물인 만큼 당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점이 큰 매력이다. 현재 30대 초중반이 학창시절을 보냈을 2000년대 후반의 학교를 배경으로 싸이월드와 MP3, 준코와 캔모아 등이 등장하며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올해 최고의 한국 드라마로 <선재업고튀어>를 선정하며 "큰 예산을 들이거나 유명한 스타가 출연하지 않았지만 가장 중요한 '잘 짜인 스토리'가 있었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5월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JTBC 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은 초능력을 가졌지만 현대인의 고질병으로 능력을 잃은 가족들과 그들 앞에 등장한 수상한 여인의 이야기를 그린 판타지 로맨스다. 타임슬립 능력자 복귀주(장기용)는 우울증으로, 예지몽 능력자 복만흠(고두심)은 불면증으로, 비행 능력자 복동희(수현)는 비만으로 각각 능력을 상실했다. 이들 앞에 도다해(천우희)가 끊임없이 나타나면서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은 초능력이라는 판타지적 소재를 통해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아낸다. 우울증, 불면증과 비만 등 복씨 집안 인물들이 가진 현대인들의 고질병은 우리의 잠재력(초능력)을 짓누르고 있다. 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은 서로를 통해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찾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에게 희망을 전달한다.
장기용은 전역 후 첫 작품으로 <히어로는 아닙니다만>를 선택하며 무력감에 빠진 현재와 행복했던 과거를 오가며 혼란스러워하는 복귀주의 모습을 훌륭하게 표현해냈다. 한편, 도다해 역의 천우희는 돈을 위해 사기 결혼을 시도하는 사기꾼이자 트라우마를 지닌 연약한 인간, 사랑에 빠진 여인으로 시시각각 변모하며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였다.
6월 <낮과 밤이 다른 그녀>

2024년 6월 15일 JTBC 드라마 <낮과 밤이 다른 그녀>가 시작했다. 20대 취업 준비생인 이미진(정은지)은 8번이나 공무원 시험에 떨어진 후 몸이 바뀌는 저주에 걸리게 된다. 해가 뜨면 50대의 몸으로 변하고 해가 지면 20대의 몸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낮의 이미진은 20여 년 전 실종된 이모 임순(이정은)의 신상으로 살기 시작한다. 아이러니하게도 50대의 이 여성은 20대의 이미진이 하지 못한 취업에 덜컥 성공해버린다. 이미진은 늙어버린 몸에 좌절하기보다 정체를 들켜 일자리를 잃을까 더 두렵다.
<낮과 밤이 다른 그녀>는 첫 방송 4%대의 시청률로 시작해 6회 만에 7.7%를 기록하며 상승세를 탔다. 젊은 세대의 취업난과 시니어 취업이라는 현실적인 설정이 모든 세대에게 공감대를 자아냈다. 이 작품은 각각의 나이가 지닌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며 고정 시청층을 구축했다. 한편,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힘쎈여자 도봉순>의 연출을 맡은 이형민 감독과 드라마 <굿캐스팅>을 집필한 박지하 작가는 <낮과 밤이 다른 그녀>를 통해 판타지와 현실, 코미디와 미스터리를 절묘하게 조화시켰다는 평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