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스페라투
감독 로버트 에거스
출연 릴리 로즈 멜로디 뎁, 니콜라스 홀트, 빌 스카스가드, 애런 존슨, 윌렘 대포, 엠마 코린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팬데믹의 공포
★★★☆
영화사상 최초의 뱀파이어 영화인 <노스페라투>(1922)와 브람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1897)의 스토리를 토대로, 팬데믹 상황을 결합했다. 이 장르의 가장 위대한 원전들을 영리하게 활용하며, 강렬한 사운드와 이미지를 결합했으며 에로틱한 느낌도 있다. 영화 내내 고딕 호러의 톤을 놓치지 않는 가운데, 엑소시즘이나 재난 영화의 요소도 가미된다. 배우들의 인상적인 클로즈업과 유려한 트랜지션으로 휘몰아치듯 진행되는, 웰메이드 장르 영화.
이지혜 영화 저널리스트
코로나 시대의 뱀파이어
★★★
1922년작 <노스페라투>는 이후 등장하는 뱀파이어 영화뿐만 아니라 공포영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품. 100여 년이 넘어 당도한 두 번째 리메이크 <노스페라투>는 최대한 원작에 충실하고자 했다. 영화는 19세기 사람들이 가졌던 공포와 금기를 뱀파이어를 통해 구현한다. 대중매체에서 익숙한 창백한 미남 뱀파이어 대신 오히려 좀비에 가깝게 묘사된 노스페라투는 죽음과 욕망을 동시에 상징한다. 그가 등장할 때마다 동반되는 쥐떼는 당시 유행했던 흑사병을 떠올리게 하고, 엘렌(릴리 로즈 뎁)의 성적 욕망을 자극하는 올록 백작(빌 스카스가드)은 금기되었던 여성의 욕망을 드러낸다. 21세기에 맞춘 새로운 재해석보다는 진보된 비주얼이 강점이나 팬데믹을 겪었던 관객들의 경험으로 인해 동시대성을 일정 부분 획득한다.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고딕 호러의 정수
★★★☆
뱀파이어 영화의 고전 <노스페라투>(1922)를 현대적 감각으로 리메이크했다. 공포영화의 새로운 거장으로 평가받는 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특징과 장기를 실컷 확인할 수 있다. 단순히 원작을 취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대 배경, 여성 캐릭터, 주제를 확장한다. 장르적으로는 고어 요소를 더하는 등 공포 효과를 극대화했다. 빌 스카스가드, 니콜라스 홀트, 릴리 로즈 뎁 등 젊은 배우들이 작품에 불어 넣는 활력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고딕 호러 스타일을 완성한 촬영, 음악, 미술, 의상, 분장을 보는 재미도 상당하다. 공포영화 역사에 독보적인 뱀파이어 캐릭터로 자리한 올록 백작 캐릭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호불호가 나뉠 것으로 보인다.
리얼 페인
감독 제시 아이젠버그
출연 제시 아이젠버그, 키에란 컬킨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역사적, 개인적 고통의 탐색을 지탱하는 유머의 힘
★★★★
역사적 사실과 공간에는 그에 걸맞은 예를 갖추되 역사의 비극에 짓눌리지 않은 현명한 코미디. 극단적으로 다른 성향의 두 인물이 자처한 “아픔에 대한 여행”은 역사 그리고 그 산물인 자기 자신과 서로의 내면을 깊숙이 통과하는 매개가 된다. “1000번의 기적”에서 살아 돌아온 세대의 역사적 트라우마보다 일견 사소해 보이는 현대인의 고통과 불안 앞에 하나의 질문이 되고자 한 제시 아이젠버그의 각본은 스마트함 그 이상. 간결한 러닝타임 안에서 흔들림 없는 탐구, 과시 없이 정곡을 파고드는 연출을 향해간다. 엉뚱하고 감정적이지만 솔직한 영혼을 연기한 키에란 컬킨은 이 영화를 더욱 반짝이는 결과물로 만든다. 한 배우의 결이 작품 전체의 톤 앤 매너를 어떻게 이끌어갈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명료한 사례.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뺨 한쪽을 내어주고 싶은 영화
★★★☆
불안과 강박 등의 감정을 약으로 통제하며 살아온 데이비드(제시 아이젠버그). 그와 반대로, 감정을 있는 그대로 쏟아내는 방식으로 아픔을 방어해 온 벤지(키에란 컬킨).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지만 슬픔을 다루는 방식도, 삶의 연혁도 너무나 다른 두 사촌이 할머니의 흔적이 남은 폴란드 홀로코스트 역사 투어를 하면서 서로의 고통에 접속한다. 너의 아픔을 온전히 공감하진 못해도 기꺼이 공유해 보겠다는 마음. 너의 변화를 모두 이해하지는 못해도 기꺼이 응원하겠다는 자세가 섬세한 대사와 따뜻한 유머를 타고 흐른다. 홀로코스트 생존자 3세대인 제시 아이젠버그의 두 번째 연출작으로 감독으로서의 그의 행보에 궁금증을 갖게 한다. 조울증에 걸린 벤지 캐릭터를 밀도 높게 표현한 키에란 컬킨에겐 배우 인생의 유의미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폭락
감독 현해리
출연 송재림, 안우연, 민성욱, 소희정, 차정원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돈의 맛
★★☆
최근 일어난 가상화폐 관련 경제 범죄를 토대로 한 영화로, 사건에 대한 사실적 묘사보다는 캐릭터 중심이다. 도현(송재림)은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었지만, ‘탐욕에 빠진 젊은이’라는 전형성을 지닌 인물. 영화는 어느 야심 찬 청년이 스타트업 창업으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경력을 쌓고, 기회를 잡아 업계의 주목을 받지만, 돈에 대한 욕심으로 선을 넘어 결국을 추락하는 과정을 다룬다. 다루고 있는 테마의 무거움에 비해, 영화의 만듦새가 지닌 무게감은 조금 약한 편이다.
파문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
출연 츠츠이 미리코, 미츠이시 켄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절차탁마, 마음의 평화
★★★☆
<요시노 이발관>(2004) <카모메 식당>(2006) <안경>(2007)을 비롯, 최근 <강변의 무코리타>(2021) 등 특유의 ‘정중동의 미학’을 보여주었던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작품.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인들의 멘탈리티를 한 가족과 한 여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독특하게 펼쳐내며, 여기에 ‘녹명수’라는 정체불명의 물을 파는 종교가 결합된다. 예상을 살짝살짝 벗어나며 전개되는 이야기가 잔재미를 주는, 다소 소심하지만 은근한 매력을 지닌 드라마. 요리코 역을 맡은 츠츠이 마리코의 섬세한 연기가 영화의 결을 살린다.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가짜 평온을 위한 배척에서 진정한 재생으로
★★★☆
2011 동일본대지진으로부터 시작된 파문을 따라가며 완성된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새로운 챕터. 블랙코미디의 기질을 두르고 발산하는 독특한 리듬감이 매력적인 영화다. 사회적 재난과 가부장적 가족 붕괴가 촉발한 균열 앞에서 중년 여성 요리코(츠츠이 마리코)는 자신만의 평온을 필사적으로 쌓아 올리지만, 그것은 진짜 삶을 외면한 채 얻은 허상에 불과하다. 나의 질서를 파괴하며 틈입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열렬한 배척을 거듭하는 방식의 회복이 아니라, 파괴된 삶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재생으로 나아가는 몸짓을 선언하는 마지막 장면의 여운이 산뜻하고 미덥다.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여성들이여 굴레를 벗어던져라!
★★★☆
넓고 깊어지는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작품 세계. 주인공인 중년 여성은 동일본 대지진 이후 사이비 종교에 의탁한 채 살아가지만, 여전히 일상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문제들 때문에 마음 편할 날이 없다. 가출했다가 돌아온 남편과 사이비 종교는 얼마든지 자극적이거나 장르적으로 다룰 수 있는 소재인데, 감독은 다른 방식으로 감흥을 연출한다. 블랙 코미디 효과를 끌어올리는 음악과 주인공이 집착하는 일본식 정원, 인물들의 감정이 파문을 일으키는 표현법 등 연출의 묘미가 뛰어나다. 특히 주연배우 츠츠이 마리코의 연기력이 폭발하는 엔딩 장면은 감독의 작심이 역력하게 드러난다.
은빛 살구
감독 장만민
출연 나애진, 안석환, 강봉성, 김진영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가족의 굴레
★★★☆
감성적인 제목과 달리, 거칠고 현실적인 가족 이야기다. 비정규직 직장인으로서, 웹툰을 그리는 크리에이터로서, 이혼한 부모의 딸로서, 아파트 계약금을 마련해야 하는 결혼 적령기의 여성으로서, 좌충우돌하는 주인공을 통해 지금의 젊은 세대가 처한 상황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신구 조화가 좋은 앙상블 연기와 김사월의 음악이 활기를 만들어낸다.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가족 공동체를 경유해 나를 탐색하기
★★★
나를 둘러싼 보장 없는 미래의 가능성들 가운데 가장 확실한 것. <은빛살구>는 ‘청약 당첨’으로 대변되는 청년 세대의 불안 어린 욕망에서 출발해 점차 가족의 이야기로 시야를 넓혀간다. 경제적, 심리적 이유로 모두가 온전한 독립이 불가능한 상황에 서로를 계산적으로 갈망해야 하는 관계로서 가족 공동체를 들여다보는 시선이 내내 흥미로운 지점. 힘 있게 하나의 지점으로 수렴하기보다는 인물을 둘러싼 상황과 감정이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다는 인상을 남기긴 하지만, 보편적인 주제를 조금은 다른 각도와 방식에서 조명하고자 한 시도는 충분히 엿보인다. 정서적 굴욕을 감내해야 하는 안온함에 머물 것인가, 이전의 세계와 완벽하게 불화하는 나의 길을 찾을 것인가. 돈을 목적으로 향했던 고향에서 자신의 뿌리를 탐색하는 주인공의 짧은 여정의 끝에서 주인공 정서(나애진)의 진정한 ‘해방일지’가 쓰인다.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나는 가족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
지방 도시와 가족을 다루는 한국 독립 영화는 이제 수준급에 이른 듯하다. 아파트 계약금이 부족해 소원한 사이인 아버지를 만나러 동해 묵호로 향한 딸의 이야기로 지방 생활 묘사와 애증의 가족사를 능수능란하게 펼쳐놓는다. 배경은 인물들의 삶으로 작용하고 아버지와 딸의 관계는 더 넓은 가족 서사로 나아간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젊은 여성 캐릭터의 기세가 남다르다. 주연배우 나애진은 이 작품으로 25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배우상을 받았다. 영화가 끝날 무렵이면 이 배우의 매력에 반드시 빠져 있을 것이다.
페르소나: 이상한 여자
감독 정형석
출연 박호산, 전혜연, 방은희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가면 게임
★★★
배우이자 <여수 밤바다>(2017) <성혜의 나라>(2018) <앙상블>(2019) 등의 장편을 연출한 정형석 감독의 작품. 어느 극단을 배경으로 신입 단원 혜리(전혜연)를 둘러싼 이야기들이 중심이며, 연출가 해영(박호산)의 이야기가 한 축을 이룬다. 흑백 화면의 일상적 드라마처럼 보이지만, ‘이상한’까진 아니어도 ‘평범하진 않은’ 주인공이 지닌 미스터리한 면모와 이에 따르는 소문 등이 장르적 느낌을 만들어낸다. 초반엔 약간 어색한 느낌이 있지만 큰 무리 없이 영화의 톤에 적응하게 된다. 대사가 너무 많은 느낌은 있다.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이력이 견해가 되는 세상에서
★★★
단 한 줄의 이력이 한 사람에 대한 견해 혹은 편견과 오해가 되는 걸 우린 목도하면서 산다. 혹은 내가 그 소문의 주인공이 되거나, 그 편견의 가해자가 되는 방식으로. 서울대 출신 혜리(전혜연)가 대학로 극단에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페르소나: 이상한 여자>는 이상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이상한 여자를 둘러싼 시선에 대한 영화에 가깝다. 동시에 편견으로 얽힌 시선을 통해 예술가의 고뇌를 그린다. 다루고 있는 주제나 형식이 그리 새롭다 할 수는 없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제목이 품은 ‘쌍점(:)’이 다르게 읽히는 점은 흥미롭다.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이상한 매력을 더했더라면
★★☆
청년 빈곤 문제를 다룬 <성혜의 나라>(2020)로 주목받은 정형석 감독의 신작. 이번에도 흑백 영화를 택해 예술가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았다. 현실과 타협한 연출가가 예술에 대한 열정을 지닌 서울대 출신 신입 단원을 보면서 느끼는 여러 감정을 극중극 구조로 풀어간다. 영화는 진정한 예술이란 무엇인지, 오해와 편견 너머의 진실을 다루는데 피상적으로 작용하는 캐릭터 탓에 감정 이입과 공감이 쉽지 않다. 비슷한 결의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흑백도 효과적으로 사용했다고 보기 어렵다.
더 엑소시즘
감독 조슈아 존 밀러
출연 러셀 크로우, 샘 워싱턴, 클론 베일리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빗나간 엑소시즘 영화
★★
공포 영화 촬영장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현상을 다뤄 기존 엑소시즘 영화와 차별화를 꾀한다. 구마 의식을 행하는 주인공이 신부가 아니라 신부를 연기하는 배우라는 설정도 흥미롭다. 감독은 공포 영화의 고전 <엑소시스트>(1975)에서 신부를 연기했던 아버지의 일화와 유명 공포 영화의 촬영 괴담에 영감을 받아 새로운 엑소시즘 영화를 시도한다. 러셀 크로우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한물간 배우로 등장해 빙의 연기와 부성애 연기를 선보이지만, 빈약한 각본과 흐름이 끊기는 편집 등 부실한 만듦새가 호기로운 기획을 받쳐주지 못한다.
슈퍼 엘프: 빨간모자 비밀요정
감독 우테 폰 뮌쇼폴
정유미 영화 저널리스트
엘프들이 전하는 밝고 선한 에너지
★★★
엘프들의 모험을 그린 애니메이션 <엘프>(2021)의 후속편. 지하 세계에 숨어 살며 인간들을 돕는 엘프족의 꼬마 요정 엘피가 이번엔 자유롭게 행동하는 엘프족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렸다. 엘프들을 쫓는 경찰과 고양이, 두 엘프족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화해와 화합을 이루는 메시지가 주된 내용이다. 아기자기한 캐릭터와 엘프들의 통쾌한 반격이 어린이 관객의 취향을 저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