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넷플릭스 TV 시리즈 <아수라처럼>이 1월 9일 공개됐다. 1979년 무코다 쿠니코의 각본으로 만들어지고 NHK에서 방영된 동명의 드라마를 무려 46년 만에 리메이크한 것. 2003년에는 모리타 요시미츠 감독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직접 각색과 연출을 맡았으며, 맨 처음 드라마가 만들어졌던 1979년이라는 시대 배경을 그대로 가져왔다.

1979년 도쿄를 배경으로, 장녀 츠나코(미야자와 리에), 둘째 마키코(오노 마치코), 셋째 타키코(아오이 유우), 막내 사키코(히로세 스즈), 그렇게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네 자매의 이야기다. 어느 날, 타키코의 제안으로 모이게 된 네 자매는 아버지 코라토(쿠니무라 준)의 불륜에 대해 알게 된다. 농담처럼 ‘화목남’이라 불리며 화요일과 목요일, 이틀만 출근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아버지가 사실은 서른 살 어린 내연녀, 그리고 혼외자인 초등학생 아들과 화요일과 목요일을 보내며 함께 지내왔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네 자매는 이 사실을 어머니 후지(마츠자카 케이코)에게 알릴까 말까 고민한다.

아버지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 후, 이에 대한 대처를 고민하면서 그동안 행복한 얼굴 아래 억눌려 있던 네 자매의 감정들이 서서히 분출되기 시작한다. 남편과 사별하고 꽃꽂이 선생으로 일하는 츠나코는 고객의 남편과 불륜 관계이고, 마키코는 남편 타카오(모토키 마사히로)의 불륜을 의심하고 있으며, 타키코는 아버지에 대한 뒷조사를 의뢰한 사설탐정 카츠마타(마츠다 류헤이)와 썸을 타고 있고, 사키토는 생계가 힘든 가운데 프로 데뷔를 꿈꾸는 가난한 복싱 선수와 사귀고 있는 중이다. 이후 회차를 거듭할수록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걷잡을 수 없이 이어진다. <아수라처럼>이라는 제목은 끝없이 갈등하고 화해하고, 뒷담화가 이어지는 네 자매의 어지러운 상황을 바라보는 둘째 사위 타카오의 얘기로부터 나왔다.


무엇보다 <아수라처럼>은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한다. 특히 네 자매의 경우, 놀랍게도 아오이 유우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첫 만남이라는 사실부터 화제다. 그리고 장녀를 연기한 미야자와 리에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시대극 <하나>(2007)에 출연한 바 있는데, 보통 그의 터닝포인트라 얘기되는 2015년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여우주연상 수상작인 <종이 달> 이전에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조우하며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것. 오노 마치코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에서 6년간 키운 아들이 친자가 아니라 병원에서 바뀐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와 미도리(오노 마치코) 부부로 출연했다. 히로세 스즈는 역시 네 자매 이야기였던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에서도 막내 ‘스즈’로 출연했고, 고레에다 히로카즈와의 두 번째 만남인 <세 번째 살인>(2017)에서는 범행을 자백한 살인범 미스미(야쿠쇼 코지)로부터 아버지를 잃은 딸 사키에(히로세 스즈)를 연기하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흥미로운 것은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 연기한 막내는, <아수라처럼>의 어린 이복 남동생처럼 세 언니와 달리 비슷한 처지의 이복 여동생이었다.


따로 더하고 싶은 배우가 두 명 더 있다. 바로 집안의 둘째 사위 타카오로 출연한 1965년생 모토키 마사히로와 어머니 역의 1952년생 마츠자카 케이코다. 먼저 <태풍이 지나가고>(2016), <어느 가족>(2018) 등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페르소나라 불리며 그의 영화에서 언제나 어머니 역할을 도맡아 했던 키키 키린이 안타깝게도 2018년 세상을 떠나면서, <아수라처럼>의 어머니 역할을 키키 키린이 맡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원초적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 놀라운 건 모토키 마사히로가 실제로 키키 키린의 사위라는 사실이다. 그는 키키 키린과 우치다 유야 부부의 딸 우치다 야야코와 1995년에 결혼했다. 심지어 사위가 처가에서 사는 데릴사위여서, 우치다 가문의 성을 따라 호적상 이름은 우치다 마사히로다. 만약 키키 키린이 살아서 그 역할을 했다면 실제 장모와 사위가 그대로 출연했을지도 모른다.

모토키 마사히로는 1980년대 쟈니스의 아이돌 그룹 시부가키대에서 활동했고, 해체 이후에는 주로 배우로 활동하며 수오 마사유키의 <으랏차차 스모부>(1992), 미이케 다카시의 <중국의 조인>(1998), 츠카모토 신야의 <쌍생아>(1999) 등으로 국내 관객에게도 친숙하다. 특히 개봉 당시 일본 흥행 1위를 기록한 <굿바이>(2008)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최초의 일본영화다. 딸 우치다 카라의 유학생활 뒷바라지를 위해 2012년부터 영국 런던에서 거주 중이어서, 일본 아카데미상에서 최우수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일본 패망 하루전>(2015) 정도를 제외하고는 활동이 다소 뜸한 편이었기에 <아수라처럼>이 반갑게 느껴진다.

마츠자카 케이코는 한국명 ‘한경자’로 한국계 일본인이다. 대구 출신의 아버지가 일본으로 강제 징용을 당해 탄광에서 일한 노동자였다. 어린이합창단과 극단 등 어려서부터 연예계 활동을 시작해 드라마 주제곡 ‘사랑의 수중화’를 부른 가수이기도 했고, 10대 때부터 쇼치쿠 영화사와 전속 계약을 맺어 섹시한 이미지로 큰 인기를 끌며 단숨에 청춘스타로 발돋움한 배우이기도 했다. 물론 배우로서 <청춘의 문>(1975), <가마타 행진곡>(1982), <불타는 집의 사람>(1986) 등 후카사쿠 킨지 감독의 영화에서 엄청난 매력을 뽐냈고,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어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오구리 코헤이의 <죽음의 가시>(1990)에서도 남편의 불륜으로 인해 심신이 쇠약해지고 관계의 극한에 다다르는 아내 역할을 탁월하게 연기했다. 역할상 얼핏 <아수라처럼>을 떠올리게 하는 <죽음의 가시>로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2000년대 들어서도 주로 인자한 어머니 역할로 다양한 드라마와 광고에서 맹활약했으며, 하리수 주연 영화 <도색>(2013)과 아오이 유우 주연 <하와이언 레시피>(2009) 등에도 출연했다. 한편, 마츠자카 케이코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인과 결혼하면서 가족과 절연했고, 재산 문제로 갈등이 끊이지 않아 아버지가 방송에도 출연하는 등 가족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 2007년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어머니와는 화해해 함께 살기 시작했다. 묘하게도 <아수라처럼>이라는 고레에다 히로카즈풍 막장 가족 드라마와도 겹쳐지는 스토리라고나 할까.

<아수라처럼> 제작사의 이름은 ‘분복’으로, 바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사다. 도쿄에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사무실 입구에는 크고 거창한 간판이 아니라, 아주 조그맣게 프린트된 종이로 ‘분복’(分福)이라는 회사명이 붙어 있다. ‘복을 나눈다’는 뜻으로, 그가 주축이 되어 기획 단계부터 마음이 맞는 감독들과 진짜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며 함께하기 위해 설립한 영화사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부터 <괴물>(2023)에 이르기까지 직접 자신의 영화나 드라마를 만들기도 하지만 니시카와 미와 감독의 두 영화, 모토키 마사히로 주연 <아주 긴 변명>(2016)과 야쿠쇼 코지 주연 <멋진 세계>(2021)도 바로 분복에서 제작한 영화다. 북디자이너 장인 기쿠치 노부요시의 이야기를 담은 히로세 나나코의 다큐멘터리 <책 종이 가위>(2023)도 분복에서 제작한 작품이다.

<걸어도 걸어도>(2008) 이후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에는 ‘가족’이라는 존재가 깊게 담긴다. 가족 모두 끈끈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저마다의 개별성 또한 도드라진다. 또 조용한 가운데 무언가와 격렬하게 싸우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에 대해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언제나 “가족은 하나가 아니다”라고 답해왔다. 가까운 가족이라도 살아가면서 충분히 서로의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것. 동시에 “눈앞에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가족이 그걸 어떻게 대처하고 또한 무너져가는지, 그걸 지켜보고 싶었다”는 것도 그의 얘기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아수라처럼>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