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일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영화 <검은 수녀들>의 시사 및 기자간담회가 진행되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는 <검은 수녀들>의 연출을 맡은 권혁재 감독과 배우 송혜교, 전여빈, 이진욱, 문우진이 참여해 작품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영화 <검은 수녀들>은 강력한 악령에 사로잡힌 소년을 구하기 위해 금지된 의식에 나서는 수녀들의 이야기이다. 구마가 허락되지 않은 수녀임에도 강한 의지로 구마 의식에 뛰어드는 유니아 수녀 역은 배우 송혜교가, 정신의학과 전공의이자 부마 증상을 인정하지 않는 미카엘라 수녀 역은 배우 전여빈이 맡았다. 한편, 구마에 반대하는 정신의학과 전문의 신부이자 유니아 수녀와 대립하는 바오로 신부 역은 배우 이진욱이,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는 소년 희준 역은 배우 문우진이 연기했다.

영화 <카운트>(2023), <해결사>(2010) 등의 연출을 맡으며 세대를 아우르는 재미를 선사한 권혁재 감독은 오컬트 장르 <검은 수녀들>의 제작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개인적으로 <검은 사제들>(감독 장재현)의 팬이었다. 영화사에서 오랫동안 <검은 수녀들>을 준비했다고 알고 있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아봤을 때 ‘어떻게 이렇게 신선한 기획을 할 수 있지’라는 생각이 컸다. 가톨릭 교리상 구마가 허락되지 않은 수녀들이 한 아이를 살리기 위해 애쓰고 결국에는 연대하는 부분이 뭉클했다”며 “배우들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고 전했다.
유니아 수녀 역을 맡은 배우 송혜교는 <검은 수녀들>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넷플릭스 <더 글로리>를 끝내고 다시 사랑 이야기로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장르 중심의 대본을 고르고 있었다”고 운을 뗐다. 이어 “마침 <검은 수녀들>이라는 시나리오를 읽고 힘든 도전이겠지만 이 작품을 하면 ‘나에게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면이 있지 않을까’라는 궁금증이 있었다”고 전했다.
송혜교는 “‘나라면 (유니아 수녀처럼)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감독님과 (전)여빈 씨와 많은 대화를 나눴는데 결국 ‘수녀니까 그렇게 할 것이다’라는 믿음으로 연기를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미카엘라 수녀 역의 전여빈은 “대사로 상황을 설명하기보다는 주변이나 상대방을 바라보는 리액션이 중요한 역할”이라며 “모든 연기가 액션과 리액션의 향연이지만 특히 미카엘라에게는 더욱 중요했다”고 미카엘라 역을 연기하면서의 주안점을 밝혔다.
<검은 수녀들>은 두 명의 여성 캐릭터가 전면에 나서는 작품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한국 영화계에 흔치 않은 여성 서사에 대한 질문에 송혜교와 전여빈 배우는 각자의 생각을 밝혔다.

송혜교는 “두 여성이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지고 있다가 함께하게 되는 과정을 연기하는 것이 너무 어려우면서도 즐거웠다”며 “연기를 하면서 서로가 개인적으로도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전여빈은 “단순히 유니아와 미카엘라가 여성으로서 연대하는 것이 아니라 한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영화에서 잘 표현된 것 같아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여기에 “현장에서 혜교 선배를 바라보는 것이 참 즐거웠다”며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아도 혜교 선배님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검은 수녀들>은 분명 <검은 사제들>(2015)의 스핀오프이지만 ‘두 명의 사제(수녀)가 구마 의식을 통해 한 생명을 살린다’는 같은 틀만 공유할 뿐 완벽하게 다른 모습을 보인다.

<검은 사제들>을 연출한 장재현 감독은 <사바하>, <파묘> 등 국내에 흔치 않은 오컬트 장르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한국 영화계에 한 획을 그었다. 그는 2014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중급 워크샵의 일환으로 제작한 단편 영화 <12번째 보조사제>가 전주국제영화제, 미쟝센단편영화제 등 국내 유수의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자 이를 장편화한 영화 <검은 사제들>을 세상에 공개하며 큰 흥행을 거두었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사로잡은 <검은 사제들>은 장재현 감독 오컬트 세계관의 뿌리와도 같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검은 수녀들>의 권혁재 감독은 그간 코미디와 드라마에 특화된 작품을 선보이며 장재현 감독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걸어왔다. 권혁재 감독의 색이 드러난 <검은 수녀들>은 ‘구마 의식’이 아닌 ‘두 명의 수녀’에 방점을 찍으며 인물 간의 관계성과 드라마에 중점을 두었다. 이러한 면모는 대표적으로 와이드 스크린 대신 좁은 비율(1.66:1)의 화면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중요한 것은 인물이라는 것이다.
원작의 팬 중 상당수는 <검은 수녀들>을 새로운 유형의 오컬트 영화로서 기대감을 가지고 극장에 찾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다소 뭉툭한 갈등 구조와 평면적인 서사로 인해 <검은 사제들>만큼의 서스펜스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다만, ‘규칙을 깨고 구마 의식에 나선 수녀들’이라는 독특한 설정과 이를 미학적으로 풀어내는 화면 연출을 통해 <검은 수녀들>은 그만의 매력을 발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