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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의 무한 비행, 재개봉하는 〈마당을 나온 암탉〉의 성공 전략

씨네플레이
〈마당을 나온 암탉〉
〈마당을 나온 암탉〉

 

아이들 손잡고 들어갔다가 어른까지 ‘제대로’ 감동하고 나온다. 할리우드에 사자 <라이온 킹>이 있다면, 한국에는 암탉 <마당을 나온 암탉>이 있다. 2011년 개봉 당시까지만 해도 장편 애니메이션은 곧 성인용이어야 승산이 있다는 선입견을 버리고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본격 시도였다. 220만 명의 관객이 관람하며 14년이 지난 지금도 역대 한국 애니메이션 흥행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국 장편애니메이션 시장을 깨운 경쾌하고 힘찬 울음, 무려 14년 만에 재개봉한 <마당을 나온 암탉>의 성공 전략을 짚어 본다.

 

〈마당을 나온 암탉〉
〈마당을 나온 암탉〉

한국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기획

오성윤 감독의 <마당을 나온 암탉>은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의 침체된 시장을 깨운 새로운 울음이었다. 황선미 작가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것도 당시에는 흔치 않은 시도였다. 으레 애니메이션은 전문 제작사에서 한다는 공식을 깨고 영화 제작사 명필름이 참여한 작품으로 화제를 모았으며, 한국 애니메이션으로는 최초로 1천여 개 스크린에서 동시 개봉이라는 승부수를 던진 작품이기도 하다. 할리우드산 3D애니메이션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던 가운데, 그 뒤를 따르는 대신 뚝심 있게 2D 애니메이션으로 어려운 길을 택한 작품이기도 하다.

 

​〈마당을 나온 암탉〉
​〈마당을 나온 암탉〉

 

애니메이션은 곧 성인용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틀을 깨고, 가족용 또는 대중영화로서의 애니메이션으로 바라보지 못했던 시장에서 산업적으로 유의미한 시도를 했다. 캐릭터 디자인도 남달랐다. 캐릭터화하기 힘들다고 생각한 조류 주인공을 두고, 자연주의에 입각해 의인화를 많이 하지 않음으로써 여타 작품들과 차별화를 뒀다. 연출을 하기 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에서 회화를 전공한 순수 예술가로서 오성윤 감독의 스타일이 엿보이는 선택이기도 하다. 이렇게 기존 통념을 깨뜨린 발상의 전환과 노력, 도전정신이 적중했다. 오성윤 감독은 이 작품 이전,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오돌또기 프로덕션에서 장편애니메이션 연출을 준비하다가 고전을 맛보았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감독 본인의 40대를 모두 투자해 만든 작품이다.

 

​〈마당을 나온 암탉〉
​〈마당을 나온 암탉〉

황선미 작가의 탄탄한 원작의 힘

 <마당을 나온 암탉>의 가장 중요한 성공 요인으로는, 탄탄한 원작에서 찾을 수 있다. 그전까지 한국 장편애니메이션의 실패 요인으로 부실한 스토리는 늘 1순위로 손꼽혀 온 만큼, 원작이 애니메이션의 성공에 기여한 요소는 절대적이다. 황선미 작가의 원작은 지난 2020년, 출간 20주년 기념판이 나왔으며 현재 판매량 200만 부를 돌파한 한국 아동문학의 고전이라 불러도 될만한 위치에 섰다.

 

​​〈마당을 나온 암탉〉
​​〈마당을 나온 암탉〉

 

소설은 양계장 안에 갇혀 알만 낳는 난형성 닭 ‘잎싹’이 양계장을 탈출하면서 겪는 자유를 향한 의지, 모성애에서 출발해 자연의 섭리를 이해하기까지의 과정을 디테일하게 아우른다. 특히 고뇌하는 암탉 잎싹의 자아는 철학적인 주제의식과 심오한 자연관을 담아냄으로써 ‘아동문학 수준의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호평을 받았으며, 2011년에는 초등학교 5학년 읽기 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했다.

 

​​〈마당을 나온 암탉〉
​​〈마당을 나온 암탉〉

보편적인 한국적 정서와 관계성

원작이 가진 세계관을 바탕으로 <마당을 나온 암탉>을 한국 ‘토종’ 애니메이션으로 자리 잡게 한 가장 큰 요소는 잎싹과 초록의 모자 관계의 강화다. 이 유대가 관객에게 보편적인 한국인의 정서를 편안하게 연상시켜준다. 잎싹(문소리)이 품은 알이자 청둥오리 초록(유승호)의 성장은 작품의 가장 큰 줄기. 초록이 엄마와 같은 닭이 아닌 청둥오리로서 갈등하고 정체성을 찾아가고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은 잎싹 캐릭터와 동등한 비중으로 영화의 한 축을 차지한다.

 

〈마당을 나온 암탉〉
〈마당을 나온 암탉〉

 

양계장을 탈출한 암탉 잎싹의 모험은 마치 인간에게 반대하는 동물의 반란을 그린 존 할라스 감독의 애니메이션 <동물농장>(1954)이 연상되지만, 잎싹에게 자유를 향한 갈망보다 앞서는 건 모성애다. 이종의 알인데도, 양계장 주인에게 잡힌 초록을 구하기 위해 제 몸을 날려 돌진하거나, 초록이 발에 묶인 끈을 끊어주려다 부리가 다 닳을지언정 개의치 않는 잎싹의 모습은 부모 세대의 희생을 담아내고 있다. 초록의 성장과 비행은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의 영웅담을 담되, 이때도 길러 준 엄마를 향한 애정을 놓치지 않는다. 철새의 이동을 감지한 초록이 제 살길을 찾기 위해 보이는 반항심은 사춘기 소년을 연상케 한다. 부모와 자식 간, 세대 간의 갈등 등 낯설지 않은 감정이입의 포인트가 빼곡하다.

 

〈마당을 나온 암탉〉
〈마당을 나온 암탉〉

13분 동안 몰아치는 비행 액션의 쾌감

탄탄한 스토리, 친근한 캐릭터는 기본 바탕. <마당을 나온 암탉>이 여기에 더해 애니메이션으로 재미를 더한 것은 관객의 관심을 놓치지 않는 막강한 액션신이다. 스케일과 볼거리 면으로 볼 때 절대 놓치면 안 되는 장면은 단연 파수꾼 선발을 위해 초록이 참가한 시합 장면이다. 오케스트라의 연주 음악을 바탕으로, 목표지점을 향해 날아가는 철새의 비행 장면이 주는 액션신의 쾌감이 상당하다. 경주의 시작과 함께 청둥오리들이 호수의 물살을 박차고 힘 있게 상승하는 것이 시작. 단순한 직선의 움직임이 아닌 수직과 하강의 다채로운 움직임을 잡아냄으로써, 긴박감 넘치는 비행 장면이 만들어진다. 하늘의 맨 꼭대기에 있는 구름부터 숲속의 나뭇가지 그리고 배수로 안쪽까지 다양한 지형지물의 활용과 함께 긴박감 있게 전개되는 움직임에 마음을 뺏기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다. 맞다, 이 액션신 한 장면만 무려 13분에 걸쳐 펼쳐진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주요 볼거리인 퀴디치 게임이 연상되는 장면이다. 속도감, 스케일, 드라마까지 놓치지 않고 탑재한 철새들의 비행. 철저한 콘티 작업과 편집, 음악까지 모든 걸 계산해 만든 장면으로 이 한 장면을 만드는 데만 꼬박 1년 이상이 걸린 집념의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