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한 두 영화 <팬텀 스레드>와 <로건 럭키>의 연결고리. 폴 토마스 앤더슨, 스티븐 소더버그 두 감독 모두 촬영감독까지 맡았다고 알려진 작품이라는 점이다. 제작 시스템이 상대적으로 협소한 한국에서는 흔히 촬영감독이란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는 역할'이라는 등식이 알려졌지만, 이는 촬영감독(director of photography)보다는 촬영기사(camera operator)에 더 가깝다. 해외에서 촬영감독이란 촬영은 물론 조명, 색상 등 이미지에 관련한 모든 분야를 관장하는 이를 뜻한다. 촬영감독, 그러니까 크레딧에 'director of photography'로 등재된 영화감독들을 소개한다.

팬텀 스레드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

출연 다니엘 데이 루이스, 빅키 크리엡스

개봉 2017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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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건 럭키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

출연 채닝 테이텀, 다니엘 크레이그, 아담 드라이버, 라일리 코프, 힐러리 스웽크, 세스 맥팔레인, 케이티 홈즈, 세바스찬 스탠

개봉 2017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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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토마스 앤더슨
<팬텀 스레드>

<팬텀 스레드> 크레딧에는 '촬영감독'(director of photography)이 없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직접 촬영감독을 겸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틀린 정보다. 촬영감독이 따로 없었다는 게 맞다. 데뷔작 <리노의 도박사> 이래 앤더슨 거의 모든 작품의 촬영감독이었던 로버트 엘스윗이 덴젤 워싱턴 주연의 <이너 시티> 일정으로 인해 참여하지 못하고, <마스터>를 찍었던 미하이 말라이메어 주니어까지 불가능하자, 내친 김에 촬영감독 자리를 비운 채 <팬텀 스레드> 촬영에 착수했다. 근작들을 작업했던 개퍼(조명 담당) 마이클 바우만,  촬영기사 콜린 앤더슨, 촬영조감독 에릭 브라운 등과 팀을 이룬 시스템. 유려한 이미지들이 첨예하게 꿰메여져 있는 <팬텀 스레드>를 보면, 계속 이런 시스템이 유지돼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팬텀 스레드

스티븐 소더버그
<트래픽>, <오션스 일레븐>, <로건 럭키> 등

피터 앤드류스. 스티븐 소더버그 영화에 줄곧 촬영감독으로 오르는 이름이다. 사실 이는 스티븐 소더버그의 다른 이름이다. 즉, 소더버그가 직접 촬영감독을 겸하는 셈이다. 그는 직접 주연까지 맡은 코미디 <스키즈폴리스>(1996)로 처음 촬영감독을 맡았고, <트래픽>(2000)부터 꾸준히 연출과 촬영감독을 겸하고 있다. 27살에 발표한 첫 장편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1989)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한 소더버그는 이후 90년대 내내 꾸준히 내리막을 걷고 있다는 오명에 시달렸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피터 앤드류스를 기용(!)하기 시작한 <트래픽>을 내놓아 극찬을 받았고 <오션스 일레븐>(2001), <솔라리스>(2002) 등을 연달아 발표하면서 21세기의 도래함과 동시에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2000년대 들어 한해 한편 이상 꼴로 신작을 내놓는 작업량을 생각하면 더더욱 신통하게 느껴지는 행보다.

트래픽
트래픽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

출연 스티븐 바우어, 벤자민 브랫, 제임스 브롤린, 돈 치들, 에리카 크리스틴슨, 클리프톤 콜린스 주니어, 베니시오 델 토로, 마이클 더글라스, 미겔 페레, 알버트 피니, 토퍼 그레이스, 루이스 구즈만, 에이미 어빙, 토마스 밀리안, D.W. 모펫, 데니스 퀘이드, 피터 리거트, 제이콥 바가스, 캐서린 제타 존스

개봉 2000 미국,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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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로드리게즈
<엘 마리아치>, <씬 시티>, <플래닛 테러>

로버트 로드리게즈는 연출, 제작, 각본, 편집, 음향 등 다역을 소화한 첫 장편 <엘 마리아치>(1992)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후 <데스페라도>(1995), <황혼에서 새벽까지>(1996), <패컬티>(1998), <스파이 키드>(2000)는 다른 이에게 촬영감독을 맡겼다가 <스파이 키드 2>(2002)부터 다시 촬영을 겸하기 시작했다. 로드리게즈의 취향이 제대로 드러나는 2000년대 대표작 <씬 시티>(2005), <플래닛 테러>(2007) 역시 그가 직접 찍은 작품이다. 자기 영화를 직접 제작하고, 만드는 작품마다 비주얼만큼은 압도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어, 로드리게즈의 이와 같은 영화 찍기 방식은 앞으로 계속될 전망이다.

씬 시티

쿠엔틴 타란티노
<데스 프루프>

<재키 브라운>(1997) 이후 6년 만에 침묵을 깨고 <킬 빌 1>을 발표했던 쿠엔틴 타란티노. <킬 빌 1>부터 최근작 <헤이트풀 8>(2015)까지 모든 작품을 마틴 스콜세지, 올리버 스톤과 다수 작업한 바 있는 촬영감독 로버트 리차드슨과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다. 딱 한 편의 예외가 있다. 2007년 작 <데스 프루프>다. <황혼에서 새벽까지>에 시나리오와 연기로 참여하는 등 로버트 로드리게즈와 돈독한 관계를 자랑하던 쿠엔틴 타란티노는 그와의 공동 프로젝트 '그라인드하우스'의 일환으로 만든 <데스 프루프>에서 촬영감독까지 맡았다. 70년대 싸구려 동시상영관에서 틀었던 영화들을 표방한 프로젝트인 만큼 훨씬 자유로운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라 가능했던 시도인 듯하다.

데스 프루프

션 베이커
<탠저린>

션 베이커는 2015년 작 <탠저린>이 상당한 호평을 받으면서 단숨에 미국 인디영화계 기대주로 떠올랐다. 초기작 <테이크 아웃>(2004), <프린스 오브 브로드웨이>(2008) 등에서 촬영감독을 겸한 바 있다. 아이폰5S를 카메라로 활용해 화제를 모은 <탠저린>은 전작들의 개퍼였던 라디움 청과 촬영을 진행했다. 얼마 전 개봉한 최신작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는 <침묵의 빛>(2007)의 촬영감독 알렉시스 자베를 기용해 35mm 필름으로 찍은 작품이다.

탠저린

라스 폰 트리에
<백치들>

1995년, 덴마크 감독 라스 폰 트리에, 토마스 빈더베르크가 '도그마 선언'이라는 강령을 발표했다. 미래의 영화를 지향한다는 명목으로 순결 혹은 반(反)테크놀로지를 내세운  이 규범은 "촬영은 별도의 장식이 없는 로케이션에서 진행돼야 한다", "음향과 영상은 동시에 만들어져야 한다" 등 10가지 항목을 포함했다. 라스 폰 트리에는 도그마 선언을 실천하기 위해 만든 <백치들>에서 촬영감독까지 담당했다. 당시에도 최신형은 아니었던 소니 캠코더로 찍은 <백치들>은 백치 노릇을 하는 군상을 따라가며 위선과 거짓에 대해 이야기한다. 도그마 선언이 해프닝으로 끝난 이후 <어둠 속의 댄서>(2000), <도그빌>(2003), <만덜레이>(2005) 등에서도 카메라를 잡긴 했지만 '촬영감독'은 아니었다.

백치들

더그 라이먼
<스윙 어즈>, <고>, <페어 게임>

더그 라이만은 제작, 촬영 등을 겸한 초기작 <스윙어즈>(1996), <고>(1999)로 독창적인 스타일을 뽐내며 이름을 알렸다. 대중에게 흔히 알려진 <본 아이덴티티>(2002)는 올리버 우드,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2005)는 보잔 바젤리가 촬영감독을 맡았다. 라이만이 또 다시 촬영감독에 이름을 올린 건 나오미 왓츠, 숀 펜과 작업한 2007년 작 <페어 게임>이다. 액션이 두드러지는 블록버스터들은 그가 촬영을 맡지 않은 한편, 드라마와 스릴러에 집중한 <페어 게임>의 촬영을 관장한 건 아마 작품의 규모 때문이었을 것 같다. <페어 게임>은 <엣지 오브 투모로우>(2014)의 1/8 수준의 예산으로 제작됐다.

페어 게임

데이빗 린치
<인랜드 엠파이어>

'독창성'이라면 세상 어느 감독에도 꿀리지 않을 데이빗 린치는 처음으로 디지털로 작업한 장편 <인랜드 엠파이어>(2006)를 직접 찍었다. 린치라면 저렇게 찍어도 되는구나 싶을 정도로 막나가는 이미지로 가득한 영화다. 주인공 니키(로라 던)처럼 악몽을 꾼 것 같은 경험을 선사한다. 11년간 장편영화를 내놓지 않던 그는 작년 새 TV시리즈 <트윈 픽스: 더 리턴>을 발표해 '린치 월드'의 건재함을 자랑했다. 걸작 <로스트 하이웨이>(1997)와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의 촬영감독이었던 피터 드밍과 오랜만에 작업했다.

인랜드 엠파이어

스탠리 큐브릭
<공포와 욕망>, <킬러스 키스>

시간을 훌쩍 돌려보자. 스탠리 큐브릭은 1953년 스물다섯 나이에 촬영과 편집까지 도맡은 <공포와 욕망>으로 데뷔했다. <공포의 욕망>에 대한 밋밋한 반응에 큐브릭은 심기일전해 작업한 누아르 <킬러스 키스>(1955)로 호평받았다. 만년의 작품들처럼 강박적이진 않더라도, 큐브릭의 전매특허인 '일점투시'에 대한 관심이 <킬러스 키스>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렇게 스탠리 큐브릭의 전설은 시작됐다.

킬러스 키스

배용균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

이 기획에 바로 떠오르는 한국 감독이 있다. 바로 배용균이다. 요즘 관객들에겐 다소 낯선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배용균은 1989년 첫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발표해 로카르노 영화제 최고상을 받았다. 2위는 당시 막 서구에 알려지기 시작했던 이란의 거장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였다. 놀라운 건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연출, 제작, 각본, 조명, 촬영 등을 혼자 힘으로 해냈다는 점이다. 정해진 기간 안에 작업을 끝내는 제작방식따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그는 한달이고 1년이고 만족스러운 장면이 나올 때까지 찍었다. 그렇게 10년을 쏟아부어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완성했다. 사생활은커녕 근황조차 알려지지 않은 그는 1996년 홀연히 두 번째 영화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을 내놓았다. 모든 장면이 밤에 이루어지는 영화를 위해 그는 어둠속 생활을 일상화하며 밤의 조명을 연구했다고 한다. 어디서 신작을 찍고 있다는 소문만이 무성한 채 21년이 지난 지금도 배용균의 세 번째 영화는 도착하지 않고 있다.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