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 13개 부문 최다 후보에 오른 뮤지컬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가 오는 3월 12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여자로 다시 태어나고 싶은 갱단 보스와 그의 아내, 그리고 새로운 삶을 선물할 변호사가 얽힌 이 파격적인 작품은 프랑스의 거장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최신작이다. 조 샐다나, 셀레나 고메즈,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이 출연한 이 영화는 이미 칸영화제 2관왕, 골든글로브 4관왕을 차지했으며, 전 세계 영화제에서 103개 부문을 수상하는 압도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타임’지, ‘사이트 앤 사운드’, ‘인디와이어’ 등 해외 주요 매체들로부터 '올해 최고의 영화'로 선정될 정도로 평단의 찬사도 이어지고 있다.
이 작품의 연출을 맡은 자크 오디아르는 41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영화 <그들이 어떻게 추락하는지 보라>(1994)로 데뷔하며 일찍이 재능을 인정받았다. 이후 그는 프랑스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성장하며 베니스영화제 감독상, 세자르상 11개 트로피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을 쌓아왔다. 이하 오디아르의 명성을 확립한 세 작품—<예언자>(2009), <러스트 앤 본>(2012), <디판>(2015)—을 통해 그의 독창적인 영화 세계를 알아보고자 한다.
<예언자>(Un Prophète, 2009)
감옥이라는 소우주 속 권력과 생존의 드라마

<예언자>는 문맹인 북아프리카계 청년 말리크(타하르 라힘)가 6년형을 선고받고 구금 시설에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고립된 세계인 교정 기관 내에서 코르시카 조직 보스 세자르(닐스 아르스트럽)의 강요로 한 인물을 살해하게 되고, 점차 범죄 네트워크에 연루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감독은 카메라를 통해 감옥이라는 밀폐된 공간의 냉혹한 실체를 낱낱이 해부한다. 화면은 차갑고 억압적인 건물 구조, 좁은 복도, 단절감을 강조하는 격자창을 비춘다. 이러한 시각적 접근은 인물이 느끼는 심리적 감금 상태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자크 오디아르의 탁월함은 전형적인 범죄극 문법을 사용하면서도 이에 머무르지 않는 데 있다. 그는 말리크라는 인물을 통해 인종, 계층, 교육 수준에 따른 사회적 단절을 폭로한다. 교도소는 프랑스 사회의 축소판이 되어 코르시카인, 아랍인, 아프리카인 등 다양한 민족 집단이 각자의 영역을 차지하고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의 중심에는 배우 타하르 라힘의 놀라운 연기가 있다. 처음엔 두려움에 떨다가 점차 상황을 통제하게 되는 말리크의 변화 과정을 미묘하게 표현한다. 특히 그의 시선은 극 중 많은 대사 없이도 강렬한 내면의 변화를 전달한다.
<러스트 앤 본>(De Rouille et d'Os, 2012)
상처 입은 육체와 영혼의 회복을 향한 여정

<러스트 앤 본>은 경제적으로 궁핍한 권투 선수 알리(마티아스 쇼에나에츠)와 해양공연장에서 범고래 조련사로 일하다 사고로 양다리를 잃은 스테파니(마리옹 꼬띠아르)의 만남을 그린다. 두 인물은 각자의 상처를 안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삶의 의미를 재발견한다.
이 작품에서 자크 오디아르는 신체의 훼손과 복원이라는 주제를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표현한다. 특히 스테파니가 의족을 착용하고 걷기 시작하는 장면들은 디지털 기술을 완벽하게 활용해 마리옹 꼬띠아르의 다리가 실제로 절단된 것처럼 보이게 했다. 이러한 사실적 묘사를 통해 인물의 고통과 의지를 더욱 생생하게 담아냈다.
마리옹 꼬띠아르는 이 영화에서 커리어 최고의 연기를 선보인다. 사고 전 자신의 아름다움과 신체에 자부심을 가졌던 인물이 갑작스러운 상실 후 겪는 정체성 혼란과 재구성 과정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이러한 연기력은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등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았다.
자크 오디아르의 연출은 인물들의 내면과 외면을 동시에 포착한다. 지중해의 눈부신 햇살과 쾌청한 하늘은 인물들의 상처와 대비되며, 어두운 밤 장면들은 그들의 고립과 외로움을 강조한다. 또한 범고래 공연장의 화려함과 불법 권투장의 거친 분위기를 오가며 두 세계의 대조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디판>(Dheepan, 2015)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무게와 희망

<디판>은 스리랑카 내전에서 살아남은 전직 반군대원 디판(제수타산 안토니타산)이 죽은 타인의 신분증을 이용해 프랑스로 망명하는 이야기이다. 그는 서로 모르는 여성 얄리니(칼리아사리 스리니바산)와 어린 소녀 일라이얄(클로딘 비나시탐비)와 함께 가짜 가족을 구성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한다.
이 영화의 매력은 난민의 삶을 일상적 측면에서 그려낸다는 점이다. 자크 오디아르는 거창한 정치적 메시지보다 이들이 겪는 문화 충격, 언어 장벽, 생계유지의 어려움 등 소소한 현실을 통해 관객에게 다가간다. 디판이 아파트 관리인으로 일하며 보일러를 고치고, 쓰레기를 치우고, 우편물을 분류하는 장면들은 이민자들의 비가시화된 노동을 전면에 내세운다. 영화의 중심에는 '가짜 가족'이 진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이 있다. 처음에 생존을 위한 전략적 동맹이었던 세 인물의 관계는 점차 정서적 유대로 발전한다.
파리 외곽 공공주택 단지라는 공간적 배경 역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곳은 디판이 떠나온 전쟁터와 표면적으로는 다르지만, 마약 거래와 갱단 분쟁으로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 존재하는 곳이다. 감독은 이를 통해 폭력의 보편성과 순환성이라는 주제를 탐구한다.
한편, 자크 오디아르는 과거와 현재, 현실과 꿈의 경계를 흐리게 하며 디판이 전쟁 트라우마로 인해 경험하는 환각 장면들은 그의 내면 상태를 시각화한다. 이를 통해 프랑스의 일상 속에서도 과거의 공포가 그를 떠나지 않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