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말이 다가왔다. 2월이 다 갔는데 무슨 연말 타령이냐고? 모르는 소리. 영화인의 달력은 보통 3월에 새해를 맞이한다. 왜냐하면 전 세계 영화계를 통틀어 가장 재밌는 이벤트,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이 3월에 열리기 때문이다. 아카데미 회원 영화인들이 투표로 선정하는 아카데미는 상업영화의 본고장 할리우드를 넘어 전 세계 영화계의 이목이 쏠리는 행사이다. 올해는 과연 어떤 영화, 감독, 스태프, 배우들이 오스카의 영예를 얻게 될 것인가. 씨네플레이 기자들이 아카데미 시상식의 가장 알짜배기 부문 작품상, 감독상, 남녀주연상 예측을 해보았다. 배당금이나 상품 같은 보상은 없지만, 각 기자들이 혜안력(?)을 걸고 예측해보았으니 누가 가장 결과와 근접한 예측을 했는지 미리 보고 놀랄 준비를 해보자.
씨네플레이의 선택, 작품상
<콘클라베> 혹은 <아노라>


주성철 편집장
유력 작품상 후보 영화들이 이런저런 논란으로 어수선한 가운데, 시상식 레이스 막판의 강자로 떠오른 <콘클라베>가 작품상을 받을 것이라 본다. 심사위원단의 수가 늘면서 막판 여론이 수상 결과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최근 몇 년간 확실히 알게 됐다. 하지만 아카데미가 그동안 외면해온 션 베이커의 <아노라>가 작품상을 받았으면 좋겠다.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레드 로켓>(2021)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 어떤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고, 심지어 앞서 아카데미로부터 호명 당한 것 같은 착시효과를 주는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의 운명도 마찬가지였다. 션 베이커의 영화가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에 오른 것 자체가 처음이다. <문라이트> <기생충>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등이 작품상을 수상하면서 끊임없이 외연을 확장해온 오스카의 새로운 노선의 마무리가 <아노라>라면 더없이 좋지 않을까.
성찬얼 기자
근 몇 년 동안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을 보면 두 가지가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다 생각한다. 하나, 흥행. 하나, 화제성. 그런 의미에서 올해처럼 유력 후보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연도는 오랜만이다. 흥행은 <위키드>가, 화제성은 <서브스턴스>가 가져갔지만 전자는 2부작이기에 반쪽짜리 영화인 것이, 후자는 할리우드 풍자라는 것이 걸린다. <브루탈리스트>는 반(反)미국적이고 <에밀리아 페레즈>는 시간이 갈수록 논란만 짙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서 가장 유력해보이는 건 <아노라>다. 성 노동자의 신데렐라 스토리를 골자로 펼쳐지는 슬랩스틱 코미디와 감성적인 드라마는 미국의 단면을 ‘덜 기분 나쁘게’ 그리는 데 성공한다. 재밌고 흥미진진한 데다 (냉소적으로 말하자면) 적당히 ‘우리는 성 노동자도 챙기는 진보적 영화인’이란 이미지 챙기기도 가능하다. 지나치게 비아냥거리는 것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아카데미를 챙겨보며 내린 결론이다.
김지연 기자
약 만 명의 아카데미 회원들이 결정하는 오스카는 사실 정치와 진배없다. 따라서 아카데미는 ‘최고’의 작품을 결정하는 시상식이라기보다는, 유권자들의 ‘민심’이 어느 쪽으로 향하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행사다. 그런데 특히 올해는 오스카 후보작들의 AI 사용 여부와 영화인들의 실언 등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가운데, 어떤 작품이건 폭탄을 한 개씩은 가지고 있는 셈이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회원들이 가장 ‘위험성이 적은’, 혹은 ‘논란을 일으키지 않을 만한’ 작품에 투표하며 안전지향적인 결정을 내릴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소거법으로 도달한 것이 바로 <콘클라베>와 <아노라>인데, 아무래도 <아노라>보다는 ‘덜 불편한’ <콘클라베> 쪽으로 작품상이 기울지 않을까. 작년 <오펜하이머>의 작품상 수상을 본 후로, 너무도 지루해진 아카데미에서 파격을 보고 싶은 개인적인 마음으로는 <서브스턴스>가 작품상을 수상하는 그림을 보고 싶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추아영 기자
션 베이커 감독의 세계관 확장과 마이키 매디슨의 열연이 돋보인 <아노라>가 받을 것 같다. 션 베이커는 초기작에서 성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포르노 산업의 부조리를 드러내면서 구조적인 문제에 더 집중했다면, <레드 로켓>을 거쳐 <아노라>에 이르면서는 그들을 둘러싼 외부의 것들이 인물의 내면에 미치는 영향까지 섬세히 그려내고 있다. 그의 더 넓어지고 깊어진 시선에 무한한 공감을 보내며, <아노라>가 작품상을 가져가기를 염원한다.
이진주 기자
이번 아카데미는 <에밀리아 페레즈>와 <브루탈리스트>의 치열한 2파전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였다. 특히 <브루탈리스트>는 무려 215분이라는 어마어마한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을 순식간에 몰입시키는 흡입력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하지만 예상 밖의 복병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바로 <콘클라베>. 이 작품이 의외의 선전을 펼칠 가능성이 있다. 2파전의 두 작품 모두 AI 기술 도입이라는 논란 한가운데에 서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16일(현지 시각) 영국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거머쥔 <콘클라베>는 이제 미국 아카데미에서도 강력한 후보로 급부상했다.
작품상 후보 <니켈 보이즈>·<듄: 파트 2>·<브루탈리스트>·<서브스턴스>·<아노라>·<아임 스틸 히어>·<에밀리아 페레즈>·<위키드>·<컴플리트 언노운>·<콘클라베>
씨네플레이의 선택, 감독상
<브루탈리스트> 브래디 코베

주성철 편집장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포함 무려 7개의 트로피를 가져간 <오펜하이머>(2023)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앞서 열리는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은 오히려 골든 글로브보다 더 아카데미와 싱크로율이 높은 전초전이다. 바로 올해 BAFTA에서 <브루탈리스트>로 감독상을 수상한, ‘인터미션’마저 영화의 리듬과 흐름에 녹여낸 브래디 코베가 아카데미 감독상을 가져가지 않을까 싶다.
성찬얼 기자
아마도 올해 가장 파격적인 영화 <서브스턴스>의 코랄리 파르쟈가 가장 유력해보이지만, 아카데미는 대대로 장르물에 박하다(당장 <듄: 파트 2>의 드니 빌뇌브가 후보에 없는 것을 보라). 감독상 후보 중 가장 진취적이고 장르적인 영화를 만든 코랄리 파르쟈의 수상은 그러므로 요원해보인다. 브래디 코베의 수상을 점쳐본다. <브루탈리스트>는 저예산에 시대극이란 핸디캡에도 어마무시한 박력을 발휘한다. 감독상 후보 다섯 작품 중 예술적 성취를 갈구하는 태도를 가장 대놓고 드러내는 것도 심사위원단의 마음을 흔들기 충분하다.
김지연 기자
한때 강력한 작품상 후보로 점쳐지던 <브루탈리스트>는 AI로 주연배우의 발음을 교정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사실상 <브루탈리스트>의 작품상 수상 가능성은 아예 사라졌다고 봐야 하지만, 브래디 코베 감독의 고집은 아카데미 회원들에게 충분히 어필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상을 못 준 감독들에게 미안해서라도 뒤늦게 상을 주는 아카데미에서, 션 베이커 감독이 이제라도 받았으면 좋겠다.
추아영 기자
오스카의 전초전이라고 불리는 미국감독조합상의 감독상을 션 베이커가, BAFTA의 감독상을 브래디 코베가 가져가면서 두 명의 감독이 유력해 보인다. 그럼에도 이제는 줄 때가 된 션 베이커 감독이 받을 것 같다. 미국의 이민자와 성 노동자들의 삶을 스크린에 드러내 왔던 그의 한결같은 행보가 칸에 이어서 자국에서도 응당 응답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이진주 기자
사심을 배제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다. 감독상은 반드시(!) <서브스턴스>의 코랄리 파르쟈 감독이었으면 한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서브스턴스>를 통해 새로운 장르를 창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신인 감독, 코랄리 파르쟈.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중시하는 아카데미의 성향을 고려하면, 그녀가 구축한 기괴하면서도 매혹적인 세계관을 외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감독상 후보 <브루탈리스트> 브래디 코베·<서브스턴스> 코랄리 페르쟈·<아노라> 션 베이커·<에밀리아 페레즈> 자크 오디아르·<컴플리트 언노운> 제임스 맨골드
씨네플레이의 선택, 여우주연상
(★축☆만★장☆일★치☆)
<서브스턴스> 데미 무어

주성철 편집장
단언컨대 데미 무어 말고는 없다. <에밀리아 페레즈>의 칼라 소피아 가스콘은 후보 스스로 고춧가루를 뿌린 격이 됐다. 썩 좋지 않은 논란의 후보에게 상을 안겨준 사례가 없다. 게다가 데미 무어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양자경 이상으로, 할리우드와 생사고락을 함께 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스토리까지 가지고 있다.
성찬얼 기자
데미 무어. 이견의 여지가 있을까. 그가 <서브스턴스>에서 보여준 연기는 극도의 히스테릭조차 동정할 수밖에 없게 한다. 거기에 근 몇 년 간 아카데미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양자경, <더 웨일> 브랜든 프레이저 등 영화와 배우의 서사가 착 붙는 사례에 애정을 표해왔다. 데미 무어 또한 엘리자베스 스파클과 같은 삶을 살아왔으나, 이번 아카데미에서 상을 들어올리고 그와는 다른 결말을 맞이하리라.
김지연 기자
<서브스턴스>의 데미 무어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기는 건 아카데미의 일말의 양심일 것이다. 데미 무어와 같은 배우들을 ‘팝콘 배우’라 불렀던 할리우드의 지난 과거에 대한 반성의 의미에서, 데미 무어에게 여우주연상을 주지 않을까.
추아영 기자
유력한 후보 중 한 명이었던 <에밀리아 페레즈>의 칼라 소피아 가스콘까지 논란으로 힘을 잃고 후보망이 좁혀지면서 <서브스턴스>의 데미 무어가 여우주연상을 가져갈 것 같다. 여배우로서 망가지는 것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분장 열연을 펼친 데미 무어가 받았으면 좋겠다.
이진주 기자
<서브스턴스>로 인생 2막의 서막을 연 데미 무어. 골든글로브, 크리틱스초이스 등 주요 시상식을 휩쓴 그가 아카데미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는 건 거의 확실해 보인다. 아카데미가 데미무어의 문을 열어줄지 주목할 만하다.
여우주연상 후보 <서브스턴스> 데미 무어·<아노라> 마이키 매디슨·<아임 스틸 히어> 페르난다 토레스·<에밀리아 페레즈>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위키드> 신시아 에리보
씨네플레이의 선택, 남우주연상
<컴플리트 언노운> 티모시 샬라메

주성철 편집장
<콘클라베>가 떠오르고 <브루탈리스트>와 <에밀리아 페레즈>가 저무는 것을 보면서, 오히려 늦게 공개되는 것이 수상에 좋은 결과를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는 해가 아닐까 싶다. 조연상 후보였던 <쉰들러 리스트>, 주연상 후보였던 <잉글리쉬 페이션트> 이후 거의 30여 년 만에 아카데미 연기상 후보에 오른 그에게 트로피를 안겨줄 때가 됐다.
성찬얼 기자
개인적으로 올해 최고의 박빙인 분야로, 누구 하나 손 들어주기 쉽지 않다. 애드리언 브로디는 명성에 어울리는 연기를 펼쳤고, 세바스찬 스탠과 티모시 샬라메는 도발적인 실존 인물을 완벽하게 소화했으며, 랄프 파인즈는 혼란함에 던져진 성직자의 모습을 제 옷처럼 입었다. <씽씽>만을 보지 못했는데 지난해 이어 또 후보에 오른 콜맨 도밍고도 굉장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이중 상을 거머쥘 사람은 티모시 샬라메가 되지 않을까. 연기뿐만 아니라 기타 연주와 노래까지 해내며 밥 딜런의 미스테리어스한 면모를 여과 없이 보여준 티모시 샬라메는 (젊은 배우로 받을 수 있는 칭송은 이미 모조리 받았으나) 그야말로 ‘스텝 업’한 존재감을 남긴다. 아카데미는 이번 남우주연상으로 그의 업그레이드를 축하하지 않을까.
김지연 기자
아카데미는 여태껏 전기 영화에서 실존인물을 잘 연기해낸 배우들을 좋아했다. 작년 <오펜하이머>의 오펜하이머 역 킬리언 머피가 그랬고, 2020년 <주디>의 주디 갈란드 역의 르네 젤위거, 2019년 <보헤미안 랩소디>의 프레디 머큐리 역 라미 말렉 등. 실존인물을 빼어나게 연기한다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연기상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데, 심지어 그 실존인물의 모습이 아주 잘 알려진 데다가 배우의 배역과 실존인물의 싱크로율이 높다면 더욱 그 가능성은 높아진다. 그래서 <컴플리트 언노운>에서 20대 밥 딜런을 연기한 티모시 샬라메가 남우주연상을 받지 않을까.
추아영 기자
AI 연기 논란에도 유력한 수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브루탈리스트>의 애드리언 브로디가 받을 것 같다. 하지만 밥 딜런의 얇은 목소리, 웅얼웅얼 읊는 듯한 창법을 준수하게 소화해 낸 <컴플리트 언노운>의 티모시 샬라메가 받았으면 좋겠다. 왠지 그가 이번에 받지 못하면 (오스카와 인연이 없다가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로 죽다 살아난 덕(?)에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처럼 될 것만 같다…
이진주 기자
남우주연상 부문은 다소 미궁 속이다. <브루탈리스트>의 애드리언 브로디가 강력한 후보로 꼽혔으나, 그의 연기가 순도 100% 인간의 것이 아님이 밝혀진 후 상황이 묘하게 흐르고 있다. 물론 그는 여전히 뛰어난 배우지만, AI 논란을 비껴가긴 어려울 듯하다. 그 덕에 티모시 샬라메가 반사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커졌다. <웡카>에서 제대로 갈고닦은 ‘찐’ 노래 실력을 선보이며 ‘인간의 예술’을 지지하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일지도.
그러나 필자의 진짜 속마음은 <어프렌티스>의 세바스찬 스탠에게 향한다. 이 영화에 대해 "쓰레기통에 버려져야 할 영화"라고 비난한 트럼프가 미국의 47대 대통령이 된 지 3개월째. 상상해 보자. 세바스찬 스탠이 남우주연상을 받고, 트럼프의 모습으로 트로피를 들고 무대에 서는 장면을.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순간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남우주연상 후보 <브루탈리스트> 애드리언 브로디·<씽씽> 콜맨 도밍고·<어프렌티스> 세바스찬 스탠·<컴플리트 언노운> 티모시 샬라메·<콘클라베> 랄프 파인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