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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와 캐릭터의 싱크로율, 〈서브스턴스〉처럼 배우가 곧 영화의 서사인 사례들

성찬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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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스턴스〉

 

2024년부터 2025년까지 두 달간 상영하며 신화를 써 내려가고 있는 영화 <서브스턴스>. 왕년의 스타가 연예계에서 물러날 위기에 처하자 금기의 약물 ‘서브스턴스’에 손을 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는 메시지와 이를 녹인 스토리, 감각적인 영상, 심장을 두드리는 음악, 이 모든 조화에서 화룡점정을 찍은 건 영화 속 주인공 엘리자베스 스파클과 그를 연기한 배우 데미 무어의 싱크로율이다. 스타였지만 이제는 방송국 간부에게 ‘퇴물’ 취급을 받는 엘리자베스, 최고의 배우였지만 언젠가부터 가십과 루머의 대상으로만 소비된 데미 무어, 두 인물이 공유하는 지점은 영화의 메시지와 감상을 더욱 넓혔다. <서브스턴스>처럼 배우의 개인사와 영화 속 스토리가 맞물려 더욱 호평받은 영화들을 소개한다.


<버드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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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맨〉 리건 톰슨(마이클 키튼, 오른쪽)

 

<서브스턴스>처럼 배우와 스토리가 찰떡인 영화의 계보에서 <버드맨>이 빠질 수 없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2014년 영화 <버드맨>은 슈퍼히어로 캐릭터 버드맨을 맡아 일약 스타가 됐던 배우 리건 톰슨이 주인공이다. 버드맨으로 스타가 됐지만 ‘버드맨 원툴’로 남은 리건은 브로드웨이 연극에 도전해 배우 인생 제2막을 열려고 한다. 하지만 동료 배우들과의 트러블, 여전히 버드맨만 기억하는 대중들, 그 사이에서 리건은 점점 괴상한 환각까지 보며 위축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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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992년 배트맨을 연기한 마이클 키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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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맨’ 리건 톰슨과 ‘배트맨’ 마이클 키튼 팬 메이드 이미지 (@janelsantacruz)

 

<버드맨>이 최초 공개될 당시 두 가지 특징이 특히 화제를 모았다. 하나는 롱테이크 형식을 차용했다는 것(실제로는 교묘하게 이어붙인 것이지만). 두 번째는 리건 톰슨과 마이클 키튼의 공통점이다. 마이클 키튼은 본래 코미디에 능한 배우였는데, 1989년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을 통해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물론 그만큼 그에겐 늘 배트맨이란 유명세가 따라붙었고, 한동안 그 이상 가는 흥행작이나 인생작을 만나지 못해 서서히 대중의 눈에서 벗어나는 모양새였다. 그러다가 <버드맨>의 리건 톰슨 역을 맡으면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도 오르는 등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런 전사를 잘 아는 관객이라면 버드맨에 시달리는 리건 톰슨이 완전히 남 얘기처럼 보이지 않았을 터. 다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 리건 톰슨이 버드맨을 어떻게든 떨쳐내고 싶었던 것과 달리 마이클 키튼은 공공연하게 배트맨에 대한 애정을 드러낼 만큼 배트맨을 사랑했다는 점. 이후 2023년 <플래시>에서 배트맨 역으로 다시 돌아온 것도 그 애정이 있기에 가능한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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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마이클 키튼은 배트맨을 무척 사랑해서 〈플래시〉에서 배트맨으로 돌아왔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에블린(오른쪽)과 그의 남편 웨이먼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에블린(오른쪽)과 그의 남편 웨이먼드

 

세탁소 사장인 내가 우주 최후의 구원자?! 이런 인터넷 소설 제목 같은 영화가 2022년 전 세계를 흔들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하 <에에올>)는 홍콩에서 미국으로 이민 와 가정을 꾸린 에블린이 모든 평행우주(멀티버스)를 파괴하려는 조부 투바키에 맞서게 된다는 내용을 그린다. 양자경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극중 멀티버스 설정을 사용해 한 사람의 다양한 가능성을 조명하는 과정이 들어갔고, 에블린/양자경의 다른 삶을 잠시나마 들여다볼 수 있는 순간을 제공해 관객들의 흥미를 자극했다.

 

배우 활동을 접고 〈엑스맨〉 무술팀으로 일했던 시절의 키 호이 콴(왼쪽에서 두번째)
배우 활동을 접고 〈엑스맨〉 무술팀으로 일했던 시절의 키 호이 콴(왼쪽에서 두번째)

 

다만 이 영화가 양자경의 서사와 찰떡인가 하면 그건 아니다. 양자경, 제이미 리 커티스, 제임스 홍 등 명배우들을 재조명하긴 했지만, 이를 서사적 결합에서 찾긴 어렵다. 이 영화의 서사와 잘 어울리는 건 오히려 웨이먼드 역을 맡은 키 호이 콴에 가깝다. 아역 배우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키 호이 콴은 성인이 되고 도리어 활동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한다. 당시만 해도 동양인이 주역인 할리우드 영화가 원체 적어 그에게 돌아오는 배역이 없었고, 때문에 영화계 관련 일을 하면서도 거의 20년 가까이 배우 활동을 접은 상태였다. 다른 주연급 배우들과 달리 배우가 아닌 다른 삶을 살아본 경험 때문이었을까, 그의 연기는 웨이먼드처럼 섬세하면서도 결연했다. 무엇보다 키 호이 콴 본인이 다시 영화계로 복귀할 수 있는 건 거듭된 실패에도 결코 무너지지 않고 그 다정함을, 천진난만함을 유지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웨이먼드가 극중 하는 대사들처럼 말이다.

자신만의 싸우는 방식을 말하는 웨이먼드에서 키 호이 콴 본인이 겹쳐보이기도.
자신만의 싸우는 방식을 말하는 웨이먼드에서 키 호이 콴 본인이 겹쳐보이기도.

<더 웨일> & <더 레슬러>

 

평소엔 무지막지하게 냉소적인 작품을 만들지만, 그 마음 깊은 곳엔 인간에 대한 연민이 있어서일까. <레퀴엠>, <노아> 등을 만든 대런 아로노프스키는 <더 레슬러>, <더 웨일>을 만들어 배우의 인생을 뒤바꾼 감독이기도 하다. 두 영화는 만들어진 시기도, 그 내용도 전혀 다른데 딱 한 가지 특징을 공유한다. 바로 주연 배우의 개인사를 영화에 기막히게 잘 녹여냈다는 점이다.

 

〈더 레슬러〉 랜디(미키 루크)
〈더 레슬러〉 랜디(미키 루크)

 

2008년 영화 <더 레슬러>는 20년 전 최고의 인기 레슬러였지만 이제는 기량도, 몸도 나빠지는 상황에 봉착한 프로레슬러를 주인공으로 한다. 랜디는 여전히 레슬링이 좋지만 나이 든 그를 찾는 사람은 점점 줄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심장질환이 심각해지며 다시는 레슬링을 할 수 없게 된다. 이런 랜디의 서사는 그를 연기한 미키 루크의 개인사와도 시너지를 냈다. 미키 루크 또한 1980년대 섹시스타였지만 오토바이 사고와 사생활 문제로 2000년대에 와선 완전히 잊힌 배우처럼 취급받곤 했다. 이런 그의 상황이 <더 레슬러>의 랜디와 겹쳐보인데다, 미키 루크 본인도 캐릭터와 혼연일체의 연기를 펼치며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까지 오르게 된다.

미키 루크의 1980년대 섹시스타 시절
미키 루크의 1980년대 섹시스타 시절

 

〈더 웨일〉
〈더 웨일〉

 

2022년 영화 <더 웨일>은 폭식으로 272kg의 거구가 된 대학 강사 찰리가 점점 다가오는 죽음을 직감하며 다시 딸과 대면하는 과정을 그린다. 훌륭한 대학교수였으나 불같은 사랑에 삶을 송두리째 잃고 스스로조차 혐오하게 된 그는 브랜든 프레이저가 연기했다. 프레이저 또한 어드벤처 장르의 대표주자로 인기가 많았지만 이혼과 성추행 등으로 마음고생을 하며 한동안 연예계에서 한 걸음 물러났었다. 그런 그가 이렇게 자기혐오적 삶을 간신히 버티며 살아가는 찰리를 연기한다는 소식은, 영화 공개 전부터 관심을 모으기 충분했다. 272kg 거구를 연기하기 위해 특수분장까지 감당한 브랜든 프레이저는 그 틈에서도 구원을 바라는 눈빛으로 관객을 사로잡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데 성공했다.

〈미이라〉(1999) 시절의 브랜든 프레이저
〈미이라〉(1999) 시절의 브랜든 프레이저
〈더 웨일〉로 상을 타며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다.
〈더 웨일〉로 상을 타며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