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콘클라베가 끝났다. 투표가 시작된 둘째 날, 이탈리아 로마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지난달 21일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이후 17일 만이었다.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된 미국 출신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의 즉위명은 ‘레오 14세’다. 여러 언론과 베팅 사이트를 통해 이탈리아의 파롤린 추기경을 필두로 필리핀의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 이탈리아의 마테오 주피 추기경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으나, 영화 <콘클라베>에서 본 것처럼 최종 선택은 달랐다. 레오 14세는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데, 다만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교황이었다고 평가받은 프란치스코와 달리 레오 14세는 중도 성향으로 분류된다.
앞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후임자를 선출하는 추기경단의 비밀회의 콘클라베(Conclave)가 7일부터 시작됐는데, 첫날에는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즉, 콘클라베 첫 투표에서 새 교황이 선출되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단의 비공개회의를 콘클라베라고 부르는데 ‘열쇠로 잠근 방’이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 모인 추기경단은 투표 기간 동안 외부 출입이나 연락을 할 수 없다. 추기경단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은 새 교황이 뽑히면 굴뚝에서 흰 연기, 선출이 무산되면 검은 연기가 나오는데, 교황이 선출될 때까지 이 과정을 매일 반복한다. 이렇게 사흘간 투표해도 교황이 안 뽑히면 추기경들은 하루 동안 투표를 중단하고 기도와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그의 전임자인 베네딕토 16세는 모두 콘클라베 둘째 날 교황으로 선출됐다. 이번에는 이보다 오래 걸릴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많았지만, 역시 둘째 날 결정됐다.

아마도 그런 예상은, 이번 콘클라베에 역대 가장 많은 추기경 133명이 참석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 80세 미만 추기경이 참가 대상으로, 한국인으로는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추기경이 참가한다. 추기경들의 출신 국가 또한 5개 대륙 70개국으로 2013년의 48개국보다 훨씬 다양해졌다. 또 과거에는 유럽 출신 추기경이 전체의 절반을 넘었으나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등 비유럽권 추기경이 절반이 넘는다. 이번이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크고 국제적인 콘클라베였다. 그래서 당연히 교황 선출 결과를 더 예측하기 힘들다고 생각했던 것. 어쨌거나 콘클라베가 종교를 넘어 대중에게 글로벌 이벤트처럼 다가오게 된 데는, 그 과정을 리얼하게 담아낸 두 영화 <두 교황>(2019)과 <콘클라베>(2024)의 영향이 크다. 그 때문인지, 심지어 올해는 디즈니+에서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진행되는 콘클라베를 첫날부터 2시간 동안 라이브 스트리밍하기도 했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두 교황>(2019)은 자진 사임으로 바티칸을 뒤흔든 교황 베네딕토 16세(안소니 홉킨스)와 그 뒤를 이은 교황 프란치스코(조나단 프라이스)의 실화를 담은 이야기다. 전, 현직 교황을 연기한 안소니 홉킨스와 조나단 프라이스가 실제 인물과 무척 닮아서 큰 화제가 됐고,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몰입감을 선사하며 두 배우는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 연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대배우의 호연에 힘입은 <두 교황>은 기본적으로 보수와 진보를 대변하는 두 교황의 서로 다른 스타일을 대비시키는 가운데, 교회와 세상을 바라보는 견해 차이를 치열한 설전으로 보여준다.

‘교회의 오랜 전통을 지키기 위해 더 높고 견고한 담을 쌓아야 한다’는 베네딕토와 ‘장벽이 아니라 다리를 지어야 한다’는 프란치스코의 대화는 내내 평행선을 달린다. 하지만 남미 출신 영화감독 페르난도 메이렐레스는 아마도 아르헨티나 출신 프란치스코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는 것 같다.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교회가 자기도취에 빠져 있다”고 걱정하는 프란치스코는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에 더 이상 (교회의) 세일즈맨 영업사업이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교회는 언제나 세상과 함께 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변화는 타협”이라는 베네딕토의 말에 프란치스코는 “주님도 변합니다”라며 “이혼, 피임, 동성애 등에 대해 교회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단죄하는 데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지구는 파괴되고 불평등이 암처럼 커지고 있는데, 미사를 라틴어로 하는 게 옳은지 여자아이들을 복사(교회의 종교 예식을 거행할 때 사제 옆에서 돕는 봉사자)로 허용할 것인지 걱정했습니다. 우리 주위로 늘 담쌓았습니다. 진짜 위험은 늘 우리 안에 존재했습니다”라고 조목조목 비판한다. 이처럼 <두 교황>은 프란치스코의 과거 연인, 젊은 시절의 트라우마까지 보여주며 거의 ‘한 교황’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프란치스코의 인물 다큐처럼 진행된다. 오히려 그가 선종한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은 이 시점에서, 그리고 새로운 교황이 중도 성향으로 분류된다는 점에서 프란치스코를 향한 추모 영화로 이해하고 감상해도 좋을 것 같다.

올해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랄프 파인즈), 여우조연상(이사벨라 로셀리니) 등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고 각색상을 수상한 <콘클라베>는 <두 교황>과 달리 교황의 예기치 못한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 <두 교황>이 영화 초반에만 콘클라베 과정을 보여준 뒤, 베네딕토와 프란치스코의 사적이고도 내밀한 대화에 집중했다면, <콘클라베>는 로렌스(랄프 파인즈)를 중심으로 선거의 전반적인 과정을 보여준다. 당선이 유력했던 후보들이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1위 후보는 계속 바뀌고 콘클라베를 둘러싼 음모와 탐욕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된다.

일단 영화는 앞서 얘기한 콘클라베의 과정을 거의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영화 <콘클라베>를 보고 현재의 실제 콘클라베를 돌이켜보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비밀 서약을 한 추기경들은 휴대전화와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으며 신문 열람도 할 수 없다. 도청을 막기 위해 시스티나 성당 내에는 도청 및 녹음 장치 설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사전 정밀 수색도 진행된다. 이런 엄격한 보안은 새 교황이 발표되는 순간까지 계속 유지되는데, 교황 선출과 관련된 비밀을 지키겠다고 서약한 뒤 이를 어기면 파문당한다. 물론 더 흥미로운 장면들은, 그보다 앞서 교황이 선종한 직후의 모습들이다. 원작자 로버트 해리스와 각본가 피터 스트로언은 1996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제정한 정확한 규칙을 참고했다. 이 규칙들은 교황이 사망했을 때 어부의 반지에 흠집을 내고 방을 봉인하는 과정 등 무엇을 해야 하는지, 추기경들이 투표 전후에 서약하는 라틴어 맹세와 투표용지를 세어 본 후 보존을 위해 구멍을 뚫어 놓는 전통 등 일반인이 쉬이 알 수 없는 세부 사항들을 엄격하게 영화에 반영했다.

그런 탄탄한 리얼리티 위에 로렌스를 중심으로 의심에 의심, 반전에 반전이 이어진다. 에드워드 버거 감독은 <콘클라베>에 대해 ‘의심의 영적인 여행에 관한 영화’라고 말했다. 그 의심에 따라 콘클라베 이면에서 계속되는 권력 게임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런 점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차량 폭탄 사고로 인해 성당 외벽과 창문이 무너져 내리며, 마치 하늘의 계시와도 같은 한 줄기 빛이 내려올 때다. “제가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죄는 바로 확신입니다. 의심 없는 확신은 관용의 가장 치명적인 적입니다”라며, 투표에 앞서 로렌스의 진심 어린 연설 뒤에 성당의 벽이 뚫려버리는 것. 보수파와 개혁파의 대립 속에서 중도를 지키기 위한 노력은 그처럼 험난하다.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시기에, 그 스스로 상정한 의심과 확신 사이에서의 선택은 결코 완전할 수 없다. 그들도 모두 인간이다.

매번 차기 교황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물들은 많았지만, 언제나 실제 콘클라베는 그 예상을 비켜 갔다.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이 대표적이다. 2013년 콘클라베 당시 그는 무려 15위에 자리한 비주류 후보였지만 교황으로 선출됐다. 앞서 베네딕토 16세 또한 유력 후보가 아니었다가 막바지에 베팅이 몰리며 교황으로 선출된 바 있다. 어쩌면 <콘클라베>는 ‘왜 언제나 예상 밖의 인물이 선출되는지’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번 콘클라베 역시 유력한 후보들을 다 비켜 갔기에 <콘클라베>를 다시 봐야 할 생겼을지도 모른다. 예상한 인물이 교황이 되건 예상 밖의 인물이 교황이 되건, 파문당할 수 있기에 속사정을 밝힐 수는 없겠지만, 시스티나 성당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콘클라베>처럼 그 누구도 알 수 없을 테니까.
씨네플레이 주성철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