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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계시록〉 류준열 "만족할 만한 작품이 나오면 연기 그만둘 것"

이진주기자

류준열은 ‘만족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외부의 평가와 무관하게, 언젠가 자신의 ‘마스터피스’(명작)가 나왔다고 느끼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는 연기를 그만둘지도 모르겠다고. 같은 말이 반복될수록 확신보다는 갈증이 더 선명해졌다. 연기에 대한 집요한 질문을 멈추지 못하는 ‘배우 류준열’의 순수함, 그리고 그 무게를 견디기 위해 단단해진 ‘인간 류준열’이 함께 보였다. 2015년 <소셜포비아>로 강렬한 데뷔를 알린 지 10년. 꽤 긴 여정 속에서도 여전히 질문을 던지는 그에게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계시록>은 어떤 순간으로 남았을까.


넷플릭스 〈계시록〉 류준열(제공=넷플릭스)
넷플릭스 〈계시록〉 류준열(제공=넷플릭스)

 

<계시록>이 넷플릭스 글로벌 공개 첫 주 1위를 기록했습니다. 소식 들으셨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저도 인터뷰하러 오기 5분 전에 들었어요. 그래서 얼떨떨한 상태로 앉아 있었습니다. 극장 개봉과는 다르게 이런 스트리밍 플랫폼은 피드백이 정말 빠르잖아요. 주변 친구들이 보통은 “다음 주에 볼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엔 다들 “벌써 봤다”, “너무 재밌다” 하면서 바로 연락이 오는 거예요. 해외에 계신 팬분들이나 가족분들도 즉각적으로 볼 수 있다는 점도 좋고요. 기쁜 마음을 리액션으로 표현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입니다.

 

해외 반응이 특히 좋은 것 같아요. 그 이유는 뭐라고 보세요?

제가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이 부분이었어요. 단순히 종교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믿음’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보편적인 공감이 가능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는 어떤 것을 믿고 있지?’라는 질문 앞에서 한 번쯤은 멈추게 되니까요. <계시록>은 오락적인 재미도 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철학적인 깊이도 있어서 여러 층위에서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

 

 

넷플릭스 〈계시록〉
넷플릭스 〈계시록〉

 

시나리오 처음 받았을 때 기억나세요?<계시록>의 어떤 점이 끌리셨어요?

저는 원래 인간이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주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사진전을 준비할 때도 그런 내면의 세계를 탐구하는 작업을 했었고요. <계시록>은 그런 부분이 짙게 묻어 있었어요. 지금 세대는 가짜 뉴스를 포함해서, 진짜와 거짓을 구별하기보다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사는 시대잖아요. 민찬이라는 인물도 결국 그 믿음의 연장선에 있는 사람이에요. 선이냐 악이냐보다, '이 사람이 무엇을 믿고 있나'가 더 중요한 지점이었죠.

 

연상호 감독님이 인터뷰에서 류준열 배우가 질문이 많은데 ‘버릴 질문이 하나도 없었다’고 하셨어요.

제가 스스로 ‘물음표 살인마’라고 불러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질문하거든요. 시나리오의 구조, 인물 간의 관계, 사건의 논리성까지 전부요. 저는 늘 의심하는 스타일이에요. ‘이게 진짜 이 캐릭터의 감정선인가?’ 계속 스스로 확인하고, 또 의심해요. 그래서 질문이 많아질 수밖에 없어요. 모두가 분위기에 휩쓸려 ‘좋다’고만 하면 오히려 위험해요. 현장에선 괜찮아도 완성되고 나면 후회가 남거든요.

 

배우님이 그렇게 질문을 하면 연상호 감독은 어떻게 반응하세요? 현장에서 연상호 감독님은 어떤 스타일인가요?

감독님은 촬영 속도가 빠르기로 유명하잖아요. 그래서 ‘내가 놓치지 않고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질문을 다 들어주시고, 그 자리에서 답을 못 해주시더라도 며칠 뒤 다시 답을 주시더라고요. 그런 태도가 정말 인상 깊었어요. 배우 입장에서는 정말 믿고 갈 수 있는 사람, 배 위에 있는 선장 같은 분이에요. 선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방향은 정확히 잡고 가는 느낌이랄까요.

 

 

 

넷플릭스 〈계시록〉 류준열(제공=넷플릭스)
넷플릭스 〈계시록〉 류준열(제공=넷플릭스)

 

<계시록>을 다 보고 난 후에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셨어요? 이번 작품에서의 연기가 만족스러우신가요?

늘 아쉬움이 남아요. 그래서 일부러 잘 안 보기도 해요. <계시록>도 시사에서 한 번 보고 끝냈죠. 그 아쉬움이 다음 작업의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만족하게 되면... 오히려 배우를 그만둬야 하나 싶을 것 같아요. 마스터피스란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제 기준에서 ‘이제 됐다’ 싶으면 그때는 쉬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도 해봤어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배우님의 연기를 극찬하셨다는 얘기도 있었어요. 들으셨나요?

네, 얘기는 들었어요. 쿠아론 감독님은 제가 영화 공부하던 시절에 거의 ‘전부’였던 분이세요. 그런 분이 제 연기를 봐주셨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죠. 주변을 통해 알폰소 쿠아론 감독님이 ‘좋게 봤다’라고 평해주셨다는 말을 전해 들었는데, 정확한 워딩은 몰라요. 영상이 올라왔는지도 모르겠고, 올라와도 저는 안 볼 생각이에요. 저는 칭찬을 들으면 되게 부끄러워요. 등에서 땀이 나고 막... (웃음) 그냥 가끔 산책할 때 생각나면 웃음이 나는, 그런 소중한 기억으로 남겨두고 싶어요.

 

넷플릭스 〈계시록〉 류준열(제공=넷플릭스)
넷플릭스 〈계시록〉 류준열(제공=넷플릭스)

 

 

성민찬이라는 인물은 시간이 갈수록 변해가는 인물이잖아요. 그런 낙차를 어떻게 설계하셨는지 궁금해요.

원작(연상호, 최규석의 동명 웹툰)에서는 민찬이 좀 전형적인, 욕망 가득한 목사로 시작해요. 근데 영화로 옮길 때는 그 변화하는 과정을 설계해야 관객분들도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결정적으로는, 이 사람이 자기 의도와는 다르게 ‘계시’에 집중하면서 선택을 하게 되는 인물이라는 점에 주목했어요.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는 인물인데, 오히려 그래서 더 매력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이번 작품에서 보여주신 연기가 기존의 것과는 결이 다르다는 느낌인데요. 성민찬이라는 인물을 연기하며 어떤 시도를 하셨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감정을 크게 표출하는 연기에 대한 거부감이 좀 있었던 배우였거든요. 근데 이번 작품에선 그런 걸 한 번 해보고 싶었어요. 감독님이 직관적이고 강한 표현을 좋아하시는데, 저는 평소에 생활감이나 리얼리즘에 기반한 연기를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이번엔 뭔가 잘 맞았어요. 감독님은 애니메이션도 하셨던 분이니까 디렉션을 줄 때 직접 보여주시기도 하고, 그런 스타일이 저랑 이번에 하려던 게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기존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연기했고, 그 과정에서 제 안의 갈증이 많이 해소됐던 작품이에요.

 

신현빈 배우와 동갑내기 호흡이었죠. 촬영하면서 어떤 기억이 남으셨나요?

네, 현빈 씨랑은 동갑이에요. 흔한 조합은 아니죠. 근데 연기 얘기는 많이 안 했던 것 같아요. 흔히 ‘선수들끼리는 연기 얘기 잘 안 한다’는 말처럼요. 저는 평소에 동생으로 있는 게 편하거든요. 형들한테는 투정도 부리고, 까불기도 하고요. 동생들은 좀 어렵고요. (웃음) 동갑은 더 애매하죠. 그런데 현빈 씨는 너무 둥글둥글하고, 현장 분위기를 진짜 좋게 만들어주는 배우예요. 다들 좋아하는 사람이고요. 그래서 동갑이고 선후배고를 떠나서 사람 자체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정말 편안하게 촬영할 수 있었어요. '이렇게 편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요.

 

 

넷플릭스 〈계시록〉
넷플릭스 〈계시록〉

 

후반부 폐모텔에서의 롱테이크 신이 화제가 되고 있어요. 정말 원테이크로 찍으신 건가요?

네. 한 번에 간 거예요. 원래는 트릭샷으로 사용하려고 했는데, 감독님이 그 장면을 라이브하게 표현하고 싶어 하셨어요. 저에게 중요했던 건, 그 장면에서 민찬이 되게 혼란을 겪어요. 세 인물의 말이 다 다르고, 자기가 믿었던 사실과 반대되는 얘기를 들으니까, 그 혼란을 표현하기 위해서 카메라 워킹도 그렇게 가고, 감정선도 따라가게 된 거예요. 그래서 마치 연극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쭉 가는 식으로 리허설 많이 하고 찍었고요. 대본 없이, 배우들이 디자인한 대사를 가지고 갔기 때문에 진짜 한 번에 간 장면이에요.

 

결말 장면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던데요. 민찬은 마지막에 어떤 감정을 가진 인물이었을까요?

저는 이 영화가 관객분들한테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당신은 어떤 믿음을 갖고 있나요?”, “그 믿음은 진짜인가요?”, “당신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건 아닌가요?” 마지막에 민찬이 닦는 창에는 십자가 형상이 점점 더 드러나기도 하고, 어떤 분은 ‘악마처럼 보였다’고도 하시더라고요. 저는 그 다양함이 너무 좋았어요. 민찬 입장에서는 자신이 보고 싶은 걸 본 거고, 관객도 그렇게 각자 보고 싶은 걸 보게 되는 거죠.

 

넷플릭스 〈계시록〉 제작 보고회 중 배우 류준열(제공=넷플릭스)
넷플릭스 〈계시록〉 제작 보고회 중 배우 류준열(제공=넷플릭스)

 

데뷔한지 10년이 되었어요. 배우 류준열도 자신의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었을 것 같은데, 본인은 어떻게 중심을 잡으세요?

저는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걸 믿는 편이에요. 물론 내가 만든 까마귀일 수도 있죠. 근데 그걸 믿는 거예요.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신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만 주신다고 하잖아요. 저는 그 말에 되게 공감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힘든 일이 생겨도, ‘이건 나한테 필요한 과정이다’라고 생각하게 돼요. 그래야 그걸 견딜 수 있는 힘도 생기고요.

 

연기에 대해서는 확신이 있으세요? ‘내가 이건 확실히 잘한다’고 느끼는 부분이요.

음… 그런 게 있으면 참 좋겠는데요. 저는 그냥 고민한 만큼, 질문한 만큼 결과가 좋았던 것 같아요. ‘최선을 다했다’는 게 그냥 ‘열심히 했다’가 아니라, 상대방과 내가 서로 다치지 않는 선에서 선택한 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있어요. 누군가가 상처를 받을 수 있겠다 싶으면, 저는 거기서 멈춰요. 그 상처는 내가 짊어지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게 오히려 더 건강한 선택이라는 확신이 있어요.

 

‘배우 류준열’이 아니라, ‘인간 류준열’은 지금 어디쯤 와 있다고 느끼세요?

어디로 가야 할지, 목적지를 정하지 못한 상태인 것 같아요. 속도도 안 붙었고요. 예전엔 좀 더 분명한 목표가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여러 가능성 앞에서 둘러보는 느낌이에요. 최근엔 루틴도 깨졌어요. 전에는 일찍 자고, 운동하고, 그런 루틴이 있었는데 요즘은 늦게 자고, 생각도 많고... 스트레스도 받지만, 그게 어떤 변화의 신호일 수도 있겠다 싶어요. 예전 같으면 ‘이게 나다운 건가?’ 고민했겠지만, 지금은 ‘변화가 있구나’ 하고 받아들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