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마리아>는 오페라 전설 마리아 칼라스(안젤리나 졸리)의 마지막 나날을 두 시간 남짓 따라간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에 집중해 목소리를 잃은 전설적 소프라노의 절망과 상실, 고통을 공감 어린 시선으로 섬세하게 그려냈다. 전성기를 지나 쇠락해버린 칼라스는 내면에서 수없이 현실과 환상을 오간다. 그녀 자신이 연기했던 무수한 오페라 속 비련의 여주인공들이 그러했듯, 칼라스는 곳곳에서 오페라 대사처럼 의미심장한 대사들을 내뱉고, 그 여운은 마치 아리아처럼 지속되어 곡이 끝났지만 청자로 하여금 계속 그곳에 머무르게 한다.
그 누구도 아닌, 오직 자신의 평온을 위해 잃어버린 목소리를 되찾으려 노력하는 칼라스가 관통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꽤나 고통스럽다. 약물에 의존하는 칼라스, 그녀의 목소리에서 여전히 얼마쯤 가능성을 보는 피아니스트, 디바에게 어울리는 스포트라이트를 켜주기 위해 점심조차 건너뛰는 극장의 조명 담당자처럼 관객들은 그녀의 발길 닿는 곳곳에서 전성기 시절 목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잠시 호흡조차 멈추고 집중하게 된다.

오로지 음악을 위해 살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삶, 화려한 환호와 박수갈채가 쏟아지던 무대를 기억하는 그녀는 초라한 현실을 부정하고, 기억 속 장면은 현실의 환상으로 다가온다. 칼라스는 몸을 잔뜩 웅크리고 상처를 핥는 맹수처럼 필사적이며, 잔뜩 털을 곤두세운 채로 경계심 가득한 태도를 보인다. 방어적이고 위협적인 태도를 보이는 그녀의 모습이 스크린에서 펼쳐질 때마다, 관객들은 점점 더 그녀의 상처와 외로움에 공감하게 된다. 영화가 마리아 칼라스의 비극적 삶을 나열하며 서사적으로 단순히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녀의 상처와 외로움에 깊이 공감하며 존중을 담아 그려낸 덕분이다

영화의 핵심적 미덕은 칼라스의 내면과 그녀가 남긴 눈부신 유산, 오페라 무대의 시각적 융합에 있다. 에드워드 래크만 촬영감독이 담아낸 1977년 파리의 가을 풍경을 포착한 따뜻한 색감과 회상 장면에 삽입된 흑백 필름의 대비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현실과 환상을 횡보하는 여정 역시 제대로 구현된다. 35mm부터 16mm, 슈퍼 8mm 필름과 빈티지 렌즈를 활용한 다양한 화면 질감은 칼라스의 복잡다단한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데 효과적인 도구가 되어준다.

전작들을 통해 여성 캐릭터의 내면을 담아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검증받은 파블로 라라인 감독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실험적 서사구조를 택했다. 특히 파리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일반 관광객들이 칼라스에게 다가와 순식간에 오페라 합창단으로 변모하는 환상 장면은 예술가의 정신세계와 현실의 고립감을 대비시키는 탁월한 시각적 은유라 할 수 있다. 칼라스에게만 보이는 잘생긴 TV 인터뷰어를 통해 자서전적 내러티브를 전개하는 실험적 장치는 처음에는 낯설게 다가올 수 있으나, 내면의 독백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으로 승화된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오페라 자체에 대한 깊은 이해와 경외심에 기반한 절묘한 연출이 백미라 할 수 있다. 칼라스의 전설적 레퍼토리들 -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 속 ‘카스타 디바’(정결한 여신)에서 시작해 푸치니, 도니제티에 이르는 아리아들이 거의 원형 그대로 소개되며, 음표마다 표정을 지닌 듯, 아리아의 마디마다 오페라 작품 속 인물의 절절한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칼라스의 실제 목소리를 안젤리나 졸리의 섬세한 연기와 결합시키는 방식은 오페라를 대중적으로 친근하게 해주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심리 스릴러에 가까운 이 영화에서 음악은 단순한 배경이 아닌, 칼라스의 삶의 열정이자 존재 이유로서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안젤리나 졸리의 연기 또한 주목할 만하다. 그녀는 단순히 칼라스를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깊은 고독과 예술적 완벽주의에 사로잡힌 디바의 복잡한 영혼을 체화했다. 졸리의 깊고 슬픈 눈빛, 미세하게 떨리는 입술은 칼라스의 찬란한 영광과 해결되지 않는 고통을 동시에 전달하며, 그녀의 내면에 자리한 상실감과 예술에 대한 처절한 헌신을 설득력 있게 표현한다. 이루지 못한 사랑도, 결국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 아이에 대한 아쉬움도, 평생 화해하지 못했던 홀어머니와의 관계도 상상 속 인터뷰어와의 대화 속에 담담하게 담겼다.

영화 후반부 고조되는 감정을 따라가며 절정에 다다른 순간, 여전히 복귀를 꿈꾸는 그녀가 더 이상 과거가 아닌 현재의 한순간을 노래하며 자신의 내면을 절절히 쏟아낼 때 푸치니 ‘토스카’의 풍성한 오케스트레이션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 유명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의 도입부가 배경으로 반복된다. 완성도 높게 빈틈없이 들어찬 화성이 정교한 그물처럼 펼쳐지며 환영인지 실재인지 모를 이 모든 것이 정말로 그럴법한 것처럼 현실감을 부여해준다. 칼날처럼 곤두선 채로 신경증적 날선 예민함을 지닌,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한 내면을 지닌 여성 캐릭터를 푸치니보다 잘 그려낸 작곡가는 없었다.

생의 마지막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예술에 살고, 사랑에 살고’(Vissi d’arte, vissi d’amore)를 절절히 부른 직후 그녀는 생을 마감한다. 한 방울씩 떨어지던 이슬비처럼 차오른 감정적 수위에 소나기와 같은 폭우가 쏟아지고, 관객들은 한껏 고조된 상태로 칼라스의 최후를 마주한다. 조르주 만델 가에 자리한 그녀의 자택에서 울려퍼지는 노랫소리를 듣고 모여든 사람들이 약물 부작용으로 인한 환영이 아닌, 진짜였으면 좋겠다 싶어질 만큼, 영화의 끝부분에서 우리는 인간적으로 마리아를 무척이나 응원하게 된다.

이 영화 최후의 일격은 엔딩 타이틀과 함께 흘러나오는 베르디의 ‘가거라, 내 마음이여’(Va pensiero)일 것이다. “가거라, 내 마음이여, 황금 날개를 타고…”(Va, pensiero, sull'ali dorate)로 시작하는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 속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으로 널리 알려진 유명한 곡. 수 세기 동안 분열된 여러 소국으로 존재했던 이탈리아의 국가에 준할 만한 곡, 그리움과 간절함, 현재의 슬픔과 미래를 향한 막연한 희망과 승리에 대한 염원이 모두 담긴 곡, 단순한 멜로디로 구성되어 있지만, 합창으로 목소리가 모이면 결코 단순하지 않은 곡, 이탈리아 전체가 국장급으로 슬퍼한 베르디의 장례식에서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수천 명이 부른 이 곡, 실황 공연으로 오페라에 강한 지휘자들의 무대에서 꽤나 자주 들었던 이 곡을 칼라스의 장난기 어린 특유의 미소가 담긴 실제 영상이 지나간 직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진심으로 바라게 되고야 마는 것이었다. 완전히 망가지고 부서질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목소리를 찾고자 했던, 자칫 음악이 들어오지 못하게 될까 고통스러운 과거로부터 완전히 문을 닫아 버릴 수 없었던, 끝끝내 예술에 살고, 음악에 살았으나 사랑에도 음악에도 살아서는 온전히 가닿지 못했던 그 마음… 육신을 버렸으니 금빛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