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창적인 상상과 표현으로 이름을 알린 만화가와 호러 외길을 걸은 영화감독의 만남. 완벽하다. 4월 16일 개봉한 <사유리>는 기발하기로 소문난 두 예술가의 만남이 빚은 작품으로, 새로운 출발을 기약하며 이사 온 집에서 사유리라는 원혼을 맞닥뜨린 카미키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렇게만 보면 흔한 ‘귀신 들린 집’ 호러일 것 같은데, 영화는 중반부 전복적인 전개로 오직 이 영화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기운을 빚는다. 그렇다, 만화가 오시키리 렌스케의 상상력이 시라이시 코지 감독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감각을 만나면서 <사유리>는 일본 현지 관객뿐만 아니라 한국 관객까지 사로잡고 있다.
2024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한국 관객들을 만났던 오시키리 렌스케 작가와 시라이시 코지 감독은 한국 정식 개봉을 맞아 다시 한번 한국 땅을 밟았다. 영화 <사유리> 뿐만 아니라 원작 「사유리」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 씨네플레이가 오시키리 렌스케 작가와 시라이시 코지 감독을 만나 <사유리>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오시키리 작가님께 먼저 질문드리자면, ‘인간이 이기는 호러’를 보고 싶은 마음에 만화 「사유리」를 그리게 됐다고 하셨었는데요, 그래서 이번 실사영화 <사유리>를 볼 때 감상이 또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오시키리 렌스케(이하 오시키리) 만화랑 달라진다는 점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또 시라이시 (코지) 감독님께서 연출을 한대서 완벽하게 신뢰하는 상태였습니다. 정말 감독님한테 다 맡긴다라는 심정이었고요. 영화를 보면서 시라이시 감독님의 영화다 느낄 수 있었고, 이렇게 협업할 수 있게 돼 정말 영광입니다. 할머니 캐릭터가 시라이시 감독님의 손을 거치면서 특별하게, 인물의 색이 짙게 나온 것 같아서 ‘내가 원작에서 이렇게 하지 못했지’ 하는 아쉬움이 있을 정도입니다.
시라이시 코지(이하 시라이시) 작가님은 이번 영화에 투자도 하셨는데, 일본에서 히트를 쳐서 더 신용을 얻으셨어요.
오시키리 그 정보가 지금 필요한 걸까요? (일동 웃음)

영화화할 당시 많은 부분이 변할 것을 알고 계셨다지만, 혹시 이것만큼은 꼭 지켜줬으면 좋겠다 하는 점도 있었나요?
오시키리 질문에 100% 맞는 답변은 아니지만, 이건 좀 안 해줬으면 좋겠다 싶은 게 있었습니다. 할머니(네기시 토시에)가 손자를 구하는 정말 멋있는 캐릭터잖아요. 그런데 유령을 해치우기 위해 소변을 보고 주문을 외치고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건 좀 너무한 것 같다 하고 말렸어요.

감독님은 만화를 영화로 옮기면서 여러 설정을 넣으셨잖아요. 할머니의 직업이나 태극권, 노리오(미나미데 료카)와 스미다(콘도 하나)의 관계처럼. 이렇게 영화에 알맞은 설정을 찾아냈을 과정은 어땠나요?
시라이시 없어지는 캐릭터를 포함해서 모두 어떻게 보일지를 많이 고민했어요. 한 사람씩 없어져가는 느낌으로 캐릭터들의 보여줘야 하는 포인트를 다 생각했어요. 2시간이다 보니 전부 다 넣을 수는 없어서 취사선택을 하는 것도 고려했고요. 그리고 만화가 아닌 영상이니까 영상으로 보여지는 부분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만화는 추상적인 표현이 많으니까요. 영화는 실제 사람, 실제 공간에서 찍어야 되니 그런 리얼리티를 조금 더 살릴 수 있는 설정과 관계성을 많이 생각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태극권은 원래 회의할 때 오시키리 선생님이 먼저 쿵후로 싸우는 걸 제안했었어요. 하지만 쿵후로 하자니 예산의 빠듯함 등 한계가 있었고 그래서 제가 역으로 태극권은 어떤지 제안 드렸습니다. 태극권은 음과 양의 관계성도 있고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무술이란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래서 역제안을 했는데 오시키리 선생님께서 좋아하셔서 이걸로 하게 됐습니다. 스미다와 노리오의 관계성처럼 디테일한 부분도 노리오가 활약하면서 그 관계성이 클라이맥스로 가는 느낌으로 연결하고자 했습니다.

카미키 가족 배우들의 이미지가 정말 어울렸습니다. 이 배우들을 캐스팅하게 되는 과정이 궁금하고, 작가님께선 이 배우들의 싱크로율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시라이시 노리오, 스미다, 슌(이노마타 레이오)은 오디션으로 뽑았고요. 딱 봤을 때 느낌이 오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이 친구는 노리오다, 스미다다 하는. 슌은 정말 안 죽었으면 좋겠는 그런 친구를 만나게 됐고요. 다른 가족들, 누나(모리타 코코로), 엄마(우라베 후사코), 아빠(키타로), 할아버지(카지와라 젠)도 캐릭터에 맞는 배우들을 찾았습니다. 아무래도 일본에선 관객 수를 의식해서 캐스팅하는 경향이 있긴 한데, 이번엔 정말 순수하게 캐릭터에 맞는 배우들을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할머니는 연기한 네기시 토시에 배우는 오퍼를 드렸는데요, 아무래도 나이도 있으신데 영화에서 말이나 행동에서 하드보일드한 면이 있잖아요. 그래서 걱정했는데 굉장히 흔쾌히 수락해주셨고 의상과 헤어 같은 것도 먼저 제안해주셨어요. ‘재니스 조플린이 할머니가 됐다고 상상했을 때의 그런 비주얼이면 어떻겠냐’ 이런 얘기를 먼저 해주실 정도로 흔쾌히 응해주셨습니다.

오시키리 제가 만화를 그릴 때는 정말 어디서든 볼 수 있을 법한 평범한 가정을 생각하고 그렸습니다. 그래서 이상적인 캐스팅이란 게 없었는데 살아있는 배우들이 카미키 가족을 연기하는 걸 보면서 처음으로 그 영혼을 느꼈습니다. 영화는 정말 대단하구나, 그렇게 느꼈고 또 부럽다고도 느꼈습니다. 특히 슌으로 나온 아이가 제가 그린 만화 속 모습과 정말 비슷하게 생겨서 이런 친구를 어디서 찾았지 생각했습니다.


영화에서 집을 활용한 연출이 정말 좋았습니다. 특히 층계가 많은 것을 이용해서 가족들이 연이어 변고를 당하는 과정이 한 시퀀스로 담긴 것이 인상적이었거든요. 이 부분을 준비하는 과정, 그리고 이 집을 구체화하는 과정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시라이시 처음엔 각본에 쓴 것과 비슷한 집을 찾았습니다.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는데 촬영 기간이 가까워져서 이러다 촬영이 연기되거나 기획이 무산되겠다 싶었어요. 그러던 차에 영화에 나온 집을 찾았습니다. 원래 썼던 것과는 전혀 다른 집이었어요. 가운데가 뚫려있잖아요. 방 구조 같은 것도 조금 달랐어서 (공간이) 재밌긴 했지만 문제가 많았어요. 집 앞 길도 급경사이기도 했고. 그래서 다른 집을 찾아보려 했지만 결국 찾지 못했고 그때까지 찾은 집 중에 가장 개성적인 집이어서 이 구조를 이용하면 재밌지 않을까 생각하며 결정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집에 맞춰 다시 작업을 했고요. 원래 슌이 욕조에서 익사하는 건데 집 구조를 보니 가운데가 뚫려있어서 떨어지는 것밖에 없겠구나 생각해 변경했습니다. 말씀하신 장면은 스피디하게 전개하고 싶었습니다. 전반부에 가족이 모두 죽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스피디한 전개를 위해선 한 번에 다 죽어야겠구나 싶었고, 그게 영화의 포인트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 공간을 활용해야겠다 싶었죠. 계단은 원래 각본에도 있는 거였는데 제가 옛날 작품에서 비슷한 연출을 살려서 해봤습니다. 할머니가 위를 보면서 이상하다고 얘기하는 것 등도 집이 정해지고 수정한 부분이었습니다. 정말 시간이 없었지만 그 집에 맞춰 다시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작가님이 이 만화를 그리실 당시 가위를 눌린 적이 있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혹시 촬영장에서도 이런 기이한 일이 있었는지요.
오시키리 <사유리> 촬영 현장에 견학을 간 적이 있습니다. 촬영이 끝나고 서너 시간 정도 운전해서 집에 가던 길에 휘발유가 점점 떨어지더라고요. 하필 경사진 곳에서 멈췄는데, 경사가 있으니 기름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서 차가 움직이지 않았죠. 그래서 보험을 불렀는데 그때 왼쪽 다리를 삐었어요. 말하다 보니 <사유리> 현장의 얘기가 아니라 그냥 다리를 삔 얘기였네요, 죄송합니다. (일동 웃음)
시라이시 촬영장에선 별일 없었습니다. (웃음)


<사유리>는 호러지만 인간의 생명과 삶에 대한 얘기를 하는 작품이잖아요. 작품 내에서 그런 것에 대해서 여러 가지 조언들이 할머니를 통해 전해지는데, 혹시 그 외에도 두 분이 하나씩 더 추가하고 싶은 그런 조언이나 방법 같은 것이 있으실까요?
시라이시 족발을 먹고 고추를 먹는 거요. 마늘도요. (웃음)
오시키리 영화를 보면 잘 먹고 잘 움직이고 잘 자면서 생명력을 강화해라, 이런 말이 나오잖아요. 사실 그 말이 제 어머니가 저한테 항상 하시던 말씀입니다. 그런데 제가 실생활에서 전혀 지키지 못하고 있으니, 관객분들이 영화를 보시면서 그것에 맞춰서 살아가시길, 저처럼 되지 않으시길 바란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웃음)
작가님의 자전적 작품 중 「피코피코 소년」에서 어머니 모습을 그리기도 하셨는데, 그럼 「사유리」의 할머니에게도 많이 반영된 것일까요?
오시키리 네, 꽤 많이 반영됐습니다. 두 작품을 보시면 아실 수 있을 거예요.
작가님께 이어 질문드리자면, 한국에선 「미스미소우」도 유명합니다. 그 작품은 인간 간의 관계에서 추악한 면이 많이 나오는데, 「사유리」는 반대로 인간의 강한 면을 보여주잖아요. 그래서 작가님이 생각하는 인간상을 간단하게나마 듣고 싶습니다.
오시키리 지금은 굉장히 만족한 상태여서 「미스미소우」를 그릴 때의 감정이나 그런 것이 옅여져있어서 잠시만 생각해보겠습니다…. 약한 존재가 강한 존재에게 역습하는, 되갚아주는 그런 구조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옛날부터 복수극 이런 걸 좋아했고요. 제 자신도 약한 존재이다 보니 그런 모습에 오히려 제 자신을 투영해서 그리는 것도 즐겁게 그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라이시 「미스미소우」는 인간에 대한 절망적인 시점이 강했던 것 같고 「사유리」는 인간에 대한 희망적인 시선이 강했던 것 같아요.
영화 <사유리>에서 노리오가 체력단련을 하는 부분이 저는 <록키>가 떠올랐습니다. 혹시 의도하신 오마주인지 궁금하고, 의도하신 오마주가 있으신지도 궁금합니다.
시라이시 <록키>를 의식하고 만든 장면은 아닌데요, 제가 <록키>를 굉장히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렇게 단련하는 몽타주는 아시아, 특히 쿵후 영화에서 많이 나오잖아요. 그런 것이 제 안에 축적돼서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요. 오마주라고 의식한 것은 아닌데, 일본 심야 드라마 중 <괴담 신미미부쿠로>라는 드라마가 있어요. 거기서 나오는 표현을 하나 사용하긴 했습니다. 여자아이가 문에서 이렇게 고개를 내미는 장면이요.

지난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한국 관객들을 만나셨잖아요. 혹시 기억에 나는 관객이나 기억이 있으실까요?
시라이시 한국인데도 작가님의 만화책을 가져와서 사인을 부탁하는 분들이 많아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유리」는 한국에 전자책으로만 나와서 한 권도 없었지만요.
오시키리 관객은 아니지만 영화제에 자원봉사 스태프분들이 정말 많잖아요. 젊은 스태프분들이 굉장히 생기가 넘치시고 활력이 넘치시고 든든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 젊은이들한테 느낄 수 없는 파워를 느꼈어요. 그래서 그런 부분에 굉장히 감동을 받았습니다. 영어나 일본어를 그렇게 유창하게 말하는 젊은 사람들을 많이 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네요. (일동 웃음) 제가 육감이랄까, 그런 것이 있는데 그때 젊은이들에게 생명력이랄까 그런 것을 보았습니다.
다음 주에 미나미데 료카, 네기시 토시에 배우 두 분도 내한을 합니다. 혹시 한국 방문하는 두 배우에게 추천하고 싶은 음식이 있다면?
시라이시 (한국말로) 순댓국. 일본에서는 잘 없는 음식이라서요. 정말 맛있는 데서 먹으면 두 분도 잘 드시지 않을까 싶어요. (이후 시라이시 감독은 순대를 잘 모르는 오시키리 작가에게 순대와 순댓국, 간, 내장 등을 설명해줬다)
오시키리 감독님과 한국의 족발을 먹었는데요, 정말 맛있었습니다. 너무 맛있어서 도쿄에서도 코리아타운에 가서 족발을 시켜먹었거든요. 근데 여기서만큼 맛있는 게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그걸 먹으러 왔습니다. (웃음) 지금 음식 얘기로 분위기가 가장 좋아져 버렸네요. (일동 웃음)

마지막으로 두 분이 <사유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한국 관객들에게 소개해주세요.
시라이시 저는 정말 좋아하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요. 노리오와 스미다가 복도에서 만나는 장면이 있어요. 그때 문 뒤로 이렇게 타타타탁 하고 스미다가 걸어가는, 정말 지나가는 한 컷인데요. 사실은 그 부분을 정말 좋아합니다. 스미다의 얼굴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움직임 정도만 보이는 컷인데요, 스미다의 캐릭터를 잘 표현한 신이라고 생각하고요. <사유리>에서 가장 영화적인 부분이 아니었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그 등장 장면에 주목해서 꼭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시키리 어렸을 때부터 계속 J호러를 보면서 자랐는데요. 이런 장르에서 인간이 정말 아무것도 못하고 계속 지기만 하는 상황에 정말 분노를 느꼈습니다. <사유리>에서는 중간부터 할머니가 나서서 “노리오!”라고 외치면서 침대를 뒤집는 그 장면이 있는데 거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역습이 시작되잖아요. 그래서 정말 눈물이 나올 정도로 감격했고요. 드디어 내가 이렇게 동경해 왔던, 인간의 역습을 J호러에서 볼 수 있는 날이 왔구나, 내 꿈이 이루어졌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신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울컥하는 감정이 들 정도라서 여러분들도 그 장면을 꼭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장면이야말로 시라이시 감독님의 역량이 묻어난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