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 감독 호나스 트루에바의 영화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가 4월 23일 개봉한다. <어거스트 버진>, <와서 직접 봐봐>를 연출한 호나스 트루에바는 최근 유럽에서 작가주의 감독으로 떠오르며 주목받고 있다. 이번 작품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는 제77회 칸영화제 감독주간에서 ‘유럽 최고 영화상’을 받고, ‘카이에 뒤 시네마’가 꼽은 2024 올해의 영화 10편에 선정되면서 이미 해외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이다. <이제 다시 시작하려고 해>(이하 <이다시>)는 14년을 사귄 ‘레전드 커플’ 알레와 알렉스가 헤어지기로 결심하고 이별을 기념하는 파티를 계획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다시>는 철학자 쇠렌 키에르케고르의 철학적 개념 ‘반복’을 유쾌하게 풀어내고, 에릭 로메르 감독을 비롯해 잉마르 베리만,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등 거장 감독에 대한 오마주를 담은 영화적 실험을 대담하게 시도한다.

14년 동안 만난 오랜 연인 알레(잇사소 아라나)와 알렉스(비토 산츠)는 이별을 앞두고 있다. 두 남녀는 알레의 아버지가 말한 ‘이론’(그들은 이것을 ‘알레한드라 아버지 이론’이라 부른다)에 따라 만남이 아니라 헤어짐을 기념하기 위한 이별 파티를 열기로 한다. 그들은 상실감과 이별의 슬픔 없이 친구와 가족에게 그 소식을 반복해서 알리며, 이별 파티를 차근차근히 준비한다. 한편, 영화감독인 알레는 그들의 이별 파티 과정을 자기 영화로 만든다. 알레의 영화는 편집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그들의 이별 파티 계획도 문제없이 진행되어 간다.
‘어떻게 자기 사랑의 충실성을
지속적으로 지켜갈 수 있을까?’

호나스 트루에바 감독은 철학자 쇠렌 키에르케고르의 ‘반복’ 개념을 영화 속에서 전면적으로 드러낸다. 키에르케고르는 파혼을 경험한 그의 실제 삶을 반영해 책 「반복」을 쓴다. 그는 약혼녀 레기나 올센과의 결혼을 앞두고 돌연 파혼을 선언한다. 우울증,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 그의 내면에서 작동하는 여러 복합적인 이유와 함께 그녀와의 사랑을 평생 충실하게 지켜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는 그녀로부터 매정하게 돌아선다. 소설의 구성을 취하기도 한 그의 철학책 「반복」 속 젊은 시인도 약혼녀와의 관계를 두고 고민한다. 시인은 시간이 지날수록 과거의 기억 속 자신의 사랑을 회상하기 시작한다. 그는 기억 속에서 이상화된 그녀와, 약혼 관계를 유지한다면 계속 마주해야 할 현실의 그녀 사이에서 윤리적 딜레마에 빠진다. 키에르케고르와 「반복」의 시인은 ‘어떻게 자기 사랑의 충실성을 지속적으로 지켜갈 수 있을까?’ 고심했고, 그들의 물음은 영화 <이다시>의 질문이자 시작점이 된다. 다만 <이다시>는 철학적 주제와 질문을 유쾌한 로맨틱 코미디로 풀어낸다.


영화는 알레와 알렉스가 이별을 앞둔 이유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 두 남녀는 큰 감정의 동요 없이 이별에 적응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반복해서 친구와 가족에게 쿨한 모습으로 이별 파티 소식을 전하고, 그들의 반응을 살필 뿐이다. 영화 속에서 반복되는 두 남녀의 행위는 영화의 리듬을 형성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다시>의 반복은 동일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알레와 알렉스는 이별 파티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제각기 다른 반응을 접하고, 되려 둘의 사랑에 대한 주변인들의 굳건한 믿음을 마주하기도 하면서 이별 파티가 서로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잃어간다. 그들이 마주한 주변인들의 말과 표정은 그들의 내면에서 조금씩 감정의 변화를 일으킨다. <이다시>는 정확히 영화의 가운데에서 영화 속 영화의 타이틀이 등장하면서 다시 시작하는데, 이를 기준으로 영화의 전반부에는 시종 유쾌하고 이별에 덤덤한 두 남녀의 모습을 보여주다가 후반부에서 난데없이 홀로 눈물을 터트리는 알레와 힘들 때마다 찾아가는 술집에서 과음하는 알렉스의 모습을 보여주며 둘의 슬픔을 드러낸다. 두 남녀의 유쾌함은 슬픔과 상실감을 인식하지 못한 데에서 오는 착각, 감정의 시차에서 발생한 오류일 뿐이었다. 또 둘의 반복적인 행위는 동일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닌 이전과의 차이를 만들고 있었다. <이다시>의 반복은 동일한 현상이 똑같은 상태로 다시 나타나고, 동일한 결과를 가져오는 기존 의미의 반복을 넘어선 키에르케고르의 반복을 재현한다.

철학자 플라톤의 상기론을 비판하면서 만들어진 키에르케고르의 반복은 주관적인 “순간의 체험”을 말한다. 플라톤의 상기론은 회상과 절대적으로 관계한다. 플라톤의 “‘(근원) 회상 Anamnese’은 이전에 존재했었지만 지금은 망각되어 있는-그러나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은- 진리를 다시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정항균, 「종교적 예외의 반복에서 미학적 창조의 반복으로」, 카프카 연구 제19집, 2008, p5). 키에르케고르는 그런 플라톤의 회상과 반복을 같은 운동으로 바라보았다. 다만 둘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의 말에 의하면, 회상은 이미 있었던 것을 반복하는 것이니 뒤로 반복하는 것이고, 진정한 반복은 앞으로 회상하는 것이다. 회상은 과거의 기억에 머물게 해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충실성을 잃게 한다. 키에르케고르의 “순간의 체험”으로서의 반복은 머릿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반복해서 이상화하는 회상의 행위가 아닌 그 사람과 함께하는 순간에 몰입하고 체험함으로써 사랑의 충실성을 지켜나간다. 호나스 트루에바는 인물 알렉스의 입을 빌려 키에르케고르의 책 문장을 전한다. “반복의 사랑은 유일하게 행복한 사랑이다. 그것은 기억의 사랑처럼 희망의 초조함이나 발견의 불안한 모험성이 배제되며 기억의 슬픔도 없다. 그 대신 순간의 행복한 안정감이 있다”. 이 장면에서 알레는 키에르케고르의 문장을 세 번 반복해서 읽는 알렉스의 입을 손으로 막는다. 이어서 영화는 대망의 파티 장면에 이른다. 다만 둘의 이별이 아닌 결혼을 기념한 파티에. 알레가 알렉스의 입을 막은 행위는 더 이상 과거로 가는 반복의 행위를 중단하고, 둘의 함께 있는 순간에 충실한 사랑으로 나아가기 위한 행위이다.
현실과 허구의 구분을 무화하는
영화 속 영화

극 중 영화 속 영화가 등장하는 <이다시>는 미장아빔(Mise en abyme, ‘그림 속의 그림’, ‘이야기 속의 이야기’, ‘극중극’처럼 서사의 복합적 의미 효과를 만들어 내는 격자 구조 기법)의 구조를 취한다. 다만 <이다시>의 미장아빔은 영화와 영화 속 영화의 구분을 무너트린다. 알레와 알렉스의 이별 파티 준비 과정은 영화 속 영화의 서사이기도 하다. 또 영화 속 영화의 편집은 영화 <이다시>의 편집과도 이어진다. 극에서 알레가 영화 속 영화의 장면을 와이프로 전환하는 편집은 <이다시>의 편집으로 이어지고, 타이틀과 엔딩 크레딧이 영화가 진행되는 도중에 등장하기도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다시>는 정확히 영화의 가운데에 영화 속 영화의 타이틀이 등장하는데, 이전까지 영화의 타이틀이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것은 영화의 타이틀이기도 하다. 이처럼 <이다시>의 영화와 영화 속 영화는 동일한 것으로 설계되어 있다. 특히 알레의 영화 내부 시사 장면은 영화 속 영화가 곧 이 영화인 것과 동시에 영화 속 인물들의 삶 자체라는 것을 선명히 드러낸다. 알레는 영화 속 영화의 인물과 자신을 혼동하며, 여성 인물에 관한 평가를 자신에게 말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의 영화를 본 친구 역시 두 남녀의 이별 파티를 준비하는 그들의 현실과 영화 속 이야기를 동일한 것으로 바라본다. 알레의 친구는 “다 똑같은 얘기일 텐데”라고 말하며, 영화에 관한 평을 멈추고 그들의 이별 파티에 관한 대화를 나누려 한다. 알레는 자신의 영화이자 삶을 편집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다시>는 좌우반전, 빈번한 점프컷 등의 편집 트릭으로 불연속적인 편집을 보인다. <이다시>의 불균질한 편집은 장 뤽 고다르 감독의 불균질한 편집 미학을 이어받는다. 하지만 고다르의 불균질한 편집은 소격효과로 작용한 반면, <이다시>의 불균질한 편집은 영화 속 영화의 편집으로 간주되어 결과적으로 영화와 영화 속 영화의 동일성을 더 공고히 하는 것으로 작용한다. 호나스 트루에바는 고다르의 편집 방식과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 미학을 함께 자신의 영화 속에서 녹여내며 대담한 형식 실험을 이어간다.


영화와 영화 속 영화의 구분을 무화하는 <이다시>의 미장아빔은 영화 밖 현실까지 스며들게 한다. 이는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허물었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유명한 영화감독을 사칭한 한 남자의 실제 이야기를 재구성한 키아로스타미의 영화 <클로즈 업>에서는 실제 사건의 당사자가 극 중에서 자신을 연기한다. 또 <클로즈 업>의 감독인 키아로스타미가 극 중에서 자신을 연기하고, 영화 속에서 영화의 재판 장면을 촬영하며 영화 속 영화로 만든다. 키아로스타미에게 있어 현실과 영화의 구분은 무의미하며, 그에게 영화는 또 하나의 현실이었다. <이다시>도 키아로스타미의 영화처럼 현실을 개입시킨다. 트루에바는 어린 시절 극 중 알레의 아버지이자 실제 자신의 아버지이기도 한 배우 페르난도 트루에바에게서 이별을 기념하는 것에 대해 들었던 그의 생각을 영화의 시작점으로 만들고, 배우 잇사소 아라나와 비토 산츠의 과거 영상을 삽입해 영화 밖 현실의 층위를 더한다. <이다시>의 미장아빔은 영화를 조작된 매체가 아닌 현실의 단면으로 그려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