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피아니스트 테노리우 주니어는 브라질 음악 동료들과 함께 이곳으로 공연 여행을 왔다가 새벽녘 호텔에서 잠깐 외출한 뒤 사라져 버린다. 현재까지 실종자로 남아 있는 테노리우. 누구도 그의 행방을 모른다. 실종을 추적해온 몇몇 지인들은 음악가의 죽음을 확신하지만, 그의 시체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어디로 갔는가, 그가 만약 죽었다면 누가 이 피아노 연주자를 쐈는가?

1950~70년대 중남미는 혼란스러웠다. 정치적으로는 부정과 부패로 얼룩졌던 독재 정권의 박해가, 경제적으로는 식민지 시기부터 이어진 열강의 착취가 삶을 옥죄었다. 미국의 비호와 지원을 받은 중남미 우익 독재 정권들은 좌파 척결을 공동의 목표로 삼아 '콘도르 작전'을 펼쳤고, 브라질 국민이 아르헨티나에서 실종되고 납치된 반정부 인사의 어린아이가 칠레에서 베네수엘라인에게 목격되는, 국경을 초월한 백색 테러 연계망을 구축했다. 그 거대한 네트워크 안에서 반정부 인사들과 무고한 시민들은 산 채로 혹은 죽은 채로 태평양으로, 대서양으로, 라플라타 강, 그리고 거대한 구덩이 안으로 사라져 갔다

개개인의 이성과 자유분방함보다는 선전선동의 도구만을 원하는 독재 정권의 예술가 탄압은 필연이었다. 칠레에서는 불의에 저항하고 민중의 목소리를 담아내며 '누에바 칸시온'('새로운 노래'라는 뜻으로 음악 장르인 동시에 음악 운동)을 이끈 빅토르 하라가 1973년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처형됐고, 혹독한 군부독재를 경험했던 전 세계 민중들에게 양심과 정의 희망의 상징이 된 가수 메르세데스 소사는 1979년 자신의 조국 아르헨티나에서 추방되는 아픔을 겪었다. 1964년부터 1985년까지 20년간 군부 독재가 이어진 브라질도 예외가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해되고 실종됐다. 그렇게 사라진 이름 중에 테노리오 주니어도 있었다.

우리에겐 낯선 이름이지만, 보사노바 초창기 대가들과 함께 공연하던 작곡가이자 피아노 연주자 테노리오 주니어를 따라가다 보면 브라질에서 태동한 보사노바 재즈 선율에 자연스레 올라타게 된다. 영화는 '걸 프롬 이파네마', '웨이브' 등을 작곡한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과 '걸 프롬 이파네마'의 작사가인 시인 비니시우스의 만남, 엘라 피츠제럴드가 리우 공연을 마치자마자 하이힐을 벗어던진 채 지역 클럽으로 달려가 무명 연주자들의 보사노바 공연에 합류하는 순간 등 대중음악사에 길이 빛날 역사적 순간을 재현한다. 보사노바라는 장르를 브라질을 넘어 전 세계에 알린 음반 ‘Getz/Gilberto’의 낯익은 LP가 영화 속 주인공의 뉴욕 아파트 거실 탁자에 모습을 드러낼 땐 익숙한 곡조가 절로 재생된다. 감각적인 아트 포스터를 보는 것처럼 과거의 보사노바 신을 그린 연출은 보사노바가 당시 남미를 넘어 전 세계 여기저기에 충격을 준 최신 유행이었다는 점을 관객들이 감각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브라질이 세계 음악의 중심지로 여겨졌던 황금기였고, 보사노바는 대서양 건너 동시대 유행했던 영화계의 누벨바그 맥락의 새로운 음악 장르로 사랑받았다(포르투갈어인 보사노바와 프랑스어인 누벨바그는 동의어로 모두 '새로운 물결'을 뜻한다).

그렇게 보사노바는 '브라질 최고의 수출품'이 된다. 뮤지션들은 브라질을 넘어 대중음악의 본고장 미국에 진출하며 큰 인기를 끈다. 하지만 각광받던 테노리오 주니어의 음악 활동은 30년 전에 멈췄고, 행방 또한 묘연했다. 영화는 뉴욕의 음악 저널리스트 제프 해리스(가공인물이자 배우 제프 골드블룸이 성우로 참여)가 우연히 이 브라질 천재 피아니스트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가 1976년 아르헨티나 투어 중 갑자기 사라졌다는 기록을 접하며 그의 삶과 행적을 따라가는 형식을 취한다. 추적은 취재로 시작된다. 칼럼니스트는 지인들의 협조로 생전 음악가를 알던 이들과 인터뷰를 진행한다. 브라질에서 당대 테노리우와 활동했던 뮤지션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 미국의 전설적인 보사노바, 재즈 명장들이 기꺼이 제프의 인터뷰 요청에 응한다. 저널리스트는 죽은 음악가의 아내와 연인, 그의 자녀와 목격자도 만나며 각기 다른 기억과 증언을 쌓아간다. 엇갈리는 기억 속 제프는 한 가지 진실에 이르게 되는데, 그건 남미 전 지역에 민주주의가 사라지며, 테노리우도, 보사노바의 황금기도 함께 사라졌다는 것이다.

인터뷰에 응한 이들은 테노리오 주니어가 조금도 '정치적 사람'이 아니었다고 입을 모은다. 그저 새로운 음악으로 동시대 역동하는 예술의 물결에 동참하고자 했던 음악가의 예술혼을 가졌던 테노리우는 그의 삶이 아니라 그의 죽음으로 '정치적'이 되었다. 예술가가 가진 즉흥성 자체가 권력에 대한 위협으로 판단돼 그를 체포했다는 아르헨티나 독재 정부 하에서 복무했던 퇴역 장교의 고백에 이르면, 한 인간의 이유 없는 죽음에, 동시대를 살아간 수많은 희생자들의 덧없는 죽음에 분노와 절망이 덮쳐온다. 피아노 연주자를 쏜 '그들'은 다름 아닌 독재이자 국가 폭력이며, 우익 정권 연합이자 그들 배후에 자리한 미국이었다는, 새로울 것 없는 진실의 무게는 여전히 무겁고 현재진행형이라 서늘하다.

페르난도 트루에바 감독은 영화 속 저널리스트처럼 2004년 우연히 테노리우 주니어의 피아노 연주를 접하게 된다. 이후 이 음악가의 1975년 이후 행보가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에 호기심을 느껴 직접 조사를 시작했고,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총 2년에 걸쳐 약 150명을 인터뷰한 끝에 테노리우가 아르헨티나에서 실종되었으나 당시 군부 독재 정권으로 인해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다큐멘터리 제작을 구상했지만 "단순히 테노리우 주니어를 회상하는 대신, 그를 살아있는 존재로, 연주하고 녹음하는 순간까지 보여주고 싶었"던 감독은 오랜 숙고 끝에 다큐 대신 애니메이션 제작을 결심한다. 그렇게 트루에바 감독은 쿠바 재즈 뮤지션의 로드 무비를 그린 애니메이션 <치코와 리타>(2012)를 공동 연출한 하비에르 마리스칼 감독과 다시 한번 손을 잡고 영화를 완성하게 된다.
영화를 보기 전, 보사노바 음악을 듣는 것을 추천한다. 테노라우가 남긴 단 한 장의 앨범 ‘Nebulosa’를 듣는 것도 좋겠다. 그저 영혼을 충만하게 만들고, 따뜻한 위로를 주던 보사노바의 부드러운 선율이 돌연 처연히 솟아나는 남미인들의 슬픔에 낮게 엎드려 울려 퍼진다. 주앙 지우베르트, 카에타누 벨로주, 지우베르트 지우,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 등 브라질의 유명 보사노바 뮤지션들의 음악이 사운드트랙에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