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어로영화를 많이 본 입장에서, 영화를 보면 표현할 방법이 쉽게 떠오르곤 한다. 그런데 <썬더볼츠*>를 보고는 한참을 골똘했다. 이 영화를 전할 말은 많은데, 그것을 ‘히어로영화’라는 카테고리에서 찾자면 쉽게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의 스핀오프, 혹은 ‘옆 동네 자살특공대’에 필적할 B급 팀업 무비 정도로 생각했지만 <썬더볼츠*>는 예상보다 더 야심찬 영화였다. MCU의 새로운 국면을 천명하는 동시에, 영웅이 되려다 실패하거나 머뭇거리는 ‘우리’를 겨냥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MCU를 따라온 사람들에겐 이미 친숙한 얼굴들이지만, 한 번도 주역이었던 적이 없는 인물들이 <썬더볼츠*>를 채운다. 친구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반스)가 떠난 후에도 여전히 현대에 남아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있는 ‘윈터 솔져’ 버키 반즈(세바스찬 스탠), ‘블랙 위도우’ 나탸샤 로마노프(스칼렛 요한슨)가 떠나고 각자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동생 옐레나 벨로바(플로렌스 퓨)와 양아버지 ‘레드 가디언’ 알렉세이 쇼스타코프(데이비드 하버), 명예로운 타이틀을 얻었다가 불명예스럽게 퇴역한 ‘U.S. 에이전트’ 존 워커(와이어트 러셀), 고통받는 삶 속에서 악한이 되고 말았던 ‘고스트’ 에이바 스타(해나 존-케이먼)와 ‘태스크마스터’ 안토티아 드레이코프(올가 쿠릴렌코). 이들은 위법행위 논란으로 해임 위기에 놓인 발렌티나 알레그라 드 폰테인(줄리아 루이스 드라이퍼스)와 연관돼 사건에 휘말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밥(루이스 풀먼)이란 새로운 얼굴이 나타나며 발렌티나의 진의가 드러난다.

최근 MCU가 많이 정상화됐다는 평가를 받는 만큼 <썬더볼츠*>는 액션 장면의 시원시원함을 놓치지 않았다. 초인적인 영웅이 없다보니 캐릭터들 간의 맨몸 액션들이 충분한 타격감을 담아낸다. 블랙 위도우 특유의 아크로바틱한 움직임의 옐레나와 군인 출신답게 절도 있는 움직임의 U.S. 에이전트, 투박하지만 그 괴력은 확실한 레드 가디언, 투명화로 허를 찌르는 고스트, 그리고 명실상부 이번 영화에서 최고 명장면을 만드는 윈터 솔져까지. 스케일은 요즘 MCU 내에서 작은 편이지만 그만큼 아날로그 액션을 맛을 즐기기엔 충분하다. 물론 메인 빌런의 강력함이 드러나는 클라이맥스 직전 장면 또한 그야말로 ‘급이 다른’ 존재의 위압감을 완벽하게 담아낸다.
<썬더볼츠*>가 풍기는 음모론적인 분위기와 다르게, 이야기는 어렵지 않다. 영화는 의도를 숨겨 서스펜스를 자아내기보다 이야기의 전체적인 그림을 먼저 설명함으로써 관객들이 인물들의 케미스트리나 현 상황의 긴박함을 최대한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한다. 때문에 세계관의 ‘블랙요원’ 캐릭터들이 뭉쳐서 펼치는 첩보전 등을 기대하면 다소 아쉬울 수 있다. 대신 영화는 그 간결한 구조를 이끌고 가기 위해 캐릭터들의 매력을 최대한 끌어올린다.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한 인물들을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밀어 넣어 서로 협력할 수밖에 없는 과정으로 자연스럽게 전개하는데, 그 과정에서 기존 MCU 영화와는 사뭇 다른 <썬더볼츠*>만의 아우라가 쌓인다. 특히 캐릭터가 많은 만큼 화자가 아닌 청자의 리액션에서 웃음을 이끌어낸 것이 인상적이다.
이런 <썬더볼츠*>만의 매력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착하게 살진 않았지만 속은 착한 사람들이 처음 만났을 때. 자신만의 방법으로 살았던 인물들이 서로 틱틱거리고 투덜거리지만, 그러다가도 은근슬쩍 좋은 면들을 서로 발견할 때. 그래서 점점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기 시작할 때. 그 지점에서 발생하는 감정과 웃음, 분위기는 기본적으로 선하고 강한 인간이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되는 히어로영화의 기본 기조와 상이해 이 영화만의 장점이 된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막무가내로 ‘우리는 다른 히어로영화와 달라!’라고 주장하는 데 열중하는 건 아니다. <썬더볼츠*>는 발렌티나에게 세상에 도움이 되는 임무를 받아 일하고 있는 옐레나가 그럼에도 ‘공허감’을 느끼고 있다는 내레이션으로 막을 열며 이 영화가 다른 히어로영화와는 다르다고 깔고 간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뭔가 큰일을 하겠다는 포부를 찬, 혹은 어떤 일에도 선의가 꺾이지 않는, 혹은 강력한 스스로를 세상에 내던지는 그런 ‘영웅담’이 아닌 것을 처음부터 우회적으로나마 드러내는 것이다. 영화 내내 언급되는 ‘공허감’이란 감각, 누군가의 죽음에 “우리의 미래네”라고 자조하는 옐레나, “세상엔 나쁜 놈과 더 나쁜 놈만 있을 뿐”이란 발렌티나의 대사에서 <썬더볼츠*>의 냉소적이고 차가운 세계관과 스스로는 착실하게 살았지만 성과 하나 없는 인물들의 단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 무엇 하나 제대로 풀리지 않는 세상과 인생. <썬더볼츠*>가 그저 이 세계를 호명하는 것에서 그쳤다면 불쾌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인류를 구한 영웅들이 있는 MCU 세계로 어쭙잖은 풍자를 하려고 한 것이니까. 그러나 <썬더볼츠*>가 주목하는 부분은 그런 세상과 그런 인생에도 묵묵히 살아가는 우리들이다. 물론 영화 속 ‘루저’들도 일반인을 한참 상회하는 능력자들이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고충은 우리와 같다. 알아주지 않는 세상, 떠나간 사람들, 도통 해답이 보이지 않는 위기. 그런 환경에서 이들의 연대는 크나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함이 아니라 버텨내기 위한 것이 된다. 우리가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곁에 있어준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하는 것처럼. 비록 영웅(어벤져스)이 없는 세상이더라도 옐레나가 꿈꿨던 “실수했을 때 의지가 되는 사람”은 될 수 있으니까.

그런 메시지를 취한 만큼 일장일단이 있다. 일단 히어로영화 특유의 고양감은 사실 없는 편이고, 날이 갈수록 커지는 스케일 싸움에서도 밀리며, 무엇보다 ‘마이너 팀업 무비’라는 포인트에서 옆 동네 자살 특공대나 <데드풀과 울버린> 같은 매운맛을 기대한 관객들에겐 무척 생뚱맞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확실히 지친 현대인을 노린 이 감성은 오직 <썬더볼츠*>에서만 느낄 수 있다고 자부한다.
이렇게 ‘안 히어로영화’스러운 <썬더볼츠*>는 놀랍게도 일회성 영화가 아니다.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MCU가 제시하는 ‘새로운’ 지역이다. 앞으로 펼쳐진 MCU에서 이 지형이 얼마나 더 탐색될지는 모르겠다. MCU는 다시 큰 그림을 그리고 있고, 그 과정에서 ‘썬더볼츠’ 멤버들은 다시 뒤안길로 밀려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썬더볼츠>라는 이정표는 이미 찍혔다. 부디 이들의 여정이 조금이나마 조명될 수 있길 내심 기대한다.
4월 30일 개봉한 <썬더볼츠*>는 두 개의 쿠키영상이 포함돼 있다. 메인 크레딧이 지난 후 하나, 모든 크레딧이 올라간 후 하나. 마지막 쿠키영상은 그 분량도 적지 않으니 가급적 두 쿠키 영상 모두 보기를 추천한다. 그리고 이번 영화는 별도로 제작한 아이맥스 카운트다운 영상을 상영하기에 아이맥스로 보는 것도 추천한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