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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JIFF]거장의 마지막 영화부터 운명적 멜로까지, 유별나고 독특한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5 리뷰

성찬얼기자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4일차, 토요일을 시작으로 연이은 연휴에 영화제도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섰다. 쏟아지는 비와 급격히 나빠진 날씨에도 보고픈 영화를 한 편이라도 더 보려는 관객들의 발걸음이 바쁘다. 굿즈샵이 오픈하기도 전부터 늘어선 줄은 전주국제영화제의 인기를 단번에 보여준다. 마음은 모든 영화를 다 보고 싶지만, 몸은 하나인 현실. 많은 영화를 보고 작품을 선정하고 싶은 필자지만, 이 인기에 영화 중 일부만 간신히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중 상영이 아직 남은 5편을 소개한다.


<비팅 하츠>

 

5월 4일 18:30

5월 6일 18:00

〈〉
〈비팅 하츠〉

 

‘요즘도 이런 영화를 만들어?’의 포지티브(positive) 케이스. 프랑스-벨기에영화 <비팅 하츠>는 147분 동안 평생 서로를 잊지 못하는 운명적 사랑을 그린다. 십 대 시절 첫 만남부터 서로에게 반한 재키와 클로테르. 홀아버지 밑에서 모범적인 삶을 살아가려는 재키와 학교도 때려치우고 제멋대로 살고 있는 클로테르는 첫눈에 서로에게 이끌린다. 그러다 클로테르가 지역을 꽉 잡고 있는 조직에 얽매이며 이별을 맞이한다. 문제는 두 사람의 사랑은 그 끝을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은 채 끝이 맞았고, 10년 뒤 재회한 둘은 서로 가까이하면 안 되는 상황에도 그 마음을 놓지 못한다.

 

이 영화는 아주 뜨거운 멜로인 동시에 누아르다. 클로테르가 범죄 조직에 발을 담그면서 그려지는 광경은 <대부>, <예언자> 등을 연상시켜 갱스터무비와 케이퍼무비의 쾌감을 안겨준다. 그러나 이 영화의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필연적 사랑의 환상성일 것이다. 서로에게 호감을 느꼈다는 인정하는 순간, 재키와 클로테르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 모두가 사라진 학교를 뛰어다니며 춤을 추는 환상. 이 장면은 조금은 계산적이고 이성적인 현대식 사랑이 잊고 있는 열정을 되살린다. 카메라는 이에 화답하듯 횡으로 무한한 확장하는가 하면, 하늘과 땅을 전복시켜 이 위태로운 세계를 시각화하는 등 그 역동성을 최대한 시각화한다. 무척 ‘상업영화’적인 작품이므로 전주국제영화제가 아직도 어렵게 느껴지는 관객에게 추천한다.


<자크 드미, 낭만과 현실 사이>

5월 4일 14:00

5월 6일 20:30

〈자크 드미, 낭만과 현실 사이〉
〈자크 드미, 낭만과 현실 사이〉

 

제목에서 보이듯, 프랑스 영화감독 자크 드미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다. 1950년대 프랑스 영화계가 일으킨 ‘누벨바그’ 사조의 한 명이지만, 특유의 영상미로 현대의 상업영화에도 큰 영향력을 끼쳤다. 이 다큐멘터리는 자크 드미가 생애와 작품별 제작 과정을 다룬다. 자크 드미의 자녀들이 자료를 제공하고 프로듀서로 참여해 그의 생애 전체를 들여다보는 연대기로 해당 작품이 완성됐다. 이 다큐멘터리에선 자크 드미가 감독으로 본격적으로 데뷔하기 전, 일종의 습작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성장기 시절 작품(심지어 필름에 직접 그림을 그린 애니메이션까지도)을 만날 수 있다.

 

‘나는 현실을 등지는 사람’ ‘문제가 생기면 현실에서 도망친다’는 본인의 표현과 달리 영화에서만큼은 현실과 판타지를 중첩시킨 자크 드미. 다큐멘터리 사료 대부분이 자크 드미의 인터뷰, TV 출연 장면, 촬영 현장 스틸, 그의 영화에 대한 비평적 반응 등이 대부분으로 자크 드미를 훑어보기 좋다. 제목을 보고 ‘자크 드미를 비평, 재해석한 다큐멘터리’로 착각했다면 몰라도, 그의 영화관과 작품 비하인드를 들을 수 있어 감흥이 생긴다. 다만 그만큼 극적인 구성이 아니기에 그의 작품을 전혀 모른다면, 관람을 미뤄두길 추천한다.


<뜬소문>

5월 4일 17:00

5월 6일 21:00

 

〈뜬소문〉
〈뜬소문〉

 

“자문을 준 G7 관계자들에게 감사하다”는 안내문에 속지 말자. 이 영화, 완전히 허구의 설정에 풍자를 잔뜩 끼얹은 코미디영화다.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일본 7개국 정상들이 모인 G7 정상회담. '세계적인 현 위기'에 대한 잠정적 성명문을 준비하던 도중, 그들만 남겨두고 모두가 사라졌다. 이런 극단적인 설정을 중심으로 국가 지도자들의 우당탕탕 탈출기가 이어진다.

 

굳이 국가 지도자들을 등장인물로 삼았으니, 뭔가 큰 그림이 숨어있겠거니 싶다. 그러나 에번 존슨, 게일런 존슨, 가이 매딘 세 감독은 그런 관객들의 상상을 비웃듯 “만일 우리가 각 나라를 상징하는 것이라면 이건 무슨 의미일까요” “아무 의미 없어요”라는 프랑스 총리와 영국 총리의 대사를 넣었다. 그것조차 ‘연막작전’일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영화는 풍자라는 포차를 떼고 봐도 웃음이 터진다. "그때 이후 많은 말은 못했네요" "그날 일은 잊어버려요"라는 굉장히 치정극스러운 대사부터 이번 정상회담의 주제가 '후회'라고 하니 10대 시절 무솔리니 복장으로 파티에 참석한 게 후회라고 고백하는 모습까지. 작중 공감을 잘하는 한국관객들에겐 다소 낯설겠지만, 블랙코미디를 즐기는 관객이라면 즐길 만하다. 케이트 블란쳇을 중심으로 세계 지도자 7인 배우들의 연기 케미스트리도 장점이다.


<시나리오> + <영화 <시나리오> 발표>

5월 4일 21:00

 

〈시나리오〉
〈시나리오〉

 

‘그’ 장 뤽 고다르의 유작, <시나리오>와 그것을 준비하던 과정을 설명하는 그의 모습을 담은 <영화 <시나리오> 발표>이다. 두 영화는 일종의 예고편과 본편인데, 실제로는 완전히 다른 두 편의 영화로도 보인다. 왜냐하면 <영화 <시나리오> 발표>에서 설명하는 작품과 실제 완성된 <시나리오>는 그 구성부터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장 뤽 고다르가 세상을 떠나기 전날까지 <시나리오> 작업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이 뒤바뀌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알려졌다시피 그는 스위스에서 자발적 안락사를 택했는데, 그 전날까지도 작업을 했다는 것에서 이 노장의 열정을 읽을 수 있다)

 

사실 이 영화는 말 그대로 설명할 수가 없는데, 왜냐하면 장 뤽 고다르가 그토록 열과 성을 다한 부분은 ‘이미지를 어떻게 조합할 것인가’였기 때문이다. 장 뤽 고다르는 <시나리오>를 (마지 그의 전작이자 특별황금종려상 수상작 <이미지 북> 제목처럼) 책자로 만들어 이를 녹화하는 방식으로 제작했는데, “영상을 이으면 서사로서 받아들이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그는 관객이 이를 서사가 아닌 이미지, 즉 영상 언어로 받아들이기를 원하며 이 같은 시도를 했고 때문에 영화는 결코 언어로 담아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평생 그의 작품이 그랬듯 장 콕토, 존 카사베츠, <폭군 이반> 등 다양한 영화는 기본이고 사진발명가 니엡스, 등 예술문화 분야의 다양한 모티브를 차용했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시나리오>의 마지막 장면 때문에라도 오래도록 기억하게 될 것이다.


 

<모래시계 표지판 아래 요양소>

5월 4일 20:30

5월 8일 21:30

〈모래시계 표지판 아래 요양소〉
〈모래시계 표지판 아래 요양소〉

 

19년. 퀘이 형제가 <모래시계 표지판 아래 요양소>를 완성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지진 속의 피아노 조율사> 이후 첫 장편으로, 폴란드 작가 브루노 슐츠의 소설집 「모래시계 요양원」을 토대로 실사와 퍼펫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작품을 완성했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아버지가 입원한 요양원에 찾아온 아들 요제프의 이야기인데, 행상인이 파는 물품에 담긴 ‘망막의 마지막 이미지’를 소개하는 액자식 구성을 택했다. 요제프의 이야기에서 ‘극장’이란 공간이 등장해 요제프가 당사자이자 무대 위 인물이 되듯, 관객 또한 이 이야기의 체현자이자 관람자가 된다.

 

요제프는 아버지의 요양원에 발을 딛자마자 괴이한 현상, 반복되는 듯한 시간을 체험하기 시작한다. 반복적이고, 기괴하며, 실사와 혼재된 세계는 극중 박사의 말에 따르면 이 요양원에선 '간격이 반복되'기 때문이라고. 퀘이 형제는 그런 식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적 양자세계를 형용화하며, 동시에 준비된 죽음에 맞서려는 처절한 몸부림조차 예정돼있다는 비관주의적 시선을 완성한다.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퀘이 형제의 단편선을 상영하고 특별 전시를 열어 퀘이 형제를 한국 관객들에게 소개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퀘이 형제의 신작을 만나는 것, 좋은 기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