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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파과〉 민규동 감독 “마지막 장면 촬영할 때…저도 모르게 오열”

추아영기자
〈파과〉 민규동 감독 (사진 제공 = NEW)
〈파과〉 민규동 감독 (사진 제공 = NEW)

제75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면서 기대를 불러모았던 영화 <파과>가 4월 30일 개봉했다. 민규동 감독이 동명의 원작 소설을 각색한 영화 <파과>는 60대 여성 킬러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관객에게 새로운 액션을 선보일 예정이다. 민규동 감독은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부터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내 아내의 모든 것>, 역사를 소재로 한 <허스토리>까지 공포, 로맨스, 코미디, 드라마 등 장르를 넘나들며 섬세한 연출을 입증해 왔다. 전형적인 장르 연출을 탈피하는 본인만의 스타일을 확립한 민규동은 이번에도 유례없는 캐릭터 설정과 독창적인 액션을 중심으로 인간 내면을 밀도 있게 그려낸 영화 <파과>를 선보인다. 민규동 감독을 만나 이번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파과〉
〈파과〉

먼저 원작 소설 「파과」를 처음 읽으셨을 때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원작의 어떤 부분에 끌려서 영화화하시게 된 건지 궁금합니다.

소설을 읽었을 때는 영상화하기 쉽지 않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어요. 저는 그 소설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에 소설을 보고, 그 작품을 영화로 만들면 뭔가 ‘해저에서 보물을 건져 올리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반가워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동시에 만들어지지 못할 거란 생각이 있었어요. 왜냐하면 한국 영화가 점점 어려워지는 암흑기이기도 했고, 60대 여성 노인인 주인공도 잘 없지만, 액션 영화에서 이런 것(여성 노인의 액션)이 펼쳐졌을 때 사람들이 믿을까, 과연 기대를 할까 싶었어요. 액션 영화를 볼 때, 남자 배우들도 액션이 약하다, 타격감이 약하다는 평을 많이 받잖아요. 하물며 저희 영화는 적은 예산이어서 끝없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을 했던 것 같아요.

원작을 읽고 나서 시간이 지나면 점점 읽었던 내용이 휘발되잖아요. 그럼에도 남는 게 있을 텐데, 그 남는 것들이 영화의 정수로 계속 남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 봤을 때 느꼈던 서늘한 인상과 긴 여운을 관객에게 전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제75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하셨잖아요. 그때 이후에 더 후반 작업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베를린 버전과 한국 개봉 버전이 같은 건가요?

베를린에 작년 10월 말에 출품했어요. 촬영 끝나고 처음 완성한 첫 번째 버전이 베를린에 갔어요. 그래서 2월에 베를린에서 상영할 때까지 그 사이에 국내 개봉용 버전을 계속 편집하고 모니터링을 거치고 압축 과정을 거치고 있었고요. 또 베를린 상영 전에 심의 신청을 먼저 했었어요. 근데 청소년 관람 불가 판정을 받으면서 추가적인 편집을 하고, 더 압축했어요. 그래서 심의 신청했던 버전이 베를린 버전보다도 훨씬 압축된 버전이었어요.

그런데 독일 관객들의 반응도 궁금하긴 했지만, 그 반응을 기준으로 해서 영화를 고치거나 다시 설계를 하지는 않았어요. 저는 한국 관객을 기준으로 한국적 뉘앙스가 제일 중요했어요. 다만 첫 번째 베를린 영화제의 풀 버전은 은퇴와 노화에 관한 드라마이자 장 피에르 멜빌 감독의 알랭 들롱을 보는 듯한 느낌이 나도록 만들어져 있었어요. 실존주의적 영웅의 고립감 이런 것들이 더 잘 표현돼 있고, 국내 개봉 버전은 조각(이혜영)과 투우(김성철)의 관계성, 둘의 대립, 갈등이 더 잘 살아 있다는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파과〉  조각(이혜영)
〈파과〉 조각(이혜영)

전작 <허스토리>도 여성 중심의 이야기였고, 이번 작품도 여성이면서도 노인이라는 설정이 더해진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작품인데, 연이어서 여성 서사의 영화를 그리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중간에 제가 <간호중>이라는 간병로봇 이야기를 다루긴 했었는데, 그것도 여성 서사이기는 하죠. 그렇지만 제가 어떤 영화를 시작할 때, 여성 이야기인지 남성 이야기인지 젠더를 가르고 시작하지는 않아요. 하려는 이야기에 집중하다 보면 여성인지 남성인지는 나중에 자연스럽게 정해지는 것 같아요.

<파과> 같은 경우로 보자면, 사실 킬러 영화도 1930년대부터 굉장히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남성들의 전유물이긴 했죠. 그래서 여성 킬러 영화를 보고 싶은데 보지 못했던 우리의 갈망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는 것이 저에게는 새로운 영화를 만들기 위한 동력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근데 동시에 만들어지지 않은 이유가 있다는 것도 다시 느끼게 됐어요. 제일 어려웠던 지점은 폭력을 전시하고 스펙터클로 도파민을 가져오는 그런 팝콘무비 이상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여성 인물로도 액션 누아르, 이 하드보일드의 세계 안에서 영화의 주제와 드라마를 전달할 수 있을까. 그 밸런스를 맞추는 게 큰 고민이었던 것 같아요.

 

〈파과〉
〈파과〉

여성과 노인이 중첩된 인물로 주인공이 구성되었지만, 액션 영화로서 액션을 잘 선보여야 하기도 하잖아요. 이런 모순적인 것을 어떻게 풀어 가려고 했는지도 궁금합니다.

조각이 여성이면서 노인인데 가족도 없고 일상 자체가 아예 없잖아요. 16세에 첫 살인을 하고 정상적인 인간으로서의 삶은 멈춰버린, 성장하지 못했으면서도 차가운 어른으로서의 삶을 살았죠. 그런 조각이 강 선생(연우진)이라는 전혀 이질적인 인물, 본인도 아내를 떠나보낸 무력한 사람으로서의 인생을 살면서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냥 제 일을 할래요”라고 말할 수 있는 담대함을 가진 이상한 인물과 조우하게 되죠. 저는 그런 강 선생과의 만남 자체도 정말 형용 모순이라고 생각해요.

투우와의 만남은 사실 자신의 카르마잖아요. 평생 딱 한 번 실수했다면 그 실수가 어떤 사람의 인생에 나비 효과를 일으키고, 그 사람을 망가뜨리죠. 그래서 그 사람이 강박적 퇴행을 갖고 복수와 또 인정받고 싶은 정념에 자기 삶을 소진해 버리는 투우라는 인물로 돌아와서 결국 다시 마주하게 되는데, 그때 보게 되는 건 저는 (조각) 자신의 얼굴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조각이라는 인물은 그러니까 도저히 하나로 합쳐지지 않을 것 같은 요리 재료를 두고, 레시피를 만들어서 하나로 만들어야 하는 고민을 하게 했던 것 같아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그런 얘기를 했던 것 같아요. 영화는 다 단순한 문제에 대한 복잡한 답이 아니라 복잡한 문제에 대한 단순한 답이어야 된다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저희는 복잡한 이 인물의 딜레마와 모순과 부조리를 가장 단순하게 삶을 예찬하는 것으로 만들어 보려고 애썼어요.

 

〈파과〉 민규동 감독 (사진 제공 = NEW)
〈파과〉 민규동 감독 (사진 제공 = NEW)

원작보다 투우의 감정선을 더 많이 드러낸 것 같은데요. 그렇게 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제가 COVID-19 시기를 거치면서 시나리오를 여러 버전으로 만들어서 작업했는데요. 처음에는 과거가 아예 없는 버전이 있었고, 그리고 조각의 일인칭 시점의 버전, 강 선생이 없는 버전 등이 있었어요. 결국 저희가 돌아온 버전은 조각가 투우의 감정들이 교환되는 액션 영화, 그러니까 상업 영화로서의 정체성을 더 정확히 하고 장르에 충실한 이야기로서 관객을 만나기로 결심한 거예요. 영화의 운명이 감독이 이렇게 해볼까 하면 이렇게 만들어지고, 저렇게 해볼까 하면 저렇게 만들어지는 시스템이 아니고, 감독도 선택을 받고 그게 관객의 집단 무의식이든 자본의 취향이든 영향을 받죠. 결국 만들어지는 순간에는 그런 형태가 돼요.

김성철 배우가 이혜영 배우에게 전혀 안 밀리고 투우를 잘 소화한 것 같아요. 감독님은 함께 작업하시면서 김성철 배우에게 놀랐던 순간이나 만족스러운 지점이 있을까요?

인물에 대해서 깊이 있게 이해하려고 굉장한 노력을 하더라고요. 시나리오를 여러 번 읽기도 하고, 저한테 질문도 많이 했어요. 그리고 사실 모든 촬영의 중심은 조각이고 이혜영이었기 때문에 그 촬영을 다 하고 시간이 남으면 김성철 배우의 장면을 촬영했어요. 사실 선배님을 먼저 배려했기 때문에 상처도 많았을 것 같아요. 근데 그럴 때도 김성철 배우는 당연하다, “이 영화는 조각의 영화”라고 말해줬어요. 자신은 조각의 일부분을 구성하러 온, 조각을 빛나게 하러 온 사람이기 때문에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아주 너그러운 마음씨를 보여주어서 덕분에 편하게 했던 것 같아요.

 

〈파과〉
〈파과〉

영화를 보면 액션씬이 많은 편인데, 이번 작품에서 이혜영 배우가 액션 연기를 선보일 수 있도록 어떻게 설득하셨는지 궁금해요.

시나리오에 이미 액션의 기본적인 설계가 다 되어 있었는데요. 왜냐하면 긴 시간이 걸렸다 보니까 제가 너무 많은 레퍼런스를 연구하고 보지 못한 새로운 액션에 관한 내용들이 시나리오에 가득했어요. 이혜영 선배님은 시나리오를 보고 많이 겁나서 압도당했을 것 같아요. 이 인물만 봐도 그냥 드라마라고 해도 소화를 못 할 것 같은데… 특별한 인물이잖아요, 현실 세계에서는. 근데 액션도 여러 인물과 부딪혀서 온갖 종류의 고행을 거쳐야 되니까 잔뜩 겁에 질리셨던 것 같아요.

근데 제가 이혜영 배우를 사전에 만났을 때, 조각이라는 인물이 이혜영이라는 배우를 만나면 ‘배우가 걸어가기만 해도 이 영화의 무드와 뉘앙스, 모든 스타일이 나오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영화에서 이혜영 배우의 뒷모습을 많이 보여주잖아요. 그런데 솔직하게 말씀드렸어요. 만약에 (액션을) 못하면 못하는 만큼, 저도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것이 이 영화가 될 것 같다고요. 근데 이혜영 배우가 다쳐가면서도 일어나셨고, 그 인물이 되는 순간에는 텍스트를 넘어서서 본인만의 행간을 채워 주셨어요. 사실 배우 입장에서는 처음 다치는 게 무섭잖아요. 모두가 안 다치기 위해 보호 장치를 비롯한 모든 것을 사전에 준비하고 스턴트맨들이 있어서 위험하지 않은 최소한의 조건을 만들고 하지만 변수들이 생기잖아요. 근데 첫 부상이 제일 무서운 건데, 그 이후로는 이혜영 배우가 조금 힘들어져도 “아니 뭐 이 정도는 뭐”라고 하시면서 점점 강해지신 거죠.

 

〈파과〉
〈파과〉

액션씬 촬영하면서 힘들었던 순간 중에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을까요?

마지막 장면을 촬영할 때, 저는 촬영장에서 못 빠져나오는 줄 알았어요. 왜냐하면 촬영이 안 끝나는 거예요. 촬영하면서 3m 움직이는 데 하루가 걸리는 거죠. 여기 건물에 갇혀서 못 빠져나가는구나, 정말 수도도 없고 화장실도 없는 실제 폐허 건물 속에서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있어야 했어요. 인물의 감정조차 정말 극단에 가 있는 상황에서 그거를 다 받아내면서 만들다 보니까 저조차도 정말 그 싸움의 한순간에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힘들 때마다 죽을 각오를 다졌고, 그렇게 마지막 장면을 해냈어요. 그 순간에 달려가서 껴안아 드렸어요. 그리고 저도 모르게 육성으로 오열이 터져 나왔어요.

이 영화를 시작할 때는 안 울 것 같았어요. 영화가 못 만들어지거나 혹은 만들다가 중간에 파할 줄 알았어요. 만드는 이 안에서도 의심과 확신 사이에서의 갈등이 있잖아요. 마지막 순간에 그 모든 것이 밀려오면서 ‘아 이제 우리는 죽지 않고 살아났구나’라는 느낌이 조각이 마지막에 살아남았던 순간에 함께 오더라고요.

마지막 장면을 찍을 때, 이혜영 배우는 땅바닥에 구르고 피범벅이 되면서 정말로 힘든 척하는 게 아니라 너무 힘들어하셔서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어요. 정말 쓰러지신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마라톤이 러너스 하이 때문에 자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르고 뛰잖아요. 아마 이혜영 선배도 마지막 장면에서 자기 액션을 소화할 때 본인 몸이 얼마나 힘든지도 모르고 그냥 달려가고 있었을 거예요. 촬영을 끝내고도 선배님이 약간 정신이 나가 계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