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놈은 작가 토드 맥팔레인이 출세하는 계기가 된 효자 캐릭터이다. 미국 만화 작가들은 인상적인 캐릭터를 한 명만 만들어도 평생 팬들에게 추앙받는데, 토드 맥팔레인은 베놈과 스폰이라는 두 명의 거물급 캐릭터를 만들어 내었으니 전설급 작가에 오를 만하다.


팬이 보내준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베놈

1982, 마블 코믹스의 모든 캐릭터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당시로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던 대형 이벤트인 <시크릿 워즈>8부작으로 기획되어 연재됐다. 마지막 편인 8부에서 스파이더맨이 새로운 코스튬을 입고 등장하였다. 통상적인 적색과 청색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코스튬이 아니라 전신이 검정색으로 되어 있고 가슴에 커다란 스파이더 엠블럼이 그려져 있는 슈트였다. 거미줄도 손목에서 발사되는 게 아니라 슈트의 손등에서 발사되었고, 스파이더맨의 능력도 일부 강화되었다.
 
그런데 이 슈트는 마블코믹스 편집부에서 고안한 게 아니었다. 1981, 정기 간행 만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마지막 페이지에 항상 편집장 짐 슈터가 참신한 아이디어를 공모한다는 독자 편지 페이지가 있었다. 해당 공모에서 편집부가 아이디어를 선택하면 소정의 사례금도 보내주고 정말 참신한 아이디어면 특별 채용(!)까지 될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광고를 보고 한 팬이 참신한 아이디어를 보내왔는데, 스파이더맨의 업그레이드된 슈트에 대한 내용이었다. 스텔스 기능이 있는 검은 색의 슈트로, 가슴에 그려진 스파이더 문양만 강렬한 붉은색이고, 슈트를 입음으로서 스파이더맨의 능력이 25% 정도 상승된다는 설정이었다, 마블 코믹스 편집부는 이 아이디어를 220달러에 구입했다. 비록 아이디어를 낸 팬은 마블 코믹스에 공개 채용되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자신의 아이디어가 살짝 변형돼 <시크릿 워즈>에 등장하는 걸 기쁘고도 슬픈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고백했다.
 
스파이더맨의 새로운 코스튬은 팬들 사이에서 매우 반응이 좋았고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52(부제: 홈커밍)부터 스파이더맨의 공식적인 새 코스튬으로 사용되게 된다. 베놈의 탄생은 이 때부터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계획되었다.


스파이더맨과는 무슨 관계?

스파이더맨은 새로운 코스튬을 입고 나서 실제로 신체적 능력이 향상된다. 또한 갈아입을 필요가 없이 피터 파커의 의지에 따라 자동으로 몸을 감싸는 신기한 물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코스튬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자신의 의지를 갖고 이상한 행동들을 하게 되고, 피터 파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공격적인 성향도 증가하게 된다. 결국 피터 파커는 판타스틱 포의 리드 리처즈에게 의뢰, 이 코스튬이 실제로는 이성과 의지가 있는 외계 공생체임을 알게 되어 경악한다. 그리고 코스튬이 큰 소리에 취약하다는 것을 이용, 교회 첨탑 종을 울려 코스튬을 자신으로부터 분리해 낸다. 하지만 코스튬은 죽지 않고 교회에 숨어 있다가 다음 숙주를 기다린다.
 
에디 브록이라는 남자는 ‘데일리 글로브’ 신문사 기자였는데, 그가 특종 기사에서 정체를 밝혀낸 신-이터라는 빌런이 그냥 거짓말쟁이였다는 사실을 스파이더맨이 밝혀낸다. 에디는 결국 신문사에서도 해고돼 빈궁한 삶을 이어가게 된다. 스트레스를 이겨내고자 보디빌딩을 시작하는 등 노력하지만 결국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하려 한다, 교회 첨탑에서 뛰어내리려던 차, 교회 종 뒤에 숨어있던 스파이더맨의 심비오트 코스튬이 그의 분노를 감지하고 그와 융합하며 둘은 베놈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영화는 과연 어떤 내용을 다룰 것인가
<베놈> 단독 코믹스 표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300호에서 데뷔 후 계속 인기를 이어나가던 베놈은 1991년 자신의 이름을 건 미니시리즈가 발간된다. 6부작 <베놈: 치명적인 수호자> 미니시리즈가 높은 판매고를 기록하자 마블 코믹스는 계속 3~4호로 구성된 미니시리즈 형식으로 베놈 타이틀의 만화책을 발간한다. <베놈: 장례식 화장 불>, <베놈: 광기>, <베놈: 내부의 적> 등의 미니시리즈는 전부 다 디럭스 판형으로 발간되는데 표지가 홀로그램이나 엠보싱, 야광 처리되어있어 수집성이 높았다. 필자도 유년기에 가장 열심히 모았던 것이 베놈 관련 만화책이었는데 동시대의 베놈 팬들처럼 누가 봐도 악당이나 괴물에 가까운 외형임에도 불구하고 스파이더맨이나 약자의 편에 서서 싸우는 다중적인 면모가 너무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베놈을 연기하게 된 톰 하디도 가장 좋아하는 마블 캐릭터로 베놈을 꼽았고 마블 코믹스는 이런 팬들을 위해 예전 베놈 코믹스의 원화를 표지에 차용한, 골수팬들을 위한 리마스터판들을 출간하고 있다.
   
베놈은 안타깝게도 2000년도 이후 많이 변질되어 에디 브록이 아닌 스파이더맨의 적수인 스콜피온이 베놈이 된다던지, 피터 파커의 급우 플래쉬 톰슨이 베놈이 된다던지 캐릭터에 많은 변주가 이루어졌는데, 원래 베놈의 팬으로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다. 팬들이 이번 영화 <베놈>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캐릭터가 안티히어로보다는 전형적인 히어로에 가깝게 묘사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원작 베놈 미니시리즈에서는 에디 브록은 베놈이 된 후 아무런 혈연도 없이 뉴욕 지하 하수구에서 빈민들과 부랑자들 등 사회의 최하류층 인물들과 어울려 살며 그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인물로 묘사되었었다. 악당이라 생각되는 자들을 거침없이 처단하였고 잔인한 방법을 사용하는 데에도 거리낌 없었다. 심비오트를 이용해서 악당들을 관통시킨 적도 있고 심비오트의 턱으로 악당들의 머리를 으깨 버리는 장면이 의성어로 묘사된 적도 있다.

플래시 톰슨 베놈.

또한 원작의 에디 브록은 자신의 커리어를 망쳐버린 스파이더맨에 대한 복수심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고 스파이더맨을 끊임없이 쫓아다니며 죽이려 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스파이더맨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로 베놈의 탄생 스토리 자체가 바뀌어 버리면서, ‘복수심에 불타는 일반인에서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괴물과 합체하게 된 선한 남자의 이미지가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컬럼비아/소니는 올해 10월 개봉 예정인 이번 영화가 새로운 컬럼비아/소니/마블 유니버스의 첫 작품이 될 것이며 마블 스튜디오의 마블시네마틱 유니버스(MCU)와는 별개의 것일 것이라고 하였다. , 소니/마블 스튜디오에서 진행 중인 스파이더맨 유니버스/MCU와의 연계 가능성도 열어놓은 상태이다. 이번 영화가 지난 2006년의 <스파이더맨3>에서 묘사된 베놈의 모습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최원서 / 그래픽 노블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