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이치 사카모토: 코다>(이하 <코다>)는 류이치 사카모토가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쓰나미에서 살아남은 피아노를 어루만지며 시작한다. 쓰나미 피해자를 위한 공연에서 류이치 사카모토는 스스로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라고 소개한다. 일본에서 이름을 부를 때 성이 앞에 오고 이름이 뒤에 온다. 사카모토(坂本)가 성이고 류이치(龍一)가 이름이다. 그럼에도 우리에겐 류이치 사카모토가 더 익숙한 이름이다. 말하자면 그는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세계적인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다.
그렇게 유명한 이름이지만 우리는 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2014년 그가 인후암 판정을 받았다는 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코다>의 스티븐 노무라 쉬블 감독은 처음에 환경주의자, 반핵운동가로서의 류이치 사카모토를 담고 싶었다. 그래서 방진복을 입고 방사능 피폭지역을 둘러보는 류이치 사카모토가 초반에 등장한다. 암 진단이 이 다큐멘터리의 방향을 바꿔놓았다. 암 판정을 받은 류이치 사카모토는 치료에 전념하려 했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영화음악을 부탁하기 전까지 그랬다. 이냐리투 감독의 작업의뢰를 받고 그는 다시 음악작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한다. 그는 웃으며 말한다. “자신이 너무나 존경하는 감독의 의뢰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동시에 미뤄뒀던 새 앨범 <ASYNC> 작업도 시작한다. 그렇게 <코다>는 2012년부터 2017년까지 류이치 사카모토의 5년의 시간을 담았다.
예술가의 삶을 훔쳐보는 건 늘 흥미로운 일이다. <전장의 크리스마스>(1983), 오스카와 골든글로브를 동시에 수상한 <마지막 황제>(1987) 등의 영화음악으로 영화팬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작업실을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카메라는 어두컴컴한 방에서 홀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21번’을 연주하는 그의 뒷모습을 담아냈다. 그는 뒤늦게 카메라를 발견하고 “들켰네”라고 말한다. 한 알, 한 알 천천히 꾸역꾸역 약을 삼키는 모습, 소파에 앉아 잠이 든 모습, 피아노 옆에 가지런히 정리된 그의 필기구를 보는 것도 모두 새롭기만 하다.
<코다>는 다큐멘터리 장르의 본질에 충실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의 일상을 훔쳐보는 장면, 류이치 사카모토가 카메라를 보며 카메라 옆에 있을 감독을 보며 자신의 병에 대해, 새 음악작업에 대해, 자신의 생각에 대해 말하는 인터뷰 장면, 젊은 시절 작업한 <마지막 황제>의 비하인드,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YMO) 공연 등 류이치 사카모토 본인이 내놓은 과거 자료화면 등 그에 대해 알고 싶은 거의 대부분의 내용이 적절하게 담겼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열혈 팬뿐만 아니라 그의 이름만 알고 있을 영화 팬, 그에게 대해 거의 모르는 관객 모두 만족할 만한 구성이다. 또 <코다>는 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를 담고 있는 만큼 단순한 인물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어쩌면 101분짜리 공연실황, 사운드트랙 그 자체를 보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류이치 사카모토가 수집한 온갖 소리가 끊임없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단, 한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코다>에는 류이치 사카모토 본인 이외에 다른 누구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것때문인지 이 다큐멘터리가 더 음악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알찬 구성의 다큐멘터리 <코다>를 통해 류이치 사카모토에 대해 알게 된 것 가운데 새로운 것은 애초에 쉬블 감독이 담고 싶었던 모습이다. 즉, 그가 소리를 탐구하는 음악가이면서 동시에 실천하는 예술가라는 점이다. 방진복을 입고 동일본 대지진의 피해현장을 둘러본 류이치 사카모토는 일본 국회의사당 앞에서 벌어진 원전 재가동 반대 집회에 참석한다. 사회를 향한 거침 없는 발언. 또 9·11 테러의 한복판에서 그가 직접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고 이라크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도 등장한다. 암 판정으로 인해 그의 활동가 모습을 더 보지 못한 것이 조금은 아쉽다. 여러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그를 보며 뒤늦게 그가 도쿄도립 신주쿠 고등학교 재학 당시 전공투를 결성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물론 자연의 소리를 탐구하는 구도자와 같은 예술가의 일상도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비가 오는 소리를 듣기 위해 큰 양동이를 뒤집어 쓰는 것부터 직접 찾아간 북극의 물소리를 그의 표현대로 하자면 “낚는”(fishing) 것까지. 소리에 대한 집요함은 그가 왜 위대한 아티스트가 될 수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솔라리스>(1972)를 보며 영화에 삽입된 바흐의 ‘코랄 전주곡’이 흘러나오는 장면을 유심히 본다. 새 앨범에 이와 비슷한 느낌의 음악을 만들기 위해 그는 피아노 앞에 앉아서 바흐의 곡을 반복해서 연주한다.
<코다>를 보고 있으면 그가 영화음악을 만들고 직접 출연한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 <마지막 황제>를 다시 보고 싶어진다. 또 그가 극찬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도 관람 리스트에 올려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고작 101분의 시간이었지만 <코다>는 류이치 사카모토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줬다. 이 예술가의 일상과 생각, 철학을 알게 됐으니 그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보고 들을 때 다른 감흥이 생길 게 틀림없다. 또 빗소리, 숲속의 발자국 소리, 쓰나미 피아노 소리, 북극의 물소리, 심지어 방사능측정기 소리까지 온갖 소리와 류이치 사카모토의 피아노 연주의 향연을 통해 그의 음악을 다시 듣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다. 그가 최근에 작업한 <남한산성>을 재관람 리스트에 올려도 좋겠다.

- 마지막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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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출연 존 론, 조안 첸, 피터 오툴
개봉 1987 미국,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 전장의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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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오시마 나기사
출연 데이비드 보위, 톰 콘티
개봉 1983 일본, 뉴질랜드, 영국
영화의 마지막, 그는 다시 바흐를 연주한다. 거칠게 줌인 하는 카메라를 슬쩍 돌아보는 류이치 사카모토는 추운 겨울 날씨로 굳은 손을 비빈다. “좀더 열심히 날마다 손가락을 움직이기로 했어요”라고 수줍게 웃으며 말하는 그. 카메라를 지나 류이치 사카모토는 계단을 내려가며 사라지고 영화는 끝이 난다. 이 다큐멘터리의 제목 ‘코다’(한 악곡이나 악장, 또는 악곡 중의 큰 단락의 끝에 종결 효과를 강조하기 위하여 덧붙이는 부분)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쉬블 감독은 “촬영 초기부터 타이틀로 ‘코다’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말한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새로운 음악의 탄생으로 끝이 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관객들이 이 영화를 통해 새로운 인식에 눈을 뜨는 계기를 마주하길 바란다.”
암 진단 이후 치료에 집중하다가 다시 음악 작업을 시작하면서 류이치 사카모토. 그는 카메라 앞에서 그 이유를 덤덤히 말한다. “앞으로 얼마나 살게 될 지 모르지만 (…) 부끄럽지 않은 것들을 좀더 남기고 싶어서요. 일도 음악도.”

-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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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스티븐 쉬블
출연 류이치 사카모토
개봉 2017 일본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