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 디어> 포스터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킬링 디어>가 국내에 상륙했다. 박찬욱 감독의 “신화적 상상력을 현실에 펼쳐내는 작업이 절정에 이르렀다”는 격찬과 이동진 평론가가 부여한 별 다섯 개로 기대감은 치솟았다. 박찬욱은 그를 ‘차기작이 가장 기다려지는 감독’으로 꼽기도 했다. 게다가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떠오르는 칸국제영화제의 총아다. 62회 주목할만한 시선 대상에 <송곳니>(2009), 68회 심사위원상에 <더 랍스터>(2015), 70회 각본상에 <킬링 디어>(2017)가 선택을 받았다. 2017년 봄, 칸에서 공개된 이래로 그의 독창적인 세계를 손꼽아 기다려온 팬들이 <킬링 디어>의 국내 개봉(7월12일)에 드디어!”를 외쳤다.


복수의 딜레마

올해 목격한 가장 강렬한 오프닝으로 막을 연 <킬링 디어>는 미스터리한 소년 마틴(배리 케오간)과 심장외과의 스티븐(콜린 파렐)의 관계를 쉽게 알려주지 않는다. 장장 50분에 달하는 서사로 날카로운 서막을 장식한 뒤에야 이 맹렬한 복수극이 어디서부터 발현된 것인지가 드러난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고통의 등가교환. 의료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마틴이 스티븐에게 원하는 건 그에 상응하는 고통을 하나씩 나눠 갖는 것이다. 복수의 심판대 위에 놓인 스티븐은 이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킬링 디어>의 많은 장면들은 종교적, 신화적 레퍼런스의 변주로 읽힐 여지가 있다. 영화의 원제 <더 킬링 오브 어 세이크리드 디어>(The Killing of a Sacred Deer, 신성한 사슴의 살해)와 플롯의 뼈대는 에우리피데스의 희곡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 비극을 연상시킨다. 총사령관 아가멤논이 전쟁 출정을 알리며 함선을 띄웠으나 바람이 불지 않아 발이 묶인다. 과거 아가멤논이 사냥했던 사슴이 하필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가 가장 아끼던 사슴이었던 까닭이다. 아르테미스의 분노를 풀기 위해 아가멤논은 맏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신탁을 듣고 고민 끝에 딸을 희생하기로 하는데, 딸의 목에 칼을 대는 순간 이피게네이아는 피를 흘리는 사슴으로 바뀐다.


페르소나, 그리고 새 얼굴

전작 <더 랍스터>에서 함께했던 배우 콜린 파렐이 <킬링 디어>에도 어김없이 구심점 역할을 한다. 그가 맡은 외과의사 스티븐은 이 비극이 발생한 진원지에 있는 인물이면서 가정의 구원을 위해 분투하는 인물이다. 란티모스 감독은 그에 대해 복잡하면서도 모순된 인물을 내면화해서 전달할 줄 아는 감각적인 배우라며 상찬했다. 콜린 파렐은 중압감이 끊임없이 괴롭히는 스티븐의 복잡한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하며 란티모스의 영화에 빼놓을 수 없는 페르소나로 자리매김 했다.

하지만 <킬링 디어>에서 무엇보다 강력한 캐릭터는 란티모스가 선택한 새로운 얼굴, 배리 케오간이 맡은 마틴이라는 소년이다. 감정의 동요라곤 일절 없는 무덤덤한 얼굴의 사이코패스 마틴은 현실이라는 바탕 위에 지어진 이야기를 초현실의 경계 너머에 이동시키며 파멸로 인도한다. 1992년생의 아일랜드 배우 배리 케오간은 연기 경력이 많지 않음에도 단숨에 도약했다. 지난 2017년 크리스토퍼 놀란의 <덩케르크>에서 군인을 구조하는 배에 탑승한 도슨(마크 라이런스) 선장의 아들 친구 조지를 연기하며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그는, <킬링 디어>에서 기묘한 존재감을 내뿜으며 제대로 눈도장을 찍는다. 란티모스 감독은 신인답지 않은 흡인력을 가진 그를 향해 존재 자체가 특별했다. 상반되고 모순적인 일면을 가진 마틴그 자체라고 표현했다.


장면을 관통하는 사운드

<킬링 디어>에서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스타일 변화가 엿보이는 지점은 음악의 사용에 있다. 건조한 톤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며 음악을 자제하던 예전과 달리, <킬링 디어>에서는 되려 신경질적인 사운드를 적극 활용한다. 바흐와 슈베르트의 음악과 실험적인 클래식 음악이 공명하는 사운드트랙은 장면 장면이 담고자 하는 분위기를 관통하고 있다. “이전엔 어떤 음악을 사용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고 술회한 란티모스 감독은 러시아의 현대음악을 시도하고 싶었다클래식 음악이 영화의 톤과 조응할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낯섦에서 보이는 것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영화에 시종 감도는 냉기는 다분히 의도적이다. 인물과 관객을 멀찍이 떨어뜨려 놓는 시도는 이번 작품에서도 어김없이 이어진다. 무표정한 얼굴들이 내뱉는 말들은 무감하기 짝이 없고, 카메라는 조금의 친밀감도 느껴지지 않는 위치에서 피사체를 응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은 영화에 거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거리감은 란티모스의 세계에서 필연적이다.

감독은 이 영화가 블랙코미디일 수 있다는 언급을 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킬링 디어>극도로 지독한 블랙코미디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거리감을 가진 채 영화를 볼 때, 마치 블랙코미디처럼 아이러니하게도 메시지들은 더 선연해진다. 객관으로 바라본 진실은 서늘한 공포를 배로 만들어 준다. 다시 말해, <킬링 디어>가 보여주는 현실이 우리에게 낯섦을 주는 동시에 이 세계를 표상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 세계가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영화에 주목하는 이유일 것이다.

킬링 디어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출연 콜린 파렐, 니콜 키드먼, 배리 케오간

개봉 2017 영국, 아일랜드, 미국

상세보기

씨네플레이 심미성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