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JTBC 영화 프로그램 <방구석 1열>에 달파란(강기영)과 모그가 나왔다.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음악가란 타이틀이 그들의 이름 앞에 붙었다. 이 타이틀에는 어떤 과장도 담겨있지 않다. 지금 달파란과 모그만큼 활발히, 또 꾸준히 영화음악을 만드는 음악가를 찾긴 어렵다. 특히 달파란은 1999년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로 처음 영화음악 작업을 시작한 이후 20년 동안 쉼 없이 다양한 스타일의 영화에 음악을 입혀왔다.
달파란의 음악 여정 역시 그가 만드는 영화음악만큼 다채롭고 흥미롭다. 헤비메탈 밴드 시나위 2집에 참여하며 공식적으로 활동한 그는 모두가 눈여겨보던 헤비메탈 베이스 연주자였다. 베이시스트는 대부분 눈에 띄지 않지만 그는 큰 존재감으로 앨범 크레디트에 강기영이란 이름을 새겼고, 작사가로서도 앨범에 일조했다. 신대철-김종서-강기영-김민기로 구성된 시나위는 역대 최고의 라인업으로 평가받는다.
시나위를 거쳐 H2O에 가입했다. 시대는 1990년대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는 H2O의 음악을 주도하며 한국 최초로 음반 단위의 모던 록 음악을 선보였다. 헤비메탈 출신 음악가들이 모여 만든 당대 가장 ‘모던’한 앨범이었다. 흔히 유앤미 블루를 한국 최초의 모던 록 밴드라 부르지만 그 이전에 이미 H2O가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한국에서 들려주고 있었다. 2집이 모색이었다면 3집은 완성이었다.
그리고, 삐삐밴드가 있다. 달파란은 H2O를 거쳐 이 독특한 이름을 펑크 밴드를 만들었다. 온통 파격으로 가득했던 삐삐밴드와 삐삐롱스타킹은 행동으로도, 음악으로도 한국 대중음악사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삐삐밴드 해체 뒤 더 이상 밴드 구성원이 아니게 된 그는 강기영에서 달파란으로 이름을 바꾸고 테크노에 몰두했다. 거칠게 분류해도 헤비메탈-모던록-펑크-테크노로 크게 장르를 넘나들었다. 달파란은 이 모두를 잘 소화해낼 수 있는 아티스트였고, 1987년부터 이어온 그의 디스코그래피가 이를 증명한다.
영화음악은 또 다른 영역이다. H2O와 삐삐밴드와 솔로 앨범이 그의 의도에 맞춰 그의 세계가 그대로 담긴 작품이라면 영화음악은 을의 입장에서 영화감독의 의중에 맞춰 조율해야 하는 작업이다. 달파란은 그 정해진 틀 안에서 최대한의 상상을 담아내왔다. <달콤한 인생>은 그가 만든 수많은 영화음악 작업 가운데 가장 많이 얘기되는 음악이다. 달파란은 어어부 프로젝트의 장영규와 함께 사운드트랙을 만들었다. <달콤한 인생> 말고도 둘의 합작 영화음악은 많지만, ‘감상의 매력’이 <달콤한 인생>을 더 돋보이게 한다.
꼭 영상과 맞물리지 않더라도 개별 곡들은 곡 자체로서 매력을 갖는다. 선우(이병헌)의 혼란스럽고 슬픈 마음을 담아낸 ‘슬픈 나의 밤’이나 백사장(황정민)과의 싸움이 벌어지는 아이스링크 씬에서의 ‘붉은 아이스링크’는 각 캐릭터와 영상이 함께할 때 더 빛나지만 그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만으로도 감상의 넓이가 크게 작아지지 않는다. 느와르의 성격을 잃지 않으면서도 영화 전체에서 풍겨져 나오는 우아함과 고독감을 대변하는 듯한 음악이 마치 선우가 입고 있는 슈트처럼 고급스럽게 표현된다.
프란시스코 타레가의 클래식 소품과 유키 구라모토의 ‘Romance’는 스코어 사이에서 깊은 여운을 남기고, 이병헌의 내레이션은 음악과는 또 다른 감상의 묘미를 더한다. 또 보너스 트랙처럼 들어가 있는 배우 황정민의 노래 ‘A Honeyed Qusetion’은 ‘노래를 잘한다’는 기준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할 만큼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극중 백사장이 노래하듯 건들거리며 부르는 가창은 그 어떤 명가수가 온다 해도 황정민처럼 멋있게 부르진 못할 것이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이병헌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해 ‘슬픈 나의 밤’으로 이어지는 순간, 150년 전 작곡가의 곡으로 앨범의 흐름을 환기하는 순간, 황정민의 노래로 앨범이 마무리되는 순간, 매 순간마다 달파란이라는 영화음악 작곡가를 생각한다. 함께 음악을 만든 장영규를 생각한다. 이들이 속해있는 영화음악 창작집단 복숭아를 생각한다. 이들이 이름이 대중에게까지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우리에겐 이미 충분히 훌륭한 영화음악가들이 있다. <달콤한 인생> 사운드트랙은 시체스 영화제(카탈루냐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영화음악상을 수상했다.

- 달콤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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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김지운
출연 이병헌, 김영철, 신민아
개봉 2005 대한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