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이 한창이다. 여러 스포츠의 경기들이 다발적으로 펼쳐지는 가운데, 강호 독일을 상대로 명승부를 펼치고 사상 처음으로 조 1위로 8강에 진출하는 등 이례적인 성적을 올린 한국 축구 대표팀에 대한 관심이 특히 뜨거웠다. 8월 14일 한국은 온두라스와 4강 티켓을 놓고 접전을 벌였으나 1:0으로 패했다. 아쉽고 또 아쉽지만 축구는 계속되어야 한다. 아쉬움을 달래며 가볍게 즐길 만한 축구 영화들을 소개한다.



<슈팅 라이크 베컴>
감독 거린다 차다 / 출연 파민더 나그라, 키이라 나이틀리,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 / 제작 영국

'여성'에 천착해온 케냐 출신의 감독 거린다 차다는 남성 위주의 축구 영화의 컨벤션을 유쾌하게 비튼 <슈팅 라이크 베컴>(2002)을 만들었다. 영화의 주인공은 보수적인 인도 가정에서 자란 제스(파민더 나그라). 축구를 반대하는 부모 몰래 축구선수의 꿈을 키우는 그녀는 여자축구단 선수 줄스(키이라 나이틀리)를 만나 꿈을 키우게 된다. 밝은 톤의 영화지만 주인공이 거쳐야 할 산이 꽤 높다. 인도라는 출신지보다 그녀의 발목을 거세게 붙드는 건 "여성이 축구를 하면 안된다"는 가정의 편견이다. 엄청난 재미를 자랑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제스와 줄스가 힘을 합쳐 결국 승리를 이끌어내는 과정을 엿보는 과정만으로도 만족이 크다. <캐리비언의 해적>과 <러브 액츄얼리>로 스타덤에 오르기 전 키이라 나이틀리의 모습도 만날 수 있다. VOD 바로 보기



   
<소림축구>
감독 주성치 / 출연 주성치, 자오웨이, 오맹달 / 제작 홍콩, 중국

주성치와 축구의 만남. 누가 이길까? 승자는 주성치다. '장르'와 '고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창조한 작품 세계를 구축한 주성치의 2001년작 <소림축구>는 기존의 축구영화의 틀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작품이다. 축구보다는 소림에 방점을 찍어 무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지만, '무협영화'라고 규정짓기에도 망설여지는 주성치만의 잡탕영화다. 그 위에 컴퓨터그래픽까지 더해졌다. 공에 맞은 사람들은 볼링공처럼 나자빠지고,  공을 막으려던 골키퍼의 옷은 홀라당 찢겨지다못해 아예 몸이 골대와 함께 날아간다. 하지만 이 영화가 더욱 사랑스러운 이유는, 어딘가 모자란 모든 캐릭터들이 자신의 힘으로 저 막강하고 악한 세력을 상대로 끝내 승리를 거두는 이야기일 것이다.  ▷VOD 바로 보기


<천리마 축구단>
감독 대니얼 고든 / 제작 영국

기적이라는 키워드는 모든 스포츠 영화의 영원한 테마 중 하나다. <천리마 축구단>(2002)은 시간을 돌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벌어진 기적의 현장으로 돌아간다. 평균 신장 162cm밖에 안 되는 북한 선수들이 강호 이탈리아를 꺾고 16강에 진출한 그 순간이다. 영국 방송국 <BBC>가 제작하고 대니얼 고든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는 타자의 시선으로 더욱 가깝게 북한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여러 자료로 남아 있는 1966년 월드컵의 흔적을 뒤져볼 뿐만 아니라, 그 선수들의 현재 모습까지도 소상하게 담았다. <천리마 축구단>은 북한의 매스게임을 연습하는 소녀들을 비춘 <어떤 나라>(2004)와 함께 2005년 한국에서 개봉해 화제를 모았다. 대니얼 고든은 이후에도 북한과 스포츠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꾸준히 만들고 있다.



<비상>
감독 임유철 / 출연 오만석(나레이션), 안종복, 장외룡, 김학철 / 제작 한국
<비상>은 2005년 2년차를 맞이한 인천유나이티드FC의 활약상을 따라간다. 인천FC는 야심차게 시작했지만 첫 시즌부터 삐그덕댔던 탓에 대대수 언론이 리그 꼴찌를 내다봤지만, 감독대행을 맡은 장외룡 수석코치의 치열한 리더십과 뭇 선수들의 고생 끝에 예상을 뒤엎고 시즌 1위가 된다. <비상>은 '시민구단의 돌풍'을 일으켰던 그 2005년 시즌을 자세히 담는다. 이 작품이 매력적인 이유는 팀이 선두로 오르기까지 그 만만치 않은 과정을 잊지 않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넉넉한 자본으로 운영되는 다른 팀과 달리 자금이 늘 부족해 간판선수의 이적료로 빈곳을 채우던 팀에서 뛰는 선수들의 여러 고난들이 승리의 쾌감보다 먼저 와닿는다. 임유철 감독이 8년 후에 내놓은 축구 다큐멘터리 <누구에게나 찬란한>(2014)도 함께 권한다.




<맨발의 꿈>
감독 김태균 / 출연 박희순, 고창석, 프란치스코 / 제작 한국, 일본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이 4강의 기적을 보여주던 때, 저 멀리 동티모르에서도 한국인이 만든 기적이 샘솟고 있었다. <맨발의 꿈>은 김신환 감독이 동티모르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쳐 유소년 축구팀을 결성해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거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영화는 현지의 호의적인 분위기 속에서 제작됐다. 영화에 출연한 선수 아이들은 모두 배우가 아닌 실제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팀 선수들이었다. 촬영 당시엔 동티모르의 샤나나 구스망 대통령까지 카메오로 출연했다. 소재가 소재인 만큼 흔한 감동팔이 영화라고 치부하기 쉽지만, <맨발의 꿈>은 꽤 덤덤한 톤으로 한 남자와 동티모르 아이들의 성장담을 그려냈다. VOD 바로 보기




<쉬즈 더 맨>
감독 앤디 픽맨 / 출연 아만다 바인즈, 채닝 테이텀, 로라 램지 / 제작 미국

고등학교 축구부에서 맹활약하는 바이올라(아만다 바인즈)는 어느날 갑자기 학교로부터 팀을 해체시키겠다는 통보를 받는다. 남자 축구부 주장인 남자친구도 여자가 무슨 축구냐며 면박만 줄 뿐이다. 바이올라는 옆학교 축구부원 남동생 세바스찬이 여행을 떠난 사이 그로 분장해 학교와 남자친구에게 복수하기로 한다. <쉬즈 더 맨>의 원작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십이야>다. 언뜻 전혀 비슷해 보이지 않는 두 작품. 여장남자라는 설정만 따온 걸로 보이지만, 천천히 뜯어보면 닮은 구석이 많다.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그들의 관계가 얽혀가는 과정은 <십이야>의 그것에 꽤나 충실하다. 아무래도 영화의 톤은 로맨틱코미디에 맞춰져 있지만, 양념처럼 가미된 축구도 가볍게 즐길 만하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