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om’은 <Actor's room> 즉, <배우의 방>을 뜻합니다. (캐릭터에 빠져 사는) 배우가 나로 돌아가는 시간을 묻고자 하는 게 이 인터뷰 기획의 핵심입니다. 배우의 얼굴 대신 그의 공간이 담깁니다. 작품이야기보다는 배우의 생각을 들어보려고 합니다.  

그저 평범한 당신의 옆집 남자. 2016년 출간된 산문집 <쓸 만한 인간>에서 박정민이 스스로를 표현한 문장이다. 그는 늘 그랬다. 겸손이 자신감에 자리를 내어 준 적이 없다. 자신의 부족함을 고발하고 불안을 털어놓고 반성하는 타입. 그러나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듯한 그의 화술은 유약함을 드러내는 부정적 언사라기보다 이 배우의 지금을 만든 거대한 힘이자 다짐들임을 어느 순간 눈치채게 됐다. 열등감을 발전의 질료로 삼고, 결핍을 나태함의 방패로 세우는 박정민은 그렇게 뒤를 돌아보며 걷는다. ‘충실히, 성실히, 절실히, 길게’ 걷는다. 오늘의 박정민보다, 내일의 박정민이 더 궁금한 이유다.  


#1. 박정민, 추억의 극장
PM 02:00. 태양이 기록경신 내기라도 하려는 듯, 최고 기온을 갈아치우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뜨거운 태양을 끼고 박정민과 접선하기로 한 장소는 분당에 자리한 CGV 야탑점 내의 카페. ‘Actor's room’에 공개할 공간을 두고 고민하던 박정민은 ‘야탑동 언저리’를 선택했는데, 분당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지금도 분당에서 사는 그에게 이곳은 추억이 퇴적층처럼 쌓인 곳일 테다. ‘언저리’라는 어감이 주는 묘한 경계 없음이 이날의 만남에 대한 기대를 높이기에 충분했다. 약속 시간에 늦을까 봐 헐레벌떡 뛰는데 문자가 울린다. 띠링띠링. 발신인 박정민 “제 임의대로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시켰는데 괜찮으실까요?” 약속 장소에 일찍 당도해 자리를 살피고 메뉴판 앞에서 잠시 고민했을 그를 상상하니, 그 배려가 고마워 마음에서 시원한 바람이 일었다.    

극장 내 북카페. 처음 만났을 때 박정민은 '희곡-시나리오' 섹션 앞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이미지 준비중
타짜 3

감독 권오광

출연

개봉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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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짜3> 준비가 한창이시죠? 조만간 마카오에 간다고 들었습니다.  
=가서 카드 치는 사람들이 어떤가를 전반적으로 봐야 할 것 같아요. 도박하는 곳을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거든요. 우리나라는 가 볼 곳이 강원랜드 밖에 없어요. 그게 아니면 불법 카지노를 가야 하는데 그건 또 이상하잖아요. 그래서 마카오를 가보려고 합니다.
 
-공식 일정인 줄 알았는데 개인적으로 짠 계획이더군요. <동주> 때는 촬영 전에 고(故) 송몽규 묘지를 찾아 북간도에 다녀오셨잖아요? 캐릭터를 맡으면 정말 치열하게 파고드시는 것 같습니다.  

=(쑥스러워하며) 미리 몸에 붙여 놔야 해요. 저 같은 사람은.
 
-안 그럼 불안한가요?

=제가 상상력이 부족해서…(웃음) 물론 상상으로도 연기할 수는 있지요. 그런데 상상에는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결국 자신이 본 것, 느낀 것 안에서 상상할 테니까요. 타짜의 경우에도 도박 소재 영화 몇 편 봐서는 그 세계를 절대 알 수가 없죠.  
 
-새 인물을 받아들일 때 관련 영화를 많이 찾아보시나요?

=레퍼런스 영화는 사실 안 보려고 하는 편이에요. 무의식적으로 비교하게 될까 봐요. 심지어 너무 좋은 영화를 봐 버리면 기준이 높아지니까…(웃음)

박정민이 태어나 처음으로 본 극장 영화는 ‘쉬리’, 인생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영화는 ‘와이키키 브라더스’, 모두 이 영화관에서 봤다.

-박정민이 그려낼 타짜가 많이 궁금한데요, <타짜3>가 개봉하면 이 영화관에서도 걸리겠군요. 이 극장에서 만나자고 한 건 당신에게 어떤 추억이나 의미가 있는 장소여서겠죠?  
=태어나 처음으로 와 본 극장이 여기입니다. 중1 때 부모님 따라 쫄래쫄래 와서 본 영화가 <쉬리>였어요. 이후 얼마간 조폭 코미디를 자주 봤어요. <달마야 놀자>, <조폭 마누라> 류의 영화들이 한창 붐이었거든요. 그때까지만 해도 제겐 좋아하는 영화 형식이라는 게 없었어요. 인기 있는 영화다 싶으면 휩쓸려가서 보곤 했죠. 그러다가 만난 영화가 이제, <와이키키 브라더스>예요. 역시 이 극장에서 봤습니다.   
 
-당신 인생에 엄청난 방향키가 됐다는 <와이키키 브라더스> 말이군요.  
=네. 당시 제가 16살이었어요.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미성년자 관람불가였기에 다른 티켓 끊고 들어가서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봤죠. (웃음) 그리고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헉, 세상에 이런 영화가 있다고?’ 영화라는 것에 호기심이 생기는 순간이었죠.  
 
-저는 그래서 영화의 힘을 믿어요. 이것 봐요. 한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 (웃음)  
=그 영화 참 희한해요. 저한테 처음으로 꿈을 심어준 영화기도 하고, 어쩌다보니 그 영화에 등장하시는 선배님들과도 연이 심상치 않게 닿기도 하고요. (박)원상 선배님(중3 때 친구 별장에서 운명적으로 만난 배우), (황)정민이 형(박정민 소속사의 정신적 지주), 이번에 만나는 (류)승범 형님까지. 그리고 도일출의 아버지 ‘짝귀’ 주진모 선배님도 그 영화에 휴게소에서 카세트 테이프 파는 아저씨로 나오시죠. (웃음)  
 
-(놀라며) 오, 정말 그러네요.
=그리고 그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 자체가 제가 늘 고민하는 거예요. 그 대사, 너무 좋아하거든요. “너는 행복하냐? 그렇게 좋아하는 일 하면서 사니까 행복해?”  
 
-당신에게 연기는 가장 좋아하는 일인가요?
=네. 가장 좋아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고민인 거군요.
=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산다고 해서 늘 행복한 건 아니니까요.  
 
-왜 ‘좋아하는 일은 직업으로 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반대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서 행복하다’는 사람도 있고요. 당신은 어느 쪽입니까.
=어느 순간에는 그래요. 지난 내 모든 선택을 후회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그때 왜 그분을 만났지? 내가 그때 그 영화를 왜 봤지? 그때 그 학교(한예종)를 왜 들어갔을까. 안 그랬더라면! 그랬다면 지금 이렇게 불행하지 않을 텐데, 라고요.  
 
-저런.
=그런데 이게, 참. 제가 치유를 가장 많이 받는 것도 결국 이 일입니다. 그러니까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요. 아직 자리를 확고하게 잡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불안함 때문이라는 생각도 해 봤는데, 한편으론 또 그렇더라고요. 자리를 잡으면? 자리를 잡는다고 과연 불안이 없어질까. 아닐 것 같더라고요.  
 
-한계를 깨면 또 다른 한계가 오죠.  
=또 다른 불안이 오고요.  
 
-뭐가 가끔 당신을 불안하게 하나요.
=불특정 다수에게 칭찬도 받고 욕도 먹는 직업이잖아요? 관심을 받는다는 게 참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제가 하는 일에 대해 보여주는 관심이 아니라, 박정민이라는 한 개인에 대한 관심도 점차 커지는 걸 느껴요. 그게 부담일 때가 있습니다.    
 
-어쩌죠. 제가 보기에, 당신을 향한 대중의 관심이 앞으로 더 커질 텐데요.  
=하,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제가 또…(웃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연기라는 게, 누군가를 속이는 일이잖아요?  
 
-배우는 그 거짓을 진실 되게 표현해야 하는 존재고요.  
=네. 아이러니죠. 거짓을 진실처럼 연기한다는 게 말입니다. 그러다 보면 저 자신까지 속이는… 음, 속인다기보다 뭐라고 해야 할까요. 연기적으로 뭔가 잘 안 풀려서 그럴싸하게 넘어가려고 할 때가 있는데, 그 순간이 저는 두려워요.  
 
-타인을 실망시키는 것보다, 자신에게 실망하는 게 더 두려운가요?
=그건 나눌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가자, 하는 그 순간은 함께 하는 사람들에겐 미안하고 저 자신에겐 수치스러운 거죠.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은 하는데 혹여나 그게 드러나서 들킬까 봐 늘 불안한 겁니다. 너무 잘하고 싶으니까, 나의 능력치를 꽁꽁 숨기고 전전긍긍하는 거예요. ‘아씨, 이거 들키면 안 되는데…’ 그러다가 ‘들키겠는데…’ 하는 순간 확 무너지는 거죠.  
 
-그런데 1신부터 100신까지 모든 장면을 진심으로 연기한다는 게…그럼 너무 힘들어서 기진맥진할 거예요.  
=왜냐하면 저는 천상 배우의 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자격지심 같은 게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남들보다 더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습니다.  
 
-천상 배우의 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정확한 기준을 제시할 순 없는데, 왠지 모르게 저한테 그런 느낌을 주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그 배우 이면에선 어떤 노력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보기엔 타고나게 잘하는 것 같은 거죠. 그런데 저는 아닌 거예요.
 
-왜 본인을 아니라고 확신하죠? 남들의 눈엔 그렇게 보일 수도 있는데요.  
=글쎄요. 제가 살아온 과거도 그렇고…누군가 저를 보고 ‘와, 쟤는 배우다’라고 생각해 주신다면 그건 고마운 일이에요. 그런데 저는 그걸 왜 그렇게 못 받아들이겠는지 모르겠어요.  
 
-간질간질한가요.
=그런 것도 있고, 저 정말 평범한 사람이거든요. 제가 배우 되겠다고 했을 때 저희 엄마가 그러셨어요. “아이고~ 우리 정민이가 그런 애가 아닌데, 큰일 났네.” (웃음) 어릴 때 누구 앞에 서는 걸 극히 싫어하는 존재감 없는 아이였습니다. 좋아도 좋은 티 못 내고, 화 자체를 내지 않았던 사람. 어떤 규제 안에서 사는 게 너무나 편했던 사람. 그게 저였어요. 감정들을 자제했던 거죠.  
 
-여전히 스스로를 어떤 틀 안에 가둬놓는 경향이 남아있나요?
=있죠. 그건 피가 그래요. 아버지 닮아서. (웃음) 아버지가 남에게 피해 주는 걸 극도로 꺼리는 분이세요. 늘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셨어요. 어릴 땐 그 모습이 답답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버지처럼 답답하게는 살지 않을 거야’ 생각하기도 했죠. 제가 <7년의 밤> 오디션을 봤었어요.  
 
-<7년의 밤>이 아버지와 아들에게 일어나는 슬픈 이야기잖아요?  
=네. 오디션 때 자유 연기를 준비해 오라고 해서 직접 아버지와 관련된 대사를 만들어 갔어요. 오디션 때 울컥울컥하는 게 쉽지 않은데, 그날은 독백하면서 엉엉 울었어요. 아버지 관련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어어…어어…흑…크아앙” 이렇게 된 거죠. (일동 웃음)  
 
-뭐가 그렇게 슬펐습니까.
=아버지와 너무 닮아 있는 내 모습이 소름 끼치더라고요. (좌중 폭소)
 
-세상 많은 부자들을 보면서 종종 그런 생각을 합니다. 아들에게 아버지란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인지, 뛰어넘어야 하는 존재인지.
=저는 개인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 성격도 그렇고 제 성격도 그렇고, 서로에게 살가운 편이 아니에요. 애정 표현에 서툴고 무뚝뚝하죠. 하지만 그렇다고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클수록 점점 그렇더라고요.  

박정민이 기획-연출한 영화 <변산> 뮤직비디오 ‘히어로(HERO)’에는 박정민의 아버지가 ‘박병관/ㄹㅇ아빠’로 카메오 출연한다. 아들이 연출하는 뮤직비디오에 힘을 보태는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뿌듯했을까. 애정 표현이 서툴다는 박정민만의 사랑 표현법이리라.

-중3 때 영화에 대한 꿈을 품었는데, 이듬해 전국 수재들이 모인다는 공주에 위치한 자립형사립고등학교에 갔단 말이죠. 입시사관학교로 불릴 정도로 엄격한 곳으로요.  
-그 학교는 엄마 손에서 떨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갔어요. 제가 어릴 때 엄마에게 정말 많이 혼났는데,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혼나지 않으려는 마음이었어요. 받아쓰기 하나 틀릴 때마다 혼나고, 아침에 눈높이 수학 3장 안 풀면 학교에 못 가고…저는 잠이 많은 아이였으니 그게 얼마나 싫었겠어요. 하루는 너무 화가 나서 엄마 출근하고 안 계실 때 집에 있는 물건들을 막 어지르고 학교에 갔어요. 밤에 집에 왔더니 엄마가 “집에 도둑 들었다”고…그거 내가 한 건데. (좌중 웃음)  
    
-그렇게 엄마의 손에서 벗어난 후 해방감을 만끽하셨나요?  
=크크크. 이 학교는 6시에 기상해서 점호를 해요. 운동장에서 체조한 후 7시에 밥 먹으면 이제 오후 6시까지 수업 릴레이. 이후 밤 12시까지 또 자습이에요.  
 
-스파르타식이었군요. 군대 같은.  
=군대는 10시에 재우기라도 하죠. 자정에 끝나면 공부하는 애들이 또 그냥 자나요. 새벽까지 공부하는 애들 보면 저도 괜히 불안해서 공부하는 척하고. (웃음) 그게 너무 싫어서 2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가고 싶다고 했어요. 도피 유학을 꿈꾼 겁니다. 사실 입학 통보도 받았어요. 비행기 타고 미국에 가면 됐던 상황인데 거기서 갑자기 교수인 이모부가 엄마를 뜯어말리셨어요. 엄마는 거기에 혹해서 유학을 취소하시고. 너무 화나서 화장실 가서 또 엉엉 울었습니다. (웃음)  
 
-그때 유학을 갔다면 다른 인생이 펼쳐졌겠군요.  
=그래도 제가 고등학교 가서 많이 바뀌었어요. 중학교 때까지는 정말 ‘찌질이’였거든요. 콧물 닦고 다니는. 알레르기성 비염 때문이긴 했지만요. 그러다가 공주로 간 건데 거기에는 제 중학교 때까지의 모습을 아는 아이가 한 명도 없잖아요? ‘변해야지, 변해야 돼!’ 하면서, 어떻게 보면, 3년 동안 연기를 한 거예요. 굉장히 잘 놀고 활발한 애로 말입니다.  
 
-억압이 풀리면 또 무서운 법이잖아요? (웃음)  
=네. 당시 ‘칠거지’라고 학업 분위기를 망치는 7명이 있었어요. 그중에 제가 왕거지. (웃음) 밤에 몰래 비디오테이프 빌려와서 교실에서 보다가 걸려서 얻어맞고, 기숙사에서 떠들다가 얻어맞고, 사감에게 개기다가 얻어맞고. (웃음) 그 학교는 선생님들이 다 부모예요. 되게 좋으세요. 제자들을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이 느껴지는데, 다만 너무 엄격했어요.
 
-그때 배운 여러 공부(과목)들 중에 그래도 지금의 박정민 삶을 이롭게 하는 것이 있다면요?  
=당시에 저도 모르게 제 몸에 쌓인 어떤 것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직까지 알아채진 못했어요. (웃음) 그게 특정 과목의 지식이 됐든, 아니면 하기 싫은 걸 참고 하는 인내심이 됐든, 뭐가 됐든 배운 건 있을 거라고 생각하려고 해요. 안 그러면 그 시간이 너무 아깝잖아. (웃음)
 
-스크린에 펼쳐진 선배들을 보고 연기라는 우물에 빠지셨는데, 처음 스크린에 비친 본인의 연기를 보는 기분은 어떠셨습니까.
=엉망이었죠. (웃음) 한예종 시절에 <연애담>이라는 단편영화를 찍었는데, 그 영화가 졸업영화제에서 상영됐어요. 긴장된 마음으로 보는데 제가 연기를 너~무 못하는 거예요. 제 대사가 나올 때마다 뒤에서 사람들이 ‘큭큭’ 웃고. 너무 창피했어요. 그날 혼자 차를 몰고 충주에 있는 할아버지 산소에 찾아가서 “할아버지, 제가 이렇게 연기를 못하는지 몰랐어요.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진짜 열심히 해 볼게요, 엉엉” 하면서 울었어요. 공동묘지에서 새벽 3시에, 혼자. (웃음)   
    
=크크크크. 그래서 할아버지가 들어주셨나요?
=그러고 몇 달 있다가 <파수꾼>(박정민을 세상에 알린 작품)으로부터 연락이 온 거예요.  
 
-역시 조상에서 공덕을 쌓아야 하는군요.
=제가 출연한 단편 <세상의 끝>을 보고 윤성현 감독님이 연락을 주셨어요. 오디션에서 리딩을 하는데 감독님 표정이 거짓말 하나 안 하고…(절망과 좌절의 몸짓) 이러셨어요. “날 것의 느낌을 살려서 대사했으면 좋겠어요. 자, 그럼 해볼까요?” 큐를 받아서 읽는데, 이건 완전 햄릿이거든!(일동 웃음) 운 좋게 합류했는데 감독님이 대단한 게 배우마다 디렉션이 다 달랐어요. 배우의 성향, 캐릭터 특징 등에 맞게 디렉션을 주셨죠. 저의 경우 연기 회로 자체가 닫혀 있는 사람이다 보니 이걸 열어주는 일부터 하셨던 거예요.
 
-연기 스승이네요.  
=저에겐 스승이고 은인이죠. 덕분에 햄릿처럼 연기하는 지점을 깨고, 다른 고민을 해도 되는 상황까지 올라간 거예요.  
 
-<파수꾼>은 영화과에서 연극과로 전과한 후 만난 영화인 걸로 알아요.(영화과→연기과 전과는 한예종 사상 유례가 없는 사건이었다) <파수꾼>을 만날 줄 알았다면 전과를 안 했을까요.  
=그랬을 수 있어요. 연극과로 전과했던 가장 큰 이유는 연극이 너무 하고 싶어서였으니까요. 제 꿈은 연극이었고요. 그런데 인생이라는 게 참 재밌죠. 저는 <파수꾼>이 제 인생의 발판이 되리라고는 1%로도 생각해 보지 못했어요.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신나게 찍었을 뿐인데, 어느 날 “그 영화가 잘 나왔다더라?”라는 이야기가 들려요. 그러더니 부산국제영화제를 간대요. “우리도 가는 거야?” 호텔도 준다기에 “와~ 진짜?” 가서 함께 함께 방 쓰면서 신나게 놀고 왔죠. 그런데 갑자기 또 해외영화제를 간대요. 그러더니 또 큰 배급사에서 개봉을 해 준다고 하고…저는 그래서 ‘반강제 데뷔’라는 말을 써요. 제 의지로 영화배우가 된 게 아닌 거예요.  
 
-뭔가 의미심장하네요. ‘반강제 데뷔’라.
=뭐랄까요. 길을 걷고 있는데 누군가가 툭 쳐서 어떤 선을 넘어온 느낌이랄까요. 그렇게 만난 게 영화인 거죠. 졸지에 영화배우라는 타이틀을 누군가가 붙여주고, 데뷔를 하게 되고, 회사도 생기게 된 겁니다.   

(왼쪽부터)박정민이 직접 그린 황정민, 그림 모티브가 된 황정민 출연 연극 '리차드3세'

-당신은 매니지먼트사가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은 케이스입니다. 그때 들어간 ‘샘컴퍼니’와 7년째 함께 하고 있는데요, 공연 예술의 창작성도 중시하는 회사 분위기가 박정민이라는 배우와 찰싹 달라붙는 느낌이 있어요.  
=우리 회사가 자유방임입니다. (웃음) 방치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배우들을 많이 믿어주세요. 그러다 보니 오히려 ‘뻘 짓거리’를 못하죠. 정민이 형부터 그러세요. 혼자 버스 타고 다니시고, 배우라고 해서 뭔가 ‘척’하지 않으시죠. 그런 형을 보면서 배우는 게 참 많아요. 정말 좋아하고 존경하는 형이에요. 뭐랄까. 서로가 말하지 않아도 좋아하는 게 느껴지는 관계있잖아요? 항상 자기 새끼라고 해 주시니까 너무 감사하죠.  

야탑동 안내하는 박정민 뒷모습

PM 03:50. 황정민에 대한 용비어천가를 기분 좋게 털어놓던 박정민은 시계를 확인하더니 “밖에 나가서 조금 걸으실래요?”라고 제안했다. 카페에서 나와 야탑동 이곳저곳을 걸으며 그의 추억이 깃든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확인한 것. 이 구역의 주인은 박정민! 길을 걷던 할머니가 “총각~ OO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나~?”라고 묻자, 그는 1초의 막힘없이 할머니의 내비게이션이 돼준다. 야탑동 지도가 그의 머릿속에 내장돼 있는 게 분명했다.  

최근 쿨거래 한 마작 테이블
카드 만지는 박정민

#2. 박정민, Room  
-(마작 테이블 보고 놀라며) 이거, 혹시…?
=마작 테이블인데요. 카드는 바닥에서 잘 안치니까. 그래서 중고나라에서 쿨거래 했어요.

-대단하군요.
=아니에요. 연습하고, 영화 끝나면 쿨거래로 되팔아야죠. (일동 웃음)
 
-하루 몇 시간씩 연습해요?
=(카드 꺼내서 만지며) 몇 시간이라고 정확히 정해놓는 건 아니고, 생각날 때마다 만지고 놀아요.

'그것만이 내 세상' 당시 연습 용으로 사용한 전자피아노

-피아노는, 예상이 맞다면 <그것만이 내 세상> 때 구입하셨겠군요.
=<그것만이 내 세상> 찍을 때 감독님이 사 주신 거예요. 골방 같은 곳에서 퉁탕 퉁탕 연습하는 걸 보시고는 “정민아, 이거 너무 곤혹이겠다” 하면서 주시더라고요. 전자 피아노예요. 실제 피아노와 가장 타격감이 비슷한 녀석입니다.  
 
-피아노 위에 악보인가요? (들여다보며) 뭐라고 쓴 거지…?
=아, 시레솔시레파. 제가 콩나물을 못 봐서…(웃음) 피아노는 치고 싶은 곡이 생기면 칩니다. 최근에는 <변산> OST ‘노을’을 가장 많이 쳤어요. 박원의 ‘노력’도 자주 쳤고요. 뭐 하나에 꽂히면 온종일 그것만 치고 앉아 있어요. 그러다가 손 놓으면 싹 까먹고. (웃음) 그 패턴의 반복이에요.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박정민이 피아노 치는 걸 처음 목격했을 때 속으로 이렇게 외쳤더랬다. ‘와, CG 기술 많이 발달했네!’ 그것이 6개월간의 연습 끝에 나온 실제 장면이라는 추후 설명이 없었다면 여태껏 CG인 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어 <변산>에서 수준급의 힙합 실력을 보여주는 그를 보고 나서는 한동안 ‘박정민 사용 매뉴얼’에 대한 즐거운 상상 놀이에 빠졌었다. 맡은 캐릭터를 위해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그의 다음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메이드 인 박정민’을 위해 그는 어떤 시간들을 견디는 것일까.

=그런데 <그것만이 내 세상>의 피아노도 그렇고 <변산>의 랩도 그렇고 제 기준에서는 많이 부족합니다. 연습만 24시간 주구장창 한 건 아니니까요.  
 -본인에게 너무 혹독한 거 아닌가요?  =왜냐하면 엉덩이 싸움을 해 본 적이 있으니까. (웃음) 제가 공부라는 걸 나름 열심히 해봤잖아요? 공부는 엉덩이 싸움이에요. 오래 앉아 있는 놈이 이길 가능성이 크죠. 연기는 조금 다르게 해 보고 싶어서 방식을 바꿔도 봤는데, 안 되겠더라고요. 다시 ‘그냥 엉덩이 싸움으로 돌아가자’가 됐어요. 캐릭터를 내 몸에 붙이는 과정만큼은 그러자 싶더라고요.  

배우를 위협하는 것은 어쩌면 밑도 끝도 없는 비난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찬사다. 박정민은 이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많은 분들이 박정민은 어디까지 노력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고 해 주세요. 되게 감사한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 제가 잘하면 그렇게까지 노력 안 하겠죠. 제가 남들만큼 잘하지 못하다 보니 뭐라도 하는 건데, 그것들이 홍보 포인트로 사용돼서 미안해요. 마치 나만 노력을 많이 하는 사람인 것처럼 포장되는 것 같아서… 다른 배우들도 다 그렇게 노력할 테니까요.  

박정민의 생각들이 적힌 수첩-썩어빠진 당신의 무엇

-(책상 위 수첩) 이 수첩은 뭔가 굉장히 시적이네요. ‘썩어빠진 당신의 무엇’
=군대 이등병 때 만든 수첩이에요. 너무 힘들어서 선임들 몰래. 첫 장을 열잖아요? 깜짝 놀라요. 저도 오랜만에 열어보고 ‘헉’ 했어요. (웃음) 정말 다 썩어 있어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밑바닥 모습들, 제 열등감과 피해의식이 다 적혀 있어요.  
 
-배설 창구 같은 거군요.
=시나리오 콘셉트나 명언들이 적혀 있기도 한데, 속박돼 있을 때 쓴 거라서 부정적인 게 좀 많아요. 다시 보면 새록새록 합니다. ‘그때이랬지. 아, 이땐 이랬구나…’ 아, 이건 이전 사인이에요. ‘언희 박정민’ 제 코가 커서 코를 그렸는데 안 예뻐서 지금은 사인을 바꿨죠.  
 
-지금 제 앞에 있는 박정민이라는 사람을 보면 상상이 안 가긴 해요. 잘난 사람 같은데 피해의식을 꾸준히 말하니.  
=왜냐하면 그게…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시기가 조금 있었는데, 그 때 제 자신을 좀먹는 버릇이 좀 생긴 것 같아요.
 
-성과가 없었던, 무명이라고 느끼셨던 그 시절은 많이 외로우셨나요.  
-그땐 굉장히 공허했어요. 사람이 공허해지면 해결되지 않는 고민을 더 하게 되잖아요? 내가 연기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내가 연기를 해도 되는 사람인가, 라는 관념적인 고민들을 많이 하면서 지냈습니다.  
 
-<쓸 만한 인간>에서 ‘가끔씩 이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그저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로 집착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고 하셨는데, 지금도 그 고민 중인가요? 적어도 ‘내가 연기를 해도 되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은 안 할 것 같은데.   
=그 고민을 안 하지는 않아요. 다만 이전보다는 고민의 횟수가 많이 줄었어요. 그 생각을 고쳐먹게 된 계기가 최근에 있었거든요. 모 선배님께서 그러시더라고요. “정민아, 너를 제외한 수많은 사람이 널 배우라고 생각하는데, 너는 왜 아직도 배우가 되려고 하는 거야? 난 그 마음이 뭔지는 알아. 그 마음을 존중하는데, 많은 사람이 바라보는 너는 이미 배우니까 그다음 스텝을 걱정하고 밟는 게 더 좋지 않을까? 배우로서 뭘 할지를 고민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야.”라고요. 그 이야길 듣고 뭔가 빡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인생 선배의 진심이 담긴 조언이군요. 배우의 기준은 다들 다르겠지만 당신에게 배우란 어떤 의미입니까.
=배우는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정확하게 전달을 해줘야 하는 역할이죠. 문제는 그걸 하고 있음에도 여타의 너무 많은 잣대들이 절 쪼그라들게 할 때가 많다는 겁니다. 보이지 않는 어떤 잣대들로 인해 ‘아, 나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지? 죄송합니다. 제가 깝칠뻔 했습니다!”가 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이렇게 팔에 타투도 새긴 거고요.(오른쪽 팔에 ‘참을 인(忍)’이 새겨져 있다) 내 안에 끓어오르는 게 너무 많은데 어떻게 할 수는 없고, 견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새긴 거죠. 그걸 저는 ‘좆밥근성’이라고 표현하는데…(일동 웃음)
 
-쑥 들어오는 표현인데요? (웃음) 유추하건대, ‘좆밥근성’이 당신이 성장하는 데 큰 힘이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맞아요. 그 ‘좆밥근성’으로 몇 년을 버틴 거예요. 어떤 과도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비관론자에 가까워서 저를 몰아세우긴 하지만, 그래서 열등감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그것이 결국 제가 성장하는 동력이 된다고 믿어요.

박정민의 귀를 책임져 주는 턴테이블

-이 턴테이블은 역사가 있는 건가요? 근사하네요.  
=제가 음악 듣는 걸 좋아해요. LP로 듣고 싶은 음악들이 있어서 장만한 놈입니다. 최근에 역사가 하나 생기긴 했어요. <변산> 개봉 주 일요일이었는데, 제가 새벽에 술을 엄청 먹고 들어와서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켜고 LP 음악방송을 한 거예요.   
 
-취중 디제이를 하셨군요. 몇 시에요?
=새벽 3시? 200∼300분 정도가 들으셨나 봐요. 화면을 턴테이블에 고정해두고 책도 읽어주고 음악도 들려주고…(머리 감싸 쥐며) 악! 술에 취해서 그만… 무슨 소릴 했는지 기억이 띄엄띄엄띄엄… 엄청 횡설수설했다는데 다행히 사고 친 건 없었대요. 그때 제 지인 한 명이 불안해서 듣고 있었더라고요. 제가 사고 치면 바로 전화하려고 대기를 타고 있었던 거죠.  
 
-앞으로 술버릇이…디제이?
=(화들짝) 아닙니다! 다시는!
 
-본인을 어떻게 믿나요. 한 번 맛을 봤는데. (일동 웃음)
=(절망) 하, 그날 왜 이렇게 많이 마셨을까.
 
-나름 아름다운 술버릇입니다. 팬들과 소통하기라니.  
=그날 이후 무대 인사 다니는데 팬들이 술을 계속 선물로 주더라고요. 소주 대병을! 라이브 해 달라고. (웃음) 주량이요? 술이라는 게 늘더군요. 진짜 못 마셨는데 지금은 늘어서 소주 2병 정도 돼요.  

집에서 한잔할 땐, 이 공간을 찾는단다.

-집에서도 종종 마시나요?
=여기 스피커가 놓인 공간이 제가 술 마시는 자리에요. 구석에 이렇게 쪼그려 앉아서 마셔요.  
    
-운치 있군요. <인사이드 르윈> LP가 눈에 들어오는데, 이 영화에 이런 대사가 있죠. “새롭지는 않지만 결코 나이 들지 않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포크송일 것이다.” 박정민에게 나이 들지 않았으면 하는 게 있다면 뭘까요?
=전 기본적으로 철이 좀 들어야 되는 인간이라 나이가 필요한데. (웃음) 그리고 아직 늙어보지 않아서 어떤 건 늙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굳이 찾아보자면 우리 집 개들. 복이 덕이요.
 
-연기는 타고나지 않으셨다고 했는데, 글은 타고난 자질 같다는 생각을 당신의 글을 읽으면서 했습니다. 당신 글엔 리듬감이 있어요.
=제가 쓴 글은 글이라고 하기는 뭐하고요, 그냥 말을 글자로 써넣은 겁니다.  
 
-그게 글인 거죠. 책에서 누군가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현상이 중요하다고 보시나요. 이면의 사정이 중요하다고 보시나요?”라고. 역으로 같은 질문을 드린다면요.  
=유기적인 건데, 이면을 우선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같은 시대엔 더더욱. 인터넷 댓글만 봐도 그렇잖아요. 현상만 바라보고 달리는 의견들이 너무 많아요. 보면서 생각해요. ‘지금 이걸 정확히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왜 더 들여다보지 않지?’  
 
-요즘 그런 생각을 합니다. 진실을 믿는 게 아니라, 믿고 싶은 게 진실이 돼 가는 시대 같다는 생각을요. 가짜뉴스와 맞닿은 문제고요.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라는 생각은 하나 조금 더 기다려주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질문을 배우에게 대입해 볼까요. ‘현상’을 ‘배우 이미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어쩌면 우리는 어떤 배우의 진짜 모습보다 그 배우의 이미지를 좋아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말이죠.   
=그건 제가 글을 썼던 이유이기도, 지금 글을 조심하는 이유이기도 한 것 같아요. 저는 그 말이 참 좋아요. “이 책을 보면 박정민 씨와 친해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는 말이요. 그런데 사실 그 300쪽 정도 되는 내용은 저의 극히 일부거든요. 그걸로 박정민이라는 인간을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죠. 심지어 그 글엔 ‘구라’도 있어요. 내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달하고 싶어서 각색도 하고 편집도 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그걸로 저를 완전히 판단하는 분들을 만나면 속으로 ‘엇!’ 하게 되더라고요.  
 
-연기를 빼고 당신이 욕망하는 게 있다면요?  
=말해도 재미없을 텐데…시나리오 잘 쓰는 것. 영화 많이 보는 것. 재미없죠? 이게 결국 연기와 연관된 것들이라.(웃음) 아, ‘배틀그라운드!’ 총싸움 게임인데, 그걸 잘하고 싶은 욕망은 있어요.
 
-(웃음) 연기 혹평을 받았다고 가정해 봐요. 당신에게 그 혹평을 돌아보고 고쳐나가는 게 중요할까요, 아니면 후회하지 않고 다음으로 나가가는 게 중요할까요.  
=음…잊어버리고 앞으로 나가는 게 나은 것 같습니다. 다음 연기에서 잘 보여드리는 것 말고는 만회의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지 않고 혹평에 대해 ‘제가 이래서 이랬고요, 저래서 저랬고요’ 하면 변명 밖에 안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리고 너무 오래 생각하다가 자칫 ‘니들이 뭘 안다고’가 돼 버리면 혼자 괴로우니까. (웃음)  
 
-잠시 사랑에 대해 묻고 싶어요. 언제고 ‘찌질하다’의 반대말은 ‘찌질했었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다’의 반대말은 ‘사랑했었다’일까요.  
=음. ‘사랑하다’는 그 안에서 반대말이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사랑하다’는 ‘행복하다’와 동의어인 동시에 ‘괴롭다’ 혹은 ‘두렵다’ 동의어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이상한 질문일 수 있는데, 박정민의 반대말이 있다면 뭘까요?
=박정민의 반대말. 하하하. 이것도 ‘사랑하다’와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서요. (웃음)
 
PM 06:30 직장인들이 하나둘 퇴근하는 저녁 시간. 자연스럽게 박정민의 23년 지기 ‘절친’들이 퇴근 후 야탑동으로 모여들었다. 막역한 사이인 사내들의 대화가 이렇구나. 거침없는 폭로와 상대를 향한 거침없는 태클이 이어진다. 박정민의 가장 개인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기회. 술집으로 자리를 옮겨 그의 친구들에게 박정민에 대해 묻기로 했다. 독한 혀들의 전쟁!
 
(※절친들의 박정민 폭로가 담긴 술자리 인터뷰는 2부에서 이어집니다.)  


정시우 /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