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한 편의 영화의 흥행 요인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제목 또한 대표적인 흥행 요인이죠. 특히 외화의 경우에는 그 때문에 복잡한 번역과정을 거쳐 개봉 거사를 치르게 됩니다.
최근의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신작, <마이 리틀 자이언트>는 왜 한국개봉명을 직역한 '나의 작은 거인' 혹은 원작 소설의 제목의 한국어 번역명인 <내 친구 꼬마 거인>이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이 영화의 원제이면서 소설의 원제이기도 한 'The BFG' (극 중 주인공 소녀가 거인을 부르는 애칭이 'Big Friendly Giant'랍니다.) 그대로 개봉했으면 사람들 반응이 어땠을까요?
이처럼, 영화에 대한 첫인상과 대중적 선호도, 혹은 국가별 문화 배경이나 사사로운 선입견까지도 모두 고려한, 쉽게 말해 오직 '흥행을 위해' 개명(?)을 시도하는 영화개봉명의 재미있는 사례들은 꽤 많습니다.
<사랑과 영혼>
영화의 정서를 한껏 살린 효과적인 개명 사례는 꽤 많습니다. 일단 영화팬들에게는 너무 익숙한 고전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내일을 향해 쏴라> 등의 영화는 모두 원제를 그대로 따르지 않은 경우입니다. 만약 이들 영화가 각각의 원제인 <Bonnie And Clyde>,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그대로 개봉했다면 저 시적인 아우라는 우리에게 전달되지 않았을 겁니다.
반대의 경우,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개명을 해야 했던 영화도 있습니다. 코린 파렐 주연의 <킬러들의 도시>는 잔인한 킬러들이 실제 도시 브뤼주(브뤼헤)에 머물면서 벌이는 사건을 다룬 영화인데 원제가 하필 <In Bruges> 였습니다. '브뤼주(브뤼헤)에서'라는 원제 그대로 영화를 개봉시켰다면 영화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는 어려웠겠죠?
박물관이 살아있다!
원제를 바꿔 흥행에 성공한 국내 개봉명 사례로는 대표적으로 <박물관이 살아있다!>가 있습니다. '박물관의 밤(Night At The Museum)'이라는 평범한 제목을 영화의 성격과 부합하는 제목으로 환골탈태시켰습니다. 이 국내개봉명은 당시 수입사인 20세기폭스코리아의 한 직원이 지었다고 전해집니다. 이 영화는 1편 개봉 당시 전국 관객 420만 명 이상을 동원할 정도로 흥행에 성공했죠.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대표적인 개명 실패(?) 사례로 언급되는 영화가 바로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원제,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와 달라도 너무 다른 제목입니다. 아예 뉘앙스가 다른 영화로 바뀌어버렸죠.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영화 속 제목의 시점을 바꿔버린 겁니다. 원래 제목을 레베카 홀이 연기한 비키와 스칼렛 요한슨이 연기한 크리스티나의 '바르셀로나' 이야기라고 단순하게 해석할 수 있다면, 바뀐 국내개봉명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기까지 했던 페넬로페 크루즈가 연기한 엘레나 캐릭터의 시점에서 이야기하는 제목 같습니다. 감독의 의도를 전면 수정한 제목으로 전국 관객 6만 명을 돌파했는데요. 원래 제목 그대로 개봉했다면 이만큼 흥행했을지, 이것이 마케팅 관점에서 성공 사례인지 실패 사례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겠죠.
가을의 전설
VS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가끔 오역 논란에 휩싸이는 영화 제목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영화가 바로 브래드 피트와 안소니 홉킨스가 함께 출연했던 영화 <가을의 전설>입니다. 이 영화의 원제는 'Legends Of The Fall'인데요. 제목의 'The Fall'을 무엇으로 해석할 것이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제목이 됩니다. 이 영화는 러드로우 대령의 세 아들이 한 여인을 사이에 두고 겪어야 했던 비극적인 가족사를 다룬 영화입니다. 가을이 영화 속 배경으로 등장하긴 하지만, 한 가족의 '몰락'과 '가을'의 전설 사이에는 큰 차이가 느껴집니다. 어찌 보면 오역이 아니라 영리한 개명 사례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가을의 전설'이란 제목에서 묘하게 쓸쓸한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역시 오역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죠. 이 영화의 원제는 'North by Northwest'인데 미국에서는 이 제목이 '노스웨스트항공을 타고 북쪽으로 가라'라는 뜻인지, 정말로 실제 미국 방위 단위인 북북서를 가리키는 'Northwest by North'를 재치있게 변형한 제목인지 의견이 분분했다고 합니다. 국내 영화팬들도 그렇기에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가 잘못된 번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죠. 다시 생각해보면 은근히 제작진의 본래 의도에 맞는 번역이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오역이 아니라 직역을 했는데 억울하게 오역 논란에 휩싸였던 영화도 있습니다. 바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저수지의 개들>이지요. 영화를 보고 나면 대체 저수지가 왜 제목에 등장하는지 의아할 겁니다. 저수지는 커녕 개울가도 나오지 않는 영화거든요. 타란티노 감독이 영화 제목을 이렇게 지은 건 저수지라는 단어가 창고를 가리키는 은어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상영 내내 창고에서 벌어지는 영화로서 참으로 타란티노다운 제목이었습니다.
그대로 제목을 직역해 어쩔 수 없이 오역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영화도 있습니다. 바로 <혹성탈출> 시리즈입니다. <혹성탈출> 시리즈의 원제는 'Planet Of The Apes'로, 직역하면 유인원 행성이란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는데, 한국 제목은 개봉 당시 일본식 한자 표기인 '혹성'을 그대로 가져다 번역한 탓에 지금의 제목으로 굳어졌습니다. 이제는 다른 단어로 대체할 수도 없을 정도로 '혹성탈출'이란 말이 하나의 영화명으로 인식되면서 새로 리부트된 영화 제목도 어쩔 수 없이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등 부제를 달아서 개봉하고 있습니다.
부제목이 어려워서...
그런데 대체 영화의 부제는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던 걸까요? 올해만 하더라도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 <닌자터틀: 어둠의 히어로>, <인디펜던스 데이: 리써전스>, <잔예: 살아서는 안되는 방>, <아이스 에이지: 지구 대충돌>, <마신자: 빨간 옷 소녀의 저주>, <메카닉: 리쿠르트>, <크리피: 일가족 연쇄 실종 사건> 등등 부제가 달린 제목의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이젠 심지어 한국영화도 부제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시발, 놈: 인류의 시작>이 그것이죠.
그런데 거꾸로 부제목을 지운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퍼스트 어벤져>입니다. 당시 이 영화는 코믹스를 기반으로 한 영화가 마케팅에 오히려 해가 될 수 있겠다는 판단을 했는지 원제인 'Captain America: The First Avenger'에서 캡틴 아메리카를 쏙 빼버렸습니다. 당시 마케팅 분위기로 캡틴 아메리카가 왠지 사대주의를 조장하는 것 같다고 여기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캡틴 아메라카: 시빌워>라고 당당하게 제목에 이름을 넣지 않습니까? 정말 캡틴 아메리카만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제목 금지령?
최근 <곡성>이 개봉하면서 실제 '곡성'에 대해 사람들이 오해할까봐 곡성 군수가 직접 나서 해명 글을 기고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수십 년 전에 외화의 번역 제목 때문에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었죠. 바로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라는 영화 때문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 한국에 <우편배달부는 벨을 두 번 울린다>라는 친절하게 해석한 제목이었는데, 실제 우편배달부들이 제목에 반발해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부득이하게 제목을 바꿔 개봉해야 했던 사례로 남아있습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가로등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