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시간이 꽤 남았지만,
올 여름 시즌 극장가는
가히 '한국영화의 승리'라고
정리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제이슨 본>, <수어사이드 스쿼드>
같은 할리우드 대작들이
큰 재미를 보지 못한 사이,
'여름 겨냥 한국영화 BIG 4'
<부산행>, <인천상륙작전>
<덕혜옹주>, <터널>이 모두
손익분기점을 훌쩍 넘기며
현재까지도 흥행 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중이다.
오늘 씨네플레이는
이 네 작품이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각자의 요인을
'지극히 주관적으로'
분석해보고자 한다.
<부산행>
개봉 7월 20일
누적관객수 10,969,470명
(15~17일 유료시사 561,158명)
(8월 16일 기준)
#가족애와_신파의_힘
<부산행>이
국내 관객에게 아직 낯선 '좀비물'을
장르로 삼았다는 점은
오히려 흥행면에서
리스크로 작용할 만한 요소였다.
다만 <부산행>은
(어쩌면 연상호 감독에겐
가장 동떨어져 보였던)
'가족애와 신파'라는 방패까지
든든하게 심어놓았다.
효과는 제대로였다.
'새롭게 시도하는 영화'의 정체성으로
젊은층의 흥미를 끌되,
오히려 이를 반기지 않을
중노년 관객층의 주목을
제대로 붙들 수 있는 가족애를
강조해 모든 관객층의 구미를
적절하게 만족시켰다.
참고로 천만 관객을 동원한
국내 작품 14편 가운데
신파 코드를 밀어붙이는 영화는
<명량>, <국제시장>, <7번방의 선물>
<광해, 왕이 된 남자>, <태극기 휘날리며>
<해운대>, <변호인>, <실미도>
그리고 <부산행>까지 9편,
절반이 넘는다.
#마요미와_마블리
<부산행>은 대단한 인기만큼이나
캐릭터와 배우에 대한
호불호가 갈렸던 작품이다.
특히 공유, 안소희, 김수안의
연기력과 그들이 맡은 배역에 대한
불만이 제법 많이 제기됐다.
하지만 마동석에 대한 지지는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웠다.
대체로 평면적이었던
<부산행>의 캐릭터들 가운데,
상화는 단연 돋보이는 인물이다.
아내를 지극히 떠받들고
불의에는 불같이 화를 내며,
사랑하는 사람을 구해야 할 땐
가장 먼저 행동하는 마동석의 상화는
가장 이상적인 남자의 모습이자
<부산행>의 진정한 히어로였다.
마동석의 열연이 돋보이는
바로 '그 장면'이
관객들의 눈물샘을
제일 강력하게 자극하는
대목이라는 점 또한
마동석의 어마어마한 매력을
실감케 하는 요소다.
#문부장의 예언
씨네플레이 에디터들은
영화 개봉일에 맞춰
'<부산행> 천만 돌파할까?'라는
방담을 나눈 바 있다.
그때 에디터는 1168만 명을
동원할 거라고 내다봤고,
이미 천만을 돌파한
현재 관객 추이로 봤을 때
그에 근접한 수치의 관객수로
극장에서 내려올 것으로 예상된다.
성지순례 준비하시라.
<인천상륙작전>
개봉 7월 27일
누적관객수 6,482,741명
#득이_된_혹평
<인천상륙작전>은 언론시사 직후
혹평 세례를 맞닥뜨려야 했다.
대부분 '철지난 반공영화'라는 평이었다.
하지만 대중에게 공개된 영화는,
언론과 평단의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무섭게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던
<부산행>을 추월해
당당히 박스오피스 선두를 차지했다.
평소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에
호의적이었던 중노년층 관객들이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였던 것도 아니다.
"촌스럽다"는 평은
"재미없다"는 평보다
힘이 약했던 것일까.
오히려 20,30대들이 주관객층이었다.
MBC 뉴스는 이런 현상을 두고
“이념에 빠진 영화 평론가들의 실수”라고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며
영화 기 살리기에 일조했다.
호재가 된 건 물론이다.
영화 자체에 대한 노출도를 올리면서,
“영화가 별로라니 안 봐야겠다”는 의견은커녕
“도대체 어떻길래 그러는 거야?”하는
호기심을 끌었다는 게 중평이다.
#열렬한_지지
<인천상륙작전> 지지를 자처한 이들은
타 영화의 팬들보다는
훨씬 공격적인 태도로 곳곳에서 드러냈다.
대개의 팬들은 영화에 대한 칭찬만
간단하게 남겨놓는 반면,
<인천상륙작전>의 경우엔
애국심을 전면에 내세운 채
영화를 혹평한 언론과 평자들을 향한
날선 적개심까지 동시에 드러내며
편 가르기를 주도했다.
유별난 응원은 비단
일반 관객만의 몫은 아니었다.
<인천상륙작전>에 30억을 투자한
공영방송사 KBS는
영화를 홍보하기 위한 기사를
거부한 기자들을 징계에 회부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시작부터 불법이라는
논란이 거셌던 투자였다.
<덕혜옹주>
개봉 8월 3일
누적관객수 4,105,308명
#열일한_손예진
손예진은 올해
<비밀은 없다>와 <덕혜옹주>를
내놓으며 두 영화 모두
커리어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다는 극찬을 받았다.
가시적인 광기가 인상적이었던
<비밀은 없다>와는 또다른,
<덕혜옹주> 속 차분하고 절절한 연기는
손예진이 아닌 다른 배우에게
기대하기 힘든 명연이었다.
촬영을 마친 후에도
손예진은 열일을 멈추지 않았다.
개봉 전 부산, 대구에서 개최한
시사회에도 직접 발길을 옮긴 그녀는,
개봉 이후에도 수도권 각지를 돌며
관객들의 뜨거운 관심을
직접 목격하고 있다.
최근 손익분기점을 넘었을 땐
SNS의 수많은 팬들이
"언니, 10억 회수를 축하해요!"
라며 <덕혜옹주>의 제작비를 보탠
손예진을 축하하기도 했다.
#성공적인_우회
영화 속 장한 역을 맡은 배우 박해일은
"더운 날씨지만 이열치열의 자세로
다가갈 수 있는 뜨거운 마음의 영화"
라며 <덕혜옹주>를 소개했다.
사실 <덕혜옹주>는
여름시즌을 겨냥한 여타 영화들과는
색깔이 확연히 다르다.
뚜렷한 장르와 말초적인 쾌감을
강조하는 대개의 여름영화와 달리,
허진호 감독의 <덕혜옹주>는
역사의 아픔을 평생 감내해야 했던
실존인물 덕혜옹주의 삶을
느릿느릿하지만 묵직한 드라마의
톤을 내내 유지하며 그려냈다.
그래서 개봉 전부터
영화의 흥행 가능성에
우려를 드러내는 목소리도 꽤 있었다.
하지만 결국 <덕혜옹주>는
<부산행>의 좀비,
<인천상륙작전>의 전쟁,
<터널>의 재난
온통 자극적인 오락영화들 사이에서
관객의 숨통을 트여준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터널>
개봉 8월 10일
누적관객수 3,532,142명
#믿고보는_하정우
<터널>은 하정우의 원맨쇼다.
주인공이 홀로 터널에 갇혀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인물이기 때문에
여타 작품들보다
배우에 대한 의존도가
막대할 수밖에 없는 영화다.
<터널>이 개봉 일주일 만에
350만 관객을 넘길 수 있었던 건
이미 <더 테러 라이브>(2013)로
원맨쇼의 가능성을 증명한
하정우에 대한 믿음의 공이 크다.
더군다나 그는 최근 5년간 출연한
10개의 작품 중 8개가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성과를 만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하정우가
더욱 깊숙하게 관여한
<577프로젝트>와 <허삼관>은
흥행에 실패했다.)
<터널>의 하정우는
그런 관객들의 믿음을
충분히 만족시킬 만한 연기를 보여줬다.
고립된 상황에서 느끼는 불안만큼이나
하정우 특유의 능글맞음으로
구현한 우스운 순간들이
숨막힐 듯한 생존기에
다채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더불어 <터널>은
하정우의 전매특허인
먹방의 완결판을 보여줬다.
매일 먹는 끼니를 챙기는 장면에서조차도
그렇게 맛있게 먹는 하정우가
'생존을 위해서' 극소량의 음식을
먹을 때의 모습은
또다른 경지의 먹방 레전드감이다.
#현실의_기시감
애초에 정수(하정우)가
터널 안에 갇힌 건
공사비를 횡령하기 위한
부실공사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정수를
괴롭히는 건 사방을 가로막은
돌덩이와 철골뿐만이 아니다.
금방 구출될 것 같았던
그의 구조가 자꾸 지연되는 건
정부의 무능한 사고 대처와
경제적 손실을 이유로
정수의 생사를 외면하는
대중들 때문이다.
2014년 4월
팽목항에서 벌어진 세월호 참사에
정부가 얼마나
무능하게 대처했는지
똑똑히 본 사람들이라면,
<터널> 속 답답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2년 전의
처참한 순간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