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주위에서의 반응은.
=‘쟤는 왜 또 저런 선택을….’ (웃음) 걱정을 많이 하더라. 무거울 수 있는 작품이고, 엄마 캐릭터가 되는 과정 자체가 결코 만만치 않으니까. 나도 잘 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으로 엄마의 감정을 머금고 가야 했다. 그 감정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고, 눈빛 하나에도 그 감정이 묻어나야 했다. 그래서 주변에선 이 힘든 작업에 대한 걱정을 했던 것 같다.
-이전에 엄마 역할을 해본 적이 없고 도회적인 이미지도 강해서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다 큰 아들을 둔 탈북 여성 캐릭터와 배우 이나영의 이미지가 쉽게 매칭되지 않았다.
=작품을 선택할 때 ‘이 이미지가 나와 잘 맞을까’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야기와 캐릭터에 설득됐다면 그 캐릭터가 되려고 노력할 뿐이다. 만약 관객이 캐릭터에 몰입이 안 됐다면 그건 내 연기의 탓이지 내 이미지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미지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기 때문에 좀더 과감하게 선택하는 걸 수도 있겠다.
=그럴 수도 있는데, 사실 과감한 선택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남들이 보기엔 도회적인 이미지니 뭐니 하면서 왜 갑자기 변신하려 그러나 싶겠지만 나는 늘 이런 작품을 하고 싶었다. 의외로 식성과 취향도 아저씨스럽다. 스테이크 먹으면 라면 하나 먹어야 하고. (웃음)
-<뷰티풀 데이즈>에선 연기적으로도 도전할 게 많았다. 예를 들면 북한말이라든지.
=작품에서 사투리 연기를 처음 해본다. 일종의 언어 하나를 새롭게 숙지해야 하는 셈이라, 촬영 전에 언어를 익히는 것도 중요한 과제 중 하나였다. 북한말과 중국말의 경우 언어를 지도해주는 선생님이 따로 계셔서 열심히 배웠다. 억양의 디테일을 잡는 게 어려워서 귀찮을 정도로 계속 선생님한테 물어봤다. 사투리 연기에 대한 걱정이 많았는데 하고 나니 뿌듯하더라.
-의상과 헤어 등 엄마 캐릭터가 보여주는 룩도 흥미로웠다.
=시장에서 직접 의상도 고르고, 옷을 많이 입어봤다. 의상에 대해선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공간과 상황에 맞는 옷을 입는 게 중요하고, 옷을 입었을 때의 느낌도 연기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엄마의 룩을 표현하는 과정은 의외로 만만치 않았다. 탈북 여성, 시골 여성처럼 보이게 애썼다는 느낌을 주고 싶지 않았다. 영화에서 옷을 많이 갈아입지 않기 때문에 하나의 의상을 고를 때 신중하게 골랐다. 10대의 과거, 20대의 과거 그리고 30대의 현재를 표현하는 과정에선 특히 현재의 의상이 어렵더라. 술집을 운영하는 30대 여성의 모습을 어떻게 전형적이지 않게 잘 살릴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먼저 머리를 빨갛게 염색했다. 사람들이 쉽게 하지 않을 것 같은 빨강으로. (웃음) 의상이나 소품에 붉은 계열이 들어가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어서 빨간 가죽 코트도 계속 입었다. 어떤 건 너무 과하고, 어떤 건 너무 수수하고, 어떤 건 너무 딱이고, 그런데 너무 딱이어도 재미가 없고. 티는 많이 안 나겠지만 의상에 신경을 많이 썼다. 엄마의 10대 시절을 연기할 땐 10대의 얼굴이 되는 게 어려웠고, (웃음) 30대는 방금 말한 이유들로 어려웠고, 20대 시절을 연기할 때가 제일 재밌고 편했던 것 같다. 나이 많은 조선족 남자와 결혼해서 시골에서 애 키우며 생활하는 20대 땐 편한 추리닝 차림이어도 괜찮으니까. 옷이 편하니까 괜히 마음도 편해지더라.
-아들로 출연하는 신인 장동윤, 남편 역의 오광록 등 상대 남자배우들과의 작업은 어땠나.
=장동윤씨는 준비를 정말 많이 해왔고 또 열심히 했다. 영화에서 아들과 엄마는 항상 감정이 꽉 찬 채로 붙는데, 감정 신을 잘 소화한 것은 물론이고 중국어와 연변어도 완벽하게 준비해왔다. 오광록 선배와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6) 때 뵀는데, 그땐 같이 연기하는 신이 없었다. 재밌는 일화가, 그때 선배님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끝나고 가진 인터뷰에서 다음엔 저와 멜로를 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런데 이번에 그 말이 현실이 됐다. “선배님, 저희 진짜 멜로로 만났어요!” “그래, 그때 내가 그랬지.” “네, 부부로 만났어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