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미언 셔젤

<위플래쉬> <라라랜드>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감독 데이미언 셔젤의 신작 <퍼스트맨> 개봉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유의미한 순간 중 하나로 남은, 달에 도착한 최초의 인간 닐 암스트롱의 이야기를 한 <퍼스트맨>은 셔젤 감독의 첫 우주영화다. 그간 주로 음악을 기반으로 작품 세계를 구축해 온 그의 신작이 우주에서 펼쳐지는 위대한 도전을 담았다는 사실은 일견 생뚱맞아 보이지만 어떤 면에선 그의 선택답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그는 언제나 영화 속에서 성공을 위해 달려나가는 한 인간의 열망에 집중해 왔기 때문이다. 감독의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키워드로 데이미언 셔젤의 이모저모부터 신작에 쏟아진 논란까지 소개해 봤다.

퍼스트맨

감독 데이미언 셔젤

출연 라이언 고슬링, 클레어 포이

개봉 2018.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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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의 연결고리

많은 이들이 셔젤 감독의 데뷔작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위플래쉬>는 사실상 그의 두 번째 장편 영화다. 데뷔작은 <가이 앤 매들린 온 어 파크 벤치>라는 작품. 2009년에 발표한 뮤지컬 드라마다. 데뷔작을 통해 재즈 트럼펫 연주자의 이야기를 들려준 그는 차기작 <위플래쉬>로 재즈 드러머를 조명했다. 이어서 발표한 <라라랜드>에서는 다시 뮤지컬이라는 형식에 재즈 피아니스트의 인생을 수놓으며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재즈 음악을 향한 일관된 그의 애정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가이 앤 매들린 온 어 파크 벤치> 포스터

실제로 데이미언 셔젤은 음악 전문학교인 프린스턴 고등학교에서 드럼을 연주했다. <위플래쉬>가 탄생한 배경은 그의 자전적 이야기 속에 있었던 것이다. 재즈 드러머를 꿈꾸고 플래처 교수처럼 엄격한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지만 재능이 없다는 평가에 결국 드럼을 그만두고 말았다는데. 이 한을 풀기라도 하듯이 그는 <위플래쉬>를 통해 광기 어린 열정을 표출했다.

<위플래쉬>

그가 영화로 음악적 한풀이를 하기에 앞서 대학시절 운명의 짝꿍 저스틴 허위츠와의 만남은 중요했다. 하버드 기숙사 룸메이트로 만난 저스틴 허위츠는 이후 데이미언 셔젤의 거의 모든 영화 작업에서 음악 감독을 도맡아 시너지를 발산해 왔다. <퍼스트맨> 역시 저스틴 허위츠가 음악 감독으로 함께했는데, 이번엔 셔젤의 재즈 없는 첫 영화라는 점이 새롭다. 대신 적막한 우주를 절제된 선율로 가로지르는 왈츠, 달에 가는 프로젝트를 정치적 쇼로 비난하는 흑인 래퍼의 리듬 등으로 메우며 이전과는 또 다른 차원의 음악적 감각을 보여준다.

저스틴 허위츠
가이 앤 매들린 온 어 파크 벤치

감독 데이미언 셔젤

출연 버나드 차젤, 디자이리 가르시아

개봉 미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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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플래쉬

감독 데이미언 셔젤

출연 마일즈 텔러, J.K. 시몬스

개봉 201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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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

감독 데이미언 셔젤

출연 엠마 스톤, 라이언 고슬링

개봉 2016.12.07. / 2017.12.08.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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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미언 셔젤의 페르소나?
<퍼스트맨> 라이언 고슬링

라이언 고슬링은 <라라랜드>에 이어 다시 주인공을 꿰찼다. <라라랜드>의 세바스찬이 이번엔 달에 간 최초의 인간, 닐 암스트롱을 연기한다. 단 두 편의 출연으로 페르소나 운운하기엔 조금 민망하지만, 라이언 고슬링이 데이미언 셔젤에게 신뢰감을 준 배우라는 것만큼은 명백해 보인다. 그런데 고슬링 말고도 그의 영화에 두 번 출연한 배우는 또 있다. 악독하기로 명성 높은 플레처 교수로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긴 J. K. 시몬스다. 그는 <위플래쉬> 이후 <라라랜드>에서 재즈클럽 사장 빌로 출연해 관객들의 반가움과 두려움 사이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왼쪽부터) <라라랜드>의 라이언 고슬링, J.K.시몬스

그런데 이 둘 말고도 셔젤의 영화에 자주 등장한 배우는 따로 있는데. 바로 데이미언 셔젤의 여동생 안나 셔젤의 활약이다. 그녀는 셔젤의 데뷔작 <가이 앤 매들린 온 어 파크 벤치>의 로라 역을 지나 <라라랜드>의 캐스팅 오디션 보조 새라 역, <퍼스트맨>의 백악관 직원 역할까지 3차례의 등장을 했다. 화면에 등장한 시간은 찰나일지 언정 엄연한 최다 출연 배우다. 앞으로 만나 볼 데이미언 셔젤의 작품들에서 그녀의 얼굴을 찾아보는 것도 재밌는 포인트가 될 수 있겠다.

<라라랜드>의 안나 셔젤(맨 왼쪽)

각종 최연소 타이틀

데이미언 셔젤이 젊은 천재 감독으로 불리는 이유는 그가 보유한 각종 최연소 기록 덕택이기도 하다. 그가 29세에 만든 작품인 <위플래쉬>는 87회 아카데미에서 편집상, 남우조연상, 음향편집상을 수상했다. 2년 뒤인 2016년 공개된 <라라랜드>로 인해 데이미언 셔젤의 저력은 공공연하게 각인된다. 발표한 작품 수에 비해 수상 목록은 아주 화려하다.

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연소 감독상을 수상한 데이미언 셔젤.

작품에 쏟아진 압도적인 인기와 찬사는 데이미언 셔젤과 <라라랜드>를 각종 시상식에 줄 호명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1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으며, 74회 골든글로브에서는 노미네이트된 7개 부문에서 모두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데이미언 셔젤은 89회 아카데미 시상식 감독상, 74회 골든글로브 감독상, 69회 미국 감독조합상 모두에서 최연소의 타이틀 수상을 달성했다. 그의 나이 서른둘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특히 89회 오스카 시상식에서는 최우수작품상까지 수상할 뻔했으나, <문라이트> <라라랜드>로 잘못 호명되는 실수를 빚으며 해프닝으로 그쳤다.

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이 잘못 발표된 현장.

셔젤의 트레이드 마크
<위플래쉬>

서두에 살짝 언급한 대로 그의 작품에는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지만 공통적으로 드러난 그만의 인장도 엿보인다. 음악을 중요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점과, 성공에의 열망에 사로잡힌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 전부는 아니다. 찬찬히 뜯어보면 더 많은 공통점이 보인다. 친절하게도 해외 영화 사이트 IMDB에서는 이를 엮어 제작한 '데이미언 셔젤의 트레이드 마크' 동영상을 공개했다.

<라라랜드>

데이미언 셔젤의 영화엔 놀라운 재능을 가진 캐릭터들이 존재하고, 복잡한 트래킹 숏(움직이는 연기자를 따라 움직이는 촬영)이 등장하며, 좌우를 빠르게 오가는 카메라 기법이 시그니처로 출몰한다. 더하여 서사 면에서는 남녀의 운명적인 만남의 순간을 다루는데, 그러나 이들은 끝내 함께 하지 못하고 각자의 길을 가는 식으로 자주 마무리된다. 아마도 데이미언 셔젤의 시선은 우리 삶에서 사랑과 일을 동시에 쟁취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

<라라랜드>

<퍼스트맨>에 쏟아진 뜻밖의 논란
<퍼스트맨>

그의 신작 <퍼스트맨> 공개되고 세계관의 확장이라는 찬사가 따라붙었다. 그러나 이 영화로 인해 그는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게 됐다. 성조기 논란이다. 바로 닐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해 미국의 국기를 꽂았던 상징적인 장면을 영화 <퍼스트맨>에서 재현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이는 곧 자국민들의 원성을 샀다. 냉전시대, 소련과 경쟁적으로 우주 탐사를 진척해 나가던 미국은 결국 달 표면에 성조기를 꽂은 승리자였다. 미·소 세력의 기싸움에 승리했단 사실을 차치하고서라도 이는 곧 미국이 이룩한 위대한 성취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였다.

<퍼스트맨>

<퍼스트맨>의 성조기 생략에 대해 직접적으로 비난하고 나선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성조기가 등장하지 않는 아폴로 11호가 나오는 <퍼스트맨>을 보지 않겠다달 착륙이 미국의 성과라는 것이 부끄럽다니 안타깝다. 닐 암스트롱과 달 착륙하면 성조기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데.”라고 말했다. 그를 비롯한 보수진영의 반발이 거센 가운데, 아폴로 11호의 우주 비행사 버즈 알드린 또한 비판을 암시하는 트윗을 올렸다.

버즈 알드린의 트윗 내용. #미국인의자랑 #자유 #영광 #아폴로11 #아폴로50주년 등의 해시태그가 보인다.

이에 대한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답변은 어떨까. 그는 LA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성조기가 물리적으로 꽂히는 장면은 초점을 두지 않기로 했던 장면이고, 이는 조금의 정치적 의도가 없다고 밝혔다. 또한 주연 배우 라이언 고슬링은 달 착륙은 다만 미국의 업적뿐 아니라 인류 전체의 업적이다. 암스트롱도 자신을 미국의 영웅이라고만 생각했다고 보지 않았을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2012 8월 타계한 닐 암스트롱의 답변은 들을 수 없지만, 그의 아들들은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혀온 상태다. 북미에서 <퍼스트맨>이 그다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는 건 이 점과 직결된다. 지난 주말(10 19~21)까지 집계된 북미 박스오피스 상황은 <퍼스트맨> 5위에 머물렀으며(<할로윈>의 압도적 1, <스타 이즈 본>2), 상영 2주 차에 접어든 현재 2,999만 불의 성적으로 기대치에 비해 미미한 관객 수를 기록하고 있다.


씨네플레이 심미성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