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망했다고 ‘이생망’을 외쳐 본들 후생을 알 도리가 없다. 다음 생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현생에서 상상해 보는 건 자유다. 특히나 이번 생에서 꿈꾸기 힘든 인생을 영화 속에서 만난다면…. 이번 뒹굴뒹굴 VOD는 개인적으로 영화 속에서 마주친 매력적인 인생에 바치는 헌사가 될 것이다. 이 사사로운 리스트를 전하는 동시에 독자들이 경험하고픈 영화 속 인생들도 댓글로 만나길 기대해 본다.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

リトル・フォレスト 夏・秋

감독 모리 준이치

출연 하시모토 아이, 마츠오카 마유, 미우라 타카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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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층 최고 인기 예능이라는 <나는 자연인이다>를 즐겨 본다. 모든 번뇌의 원인인 속세를 한순간에 내려놓고 무위자연(無爲自然)하며 살아가고 싶은 순간이 종종 있다. 그럼에도 선뜻 시도하지 못하는 건 속세의 달콤함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일 테다. 젊은 농사꾼이 나오는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을 보곤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 영화에 나오는 전원생활은 은퇴한 직장인이 아닌 젊은 여성의 삶이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 젊은 농사꾼 이치코(하시모토 아이)에게는 해야 할 일이 부지런히 쌓여있다. 시장에 가려면 자전거를 타고 30분이나 달려야 하는 곳에 사는 그녀는 주로 대부분의 끼니를 자급자족하며 살아간다. 매 끼니의 정성스러운 과정을 지긋이 지켜보다가 첫 술을 뜬 그녀의 입가에 번진 미소를 보는 것이 이 영화의 킬링 포인트.


와일드 테일즈: 참을 수 없는 순간

Relatos salvajes

감독 데미안 스지프론

출연 리카도 다린, 레오나르도 스바라글리아, 다리오 그란디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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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조절 장애는 바라지 않지만 밥상 엎고 싶은 순간은 많지 않나. 사실 이 영화처럼 살고 싶다고 말하는 건 위험하다. <와일드 테일즈: 참을 수 없는 순간>은 분노의 상황에 놓인 주인공이 모든 분노를 표출해버리고 마는 6개의 극단적인 에피소드를 다룬 옴니버스 영화다. 남미 국가인 아르헨티나, 스페인에서 만들어진 영화답게 열정적인(이라 쓰고 ‘불같은’이라고 읽는다) 성격의 인물들이 관객들의 분노를 대리 수행해준다. 아버지의 원수를 손님으로 만난 웨이트리스, 보복 운전자들의 포기 없는 추격전 등의 에피소드를 지나 가장 압권은 마지막 에피소드인 ‘이판사판 결혼식’. 결혼식 파티에서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 여자가 본인의 결혼식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버리는 내용이다. 한 성격하는 한국인들, 스포일러를 당했다 해도 이 영화가 궁금해지지 않는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The Amazing Spider-Man

감독 마크 웹

출연 앤드류 가필드, 엠마 스톤, 리스 이판, 마틴 쉰, 샐리 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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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택은 순전히 너무나 문과적인 성향의 필자가 경외심을 갖는 피터 파커(앤드류 가필드)의 ‘공대 천재’ 이미지 때문이다. 다른 공대 천재가 나오는 <소셜 네트워크>를 떠올리기도 했지만 영화 속 마크 주커버그(제시 아이젠버그)는 인성에서 실패. 그러고 보니 피터 파커를 연기한 앤드류 가필드가 주커버그에게 통수를 맞은 희생양 중 한 명으로 나오기도 했다.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 맨> 시리즈를 좋아하지만, 기왕 내가 피터 파커가 된다고 하면 토비 맥과이어보단 앤드류 가필드를 택할 것이다. 그야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피터 파커가 훨씬 멋있으니까. 명석한 두뇌는 물론이고, 기존의 지질한 캐릭터에서 벗어나 재치 있는 유머 실력까지 겸비했다. 여러 면에서 완벽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피터 파커. 약간의 고소공포증을 가진 필자에겐 매일 스카이라인을 자유롭게 점프하는 취미마저 부러움의 대상이다.


패터슨

Paterson

감독 짐 자무쉬

출연 아담 드라이버, 골쉬프테 파라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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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적인 삶과는 거리가 먼 필자에게 <패터슨>의 패터슨(아담 드라이버) 역시 경외의 대상이다. 자유로움에 스스로를 놓아두다가도 종종 ‘규칙’을 잃어버린 삶은 자책감이 되어 돌아오기 마련. 영화 속 패터슨은 정해진 시간에 따라 정해진 코스를 이동하는 버스 운전사로 일한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잠자리에 든다. 심지어 영화는 회사 동료와 매일 동일한 인사, 동일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까지 보여준다. 패터슨의 단조로운 삶 자체가 평온함을 안겨 주면서도 사이마다 활력을 주는 요소들이 있다. 가령, 강아지를 산책시키러 나와 단골 바에 들러 맥주 한 잔을 마신다던가, 매 순간 시상을 떠올리며 시를 써 내려가는 일상이라던가. 어떤 극적인 사건도 발생하지 않는 그의 일상에 이따금씩 끼어드는 몇몇 에피소드들이 더욱 감격스럽게 다가오는 이유다.


테이킹 우드스탁

Taking Woodstock

감독 이안

출연 헨리 굿맨, 에드워드 히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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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의 미국에 살았다면 아마도 히피가 되지 않았을까. <테이킹 우드스탁>은 히피들의 성지가 된 우드스탁 록 페스티벌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평화와 반전, 자유와 영혼을 외치던 히피족들이 저항 정신이 깃든 록 음악에 열광하던 그 시절. 영화가 아니면 자료화면으로나 접해온 1960년대 미국을 향해 어쩐지 향수 어린 기분이 드는 건 아마도 동경 비슷한 감정이겠다. 당대의 최고 뮤지션이던 재니스 조플린, 조안 바에즈, 지미 헨드릭스 등의 라인업으로 최대 40만 명의 입장객을 운집한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모든 록 페스티벌의 시초가 된 기록적인 사건이었다. 대만 출신 이안 감독의 손에서 탄생된 <테이킹 우드스탁>은 페스티벌의 성공적 개최만을 조명하지 않으며, 위험한 곳으로 향하는 히피들의 이야기를 하는 데도 서슴없다.


씨네플레이 심미성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