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 스포일러 방지 패러디 포스터

최근 <부산행>의 흥행과 함께 관객과 언론, 나아가 영화계 모두 스포일러 논란에 시달려야 했다. 관객은 영화를 보기 전에 쏟아지는 온갖 정보의 홍수 속에서 스포일러를 골라내느라 힘들었을 테고, 언론 역시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입장에서 관객들이 질색하는 스포일러를 걸러내느라 힘들었을 거다. 영화를 만든 제작사나 홍보해야 하는 마케터들 사이에서도 스포일러노출로 인한 관객수 저하 등의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과연 어디까지가 '스포일러'이고, 어디까지가 '관람팁'일지 누가 정한 기준 같은 게 있는 걸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혹시 내가 알기 싫은 건 스포일러고, 내가 알고 싶으면 정보가 되는 건가? 한 편의 영화를 보기 전에 알게 될 모든 정보가 따지고 보면 누군가에겐 스포일러가 되는 건 아닐까?

스포일러는 무엇인가

스포일러란, 자동차에서는 속도가 올라갈 때 차체가 뜨는 걸 막아주는 장치를 말하고, 비행기에서는 날개의 움직임을 보조해주는 장치를 말한다. 재미있는 것은 문학과 영화 등에 한해서는 정반대의 의미로 쓰인다는 점이다.

즉, 스포일러란 드라마틱한 이야기의 구성과 흐름을 방해하는 음모 요소를 밝혀버리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절정과 결말을 포함한 플롯의 최종 도달점에 관한 세부사항은 스포일러로 간주한다.
이야기의 즐거움을 플롯의 디테일이 공개되는 서스펜스에서 찾는 사람들에게는 스포일러가 작품의 관람을 망쳐버릴(spoil) 수 있는 요소인 것이다. 

반전을 공개하는 것?

이제는 스포일러에 대한 의미를 지닌 일반 명사처럼 쓰이는 <유주얼 서스펙트>의 캐릭터 '카이저 소제'는 현대 영화사의 대표적인 스포일러다. (영화의 반전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원한다면 링크를 클릭해서 읽어보시길.)
이 캐릭터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 조차 누군가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영화의 구조, 그러니까 플롯이 만들어내는 서스펜스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스포일러는 반전이 등장하는 영화의 반전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스포일러는 스릴러 문학 작품에서뿐만 아니라 장르 영화에서도 아주 독특한 영화적 장치로 쓰일 수 있다.

스포일러 하면 또 히치콕

영화계는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스포일러와 전쟁을 치러 왔다. (무한도전 제작진이 박명수 씨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 이상으로) 수십 년 전 극장에서도 관객들과 영화 제작자들은 항상 스포일러에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하지만 최근 <부산행> 스포 방지 패러디 포스터처럼 유별나고 엄격하게 스포일러를 금지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스포일러를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흥행 요소로 활용할까를 고민했다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스포일러를 대놓고 영화의 흥행 요소로 활용한다. 그 대표적인 영화가 <싸이코>였다. 이 영화는 <유주얼 서스펙트> 훨씬 이전에 이미 스포일러의 개념과 효과에 대해 증명한 영화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한 감독의 의도에 따른 것이었다.
히치콕 감독은 이 영화의 구조와 반전 요소, 스포일러에 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적 있다.

난 이 영화가 관객에게 충격을 줬다는 점에서 큰 만족을 느껴요. 대단히 중요한 점이죠. 난 이 주제에 대해서나 배우의 연기는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영상, 음향, 그리고 관객이 비명을 지르게 만드는 기술적인 요소엔 관심이 많지요. 영화적 기법으로 대중의 정서를 움직일 수 있다면 나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싸이코>로 이걸 만들어냈죠.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 건 영화의 메시지도 뛰어난 연기나 스토리의 재미도 아니고 순전히 영화적 방식 때문이었어요.

히치콕 감독은 영화가 상영할 때 몰래 극장에 들어가 관객들의 비명 소리를 듣는 걸 즐겼다고 한다.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이야기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결국 클라이막스에 이르러 인물의 정체가 공개되기까지의, 그러니까 스포일러가 공개되기까지의 과정을 히치콕 감독은 철저하게 디자인했던 것이다.

그런데 <싸이코>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스포일러가 특정 인물의 정체나 음모의 공개 여부를 떠나서 플롯의 흐름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요소를 지칭하는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영화의 관람을 방해하는 요소라는 것이다. 그럼 또 다시 의문이 생긴다. 과연 어디까지가 스포일러일까?

어디까지가
스포일러일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포스터에 등장하는 영화들. 이건 스포일러 만행에 해당하는 건가?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와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의 포스터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황당하지 않은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포스터에 공개해버리다니! 이런 포스터를 만든 제작진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처음부터 스포일러를 공개해버려서 관객들의 영화 관람을 방해할 목적이었을까? 영화의 얼굴과도 같은 포스터에? 아니다.

이 영화의 포스터는 영화의 가장 절정에 해당할 장면이 관객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킬 것이라는 판단 아래 제작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의 이미지 공개는 관객들의 영화 관람을 방해하는 요소일까? 이것은 과연 스포일러에 해당하는 것일까?

<부산행>에 심은경이
등장한다는 사실이
스포일러일까?

그렇다면 <부산행>에 배우 심은경이 등장한다는 사실을 영화 관람 전의 관객들에게 미리 알리는 것은 스포일러가 될까? 이 사실을 미리 알고 영화를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혹은 영화의 결말, 혹은 영화의 전개 과정을 인지하는데 다른 영향을 끼칠만한 요소일까?

또 다른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영화 <사도>에서 사도세자(유아인)가 뒤주에 갇혀 죽는다는 사실은 스포일러에 해당하는 것일까? 역사적 사실을 전혀 모르는 관객들에게는 사도세자가 죽는다는 사실이 미리 알려질 경우에는 영화의 전개 과정을 인지하고 서스펜스를 느끼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사도세자의 죽음은 명백한 스포일러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결국 스포일러는
아무 것도 해치지 않는다

스포일러가 가리키는 다양한 영화적 장치는 영화의 재미를 위해 존재하는 것들이다. 그러니까 인물의 정체나 사건의 범인, 음모의 실체 따위는 모두 영화의 재미를 위해 존재하는 것들 중 하나다. 그런데 종종 관객들이나 제작자가 오해하는 것이 있다. 우리가 언제부터 범인이 누군지 밝히기 위해 영화를 봐야 했던가? 범인이 궁금하다면, 영화의 결말을 미리 보고 궁금증을 해소한 다음에 영화를 다시 보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혹은 범인이 누군지 미리 알게 된다면, 그 영화를 볼 필요가 없어지는 것일까? <식스센스>의 결말을 알고 본다면, 영화의 추리를 풀어가는데 아무런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게 될까? <터널>의 결말을 알고 본다면 아무런 감동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일까?

스포일러에 대해서 지금과는 다른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 무턱대고 영화의 결말을 공개해버릴 바보같은 짓을 굳이 할 이유도 없지만 그렇다고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사전 정보가 마치 스포일러인 것 마냥 매도해서 금기시하는 것도 즐거운 영화 관람 방식은 아닐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히치콕 감독이 관객들에게 충격을 줬던 방법을 <싸이코>를 보면서 한 번 고민해보는 것은 어떨지? 단지 범인의 실체가 공개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결말까지 도달하기 까지의 과정에는 알고 봐도 너무 흥미로운 점이 많기 때문이다. 영화의 결말을 알고 봤을 때 그 영화의 또 다른 재미를 찾을 수도 있지 않겠나?

씨네플레이 에디터 가로등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