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아맨>

“역시 제임스 완.” <아쿠아맨>을 본 관객이라면 이 말에 동의할 것이다. 영화 전체의 완성도를 제쳐두고, 그는 <아쿠아맨>에도 강렬한 호러 장면을 끼어 넣었다. 트렌치 왕국으로 들어가는 장면과 아쿠아맨이 삼지창을 지키는 카라덴을 만나는 장면은 호러 영화의 시퀀스에 버금갈 긴장감을 선사한다. 제임스 완은 이 장면을 통해 심해 공포물, 더 나아가 코즈믹 호러 장르에 대해 경외감을 표현한 셈이다. 바다 생물을 그린 게 뭐 그리 대단하냐고? 제임스 완이 몰래 이스터에그로 암시한 걸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고전적인 공포, 심해

일반적으로 빛이 닿지 않는 바닷속을 심해라고 부른다. 국어사전엔 200m 이상, 학술적으론 2,000m 이상의 수심을 가리킨다. 빛이 전혀 닿지 않고, 산소도 희박한 곳이기 때문에 인류는 이 공간을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이라 이전부터 심해 생명체는 진화를 거치치 않은 고대 생물, 혹은 진화를 거치면서 다른 생명체와 전혀 달라진 생명체로 묘사됐다.

W.G. 콜링우드가 그린 <토르의 낚시> 속 요르문간드(왼쪽), 구스타브 도레의 <레비아탄의 파괴>

심해는 둘째치고 바다부터가 인간에게 불가사의한 공간이었던 과거엔 수많은 전설들이 이런 공포심을 대변했다. 고대 그리스 신화의 히드라나 북유럽 신화의 요르문간드, 성경의 레비아탄과 중세 시절 전설로 이어지는 크라켄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수중생물의 모습을 하거나 깊은 바다에 사는 것으로 묘사된다. 공포 소설은 아니지만 쥘 베른의 <해저 2만리>도 바다괴물을 다룬 작품이다.

러브크래프트 팬이 디자인한 ‘깊은 곳의 존재’

심해 생명체에 대한 공포를 본격적으로 다룬 건 하워드 필립 러브크래프트라는 작가다. 그는 심해에 사는 고대의 존재를 상상해 <인스머스의 그림자>라는 작품을 썼다. ‘깊은 곳의 존재’라고 불리는 이들은 불로의 존재이자 물고기 머리를 한 인류로 묘사된다. 뭍으로 나갈 수 있지만 움직임이 제한되며, 심해에서는 엄청난 속도로 움직일 수 있는 심해인이다.

<아쿠아맨> 속 러브크래프트의 <던위치의 공포>. 스노우볼 아래 깔려있다.

<아쿠아맨> 영화 속 트렌치 종족은 이런 묘사를 본딴 게 아닌가 싶다. 물론 트렌치 종족은 <아쿠아맨> 원작 코믹스에서도 등장하지만, 원작보다 야생 포식자 같은 면모를 부각시켰다. 오프닝에서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던위치의 공포>를 살짝 보여주는 이스터에그를 숨긴 제임스 완 감독이라면, 트렌치 족을 묘사할 때도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영향을 받았을 거라 추측해볼 수 있다.

<아쿠아맨> 트렌치


러브크래프트식의 공포, 코즈믹 호러

사이드쇼에서 제작하고 러브크래프트 재단이 승인한 크툴루 스태츄

러브크래프트의 영향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는 사실 ‘코즈믹 호러’의 선두주자로 유명하다. 코즈믹 호러는 글자 그대로 ‘우주적 공포’로 해석된다. 인간이 감히 어찌할 수 없는 압도적인 외형, 힘, 능력을 가진 존재를 통해 보는 이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장르다. 러프크래프트의 작품은 틴달로스의 사냥개, 쇼거스, 올드 원 등 인간보다 월등히 우수한 신적 존재가 등장해 인간을 공포에 몰아넣는 공포 소설이 많았다. 그래서 작품 속 세계관은 러브크래프트의 사망 이후 팬들에 의해 재정립되며, 그의 작품 <크툴루의 부름>을 따 ‘크툴루 신화’라고 명명됐다.

심해에 본체는 숨긴 채 거대한 집게로 공격하는 <아쿠아맨>의 카라덴은 이런 코즈믹 호러를 연상케 한다. 카라덴은 영화 속에서 사실 적수가 없다. 아쿠아맨조차 그에게 흠집 하나 내지 못한다. 그 거대한 몸뚱이와 단단한 껍질, 그리고 아틀란티스인들에게까지 전설로 남은 고대의 생명체란 점은 러브크래프트의 주특기, 심해 속 고대 존재와 코즈믹 호러를 동시에 엮은 셈이다.

<아쿠아맨> 카라덴


코즈믹 호러 영화 추천작 5

사실 두 호러 장르는 문학 장르에서 강세다. 심해공포물이나 코즈믹 호러나 영화로 만들기엔 예산이 만만치 않고, 인물을 능동적으로 그리기 어렵고, 상당히 매니악한 장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몇몇 영화들은 이 장르에 도전에 호평을 받기도 했다.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영화들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이벤트 호라이즌

Event Horizon, 1997

폴 W.S. 앤더슨 감독의 <이벤트 호라이즌>은 장르팬들에게 추앙받는 영화다. 실종된 탐사선 ‘이벤트 호라이즌’ 호를 구하러 떠난 구조팀을 주인공으로 한다. 미지의 힘에 이끌려 환영이 시달리고, 신체 변형이나 죽음을 경험하는 <이벤트 호라이즌>의 내용은 코즈믹 호러를 영화에 맞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폭력 수위도 높은 편이라 공포 영화 팬에게 코즈믹 호러를 추천해달라고 하면 첫 번째로 언급될 영화.

에이리언 · 프로메테우스

Alien, 1979 · Prometheus, 2012

상업영화계에서 제작된 코즈믹 호러 중 가장 유명한 건 <에일리언>과 <프로메테우스>일 것이다. 에이리언이란 미지의 존재, 인류 이전에 지구에 당도한 의문의 존재. 각 편마다 장르가 전혀 다르지만, 리들리 스콧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에이리언>과 <프로메테우스>는 코즈믹 호러 분위기를 상업적으로 잘 이용한 사례 중 하나다.

클로버필드 시리즈

Cloverfield, 2008~

<클로버필드>는 재난 영화에 가깝지만, 시리즈가 가면서 점점 코즈믹 호러가 가까워졌다. 특히 최근 공개한 <클로버필드 패러독스>는 우주의 실험팀이 겪는 사건이나 <클로버필드>로 이어지는 연결점 등으로 시리즈 장르를 통째로 바꿨다. 속편이 나와봐야 알겠지만, <클로버필드>의 괴수와 <클로버필드 10번지>의 엔딩을 생각하면 코즈믹 호러로 분류 가능하다.

미스트

The Mist, 2007

스티븐 킹의 소설을 영화로 옮긴 <미스트>. 어느 날 갑자기 사방을 뒤덮은 안개에서 괴수들이 출몰하는 호러 영화다. 괴수 디자인에 고전 호러 영화에 대한 애정은 물론이고, 극 후반부 데이빗(토마스 제인) 일행 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딱 코즈믹 호러에 어울린다. 결말까지 인간을 압도하는 거대한 힘이 느껴진다.

케빈 인 더 우즈

The Cabin in the Woods, 2012

코즈믹 호러의 결정판. 아무 정보 없이 봐야 좋은 영화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와 관련해 ‘SCP 재단’이란 사이트를 찾아봐도 재밌을 것이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