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묵하며 거친 이상주의자인 전설적 총잡이의 이름인 ‘선댄스 키드’는 이후 그의 이름을 불멸의 것으로 만들게 될 것이었다. 그는 더이상 얼굴만 잘생긴 애송이가 아니라 성숙하고 거친 남자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이후 주연급으로 발돋움해 출연한 작품의 흥행이 이어졌고,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함께한 멜로드라마 <추억>(1973), 미아 패로와 출연한 <위대한 개츠비>(1974),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고든 언론인을 중심에 둔 <대통령의 음모>(1976)를 비롯해 다시 한번 폴 뉴먼과 호흡을 맞춘 <스팅>을 통해 로버트 레드퍼드는 할리우드 간판스타로 성장하게 된다. 핸섬한 외모와 젠틀한 매너 그리고 여성을 대하는 자연스러운 품성은 남성들을 경쟁자로 만들 만큼 적대적이지 않았고, 여성들에게는 이상적 연인의 아이콘으로 다가왔다.
1980년대는 <내츄럴>(1984)과 <아웃 오브 아프리카>(1985)를 통해 최전성기의 인기를 구가했다. 당시 그는 <보통 사람들>(1980)을 시작으로 영화감독으로서의 인생을 시작했다. 첫 번째 연출작인 이 작품으로 그는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거머쥐었다. 1990년대 이후에도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았는데 <업클로즈 앤 퍼스널>(1996), <은밀한 유혹>(1993)에서 여전히 전문직 로맨스의 주인공이었으며, <퀴즈쇼>(1995)로 골든글로브 감독상을, <호스 위스퍼러>(1999)로 또 한번 골든글로브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감독으로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그가 5년간 제작에 공들인 <모터싸이클 다이어리>(2004)는 기대만큼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해양 조난담을 다룬 <올 이즈 로스트>(2013)의 대담하고 순수한 연기는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노년 배우의 진가는 황혼 로맨스 <아워 솔즈 앳 나이트>(2017)와 <미스터 스마일>로 이어졌다.
선댄스와 유타주
“어떤 사람에게는 분석이 주어집니다. 나에게는 유타가 주어졌지요.” 도시적 삶보다 자연 속의 삶을 선호했던 로버트 레드퍼드의 말이다. 그토록 오랫동안 할리우드의 대표 스타로 살아왔지만 그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로버트 레드퍼드는 지극히 정중하고 개인적인 삶을 살아왔으며, 화려한 스타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가급적 피하며 살려 했다. 그는 도시에서의 삶은 그저 ‘살아가는 것’일 뿐이지만 자연에는 산책하고 홀로 있을 충분한 공간이 있음에 만족했다.
로버트 레드퍼드는 자연보호와 환경 문제, 아메리칸인디언의 권리 및 LGBT 인권에도 공감해 적극적으로 개입, 활동해왔다. 그가 보여준 행동주의의 핵심에는 유타주가 있다. 그에게 유타주는 독립영화 정신과 친환경주의의 상징이다. 로버트 레드퍼드는 <내일을 향해 쏴라> 이후 유타주에 처음으로 집을 지어 살았다. 유타주 팀프 헤이븐 부근엔 농장과 스키장을 짓기도 했다. 이곳 리조트의 이름은 후에 자신의 영화 속 캐릭터 이름을 따서 ‘선댄스’로 바꾸었다. 1981년 독립영화감독을 위한 선댄스협회를 유타주 파크시티에 세웠으며, 1978년부터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소규모로 열리던 ‘미국 영화제’를 흡수, 통합하여 1985년에 선댄스영화제를 출범시켰다. 선댄스영화제는 1980년대 후반 스티븐 소더버그, 코언 형제, 쿠엔틴 타란티노와 로버트 로드리게즈 등 신인감독을 발굴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독립영화 영화제로 자리매김했다.
레드퍼드는 천연자원보존위원회의 창립이사이자 열렬한 환경운동가이기도 하다. 아이맥스 다큐멘터리인 <지구의 신비>(2004)와 <지구 놀라운 하루>(2017)의 내레이션을 맡기도 하고, 말 치유사가 등장하는 <호스 위스퍼러>의 제작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벅>(2011)에도 출연한 바 있다. 그는 버락 오바마의 재선을 돕고 트럼프에 노골적으로 반대의견을 표하는 등 정치적 발언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자신의 정체성을 이념적 좌파로 고정시키는 것에는 조심스러워했지만 정치운동이 그의 삶의 일부이며 자신의 관심사가 미국의 지속 가능성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역사가 때로는 나쁜 경향을 되풀이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영화 제작자로 나선 것도 이러한 그의 행동주의의 일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