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셜리 / 마허샬라 알리

실존 뮤지션의 일화를 영화로 만든 두 작품이 최근 개봉했다. 러시아의 전설적인 로커로 추앙 받는 한국계 아티스트 빅토르 초이와 그의 동료들의 청춘을 담은 음악영화 <레토>, 흑인 재즈 피아니스트 도널드 셜리와 운전사 토니 립(비고 모텐슨)의 우정을 그린 <그린 북>이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한 유태오가 빅토르 초이를, <문라이트>(2016)와 <히든 피겨스>(2016)로 당대 가장 잘 나가는 흑인배우로 성장한 마허샬라 알리가 도널드 셜리를 연기했다. 각기 다른 매력으로 마음에 남을 <레토>, <그린 북>과 더불어 볼 만한 뮤지션 전기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의 활약상을 소개한다.

빅트로 초이 / 유태오


레이 찰스

제이미 폭스

<레이>

(Ray, 2004)

대단한 분장을 거치지 않더라도 레이 찰스와 제이미 폭스의 모습은 상당히 비슷하다. 소울 뮤지션의 성대모사에도 능한 코미디언의 이미지가 강했던 폭스는, 찰스의 무대 안/밖에서의 세세한 제스처와 퍼포먼스를 제대로 구현한 <레이>를 통해 일약 세계적인 배우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실질적인 첫 주연작 <레이>로 2004/5년 시즌 아카데미를 비롯한 주요 영화상의 남우주연상을 휩쓸었고, 이듬해 발표한 두 번째 앨범 <언프리딕터블>(Unpredictable)까지 크게 히트시키며 화려한 전성기를 누렸다.


지미 헨드릭스

안드레 벤자민

<지미 헨드릭스: 올 이즈 바이 마이 사이드>

(Jimi: All Is by My Side, 2013)

전설적인 힙합 그룹 아웃캐스트의 안드레 3000은 <쿨!>(2005), <포 브라더스>(2005) 등 여러 영화에 출연하며 본명 안드레 벤자민을 크레딧에 올렸다. 아웃캐스트의 앨범에서 랩과 보컬은 물론 다양한 악기들도 직접 연주했던 벤자민이 역사상 최고의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를 연기한다는 건 꽤나 적절한 캐스팅 같았다. 허나 결과물은 아쉬웠다. 지미 헨드릭스가 데뷔 앨범을 발표하기 전을 주요 시간대로 설정한 탓에 그의 명곡을 들을 수 없을 뿐더러, 지미 헨드릭스의 매력마저 돋보이지 못했다. 안드레 벤자민이 헨드릭스의 말투를 따라하려 애쓰고는 있는데, 때마다 떠오르는 건 안드레 3000의 목소리였다.


쟈니 캐쉬

와킨 피닉스

<앙코르>

(Walk The Line, 2005)

<앙코르>는 컨트리 음악의 아이콘 쟈니 캐쉬가 1975년, 1997년에 발표한 자서전을 토대로 만든 전기영화다. 캐쉬와 그의 아내 준 카터의 로맨스에 집중했다. 리들리 스콧, M. 나이트 샤말란, 브라이언 드 팔마, 제임스 그레이 등 할리우드 시스템에서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한 감독들의 작품들을 두루 거치며 성장하던 와킨 피닉스는, 쟈니 캐쉬를 연기한 <앙코르>를 기점으로 명배우의 반열에 성큼 다가서기 시작했다. 영화에 쓰인 쟈니 캐쉬의 트랙들 모두 피닉스가 직접 불러, 골든글로브 뮤지컬/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과 더불어 그래미 사운드트랙상까지 받았다.


에디트 피아프

마리옹 코티아르

<라 비 앙 로즈>

(La môme, 2007)

전기영화가 제작되는 뮤지션들은 음악적인 역량만큼이나 드라마틱한 인생으로 회자되는 경우가 많다. 하여 뮤지션 전기영화는 주연 배우의 저변을 한껏 확장시키는 결과를 만들곤 한다. <라 비 앙 로즈>의 마리옹 코티아르는 그 대표적인 예라 할 만하다. '20세기 프랑스 최고의 가수' 에디트 피아프 역을 맡기기엔 당시 코티아르의 입지는 다소 약한 편이었지만, 감독 올리비에 다한은 코티아르를 직접 만나기 전부터 그녀와 피아프의 눈이 닮았다는 점에 주목해 그녀를 캐스팅 하길 고집했다. 코티아르는 청년부터 말년(촬영 때마다 5시간에 달하는 분장을 소화했다)에 이르는 피아프의 파란만장한 삶을 생생히 구현하며 자국 프랑스를 넘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코티아르는 프랑스어 연기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유일한 배우로 남아 있다.


찰리 파커

포레스트 휘태커

<버드>

(Bird, 1988)

알아주는 재즈 마니아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평생 흠모해온 색소포니스트 찰리 파커의 전기영화 <버드>를 만들었다. 수년 전부터 저명한 코미디언 리처드 프라이어가 찰리 파커 역에 내정돼 있었으나, 이스트우드는 전쟁/코미디 영화에 출연하던 조연급 배우 포레스트 휘태커에게 찰리 파커 역을 맡겼다. 평소 색소폰 연주에 능했던 것도, 파커와 닮았던 것도 아닌 휘태커는 침대, 소파, 색소폰만이 놓인 다락방에서 칩거하며 캐릭터 연구에 골몰했다. 그리고 술과 마약에 의지해 위태로운 삶을 살다 34세 나이에 요절한 천재의 마음을 보여주는 데에 성공했다.


밥 딜런

리처드 기어

<아임 낫 데어>

(I'm Not There, 2007)

여섯 배우가 각자 다른 모습으로 밥 딜런을 연기한 <아임 낫 데어>에서 가장 뛰어난 싱크로율을 보여주는 건 케이트 블란쳇이다. 이번엔 좀처럼 언급되지 않는 다른 밥 딜런을 지목해봤다. 감독 토드 헤인즈는 사생활을 노출하는 걸 극히 꺼리던 밥 딜런의 삶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판단하는 데에서 밀고 나아가 특정한 이미지로 규정할 수 없는 카오스 자체를 영화로 완성했다. <아임 낫 데어> 속 리처드 기어는 샘 페킨파의 서부극 <관계의 종말>(1973)에 엘리아스로 출연한 밥 딜런을 떠올리게 한다.


시드 비셔스

게리 올드만

<시드와 낸시>

(Sid And Nancy, 1986)

<시드와 낸시> 속 시드 비셔스 역은 게리 올드만의 대표적인 명연으로 손꼽힌다. 사실 올드만은 두 번이나 이 역할을 고사했다. 시드 비셔스와 펑크 문화에 대해 아무 흥미가 없었을 뿐더러 시나리오마저 따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어전시의 압박과 3만5천 파운드라는 출연료에 못 이겨 출연을 마음먹었다. 그럼에도 성의를 다했다. 비셔스의 깡마른 몸매를 만들기 위해 생선 찜과 멜론만 먹었고, 살을 너무 뺀 나머지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훗날 인터뷰에서도 올드만은 <시드와 낸시> 속 연기가 별로였라고 자평했다.


제임스 브라운

채드윅 보스만

<제임스 브라운>

(Get on Up, 2014)

<42>(2013), <드래프트 데이>(2014) 등 스포츠 영화들에 크고 작은 역할로 참여했던 채드윅 보스만은 '훵크/소울의 대부' 제임스 브라운의 전기영화로 제대로 이름을 알렸다. 노래와 춤 모두에 능한 브라운의 퍼포먼스를 따라잡기 위해 2달간 가무를 연마했고, 영화 속 제임스 브라운의 모든 춤사위는 보스만이 직접 소화했다. 다이너마이트 같은 쇼맨십을 펼치는 보스만의 모습은 무뚝뚝하고 건조하기만 한 티 찰라와는 사뭇 다르다.


이안 커티스

샘 라일리

<컨트롤>

(Control, 2007)

198-90년대 록 음악계를 대표하는 사진가/뮤직비디오 감독 안톤 코르빈은 첫 번째 극영화로 조이 디비전의 보컬 이안 커티스를 그린 <컨트롤>을 내놓았다. 배우 이전에 밴드 활동을 했던 킬리언 머피를 커티스 역에 고려했지만, 영화 경험이 전무했던 신인 샘 라일리를 캐스팅 했다. 라일리 역시 2005년 한 밴드의 일원으로서 앨범을 발표한 바 있었다. 코르빈은 <컨트롤>을 기혼자임에도 새로운 사랑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안 커티스의 어지러운 심정을 그리는 데에 집중했고, 또렷함과 맑음이 공존하는 라일리의 외모는 그에 적격이었다. 라일리는 연인 아닉 오노레 역의 배우 알렉산드라 마리아 라라와 결혼했다.


짐 모리슨

발 킬머

<도어즈>

(The Doors, 1991)

록 역사를 대표하는 아이콘인 만큼, 도어즈의 보컬리스트 짐 모리슨의 삶을 영화화 하기 위한 프로젝트는 <도어즈>가 나오기 10여 년 전부터 계속됐다. 톰 크루즈, 조니 뎁, 존 트라볼타, 리처드 기어와 더불어 U2의 보노, 인엑시스의 마이클 허친스, 컬트의 이안 애스트버리 같은 뮤지션도 물망에 올랐으나, 감독 올리버 스톤은 론 하워드의 중세 판타지 <윌로우>(1988)에서 본 발 킬머를 낙점했다. 짐 모리슨과 비슷한 목소리가 가졌던 킬머 역시 사비를 들여 모리슨의 퍼포먼스를 모사하는 비디오를 만들어 역할을 따내기 위해 애썼고, 캐스팅 되고 근 반년 동안 매일같이 도어즈의 레퍼토리를 연습했다. 발 킬머의 연기를 향한 호평과는 달리 영화 자체에 대한 반응은 그다지 달갑지 못했다.


브라이언 윌슨

폴 다노

<러브 앤 머시>

(Love & Mercy, 2014)

<러브 앤 머시>에는 두 명의 배우가 브라이언 윌슨 역을 맡았다. 청년기는 폴 다노, 장년기는 존 쿠색이 연기했다. 사랑으로 자아를 찾아나가는 존 쿠색보다는 대중음악사의 최고 명작 <펫 사운즈>(Pet Sounds)를 만들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넣는 폴 다노의 예민한 얼굴이 더 친숙한 게 사실이다. 헤어스타일의 힘 다노는 윌슨 역을 위해 16kg를 찌웠고, 난생 처음 피아노도 배우기도 했다.


문동명 /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