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후쿠아 감독의 <매그니피센트7>은 존 스터게스 감독의 <황야의 7인>을 리메이크한 영화입니다. <황야의 7인> 역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를 리메이크한 영화죠. 같은 원작을 공유하고 있지만 세 영화 모두 각각의 스타일이 뚜렷해서 무엇이 더 좋고 나쁜지 비교하라면 좀 난감합니다. <매그니피센트7>은 캐릭터 구도나 분위기 면에서 구로사와 감독의 원작보다는 <황야의 7인>에 더 무게 중심을 두고 리메이크했지요. 이어서 소개할 캐릭터의 면면도 <황야의 7인>에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현상금 사냥꾼,
샘 치좀
빼앗긴 삶을 되찾아 줘야지
시골의 한 마을에 금광 회사를 차려 놓고 착취를 일삼는 악덕 기업주이자 그냥 나쁜 놈인 보그 일당에 맞서 7명의 무법자들을 불러모으는 인물입니다. 어벤져스로 치면 닉 퓨리 국장같은 존재죠. 영화에서는 보안관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지만 사실은 현상금 사냥꾼으로 소일하는 인물이죠. 마을을 구해달라는 '엠마 컬른'의 의뢰를 듣고는 자신이 쫓던 지명수배자들을 찾아다닙니다. 보도자료용 소개에는 장총을 주요 무기로 활용한다고 쓰여 있더군요. 아무튼 영화에서는 이 총 저 총 가리지 않고 정말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마음껏 쏴댑니다.
치좀을 연기한 덴젤 워싱턴은 이 영화를 찍으면서 일부러 원작을 찾아보진 않았다고 하네요. 과거의 캐릭터에 다가가기보다는 새로운 각본에 충실한 연기를 보여주자는 쪽이었다고 하네요. 치좀은 원작인 <황야의 7인>에서 율 브린너가 연기한 청부살인업자 리스에 해당하는 인물입니다. 율 브린너는 진중하면서도 현명하게 판단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 역을 보여줬죠. 그와 달리 치좀은 다른 꿍꿍이가 있는 속내를 숨기고 있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그나저나 치좀은 잘못 발음하면 치질과 무좀의 결합어처럼 들릴 수 있는 이름입니다.)
카사노바 겸 도박꾼,
조슈아 패러데이
늘 뭔가 날려버리고 싶었어
술과 도박에 미친 남자. 화려한 카드 기술과 배짱을 갖고 있는 인물로 한때 청부살인을 하기도 했다는 설정입니다. 진지하기보다는 늘 유머를 잃지 않으려고 하는 인물이죠. 크리스 프랫이 전작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 보여줬던 능글맞은 모습의 연장선상에서 캐릭터를 잡은 것 같은데 이번에는 그다지 웃기지 않는 게 함정입니다. 아무튼 이 영화에서 그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습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알겠죠?
그가 위기 상황에서도 "5층 높이에서 떨어지던 남자가 '아직은 괜찮아.'라고 말했지."라는 식의 농담으로 분위기를 띄우려 하는데 이는 원작에 그대로 등장하는 대사입니다. 원작에서는 10층 높이에서 떨어지는 남자가 말했다고 나오죠. "So far so good~"이란 원작의 명대사를 맛깔스럽게 날리는, 패러데이에 해당하는 인물이 바로 스티브 맥퀸이 연기한 떠돌이 빈 태너입니다. 원작에서 스티브 맥퀸이 보여준 모습은 율 브린너 옆에서 결코 밀리지 않는 존재감으로 극의 깨알 재미를 선사하는 인물입니다. 안톤 후쿠아 감독이 크리스 프랫에게 기대했던 역할도 바로 그런 액션과 유머와 슬랩스틱 모두 가능한 것이었겠죠.
참고로 크리스 프랫은 캐스팅 전화를 텍사스 여행 중에 받았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서부극 출연각인가.) 크리스 프랫이 가장 좋아하는 서부극은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더 웨스터너>와 서부극의 걸작인 하워드 혹스 감독의 <리오 브라보>라고 하는군요.
암살자,
빌리 락스
던지고 긋고 찌르면 돼
어떻게 머나먼 서부까지 흘러들어가 킬러 생활을 하고 있는지 설명되지 않는 동양인 빌리 락스. 그는 뒤이어 소개할 굿나잇 로비쇼와 함께 단짝을 이루어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모자 안에 긴 머리를 묶은 나이프를 숨기고 있는, 권총보다 칼을 먼저 던지는 놀라운 프로페셔널 칼잡이입니다. 실 가는 곳은 바늘도 따라간다고 굿나잇이 7명의 팀에 합류한다고 했을 때 빌리 락스도 데려가겠다고 해서 팀에 합류하게 됩니다.
원작에서도 빌리 락스에 해당하는 캐릭터가 있습니다. 바로 제임스 코번이 연기하는 칼잡이 브릿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빌리 락스가 영화에 처음 등장할 때 누군가와 내기 총싸움을 하는 장면이 기억나시나요? 그 장면은 원작에서 그대로 가져온 장면입니다.
안톤 후쿠아 감독은 칼잡이 암살자 빌리 락스에 이병헌을 캐스팅한 이유를 "그가 다른 작품을 통해 칼을 사용할 줄 알았고 그 솜씨를 활용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영화에서 총과 칼을 모두 다룰 줄 아는 액션을 소화할 수 있고 또 무시무시한 연기도 보여줄 수 있는 배우로 이병헌만한 배우가 없었겠죠.
명사수,
굿나잇 로비쇼
적을 쏠 땐, 증오심에 불타올라야 해.
이름도 특이한 굿나잇 로비쇼는 남북전쟁에서 남부군 명사수로 활동한 인물로 소개됩니다. 극 중 패러데이에 의하면 그는 한 때 '죽음의 천사'라는 별명으로 이름을 날렸던 인물입니다. 빌리 락스와 단짝처럼 붙어 다니면서 빌리 락스가 처음 칼을 쓰는 모습을 보고는 그와 친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죠. 그 대사 할 떄 웃겼습니다. 두 사람은 영화에서 콤비처럼 항상 붙어다닙니다.
재미있는 것은 굿나잇이 보그 일당에 맞서 싸울 때 처음엔 살인에 대한 불안감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러다가 빌리 락스의 도움으로 평정심을 찾게 되는 인물인데 그런 인물의 불안감을 에단 호크만큼 잘 표현할 수 있는 배우도 드문 듯 합니다. 정말 잘 어울리더군요. 원작의 캐릭터와 비교하면 누구와 어울리다고 해야 할까요. 아마도 로버트 번이 연기한 '리'가 그에 해당하는 인물인 듯 합니다. 캐릭터의 전사는 완전히 다르지만 리 역시 그처럼 살인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입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한 껀 제대로 하죠. 굿나잇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마도 굿나잇 로비쇼의 이름이 굿나잇인 건 그가 악몽에 자주 시달려서 그렇게 이름을 지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외의 멤버들
위에 소개한 4명 정도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멤버들은 거의 원작에 기대지 않고 새로 창조한 인물이나 다름 없습니다. 심지어 간단하게 소개하려 해도 스틸컷조차 없어서 누가 누군지 보여주면서 설명하기도 어렵네요.
"그 일 끝내면 나한테 득 될 게 뭐가 있지?"라면서 돈을 밝히는 바스케즈는 무법자이자 범법자로 온갖 도둑질과 범죄를 일삼던 인물입니다. 도주 중에 샘 치좀에게 딱 걸려서 "합류를 원한다면 나는 널 쫓지 않겠다"는 치좀의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아들이는 인물이죠. 멕시코 출신 배우 마누엘 가르시아 룰포가 연기했습니다.
기도하는 남자, 잭 혼은 평생 사냥으로 다져진 본능적인 추격자입니다. 걸어다니면 곰이 사람 옷을 입고 다니는 것 같다고 놀림받는 뚱뚱한 몸매의 소유자지만 영화에서 진짜 잽싸지요. 특이하게 신앙심이 깊어서 사람이 죽으면 기도를 올립니다. 그를 연기하는 빈센트 도노프리오는 <맨 인 블랙>의 외계인 숙주와 탱고의 귀재, 성직자, 연쇄살인마 등을 연기했던 인물로 얼굴이 낯이 익습니다. 그에 비하면 인디언 머리가주고 모으는 추격자라는 캐릭터는 정말 평범하지요.
7명의 무법자 가운데 가장 정상적인(?) 삶을 살아온 코만티 족의 인디언 전사 레드 하베스트는 마지막으로 합류하는 멤버입니다. "난 남들과 다른 길을 가야 해"라면서 원로들의 말을 듣고 정말 혼자 다른 길을 가다가 무리들과 만나 합류하게 되지요. 주력 무기는 활을 쏘고 지붕을 다니면서 저격수의 역할을 합니다. 레드 하베스트를 연기한 배우 마틴 센스마이어 역시 인디언 틀링깃 부족 출신이라고 하는군요.
공교롭게도 이번 추억 연휴에는 이병헌이 출연하는 한국영화와 할리우드 영화가 맞붙고 있는 형국입니다. 역대 한국영화 역사상 이런 적이 얼마나 될까요? 신기하면서도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밀정>의 이병헌은 액션을 펼치지 않는 대신, <매그니피센트7>의 이병헌은 엄청 화려한 액션을 선사하니 두 편 모두 놓칠 수 없겠죠? 깔끔하게 기분 좋게 집안일 마치고 가족 친지들과 남은 연휴를 즐기기에 아쉬움이 없는 영화들과 함께 하시길.
씨네플레이 에디터 가로등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