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칠전팔기, 눈물 없이 못 볼 드라마, 혹은 천운이 따른 영화. 5월 23일 개봉하는 영화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는 이런 단어들이 어울린다. 이 영화를 만든 테리 길리엄 감독은 1989년, ‘돈키호테 영화’를 만들겠다고 천명했다. 하지만 첫 촬영에 들어간 건 2000년이었다. 촬영 도중 홍수로 장비가 떠내려가고, 촬영장 부근에 전투기가 비행하며 소음을 내는 등 촬영이 불가능한 일의 연속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연 돈키호테를 맡은 장 로슈포르의 건강이 나빠졌다. 영화 제작은 전면 중단됐다.

테리 길리엄 감독과 장 로슈포르

한 번 멈춰진 현장은 쉽게 재개되지 않았다. 테리 길리엄 감독은 <그림 형제 - 마르바덴 숲의 전설>, <타이드랜드>,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 등을 만들면서도 ‘돈키호테 프로젝트’를 꾸준히 준비했다. 세 영화에 함께한 니콜라 페코리니 촬영감독도 힘을 모았다. 2010년에 로버트 듀발과 이완 맥그리거에 캐스팅 소식이 들렸지만, 제작비가 모이지 않았다. 2015년에 존 허트와 잭 오코넬 주연으로 아마존이 투자하면서 마침내 제작에 착수했다. 그런데 존 허트의 췌장암이 재발해 다시 굴러가려는 촬영장을 멈춰 세웠다.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촬영장의 테리 길리엄 감독

영화 한 편에서 이렇게 산전수전을 겪으면 포기할 법한데, 테리 길리엄 감독은 어느새 스스로 돈키호테가 돼 있었다. 그는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아담 드라이버와 조나단 프라이스를 캐스팅했다. 천재 CF 감독 토비(아담 드라이버)가 대학생 시절 만든 단편 ‘돈키호테’를 다시 보고, 촬영지 마을로 찾아간다. 그는 거기서 여전히 자신이 돈키호테라고 믿고 있는 노인(조나단 프라이스)를 만나게 된다는 스토리였다.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는 2017년 6월 4일, 촬영을 마치고 2018년 칸 영화제의 폐막작으로,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소개됐다. 테리 길리엄 감독은 왜 이렇게 이 영화를 완성하고자 했을까. 테리 길리엄 감독과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를 완성하고, 개봉을 앞둔 것을 축하드린다. 돈키호테는 당신의 드림 프로젝트였고, 거기다 5년 만의 신작이니 굉장히 반갑다.

내 머릿속에 있던 ‘돈키호테’를 꺼내 드디어 영화로 옮길 수 있어서 안도했다. 이 프로젝트는 수십 년 동안 저를 미치게 만들었다. 이제 이 영화가 관객분들을 미치게 할 것이다. 웃으며 즐길 수 있길 바란다.

토비 역의 아담 드라이버

아담 드라이버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토비 역을 아담 드라이버로 결정지은 계기는 무엇인가? 또 아담 드라이버는 현재 블록버스터부터 예술 영화까지 감독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그의 매력이 무엇인가?

아담은 현재 활동 중인 비슷한 또래 배우 중 가장 흥미로운 배우다. 그는 굉장히 솔직하고, 캐릭터가 요구하는 거라면 기꺼이 한다. 아담은 그동안의 주연급 배우처럼 관습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영화 속 그의 연기는 그가 이전에 했던 어떤 캐릭터보다 더 흥미롭고 대단할 것이다. 냉소적인 속물에서 로맨틱한 영웅의 면모를 모두 보여주는데, 동시에 굉장히 웃기기도 하다.

돈키호테를 연기한 조나단 프라이스

조나단 프라이스는 <브라질>부터 당신의 영화에 얼굴을 자주 비추었다. 이번 영화로 새롭게 알게 된 조나단 프라이스만의 배우로서의 힘이 있었는지?

돈키호테로서의 조나단을 좋아하는 건 그의 에너지 넘치는 변화무쌍함이다. 그는 끊임없이 기상천외한 연기를 보여주는데, 유쾌하게 웃기면서도 굉장히 감성적이고 슬픈 연기까지 가능하다. 우리와 함께 일한 스페인 사람들은 조나단을 최고의 돈키호테라고 말했다. 스페인의 피가 하나 섞이지 않은, 웨일스인 조나단에게 하는 최고의 칭찬이었다. 저는 그에게 “영화 촬영을 하는 동안, 당신이 그동안 연기했던 모든 셰익스피어 캐릭터를 투영시킨 것 같다”고 말했다.

테리 길리엄 영화 속 조나단 프라이스. (왼쪽부터 시계방향) <브라질>, <바론의 대모험>, <그림 형제>,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조아나 리베이로

오스카 제나타(오른쪽)

극중극 형식에 스페인 배경이라 다양한 배우들이 출연한다. 안젤리카 역의 조아나 리베이로나 집시 역의 오스카 제나타 등 타 국적의 배우들 캐스팅은 어떻게 진행했나?

이 영화는 내가 수년간 동경해온 몇몇 스페인 배우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세르지 로페즈, 조디 몰라, 오스카 제나다, 로시 드 팔마까지. 조아나 리베이로는 포르투갈에서 알게 됐다. 이들은 모두 훌륭한 배우고, 돈키호테를 라 만차 스타일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이베리아 반도의 느낌을 주기에 적합한 배우들이었다. 스텔란 스텔스가드는 내가 항상 동경했던 배우였다. 올가 쿠린렌코가 얼마나 유머러스한 사람인지 보여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판의 미로> 비달 역으로 유명한 세르지 로페즈(왼쪽),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로시 드 팔마

조디 몰라

(왼쪽부터) 스텔란 스카스가드, 아담 드라이버, 올가 쿠릴렌코

일련의 제작 과정을 훑어보면, 언제든 포기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끝까지 밀어붙여,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를 완성했다. 최초에 돈키호테에 매료됐던 이유 외에 영화화를 포기하지 않았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

시작한 일을 끝내는 걸 좋아한다. 영리하고 현실적인 사람들에게 포기하라는 충고를 받았지만, 현실적인 사람들의 충고를 잘 안 듣는 편이다. 돈키호테를 만들기 위해 돈키호테처럼 돼야 한다. 불가능한 것을 위한 광기와 노력은 삶에서 무척 중요하다. 이것들이 없다면 삶에서 흥분되는 일, 경이로운 일을 잃게 될 것이다.

작중 프란치스코 고야의 ‘거인’이 등장했다. 이외에도 이번 영화에 영감을 준 작품이 있나?

고야만큼 귀스타브 도레도 정말 중요했다. 그가 그린 돈키호테 일러스트는 항상 내게 영감을 불어넣었다. 그 그림들은 나의 뇌에 각인됐다.

프란치스코 고야의 <거인>(왼쪽), 귀스타브 도레의 <돈키호테> 삽화

로케 바뇨스 음악감독(<광대를 위한 슬픈 발라드>, <이블데드>, <올드보이> 등)과는 이번이 첫 공동작업이다. 이번 영화에서 그와 함께하게 한 계기가 있는가?

처음 로케의 음악을 들었을 때 그가 이 영화에 꼭 필요하단 걸 알았다. 그는 다양한 스타일로 작업할 수 있지만, 너무 센티멘털하지 않으면서 아름답고 낭만적인 음악을 창조하는 능력이 있다. 우리는 이 영화 속 분위기와 모험의 변화를 이끌어갈 스페인 감성이 필요했다. 할리우드식 음악을 쓰고 싶지 않았다. 로케는 훌륭한 뮤지션이라는 점 외에도 함께 일하는 것을 즐겁게 만드는 뛰어난 유머 감각까지 지니고 있다.

이번 작품도 니콜라 페코리니 촬영감독과 함께 했다(두 사람은 1998년 <라스베가스의 공포와 혐오>부터 꾸준히 협업 중이다). 그와 어떤 부분이 잘 맞는지, 서로 의견이 대립할 때는 어떤 식으로 타협을 보는지 말해주실 수 있는지.

크레딧에서 볼 수 있듯이 니콜라는 자신을 ‘산초’라고 부른다. 촬영장에 없어선 안될 사람이었다. 그는 매우 똑똑하고 안목이 대단하다. 우리는 심플하게 일하고 서로 언쟁이 없는 편이다. 이 영화를 촬영하면서 가장 컸던 논쟁은 애너모픽 렌즈(화면 가로비를 압축시키는 특수 렌즈)를 사용할지에 대한 것인데 그가 이겨 애너모픽 렌즈를 사용했다. 우리는 본격적인 촬영 시작 전까지 대부분을 결정해뒀다. 이후엔 날씨의 운에 맡기는 일밖에 없었다.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 촬영장의 테리 길리엄 감독과 니콜라 페코리니 촬영감독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는 성주간(가톨릭의 부활 축일 전 일주일)에 일어나는 일이다. 극중 시기를 특별히 성주간으로 정한 의도는 무엇인가? 개인적으로는 성주간이 축제라는 환상을 즐기는 사람들이 환상 속에 사는 돈키호테를 조롱하는 아이러니를 유발한다고 보였다.

개인적으로 스페인의 성주간을 좋아한다. 종교적인 행진과 음악이 엄청난 축제다. 이번 영화에서 그 요소를 원했다. 이슬람 세계는 세르반테스의 원작에서 매우 중요해서 이를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에 녹여낼 방법을 찾고 싶었다. 이슬람 테러범들을 다룬 신문 기사에 대해 "아직도 중세 시대에 살고 있다!"라고 말한 경찰관의 격한 발언은, 경찰차 앞에서 길을 막는 중세식 장식들과 가톨릭 성주간의 종교 행렬이 얼마나 이상한지를 보여주는 기회였다. 한 사람이 어떤 환상을 믿기로 선택했는가 하는 것은 언제나 중요한 질문이다. 돈키호테는 항상 품위가 있다.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에서 가장 공들여 찍은 장면과, 그것과 별개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을 뽑는다면?

거인들이 가장 복잡했다. CGI 캐릭터가 아니고, 실사 촬영 후 합성을 한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장면은 정말 많다. 토비가 라울의 바에 도착하는 장면, 마차 뒤에서 돈키호테와 토비가 재회하는 장면. 토비가 알렉세이를 처음 만난 장면의 불편한 분위기도 좋다. 한 장면만 선택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보다 어떤 장면이 마음에 안 드는가를 말하는 게 더 쉽지만, 말하지 않겠다.

끝끝내 완성한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처럼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것에 타협 없는 걸로 알려져 있다. 지금 감독이나 예술계를 꿈꾸고 있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는가?

어려운 삶을 살 준비를 하고, 인내심을 기르시길.(Be prepared to have a difficult life. Develop patience.)

드림 프로젝트가 끝났으니 차기작은 어떤 작품이 될지 알려줄 수 있으신지 궁금하다.

다음에 뭘 할지는 아직 생각이 없다. 새로운 목표를 세우지 않았다. 돈키호테를 끝내면 정말 공허할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그걸 느끼고 있다.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촬영장의 테리 길리엄 감독

칸 영화제에서 공개한지 딱 1년 만에 한국에서 개봉한다. 한국 관객들에게 추천 포인트를 소개해줄 수 있을까?

극장 의자에 편하게 앉아서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모든 것에 마음을 열고 즐겨주시길 바란다. 분석하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여러분이 본 걸 이해하기 위해 한 번 더 보길 바란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