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앨범은 많이 팔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앨범을 산 모두가 밖으로 나가 밴드를 시작했다." 브라이언 이노가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두고 한 이 말은 그들의 독보적인 영향력을 잘 나타낸다. 루 리드와 함께 초기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주축이 됐던 존 케일이 한국을 찾는다. 6월 9일 강원도 철원 고석정에서 열리는 DMZ 피스트레인 페스티벌에서 첫 한국 무대를 갖는다. 존 케일의 역사적인 첫 내한공연을 기리며,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음악이 쓰인 영화 속 순간들을 모아봤다.


"Heroin"

<도어즈>

관능적인 락스타로 한창 이름을 날리던 도어즈의 짐 모리슨(발 킬머)은 60년대 말 최고 인기의 아티스트 앤디 워홀의 파티에 간다. 벨벳 언더그라운드 데뷔 앨범의 프로듀싱과 아트워크를 워홀이 맡았다는 걸 드러내듯, 파티에선 앨범 수록곡 '비너스 인 퍼스'(Venus in Furs)가 울린다. 워홀이 만든 푸티지들이 곳곳에서 영사되는 어둑한 파티 현장 속에서 모리슨은 몽롱한 채 흐느적거리며 뉴욕 예술계 인사들을 소개받는다. (벨벳 언더그라운 1집 객원보컬로 참여한) 니코가 건넨 보드카와 어느 배우가 던진 약을 들이키면 음악은 곧장 '헤로인'(Heroin)으로 바뀐다. 마치 그 약이 헤로인이라는 걸 일러주는 것마냥. 모리슨은 점점 환각에 취해가면서 드디어 워홀을 만난다. 외모에 대한 칭찬만 하는 게 못마땅했는지 모리슨이 안경을 벗기자 대뜸 전화기를 주면서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하나님과 이야기해봐" 하며 난해한 말을 내뱉으면 대화는 툭 끊긴다. 그리고 도어즈의 노래 '스트레인지 데이즈'(Strange Days)가 끼어든다. 파티는 끝났다.


"Oh! Sweet Nuthin'"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시카고에서 음반점을 운영하는 로브(존 쿠색)는 번번이 여자한테 차이기만 해왔다. 꽤 오랫동안 사귄 애인 로라마저 이별을 선언하고, 로브는 전 여자친구들을 만나면서 자기 문제를 알아간다. 물론 사람이 단번에 변하진 않는다. 로라의 회사에 다짜고짜 전화해 만나줄 때까지 안 끊겠다며 기어코 약속을 잡더니만, 다른 남자와 사는 로라를 만나자마자 기껏 한다는 말이 "아직 같이 안 잤지?"다. 말할 수 없다니 홀랑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그리고 '오! 스윗 너띵'(Oh! Sweet Nuthin)이 따라온다. 낮은 기타 소리가 처연히 울리는 노래는 우산 없이 빗속을 뛰는 이 한심한 남자를 꾸미는 것 같다. 집에 돌아와 온갖 고독을 씹는 그에게 전화 한 로라는 "못다 한 말이 있어. 다시 얘기하자. 난 널 잘 알아" 손을 내민다. 옹졸해 빠진 로브는 "그러셔?" 하며 전화를 끊어버린다. 그 광경을 보고서야 "그녀는 아무것도 얻지 못할 거야"라는 후렴구가 로라를 향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Pale Blue Eyes"

<잠수종과 나비>

세계적인 패션지 <엘르>의 편집장인 장 도(마티유 아말릭)는 온몸이 마비되는 '감금 증후군'을 앓게 된다. 눈을 깜빡이는 것 외엔 스스로 몸을 쓸 수 없는 그는 희망을 잃지 않고 책을 쓰기로 한다. 그의 눈짓을 보고 글쓰기를 돕는 클로드(엠마누엘 자이그너)는 병실과 그 지척의 해변에서 시간을 보내며 행복했던 과거와 잠수종의 환상에 빠져 있는 장 도에게 바다를 선물한다. "바람 쐬면 좋을 것 같아서요." 막막한 심해의 꿈에서 깨어난 그는 클로드와 바다를 본다. '페일 블루 아이즈'(Pale Blue Eyes) 의 간질거리는 기타와 무심하게 흔들리는 탬버린 소리가 바람이 솔솔 부는 바다에서 장 도가 느끼는 아늑함을 관객에게도 전한다. 그가 그토록 좋아하는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오래된 판본을 받는 감동까지 더해진다. 클로드가 읽어주는 구절("~이미 굳은 몸은 꼼짝도 안했다~")을 듣다가 나랑 완전히 똑같네라고 생각하자, 클로드는 대뜸 "아니에요"라고 대답한다. 잠수종이 되는 환상에서도 클로드가 곁에 있다.


"Stephanie Says"

<로얄 테넌바움>

가족을 배신하고 떠난 로얄(진 해크먼)은 말년에 돈이 다 떨어지자 가족을 찾아온다. 당연히, 가족의 마음을 다시

사기란 어려운 법. <로얄 테넌바움>은 그 상처가 아무는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다. 어려서 입양된 여동생 마고(기네스 펠트로)와 사랑을 확인하지만 "우리 감정은 비밀로 간직하자"는 선언을 듣게 된 리치(루크 윌슨)는 호텔 엘리베이터 안내원으로 일하는 아버지를 만난다. 따스한 햇살이 가득한 옥상에서 리치는 "옛날부터 언제나" 마고를 사랑해왔다고 고백한다. 특별한 조언을 하지 않는 로얄은 되려 "아직도 나를 아버지로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망설임 없이 "그럼요, 아버지 마음 알아요" 라고 대답하자 '스테파니 세이즈'(Stephanie Says)가 확 스며든다. 그 말에 대해 이렇다 할 대꾸도 없지만 둘 사이에 분명히 흐르고 있을 벅찬 감정을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아름다운 노래가 대신한다. 그리고 기적처럼, 집 나간 새 모데카이가 날아와 테넌바움 부자 곁에 가만히 앉는다.


"Ride Into The Sun"

<스쿨 오브 락>

가짜 선생이었음이 들통난 듀이(잭 블랙)는 스투지의 '티브이 아이'(TV Eye)와 함께 줄행랑을 친다. 얹혀사는 데다가 일까지 뺏은 듀이에게 네드(마이크 화이트)와 여자친구 패티(사라 실버맨)도 여느 때와 달리 냉담하다. 락에 미친 뮤지션이 사립학교 학생들에게 락을 가르친다는 이야기에 잭 블랙이 선보이는 뻔뻔함까지 더해져 내내 유쾌하기만 한 <스쿨 오브 락>에서 유일한 저기압의 신에 '라이드 인투 더 선'(Ride into the Sun)이 사용됐다. 그전까지 나왔던 노래들이 워낙 거셌기 때문인지, "도시에서 사는 건 힘든 일"이라 중얼거리는 노랫말 때문인지, 그렇게 침울한 분위기의 곡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상황과 잘 들어맞는다. 패티가 날카롭게 쏴붙이자 듀이는 뻔뻔하게 더 큰 소리로 변명을 늘어놓기에 바쁘다. 보다 못한 네드는 듀이를 내쫓는다.


"Sister Ray"

<브릭>

<브릭>의 결말은 아주 텁텁하다. 범인의 실체를 쫓던 영화는 결국 진실을 맞닥뜨리지만 '해결'의 쾌감 같은 건 일절 없다. 브렌든(조셉 고든 레빗)이 잔뜩 구름 낀 하늘로 걸어가는 로라(노라 제헤트너)를 바라보다가 뒤를 돌면 '시스터 레이'(Sister Ray)와 함께 엔딩 크레딧이 등장한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두 번째 앨범(이자 존 케일이 마지막으로 참여한 정규앨범) <화이트 라잇/화이트 히트>(White Light/White Heat)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17분짜리 대곡이다. 밴드가 내놓은 트랙들 가운데 가장 싸이키델릭 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곡은 즉흥연주로 단 한 번의 녹음으로 완성됐다. 실수가 있더라도 개의치 않고 그대로 녹음을 진행해, 더욱 생생한 에너지가 담겼다. 예상치 못한 진실을 마주한 브렌든을 감싼 당혹스러움이 '시스터 레이'의 정신 사나운 사운드를 실려 계속 맴도는 것 같다. 60년대 공연에서 '시스터 레이'는 30분을 훌쩍 넘기는 라이브로도 연주되곤 했다. 초호화 블록버스터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가 아닌 저예산 영화 <브릭>이라서 짧게 끝나는 엔딩 크레딧이 야속할 따름이다.


"Venus in Furs"

<라스트 데이즈>

<게리>(2002), <엘리펀트>(2003)를 연달아 선보이던 구스 반 산트는 커트 코베인의 마지막 나날들을 그린 <라스트 데이즈>(2005)를 발표하며 시네아스트로서의 야심을 이어나갔다. 코베인을 주인공으로 하지만 너바나의 음악은 단 한 곡도 사용되지 않은 채, 보이즈 투 멘의 '온 벤디드 니'(On Bended Knee)와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비너스 인 퍼스'(Venus in Furs)를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배치했다. 홀로 저택을 하릴없이 돌아다녔을 커트(마이클 피트)가 어디에선가 뻗어 있을 동안, 그의 친구들은 집에 돌아와 턴테이블로 '비너스 인 퍼스'를 틀어 존 케일의 신경질적인 비올라 연주 위로 루 리드가 난해한 가사(여기서도 "On Bended Knee"라는 말이 섞여 있다)를 읊조리는 걸 가만히 따라 부른다. 다른 친구들은 귀가해서도 여전히 헤롱대고 있다. 사실 서사상에선 잉여가 분명한 이 대목을 거스 반 산트는 꽤나 공들여 찍었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던 노래는 갑자기 멎는다.


"I'm Sticking with You"

<주노>

<주노>는 덜컥 아이를 가져버린 16살 주인공 주노(엘렌 페이지)가 경험하게 되는 심리적 변화를 계절에 따라 담았다. 가을에서 시작해 여름으로 끝난다. '아임 스티킹 위드 유'(I'm Sticking with You)는 겨울의 문을 여는 노래다. 뚱당거리는 피아노 소리와 밴드의 퍼커셔니스트 모리스 터커의 앳된 보컬이 놓인 노래는 꽤나 기분 좋게 들린다. 아이의 아빠 폴린(마이클 세라)이 친구의 시답잖은 말에 대꾸를 하는 모습은 분명 유쾌하지만은 않은데, 귀여운 음악 덕분에 그럭저럭 썰렁한 농담 정도로 볼 수 있게 된다. 허나, 모든 서사 속에서 '겨울'은 부정적인 정서를 품는다. 영화는 도드라지는 법 없이 차근차근히 주노가 아이를 입양시키는 계획이 어긋나는 과정을 그린다. "네 곁에 딱 붙어 있을 거야"라는 가사가 주노의 것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퍼진다. 다행히 불안은 불안으로 그치지만.


문동명 / 씨네플레이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