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분야의 구분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특히 영화와 게임은 서로의 좋은 점을 주고 받으며 상생하는 방향을 찾는 듯하다. 세게 최대 게임쇼 E3(Electronic Entertainment Expo)에서도 영화와 연계된 게임들이 발표돼 팬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게임 덕후들의 관심을 받을 영화·드라마나 영화 덕후의 게임 입덕을 도울 게임들을 소개한다.
형이 왜 거기서 나와?
키아누 리브스, <사이버펑크 2077> 출연 확정
이번 E3를 가장 열광케 한 건 사실 신작 게임이 아니었다. <위쳐> 삼부작으로 믿고 사는 개발사에 등극한 CD 프로젝트 RED의 <사이버펑크 2077>은 2013년 개발을 발표한 ‘묵은지’ 게임이다. 하지만 이날 <사이버펑크 2077> 발표 무대는 깜짝 스타의 등장으로 여느 때보다 뜨거웠다. 바로 ‘존 윅’ 키아누 리브스가 직접 무대에 오른 것이다.
키아누 리브스는 개발사의 요청으로 이 게임에 출연하게 됐다고 밝히며 <사이버펑크 2077>의 발매일과 트레일러의 공개를 진행해 팬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이날 키아누 리브스는 “이 게임은 여러분을 숨 막히게 할 겁니다”라는 멘트에 한 팬이 “당신이 더 숨막히게 해!”라고 외치자 “여러분 모두가 그래요!”라고 화답하며 찰떡의 호흡을 보여주기도 했다.
키아누 리브스가 정확히 어떤 역을 맡았는지는 게임쇼가 끝난 이후 공개됐다. 예고편에 등장한 쟈니 실버핸드는 주인공 V를 돕는 캐릭터로, “도시를 불바다로 만들어야지”라는 대사처럼 급진적인 메시지를 전파하는 록밴드 ‘사무라이’의 보컬리스트다. 주인공의 여정에 동참하는 캐릭터라 하니 2020년에 키아누… 아니, 존 윅… 아니, 실버핸드와 함께 미래 도시로 떠나보자.
진정한 제다이 포스를!
<스타워즈 제다이: 오더의 몰락> 플레이 공개
디즈니가 <스타워즈>의 판권을 구입한 2012년 이후, <스타워즈> 시리즈는 새로운 시퀄, 스핀 오프, 미디어 믹스를 발빠르게 공개하며 시리즈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게임 분야에서도 FPS 게임 <스타워즈: 배틀 프론트>와 <스타워즈: 배틀 프론트 2>를 발매했다. 두 게임은 지금까지 등장한 스타워즈 캐릭터들과 디즈니 스타워즈 세계관을 반영해 팬들을 만족시켜줬지만, <스타워즈: 제다이 나이트: 제다이 아카데미>나 <스타워즈: 포스 언리쉬드>같이 제다이 주인공을 통한 참신한 플레이를 기대한 팬들에겐 다소 아쉬운 게임이었다.
그래서 EA는 산하의 리스폰 엔터테인먼트가 개발 중인 <스타워즈 제다이: 오더의 몰락>를 2019년 4월 공개했다. 클론 전쟁의 제다이 즉각 사살 명령 ‘오더 66’에서 살아남은 파다완 칼 케스티스가 제국의 추격 속에서 살아남는 과정을 그릴 예정이다. EA는 본인들이 개최한 게임쇼 ‘EA PLAY’에서 <스타워즈 제다이: 오더의 몰락> 실제 플레이를 공개했다. 모션이나 그래픽 디테일 등 기술적인 부분에선 다소 호불호가 갈리고 있지만, 본격적인 광선검 전투나 포스를 이용한 플레이는 모든 팬들이 쌍수를 들고 반기고 있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원조, 게임으로 돌아오다
<블레어윗치 프로젝트> 공개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장을 연 전설적인 영화 <블레어 위치>는 지금 보기엔 다소 식상하게 느껴진다. ‘실제 전설’, ‘실종자들의 촬영 영상’이란 껍질이 없으면 <블레어 위치>는 평범한 페이크 다큐멘터리에 불과하니까. 그럼에도 <블레어 위치>의 매력적인 세계관은 속편과 리부트를 통해 이어졌고, 영화 속 ‘야간 투시 카메라’라는 컨셉은 게임 <아웃라스트>로 재현된 바 있다.
그런 면에서 <블레어 위치>의 게임화는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번 E3에서 공개된 <블레어 위치 프로젝트>는 실종된 아이를 찾기 위해 나선 남자의 이야기를 암시했다. 스토리는 이전 작품들과 다르게 흘러갈 듯하지만, 야밤의 블랙힐 숲이나 VCR 카메라, 거대한 나무와 의문의 표식 등은 원작 <블레어 위치>를 연상시킨다. 과거 ‘터미널 리얼리티’에서 제작한 동명의 3인칭 호러 액션 게임이 있지만, 이번에 ‘블루버 팀’이 제작한 게임은 1인칭 호러 장르이기에 공포 분위기가 한층 더해졌다. <블레어 위치 프로젝트>가 1인칭 공포 게임의 끝판왕으로 알려진 <아웃라스트>, <바이오 하자드 7> 이상의 공포감을 선사할지 궁금해진다.
톰 홀랜드의 “Oh, Crap!” 나올까
<언차티드> 2020년 12월 18일 개봉
“플스를 훔쳐서라도 해볼 것” <언차티드 2: 황금도와 사라진 함대>가 받은 호평 중 하나다. 너티독이 개발한 <언차티드> 시리즈는 전설 속의 보물이나 유적을 찾아나선 네이선 드레이크의 모험담이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떠올리게 하는 스토리와 호쾌한 액션을 앞세워 자기복제로 몰락한 <툼레이더> 시리즈의 빈자리를 꿰찼다.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중 독보적으로 극찬을 받은 시리즈라서 2009년부터 영화화 뉴스가 수면 위로 올랐지만 매번 난항에 부딪히며 좌절됐다.
그런데 이번엔 소니에서 단단히 준비한 모양이다. 소니는 영화 제작사 소니 픽쳐스와 별개로 게임 IP를 활용한 영화·드라마를 제작할 플레이스테이션 프로덕션을 설립했다. 그리고 <언차티드> 영화판을 2020년 12월 18일에 개봉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영화 <언차티드>는 게임 <언차티드> 시리즈의 내용과 별개로, 네이선 드레이크의 청년 시절을 그릴 예정이다. 네이선 드레이크 역에는 톰 홀랜드가 캐스팅됐다. 톰 홀랜드야 아크로바틱에 유능한 배우니 어드벤처 장르를 잘 소화해낼 듯하다. 네이선 드레이크의 말버릇인 “Oh, Crap!”를 연발하는 톰 홀랜드를 기대해보자.
믿고 보는 이름이 몇 개?
<디비전> 영화화 결정
유비소프트가 E3에서 게임 신작을 발표하는 사이, 넷플릭스가 유비소프트의 <디비전>을 영화화한다고 밝혔다. <디비전>은 바이러스 감염으로 고립된 뉴욕을 배경으로 자경단 활동을 벌이는 전략국토부 요원들이 주인공이다. 생소한 분들을 위해 설명을 덧붙이자면 <디비전>의 원작자는 <썸 오브 올 피어스>, <긴급명령>, <붉은 10월>, <패트리어트 게임> 등으로 유명한 톰 클랜시다. 현대 기술을 이용한 ‘테크노 스릴러’ 대가의 이름이 붙은 만큼 고립된 뉴욕의 을씨년한 분위기와 근미래적 장비를 통한 액션이 호평을 받았다.
<디비전> 영화화는 넷플릭스 제작답게 라인업 또한 준수하다. 일단 <아토믹 블론드>, <데드풀 2>를 연출한 데이빗 레이치가 메가폰을 잡을 예정이고, 제이크 질렌할과 제이카 차스테인이 영화 속 주역을 맡을 예정이다. 뉴욕의 전경을 게임에 고스란히 구현해 화제를 모았던 게임이니, 영화에서도 아포칼립스 분위기의 뉴욕을 얼마나 장대하게 그려질지 주목하자. <어쌔신 크리드> 영화화로 진땀을 흘린 유비소프트의 명예회복 여부도 궁금하다.
우리 아직 안 끝났어!
<어벤져스> 공개
<어벤져스: 엔드 게임>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 이번 E3에서 스퀘어 에닉스가 <어벤져스>를 공개했다. <툼레이더> 리부트를 선보였던 크리스탈 다이나믹스와 <데이어스 엑스> 시리즈의 에이도스 몬트리올이 공동 개발 중인 <어벤져스>는 영화 속 멤버들이 등장하지만, 코믹스나 영화의 스토리가 아닌 독자적인 이야기를 다룬다고 알려졌다.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 블랙 위도우, 토르, 헐크 다섯 캐릭터를 플레이할 수 있으며, 차후에 앤트맨이 추가될 예정이다.
다만 많은 이들이 기대했던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이라 많은 팬들을 당황하게 했다. 2018년 인섬니악 게임즈의 <마블스 스파이더맨>이 깔끔한 그래픽과 훌륭한 모델링을 선보였던 거에 비해 <어벤져스>는 두 베테랑 개발사가 했다고 믿을 수 없는 퀄리티를 보여줬기 때문. 슈퍼 히어로로 뉴욕을 누비고 싶었던 팬들에겐 트레일러의 음울한 분위기도 독이 됐을 것이다. 2020년 5월 출시로 아직 1년 가량 남았으니, 얼마나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지가 관건이다.
롤러볼? 모터볼?
<롤러 챔피온스> 실제 플레이 영상 공개
만화 <총몽>과 이를 영화화한 <알리타: 배틀 엔젤>, 혹은 1975년과 2002년에 나온 <롤러볼>.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바로 롤러를 타고 승부를 펼치는 구기 종목을 그린다는 것이다. 이 작품들을 기억한다면 이 게임도 내심 눈이 갈 것이다. 유비소프트가 발표한 <롤러 챔피온스>는 앞서 언급한 롤러볼(모터블)을 소재로 한 3대3 온라인 게임이다. 싱글플레이는 전혀 없고 대신 랭크전과 일반 대전 등이 모두 지원하는 온라인 게임이라고 한다. 전술한 게임들에 비하면 소규모 게임이지만, 최근 빠른 템포의 온라인 게임들이 유행하는 만큼 의외의 성과를 거둘지도 모르겠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