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에서 열리는 가장 큰 하지 축제를 가리키는 '미드소마'. 아리 애스터 감독은 이를 90년에 한번, 9일간 한여름의 축제에서 벌어지는 심리적 호러로 탈바꿈시켰다. 첫 장편인 <유전>으로 단숨에 주목받는 신인으로 떠오른 그는 이번 영화 <미드소마>까지 단 두 편으로 차세대 호러영화 주자로 자리매김할 기세다. 자신의 실연을 계기로 ‘관계’에 대한 얘길 하고 싶었다는 그는 이 영화를 <유전>과 <위커맨>의 조합이라고 설명한다. 기괴한 분위기와 숨 막히는 공포감을 조성하는 솜씨는 여전하며, 칠흑같이 어두웠던 전작과 정반대로 대낮처럼 환한 백야에서 펼쳐지는 몽환적인 아름다움이 선사하는 공포는 더 그로테스크하다.

가족에 대한 고통과 슬픔을 간직한 캐릭터가 기괴한 공동체 문화에 동화되고, 또 샤머니즘과 싸이키델릭한 문화를 고대 신화와 연계 지어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아리 애스터 감독의 광기 어린 연출력이 무엇보다 인상적이지만, 2:1이란 일반적이지 않은 화면 비에 목가적이고 전원적인 풍광을 담아낸 빼어난 파블 포고젤스키의 촬영도 영화의 뒷맛을 진하게 남겨준다. 게다가 온갖 감정들을 폭포처럼 쏟아내는 플로렌스 퓨와 몸을 사리지 않고 열연한 잭 레이너 등 배우들의 호연과 현란하고 압도적인 사운드 연출은 느릿한 147분의 스칸디나비아 지옥도에서 한순간도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든다.

더 학산 크로커

범상치 않은 독창적인 뮤지션, 더 학산 크로커

그리고 또 하나. ‘더 학산 크로커’로 알려진 일렉트로니카 뮤지션 바비 크릭의 음악도 이 몽환적이고 기괴한 이단 체험에 단단히 한몫 해낸다. 그는 지금까지 독자적인 방식으로 2장의 정규 앨범을 낸 1985년생 영국 출신의 아티스트이자 프로듀서로, 다크하면서도 으스스 한 인더스트리얼 사운드로 유명해졌다. 특히나 자신의 활동명과 같은 동명의 데뷔 앨범 “더 학산 크로커”는 3년간 부모님의 별장에서 모든 현악기를 홀로 연주하고 녹음하며 믹싱해내 찬사를 받았고, 이 어둠과 파멸의 실험적인 사운드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2집 “엑사비테이션”까지 호평을 받으며 많은 뮤지션들이 찾는 뮤즈가 되었다.

(왼쪽부터) 더 학산 크로커의 데뷔 앨범 “더 학산 크로커”, 2집 “엑사비테이션” 앨범 표지

더 학산 크로커

실험메탈 밴드 더 바디를 필두로, 비요크, 와이프, 로스트 언더 헤븐, 파더 존 미스티, 칼리드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프로듀서 겸 작곡가로 활동하며 인지도를 높였다. 인더스트리얼 사운드의 대부라 할 수 있는 나인 인치 네일스(에서도 애티커스 로스)가 이 주목받는 신인을 놓칠 리 만무. 안 그래도 영화음악 같던 두 장의 더 학산 크로커 앨범에 반해 로스 형제는 2015년 마이클 만 감독의 영화 <블랙 코드>에 그를 끌어들인다. 이후 <트리플 9>과 다큐 <크로커다일 겐나디>를 같이 작업하며 영화음악에 감을 잡은 그는 2017년 1월 막 장편 데뷔작을 끝낸 아리 에스터의 러브콜을 받는다. 바비는 그렇게 <미드소마>로 첫 단독 영화음악을 맡게 된다.

<미드소마> 사운드트랙 표지

다크 엠비언트와 스칸디나비아 포크 사운드의 만남

<유전>에서 색소포니스트 콜린 스텟슨의 소리가 필수적이었듯이, 이번 <미드소마>에서도 바비 크릭의 음악은 불가결한 음악이었다. 아리 에스터 감독 자신이 더 학산 크로커의 두 번째 앨범인 “엑사비테이션”을 들으며 각본을 썼던 만큼 다른 음악가를 상상하는 게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드소마>는 덜도 더도 아닌, 딱 맞게 재단된 것 같은 최적화된 사운드를 들려준다. 공황 발작에 빠져드는 것 같은 주인공 대니의 널뛰는 심리 상태와 평화로우면서도 이상한 공간인 스웨덴 호르가 마을의 전통적인 분위기를 동시에 묘사해내는 바비의 음악은 기존의 더 학산 크로커 스타일에 스칸디나비아식 포크 사운드를 뒤섞는 묘미를 선사한다.

바비 크릭

버나드 허먼의 <택시 드라이버>와 크리슈토프 펜데레츠키와 웬디 카를로스의 <샤이닝>, 크리스토퍼 코메다의 <로즈메리의 아기>, 조니 그린우드의 <데어 윌 비 블러드>와 게노야마시로구미의 <아키라> 등에서 받은 영향력을 설파하며 그 역시 실험적인 도전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솜씨가 있다. 묵중하면서도 때론 시린 듯한 현악의 질감을 날카로운 금속성의 인더스트리얼 사운드에 섞어내고, 단순한 음을 넘어서 공간감을 전달하는 드론과 다크 엠비언트적인 성향의 사운드가 핵심으로, 등장인물들의 흥분과 설렘, 낯선 공포와 환각, 슬픔과 절망, 방황을 그려내는 더 학산 크로커의 음악은 잔혹하게 들리기까지 한다.

무섭지만 결국 아름답고 편안한 힐링 사운드

그는 언더 스코어링뿐만 아니라 영화상 호르가 마을에서 들리는 모든 의례적이고 전통적인 노래들과 음란한 소리들을 만들기 위해 아리 에스터 감독과 발성어를 따로 개발하는 노력을 기울였으며, 동시에 스칸디나비아 전통 악기인 키 하프나 휴대용 풍금으로 알려진 허디 거디 등을 활용해 이국적이면서도 독특한 풍취의 레이어를 깔아두기도 한다. 이런 기괴함 속에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동화와 평정을 찾아내는 방어기제가 절묘하게 매칭되며 어느새 미니멀한 불협화음들은 이내 익숙해져 편안하게 들린다. 특히 영화의 하이라이트에 흐르는 ‘Fire Temple’은 마치 바그너나 시벨리우스 등과 같은 19세기 낭만주의 클래식 작곡가를 현대 아방가르드 한 색채로 재현한 느낌으로 엔딩의 충격과 공포, 그리고 아름다움과 평화, 그 이상의 모든 감정을 충실히 담아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아리 에스터의 세 번째 영화는 과연 어떤 영화가 될까. 그리고 그 세 번째 영화음악을 맡을 뮤지션이 누가 될지도 굉장히 궁금해진다. 기존의 할리우드 영화음악가들과의 작업보다 독립적이고 창조적인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즐기는 터라, 색다른 충격과 실험적인 사운드를 선사할 그 주인공이 어서 빨리 밝혀지길 고대해본다.


사운드트랙스 영화음악 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