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완연한 가을이네요. 가을은 사랑하기 좋은 계절입니다. 자꾸만 센티해지고 첫사랑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 같아요. 세상에 첫사랑 영화는 차고 넘치지만 감성러 이입을 원한다면 일본 영화가 딱이죠. 영화 보고 아련한 기억이 떠올라 눈물 또르르 흘린 기억, 모두 있을 거라 생각해요. 마침 요즘 극장가에는 '첫사랑' 이미지를 품은 뉴페이스의 일본 여배우들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준비했죠. 아련아련 '첫사랑'의 얼굴을 지닌 일본 배우들!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던 대표적인 작품 속 첫사랑을 연기했던 배우들과 그를 이을 차세대 첫사랑 이미지 여배우들을 모아봤습니다.


1990년대
나카야마 미호
/ <러브레터>(1999)
<러브레터>

오겡끼데스까~ 스틸컷만 봐도 자동으로 귓가에 재생되는 나카야마 미호의 목소리! <러브레터>(1999)는 지금까지도 어마어마한 사랑을 받고 있는 첫사랑 바이블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랑했던 약혼자가 죽은 지 2년. 히로코(나카야마 미호)는 우연히 알게 된 죽은 약혼자의 옛 주소로 잘 지내냐는 안부 편지를 보냅니다. 며칠 후, 거짓말처럼 날아온 답장. 알고 보니 그 답장은 약혼자의 중학교 동창이자 그와 이름이 같았던 이츠키(나카야마 미호)가 보낸 것이었죠. 영화 속에서 나카야마 미호는 죽은 약혼자를 아직 완전히 보내지 못한 히로코와, 히로코를 통해 자신의 사랑을 뒤늦게 깨닫는 이츠키 모두를 연기합니다.

<사요나라 이츠카>

그녀는 원래 아이돌로 활동하던 가수 출신의 배우입니다. <러브레터>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90년대 중반까지도 가수 활동과 배우 활동을 함께하며 큰 인기를 얻었죠. 1999년 마지막 앨범을 내고 배우로서의 활동에 전념한 그녀! 나카야마 미호가 한국 영화에도 출연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이재한 감독이 연출을 맡은 <사요나라 이츠카>(2010)에서 '관능의 여신'으로 추앙받는 토우코를 연기했습니다. 2012년에는 이와이 슌지 감독이 제작한 <새 구두를 사야해>에서 이지적인 매력을 지닌 프리랜서 아오이를 연기했죠. 도시미 넘치는 이미지로 연륜미 있는 여인의 얼굴을 보여주는 그녀. 언젠가 또 빵 터질 레전드의 새로운 얼굴이 궁금해집니다.

<새 구두를 사야해>
히로스에 료코
/ <철도원>(1999), <비밀>(1999)
<철도원>
<비밀>

히로스에 료코는 첫사랑의 아이콘이죠. 하얀 피부에 촉촉한 눈망울, 청순미 넘치는 단발머리까지! 그녀는 특히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 일본 배우들 중 한 명입니다. 그 인기에는 <철도원>과 <비밀>이 한몫했죠. 쓸쓸한 아버지에게 천진스러운 얼굴로 불쑥 나타난 <철도원> 속 유키코, 딸의 몸속으로 들어간 어머니의 영혼을 연기한 <비밀> 속 모나미는 그녀를 아이돌에서 배우의 자리로 올려놓기에 충분한 캐릭터였습니다. 두 작품으로 제23회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 주연상과 여우 조연상을 모두 휩쓸었으니 말 다했죠.

<와사비>

다소 청순하고 모범생적인 이미지에서 머물렀던 그녀는 2001년, 제라르 크라브지크 감독의 <와사비>에 출연하며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레옹 2'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작품에서 그녀는 장 르노와 함께 코믹 액션을 선보이며 연기의 폭을 넓혀갔죠. 2009년, 그녀는 <굿'바이>로 일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합니다. 이 작품은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죠. 이 작품 이후 그녀는 왕년의 아이돌 이미지를 벗고 진지한 연기를 하는 역할에 주로 캐스팅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와 미소시루>

어느새 세 아이의 엄마인 그녀는 올해 초 <하나와 미소시루>에서 시한부를 판정받고 딸에게 요리를 가르치는 엄마 치에 역으로 한국 극장가에 얼굴을 비췄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청순가련 레전드 미모는 변하지 않네요!


2000년대
다케우치 유코
/ <지금, 만나러 갑니다>(2004)
<지금, 만나러 갑니다>

"다시 비의 계절이 돌아오면 둘이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확인하러 올 거야." 조숙한 아들과 그 아들을 챙겨야 하는 어설픈 아빠의 앞에 1년 전 세상을 떠난 엄마가 나타납니다. 청순미 가득 머금은 배우 다케우치 유코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 생전의 기억을 잃고 장맛비와 함께 나타난 아내, 미오를 연기합니다. 자신의 죽음을 모른 채 가족 앞에 다시 나타나 남편과 다시 사랑에 빠진다는, 다소 판타지적인 이 이야기는 당시 모든 관객의 감수성을 촉촉이 적셔준 화제작이었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20대 중반에 처음으로 어머니 역을 맡은 그녀. 미오는 그녀를 일본 여배우 톱 자리에 우뚝 서게 만든 캐릭터였죠. 다케우치 유코는 풋풋한 첫사랑의 모습과 성숙한 어머니로서의 모습을 모두 훌륭하게 소화해 호평을 받았습니다. 당시 남편으로 호흡을 맞췄던 나카무라 시도와 결혼까지 골인했지만, 1년 만에 헤어져 대중들을 놀라게 하는 등 드라마틱한 인생을 산 배우이기도 하죠. 

<크리피: 일가족 연쇄 실종사건>

그녀는 2009년에는 미국 드라마 <플래시포워드>에 출연하며 해외까지 발을 내디뎠습니다. 매년 새로운 작품 속에서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며 일본의 국민 배우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죠. 그녀는 올해 두 작품으로 한국 극장가에 얼굴을 비췄네요. <크리피: 일가족 연쇄 실종 사건>, <잔예-살아서는 안되는 방>, 두 작품의 장르는 모두 공포입니다. 서정적인 캐릭터부터 서늘한 캐릭터까지. 시간이 지날수록 그윽미 더해지는 그녀가 앞으로의 작품에서는 어떤 얼굴을 보여줄지 기대가 됩니다.

아오이 유우
/ <허니와 클로버>(2006)
<허니와 클로버>

소녀 아이콘의 대표 주자 아오이 유우입니다. 그저 사랑스러울 것 같지만, 그 이면에 우울함, 엉뚱함, 섬뜩함까지 그려내는 이 배우! 그녀의 필모그래피 속에는 '첫사랑'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는 많은 캐릭터들이 있지만, 에디터는 <허니와 클로버> 속 하구를 손꼽고 싶네요.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에서 하구는 미술에 천재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는 소녀로 등장합니다. 세상과 소통하는 자신만의 방법이 뚜렷한 그녀. 하구의 캐스팅 당시, 모두가 만장일치로 아오이 유우를 손꼽았다고 하네요. 원작 캐릭터와는 다른 비주얼로 팬들의 우려가 있기도 했지만, 천재적인 에너지와 악바리 근성 등 캐릭터의 특성을 잘 소화해낸 아오이 유우는 하구를 자신이 아니면 안 될 캐릭터로 만드는데 성공했습니다. 

<하나와 앨리스>

그녀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릴리슈슈의 모든 것>으로 스크린 데뷔를 치렀습니다. 그녀는 이와이 슌지의 페르소나라고 불릴 만큼, 그의 작품에서 특히나 자신이 가장 돋보일 수 있는 옷을 입었던 것 같아요. 아마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아오이 유우의 소녀소녀한 이미지는 <하나와 앨리스> 속의 '앨리스'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발레 신을 잊지 못할 거예요. 2살 때부터 고전 발레를 배웠다는 그녀의 발레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순간이죠.

<오버 더 펜스>

네이버에 등록된 필모만 무려 54개, 배우로서의 다양한 모습을 구축하며 캐릭터의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는 그녀. 30대에 들어선 그녀는 <동경가족>을 시작으로 더욱 성숙미 완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녀의 최근작, <오버 더 펜스>는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나볼 수 있죠. 아무리 성숙해졌다지만, 소녀스러운 웃음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그녀만의 무기인 것 같네요.

미야자키 아오이
/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2006)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안경을 벗으면 예뻐지는 그녀! 미야자키 아오이가 한국 관객들에게 얼굴도장을 찍은 작품은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가 아닐까요? 그녀는 여기서 순진무구의 끝을 보여줍니다. 마코토(타마키 히로시)를 짝사랑하며 '성숙한 여자'가 될 거라 다짐하는, 별나고 엉뚱하지만 사랑스럽고 귀여운 시즈루를 연기했죠.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

누구보다 소녀스러운 얼굴을 지니고 있지만, 그녀가 출연한 작품 속 캐릭터들을 살펴보면 유약하고 귀여운 소녀의 이미지에서 멈춰 서지 않습니다. 자그마한 몸에서 나오는 강인한 힘이 스크린 속 그녀의 얼굴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죠.
한국에서는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나나>의 하치, 이준기와 호흡을 맞춘 한일 합작 영화 <첫눈>의 나나에로 그녀를 알아본 관객이 많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녀는 대중적인 영화보다 인디 성향의 영화에서 더 활약하는 배우랍니다. 올해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된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에서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었죠. 앙증맞은 얼굴로 묘한 아우라를 풍기는 그녀가 또 어떤 작품으로 우리를 찾아올지 궁금합니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나가사와 마사미
/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2004)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사람이 죽으면 사랑도 죽는 걸까, 고민했던 소년 소녀가 있습니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속 나가사와 마사미는 백혈병에 걸렸지만 특유의 밝음을 잊지 않는 여고생 아키를 연기했습니다. 심야방송에 응모 엽서를 보내거나, 워크맨으로 음성편지를 주고받거나. 백혈병에 걸려 무균실에 격리된 아키에게 혼인 신고서를 내보이며 청혼을 하던 사쿠타로(오오사와 타카오)의 모습 등, 이 영화는 순애보 영화에서 상상해낼 수 있는 진부한 소재로 가득한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진부함은 가끔씩 모두의 마음을 울리는 공감으로 작용해 더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하죠. 이 작품은 일본 내에서 개봉 10주 만에 7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화제를 불렀습니다. 나가사와 마사미는 일본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죠.

<눈물이 주룩주룩>

나가사와 마사미는 제회 도호 신데렐라 오디션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습니다. 밝고 귀여운 이미지에 특유의 건강미까지. 숙녀보다 소녀에 가까웠던 나가사와 마시미를 시작으로 '소녀'들이 활약하는 일본 로맨스 영화계의 문이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에 이어, 2006년 <눈물이 주룩주룩>도 흥행에 성공! 현재까지도 일본 여배우 톱으로서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죠. 그녀는 요즘 장르 영화로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좀비 영화 <아이 엠 어 히어로>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바닷마을 다이어리> 속 요시노로 한국 관객들을 찾았습니다. 다양한 역할에 도전하는 그녀! 스크린 속 그녀의 다음 모습이 어떨지 기대되네요!

<바닷마을 다이어리>

2010년대
쿠로키 하루
/ <립반윙클의 신부>(2016)
<립반윙클의 신부>

스틸컷에서 청초함이 마구 뿜어져 나오지 않나요? 이와이 슌지의 새로운 뮤즈, 쿠로키 하루입니다. 엥, 저런 얼굴의 배우가 있었단 말이야? 갑자기 뜬 신인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오해! 그녀는 교토조형예술대 3학년에 재학 중이던 2010년 연극 무대에 데뷔하며 배우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2011년에는 <도쿄 오아시스>라는 작품을 통해 영화에 첫 출연하게 됐죠. 2013년 <샤니다루의 꽃>에서는 첫 주연을 맡았습니다. 2014년 개봉한 <행복한 사전>에서는 퉁명스러운 신입사원으로 등장하기도 했죠.

<작은 집>(좌), 2014년 베를린국제영화제의 쿠로키 하루(우)

그녀의 인생 작품은 야마다 요지 감독의 <작은 집>입니다. 이 작품으로 그녀는 2014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을, 2015년 일본 아카데미에서 여우 조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이십 대 초반에 이런 어마어마한 상을! 앞으로 그녀의 활약이 기대되는 이유죠. <립반윙클의 신부>에서 그녀는 SNS에서 쉽게 결혼 상대를 찾아 결혼한 후 남편의 외도로 파경을 맞는 여자, 나나미를 연기합니다. 다소 성숙해 보이는 이 캐릭터를 그녀가 어떻게 풀어냈을지 궁금하네요! 영화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녀의 이름을 언급하는 만큼, 이 영화에서도 주목할만한 연기를 펼친 건 확실합니다.

아리무라 카스미
/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2015)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

사고뭉치 문제아, 명문대 진학 도전을 선포하다!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2015)로 일본에서는 물론, 국내에서까지 시선을 끌고 있는 배우 아리무라 카스미입니다. 그녀는 현재 일본의 국민 여동생으로 활약하고 있어요. '청순한 고교생'의 대표주자라고 볼 수 있죠.

<나만이 없는 거리>(좌), <아이 엠 어 히어로>(우)

그녀는 <아마짱>에서 코이즈미 쿄코(아마노 하루카)의 젊은 시절을 연기하며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보는 사람까지 기분 좋게 만드는 그녀의 구김살 없는 매력은 그녀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 <나만이 없는 거리>와 <아이 엠 어 히어로>까지. 올해 한국 극장가에 걸린 일본 영화에서도 그녀의 맑은 얼굴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특유의 씩씩함으로 무장한 그녀가 다음엔 어떤 캐릭터로 찾아올지 궁금하네요!

히로세 스즈
/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바닷마을 다이어리>

일본의 첫사랑 미녀들이 다 모인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에서 새로운 얼굴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일본의 국민 여동생, 히로세 스즈죠! 히로세 스즈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세 명의 이복 언니를 마주하는 일찍 철든 아이 '스즈'를 연기했습니다. 2013년에 데뷔했지만, 폭넓은 감정 연기를 선보여 모든 영화팬들의 이목을 끌기도 했죠. 

<분노>

그녀는 2016년에만 무려 다섯 작품을 작업했습니다. 동명의 인기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한 로맨스 영화 <4월은 너의 거짓말>과 미야자키 아오이와 함께 출연하는 <분노>에서 그녀를 찾아볼 수 있고요. <치하야후루> 시리즈로는 제2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찾아 내한하기도 했습니다. 청순함과 귀여움, 그 이면의 어둠과 깊이까지. 히로세 스즈가 아직 선보이지 않은 많은 얼굴들, 이 배우가 주목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요?




씨네플레이 에디터 코헤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