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엔딩 크레딧이 시작될 때 극장에서 나가는 사람과, 엔딩 크레딧이 끝나기까지 극장에서 자리를 지키는 사람! "엔딩 크레딧, 검은 바탕에 흰 글씨 주르륵 올라가는 거 아니야?" 생각했던 분들은 주목! 취향 저격 엔딩 크레딧을 접하게 되면 이제 어떤 영화든 불이 켜질 때까지 극장에서 자리를 지키게 될 거예요. 때론 영화의 매력을 배로 만들어주는 엔딩 크레딧의 힘, 한번 알아봅시다.


엔딩 크레딧이
달라지기 시작한 건?

대부분의 고전 영화들은 영화가 시작될 때 크레딧을 띄웠습니다. 시작과 동시에 감독과 주연 배우의 이름이 나오는 식이었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 <카사블랑카>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보세요. 화면 위에 그저 심플한 'The End'가 박혀있을 뿐이었답니다.

<위대한 앰버슨가>(1942) 엔딩 크레딧

오손 웰즈가 연출한 <위대한 앰버슨가>부터 엔딩 크레딧의 의미가 차차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위대한 앰버슨가>의 크레딧은 음성입니다. 필름 매니저는 누구인지, 세트 디자이너는 누군지, 감독 오손 웰즈가 한 명씩 그들의 이름을 읊어주죠. 배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배역명과 그를 맡은 배우를 읊어주고, 그들의 사진이 스크린을 채우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마지막엔 이렇게 말해요. "I wrote the script and directed it. My name is Orson Welles.(저는 각본과 연출을 맡았습니다. 제 이름은 오손 웰즈입니다.)" 영화를 제작하는 모든 이의 노고를 짚어주는 대목으로 작용하는 엔딩 크레딧이죠.

<80일간의 세계일주>(1956) 엔딩 크레딧

마이클 앤더슨이 연출한 1956년작, <80일간의 세계일주>의 엔딩 크레딧 또한 독특합니다. 줄거리를 재현하는 정교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는데요. 이는 그 당시 가장 길고, 비용이 많이 든 크레딧이었습니다. 프레임 속 그림은 모두 손으로 작업했죠! 현재 나온 작품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제 그전에 봤던 색다른 엔딩 크레딧들이 조금씩 떠오르시지 않나요? 당신의 취향 저격 엔딩 크레딧을 찾아서! 유형별로 몇 작품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촬영 비하인드가 담긴
엔딩 크레딧
홍번구

1995년 제작된 성룡 주연의 영화 <홍번구>입니다.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은 성룡의 액션 투혼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영화를 촬영할 당시, 성룡은 호버크래프트로 뛰어내리는 장면을 찍다가 오른쪽 발목이 골절되는 사고를 당했는데요. 그 장면을 촬영한 모습과 그가 구조대에 실려가는 모습까지 엔딩 크레딧에서 찾아볼 수 있답니다.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홍번구>가 그해 최대 흥행 영화가 될 수 있었겠죠?

찬스

촬영 비하인드 하면 NG인 것! 엔딩 크레딧 속 NG 퍼레이드 하면 성룡의 영화가 떠오르시겠지만, 1979년작 <찬스>도 놓칠 수 없어요. <찬스>의 엔딩 크레딧에서는 피터 셀즈의 연속된 NG 장면들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피터 셀즈는 감독이 이 영상을 엔딩 크레딧에 집어 넣어 당황스러웠다고 언급하기도 했는데요. 1980년에 호주에서 이 영화가 첫 공개되었을 때에는 엔딩 크레딧이 삭제된 상태였다고 합니다.

픽사의 작품들
<벅스 라이프> 엔딩 크레딧

그렇다면 여기서 또 떠오르는 귀요미 엔딩 크레딧! <벅스 라이프>죠. <벅스 라이프>의 엔딩 크레딧에서도 NG 장면이 등장합니다. 갑자기 빵 터져서 연기를 못하거나, 붐 마이크가 내려오는 경우 등 NG를 내는 모습도 다양하죠. 진짜는 아니지만, 가상으로 주인공들의 NG 장면들을 넣은 애니메이션은 <벅스 라이프>가 처음이었습니다.

<몬스터 주식회사> 엔딩 크레딧
<토이 스토리2> 엔딩 크레딧

그 뒤를 <몬스터 주식회사>와 <토이스토리 2>가 이었습니다. 멋쩍어하는 <몬스터 주식회사> 속 설리라든가, 버즈 뒤에서 잔망을 떨고 있는 우디라든가! 엔딩 크레딧의 한 장면도 놓칠 수 없는 영화들이죠. 넘나 사랑스러운 것!

영화에 살을 붙이는
엔딩 크레딧
클라우드 아틀라스
<클라우드 아틀라스> 엔딩 크레딧 속 톰 행크스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배우들의 일인 다역으로 주목을 받았던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는 깜짝 놀랄 선물이 들어있는데요. 바로 배우들의 일인 다역 모습이 차례대로 나열되는 것! 누가 어떤 배역을 맡았는지 엔딩 크레딧에서 친절하게 알려준답니다. 분장이 워낙 훌륭해 영화 속에서 배우들을 잘 알아보지 못할 배역이 여럿이거든요. 저 배우가 저 배역이었다고? 저절로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엔딩 크레딧이죠.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사진 출처.https://www.youtube.com/watch?v=13MNcoqfMok

톰 행크스의 얼굴을 보니 이번 주 개봉을 앞둔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이하 <설리>)이 생각나는군요. <설리> 또한 엔딩 크레딧을 놓칠 수 없는 영화입니다. 추락한 비행기에 탑승했던 실제 승객들과 캡틴 설리가 나와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용이 담겨있거든요.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은 실화 같지 않은 실화, <설리>의 감동을 배로 늘리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아메리칸 스나이퍼
<아메리칸 스나이퍼> 엔딩 크레딧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또 다른 실화 바탕 작품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엔딩 크레딧 또한 <설리>와 같은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영웅이지만 적군에겐 악마로 통했던 카일.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는 카일을 추모하는 그의 장례식 영상이 담기죠. 엔딩 크레딧을 다 보고 나면 마음을 끌어내리는 여운이 한층 더 짙어집니다.

인사이드 아웃
<인사이드 아웃> 엔딩 크레딧

<인사이드 아웃>의 엔딩 크레딧 또한 영화를 더 풍성하게 만들죠! 선생님의 머릿속, 지나가는 사람들의 머릿속, 고양이의 머릿속까지 비춰주며 끊임없이 상상하게 만들어 들뜨게 하더니, 한 마디 당부의 말을 건네 관객들을 뭉클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이 영화를 우리의 아이들에게 바칩니다. 절대 자라나지 말아다오." 마음을 꾹 쥐는 힘이 있는 엔딩이네요.

쿠키 영상이 기다리고 있는
엔딩 크레딧
데드풀
<데드풀> 엔딩 크레딧, 쿠키 영상

우리가 엔딩 크레딧을 기다려야 하는 가장 큰 이유! 바로 쿠키 영상이죠? 쿠키 영상의 유무는 영화가 개봉하기도 전에 화제가 되기도 하는데요! 익살스러운 쿠키 영상으로 <데드풀>이 빠질 수 없을 것 같아요. 영화의 색을 제대로 살린 크레딧 영상이 모두 올라간 후 갑자기 나타난 데드풀! 그는 관객들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아직도 안 갔어? 끝났어. 집에들 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쿠키 영상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엔딩에 위치한 쿠키 영상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는 동안 관객들을 자리에 꾹 잡아놓는 힘을 지녔습니다. 화분에서 자라나는 베이비 그루트가 저렇게 귀엽게 춤을 추는데 어떻게 나갈 수 있겠어요! 입덕할 수밖에 없는 것!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간 후에도 떡밥을 투척하는 쿠키 영상이 등장한답니다.

가장 아름답다고 손꼽히는
엔딩 크레딧
셜록 홈즈
<셜록 홈즈> 엔딩 크레딧

<셜록 홈즈>의 엔딩 크레딧은 관객을 놀라게 한 엔딩 크레딧 중 하나입니다. 1891년 런던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 시대의 분위기를 녹인 흑백의 장면들이 일러스트로 변환되며 엔딩 크레딧에 스타일리시함을 더해주죠.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 마치 코난 도일이 그 당시에 쓴 '셜록 홈즈'를 펼쳐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이 영화만의 분위기를 살려주는 한스 짐머의 음악은 덤이죠.

월-E
<월-E> 엔딩 크레딧

<월-E>의 엔딩 크레딧은 역대급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엔딩 크레딧 중 하나로 여러 번 언급되었죠.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서는 미술사에 등장했던 다양한 기법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라스코 동굴 벽화부터 근대의 미술까지, 생명을 찾은 지구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 엔딩 크레딧은 지구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한 영화 속 캐릭터들의 노력을 더욱 빛내주는데 한몫합니다.

영화의 분위기를 짙게 만드는 엔딩 크레딧
아메리칸 울트라
<아메리칸 울트라> 엔딩 크레딧

숟가락, 프라이팬, 통조림으로 적을 무찌르는 영화 <아메리칸 울트라>의 엔딩 크레딧을 보고 있자면 "역시나!"란 말이 절로 나옵니다. 영화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울트라급 에너지를 지닌 엔딩 크레딧이라고 볼 수 있죠. 히익, 소리가 나올 만큼 잔인하기도 하지만 나름 보는 재미가 있는 엔딩 크레딧입니다. 영화의 분위기와 찰떡궁합, 이렇게 잘 맞을 수가 없어요!

블루 발렌타인
<블루 발렌타인> 엔딩 크레딧

<블루 발렌타인>의 엔딩 크레딧에서는 폭죽이 터집니다. 사랑이 빛을 잃어가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 역설적이게도 엔딩 크레딧에서는 불꽃이 팡팡 터지죠. 그 밑에는 행복했던 시절의 모습들이 있습니다. 만개했을 때는 그보다 아름다울 수 없지만, 터지고 나면 끝나버리는 폭죽에 이들의 관계를 대입해보자면 영화에 대한 여운이 더 짙게 남게 되죠.

중경삼림 / 화양연화
<중경삼림> 엔딩 크레딧
<화양연화> 엔딩 크레딧

뭐 이렇게 단출하냐고요?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과 <화양연화>의 엔딩 크레딧은 그저 하얗고 빨간 화면에 스탭들의 이름을 써넣었습니다.
왠지 검은 바탕에 하얀 글씨여야 할 것 같은데, 하얀 바탕에 검은 글씨인 <중경삼림>의 엔딩 크레딧은 자기 세계 강한, 보편적이지 않은 이 영화 속 청춘들의 성향이 반영된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화양연화> 엔딩 크레딧은 단정하고 절제미 있는 이 영화의 매력과 크게 닮아있어요. 장만옥의 치파오가 떠오르는, 이 영화만의 고풍스러움도 더해주는 엔딩 크레딧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 영화는?
<베테랑> 엔딩 크레딧

이런 크레딧은 외국 영화에만 있냐고요? 정답은 노! 작년 여름 극장가를 핫하게 달궜던 영화 <베테랑>의 엔딩 크레딧을 떠올려보세요. 배역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얼굴들을 꼽아 만든 이 엔딩 크레딧을 보고 있자면, 마지막까지 공들여 만든 영화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되죠. 극장을 나서는 순간까지 통쾌함을 전했던 영화였습니다.

<베테랑> 엔딩 크레딧 영상

엔딩 크레딧의 묘미는 그야말로 다양합니다. 영화를 배로 즐기기 위해서 이제 엔딩 크레딧은 관람 필수! 이 글에 언급하진 못했지만, 얼마 전 개봉했던 <고스트버스터즈>의 엔딩 크레딧 또한 어마어마하니 꼭 챙겨보기실 권합니다. 햄식이의 댄스에 맞춰 움직이는 크레딧에게 홀딱, 마음을 빼앗기실 거예요!



씨네플레이 에디터 코헤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