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팅은 <아수라>를 본 에디터의 엉뚱한 아이디어에서 시작됐습니다. 무슨 아이디어냐고요? ‘곽도원이 연기한 김차인 검사를 보면 거의 조폭인데, 실제 검사도 그럴까? 진짜 검사에게 물어보자’는 아이디어였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검찰 출입 기자도 아닌 에디터가 검사를 만나기도 힘들뿐더러, 설혹 만난다 해도 그가 곧이곧대로 얘기해줄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결국 ‘영화 속 검사’에 대해 써보기로 했습니다. 요즘 네이버 뉴스에 현직 스폰서 검사 관련 뉴스가 줄줄이 나오기도 하고 그러더라고요. 뉴스에는 나쁜 검사만 줄줄이지만 영화 속 검사 가운데는 좋은 검사도 간혹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 속에 등장하는 검사들을 ‘좋은 검사’, ‘나쁜 검사’ 이렇게 구분지어봤습니다. 물론 재미로 해본 거죠. 그럼 시작합니다!


좋은 검사

<공공의 적 2>.

강철중
특이사항: 사건에 대한 감은 좋으나 주변 인물들을 피곤하게 하는 스타일
<공공의 적 2>의 강철중(설경구) 검사를 좋은 검사에 넣어야 할지 살짝 고민했습니다. 왜냐면 너무 꼴통이잖아요. 보통 검사 하면 양복 입고 책상에 앉아 있거나, 법정에서 재판하고 그래야 하는데 강철중 검사는 잠복근무가 체질이거든요. 직접 범인도 잡으러 가고 총도 막 쏘고 그랬던 걸로 기억합니다. 형사 출신이라 그런가. 농담입니다. 어쨌든 강철중 검사는 자신의 고교 동창인 명선재단 이사장 한상우(정준호)라는 나쁜 놈을 잡는 데 집중합니다.
강철중 검사는 “이렇게 구린내 풀풀 나는 놈 못잡으면 검사 안 합니다. 쪽팔려서요”라는 대사를 해서 좀 유명해졌습니다. 이 열혈검사는 검찰 내부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합니다. 2005년 당시 뉴스를 검색해보니 영화를 본 검사들이 “수사 과정이 제대로 그려졌다”, “부장 검사와 일선 검사 간의 갈등 같은 것도 리얼하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대체로 사실적이라는 평입니다. 진짜 검사가 총도 쏘고 그러나요? 잘 안 그럴 것 같은데요. <중앙일보>의 기사에 따르면 강철중 검사의 실제 모델이 된 사람이 있습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에 있었던 김희준 부장검사라고 하는데요. 강우석 감독이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하네요. 엔딩크레딧에 김 검사의 이름도 있습니다.

<내부자들>

우장훈
특이사항: 잘생기기고 일도 잘하지만 협력관계인 깡패에 비해 주목도가 떨어짐
<내부자들>의 우장훈(조승우) 검사는 ‘빽’도 없고 ‘족보’도 없어서 늘 승진을 놓치는 검사입니다. 그러다 대선 비자금 조사의 저격수가 되는 기회를 잡습니다만 놓치고 말았습니다. 비자금 파일을 가로챈 정치깡패 안상구(이병헌) 때문이죠. 나중에 두 사람은 손을 잡습니다. 복수와 출세를 위해서. 혹은 정의구현을 위해서. <내부자들> 하면 “모히또에 가서 몰디브나 한잔 할까”, “어차피 대중들은 개, 돼지입니다” 같은 대사만 떠올립니다. 우장훈 검사의 임팩트는 좀 떨어지는군요. 그래도 안상구의 의수를 들고 얼굴을 긁거나 머리칼을 넘기는 모습은 좀 재밌었습니다.
영화 속에선 지방대 출신에 ‘빽’이 없는 검사들이 보통 정의감이 넘칩니다. 사건 하나 잘 마무리해서 공을 세우고 싶은 마음에 그런 건 아닌가 싶습니다. 우장훈 검사도 딱 그런 경우입니다. 안상구와 소주 한잔 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하는 모습이 나름 친근해 보이기도 하더군요. 우리가 흔히 보아온 영화 속 검사에 비하면 말입니다. 어쨌든 우장훈 검사는 좋은 검사입니다. 산장(?)의 더러운 아저씨들의 뒷통수를 날리며 정의구현을 하긴 하니까요. 승진해서 부장검사 되면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는 거지만요.

<검사외전>

변재욱
특이사항: 우직하게 일을 잘하지만 사람을 너무 잘 믿는 게 함정
<검사외전>의 변재욱(황정민) 검사는 검찰 내부 정치에 실패했다고 할까요. 진실만을 추구하는 우직함으로 버티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고 맙니다. 우종길(이성민) 차장 검사에게 일종의 배신을 당한 거죠. 감옥에서 변재욱 검사는 수감자들의 법률 상담을 하면서 나름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러다 사기꾼 한치원(강동원)을 만나 자신의 누명을 풀고 복수를 하려고 합니다. 검찰은 정말 ‘빽’ ‘라인’ ‘기수‘ 이런 게 중요한가 봅니다. <검사외전>에서도 라인을 잘 탄 양민우(박성웅) 검사는 동기 변재욱 검사가 감옥에 있을 동안 승승장구했습니다. 사기꾼한테 잘 속아서 그렇긴 합니다만.
변재욱 검사를 좋은 검사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까요. 왜냐면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해서 진실을 밝힌 것 뿐이니까요. 그저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좋은 검사인가? 그냥 자기 일만 열심히 하는 검사는 뉴스에도 영화에도 잘 등장하지 않죠.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검사들은 다 변재욱 검사 같을지도 모르겠네요. 좋은 검사라고 믿고 싶습니다. 우종길 같은 검사는 진짜 나쁜 검사죠. 정치권과 결탁하고 사건을 조작하고 집권당인 것 같은 정당의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되려고 합니다.


나쁜 검사

<부당거래>

주양
특이사항: 입담이 좋아 스폰서들에게 인기가 많으나 매우 야비함
드디어 나왔습니다. 에디터는 영화 속 검사 가운데 <부당거래>의 주양 (류승범) 캐릭터를 가장 좋아합니다. 재밌잖아요. 입담은 또 얼마나 좋습니까. 주옥 같은 주양 검사의 어록을 살펴보겠습니다. “호의가 계속 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열심히들 사신다, 진짜.” “공수사관님. 제발. 잘 합시다, 예? 부탁드립니다! 제가 진짜 부탁드립니다!” 아직 <부당거래> 안 보신 분들은 이해하지 못하시려나. 얼른 보시길.
재치도 있고 재미도 있지만 주양 검사는 나쁜 검사입니다. 요즘 문제가 되는 이른바 스폰서 검사인 거죠. 자신의 스폰서인 부동산 업계의 큰 손, 김회장이 광역수사대 최철기(황정민) 때문에 구속된 사실을 알고 최철기를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최철기가 조작한 연쇄 살인사건을 주양 검사가 맡게 되면서 두 사람은 복잡한 관계 속으로 들어갑니다. 결국 누군가 바지를 내려야 두 사람의 관계는 정리가 됩니다. “내가 대한민국 검사야, 이 xx야!” 주양 검사가 이렇게 소리치는 것 같습니다. 네. 당신 같은 검사 필요 없어요. 그런데 주양 검사를 ‘주 프로’라고 부르는 부장 검사(이성민), 어디서 본 것 같습니다. <검사외전>의 그 차장 검사의 과거 시절인가요? 흐음. 

<아수라>

김차인
특이사항: 윗사람에겐 꼼짝도 못하고 아랫사람에겐 함부로 막 대하는 스타일
<아수라>의 김차인(곽도원) 검사를 나쁜 검사에 포함시켰습니다. 우리 잘생긴 형사 한도경(정우성) 형을 괴롭히잖아요. 재미 없었나요? 김차인 검사도 ‘빽‘이 없는 지방대 출신입니다. 영화 속 검사들은 왜 다 이럴까요? 명문대 출신에 ‘빽’이 있는 검사는 잘 없어요. 그래서 김차인 검사도 ‘부정부패의 달인’인 박성배(황정민) 시장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여기까지는 전혀 나쁜 검사가 아닙니다.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김차인 검사는 박성배의 심복인 한도경의 약점을 잡아 증거능력이 있는 박성배의 육성을 녹음해오라고 시킵니다. 한도경이 못하겠다고 하니까 수사관(정만식)을 시켜서 때리기도 하고 그럽니다. 아무리 정의구현 한다고 해도 그렇게 사람 때리고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자기 손에는 피 한 방울 안 묻히면서 말입니다. 열 받는다고 막 책상이나 뒤집고 말이죠. 강철중 검사 같았으면 직접 때렸을 텐데요. 그런데 잠깐. 김차인 검사 밑에 있는 이 수사관, <부당거래>에서 주양 검사 밑에 있던 그 공수사관 아닙니까? 이런. 나쁜 검사 밑에서 고생이 많으십니다. 결정적으로 김차인 검사가 나쁜 검사인 것은 영화의 결말에 나옵니다. 이건 스포일러라 패스! 검사가 그러면 안 돼죠. 공인으로서 말입니다.


좋은지 나쁜지 판단 불가 검사

<범죄와의 전쟁>

조범석
특이사항: 욕을 잘함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의 조범석(곽도원) 검사는 좀 애매합니다. <아수라>의 김차인 검사와 생긴 것도 그렇고 하는 행동도 진짜 비슷합니다. 나쁜 놈 한명 약점 잡아서 더 나쁜 놈 잡으려는 전략도 심지어 똑같습니다. 어쨌든 보통사람 노태우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범죄와의 전쟁’에서 공을 세우는 셈이니까 좋은 검사를 시켜주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그 자신이 조폭 같은 행동을 하니까 좋게 보기가 어렵습니다. 사람만 막 안 때렸어도 그냥 좋은 검사 시켜주겠는데. 아, 선배가 사건 청탁을 하니까 그걸 거부하는 건 그래도 좀 의로운 검사 같은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검사일까요? 고민되는군요. 보류하겠습니다. 판단은 여러분이 해주세요.


드라마 <펀치>

영화 속 인상적인 검사들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진짜 정의롭고 일도 잘하고 사람도 안 때리고 그런 완벽한 검사는 영화 속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좋은 검사로 분류한 사람들도 알고 보면 ‘꼴통’이거나 ‘빽’이 없어 출세를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대한민국 검사’라는 사람들은 영화 속에서 대체로 좋은 이미지가 아닌 것 같습니다. 현실이 그러니까 어쩔 수 없는 거겠죠. 오늘 ‘영화 속 검사’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대한민국 검사들의 세계를 좀더 알고 싶은 분들은 드라마 <펀치>(2014)를 다시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추적자 더 체이서> <황금의 제국>에 이은 박경수 작가의 권력 3부작 마지막 작품입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두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