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메이크 작품은 원작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녔다. 때때론 원작을 뛰어넘는 리메이크 영화가 나오기도 한다. 할리우드는 할리우드의 고전 작품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영화들을 할리우드로 데려와 영어 버전으로 리메이크해왔다. 외국어로만 전달받을 수 있는 고유의 뉘앙스를 잘 살리지 못해 혹평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할리우드에서 재탄생한 영화가 원작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는 경우도 있다. 해외매체 <인디와이어>에서 원작보다 나은 할리우드 리메이크 영화들을 꼽았다. 리스트에 언급된 영화 중 6편을 골라 소개한다.
비거 스플래쉬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 출연 틸다 스윈튼, 랄프 파인즈, 마티아스 쇼에나에츠, 다코타 존슨
권태에서 오는 나른함과 성적인 긴장감이 끈덕지게 얽힌 여름 영화. 연인 폴(마티아스 쇼에나에츠)과 이탈리아의 작은 섬에서 휴가를 즐기던 마리안(틸다 스윈튼) 앞에 전 연인 해리(랄프 파인즈)와 그의 딸 페넬로페(다코타 존슨)가 나타난다. 말 많은 해리와 자유분방한 페넬로페가 마리안의 별장에 들어서면서 네 사람 사이 묘한 기류가 형성된다. 사랑과 질투, 욕망의 일으킨 물보라(A Bigger Splash)에 흠뻑 젖은 이들의 이야기는 자그 드레이 연출, 알랭 들롱 주연의 1969년 영화 <수영장>을 원작으로 한다. <인디와이어>는 <비거 스플래쉬>에 대해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최근 연출작,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서스페리아>에서 선보인 섹슈얼리티한 연출의 기초를 다진 작품”이란 코멘트를 덧붙였다. 후반부 몇 분, 로맨스에서 스릴러로 장르를 단번에 뒤바꾸며 긴장을 몇 배로 끌어올린 그의 숨 막히는 연출력이 돋보인 작품이다.
패션, 위험한 열정
감독 브라이언 드 팔마 출연 레이첼 맥아담스, 누미 라파스
유능한 광고회사 직원 이사벨은 화려한 미모와 능력을 지닌 보스 크리스틴에게 매혹되지만, 그녀가 이사벨의 아이디어를 빼앗고 자존심을 짓밟는 배신을 하자 큰 상처를 받고 분노한다. 수면제에 의지해 그녀가 안긴 모욕을 잊으려 애쓰던 것도 잠시, 크리스틴이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고 이사벨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이들의 악연은 더 짙어진다. 유명 광고회사를 배경으로 성공에 대한 열망에 사로잡힌 두 여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영화 <패션, 위험한 열정>은 알랭 코르노 감독의 프랑스 영화 <러브 크라임>을 원작으로 한다. <인디와이어>는 레이첼 맥아담스와 누미 라파스의 역동적인 연기가 영화를 더 매끄럽고 세련되게 만들었다고 평했다. <노트북> <어바웃 타임> 등에서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주로 연기해왔던 레이첼 맥아담스가 희대의 악녀로 변신한, 그녀의 반전 매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니 팬이라면 필히 관람하시길.
링
감독 고어 버빈스키 출연 나오미 왓츠, 마틴 헨더슨, 데이빗 도프만
고어 버번스키 감독의 <링>은 그 유명한 동명의 일본 호러 영화를 할리우드판으로 리메이크한 영화다. 같은 시간, 각기 다른 장소에서 끔찍한 모습으로 발견된 네 명의 시체. 이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일주일 전 의문의 비디오를 보았다는 거다.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비디오테이프를 본 기자 레이첼은 자신 역시 일주일 후 죽음에 다다를 것을 직감한다. <링>은 동양의 공포물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정서와 할리우드의 감성을 적절히 섞어놓은 영리한 호러 영화다. 원작보다 사건의 인과관계를 더 구체적으로 묘사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인디와이어>는 레이첼을 연기한 나오미 왓츠의 연기를 두고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데 성공했다”고 말하며, “<링>은 환상적인 차기작”이라고 평했다. 이어 “TV 화면에서 기어 나오는 유령, 우물 아래의 손톱 자국 등 헤어나기 어려운 공포를 자아내는 이미지들도 훌륭했다”는 코멘트를 덧붙였다.
솔라리스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 출연 조지 클루니, 나타샤 맥켈혼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1971년 연출작 <솔라리스>는 당시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으며 SF 장르에 한 획을 그었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2002년작 <솔라리스>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2시간 47분에 다다르는 러닝타임을 1시간 39분으로 줄인 파격적인 선택이 돋보이는데, <인디와이어>는 이를 두고 가장 중요한 요소들만 집중적으로 모아놨다고 평했다. 조지 클루니는 자살한 연인의 환생을 두고 혼란스러워하는 심리학자 크리스 케빈을 연기하며 아이돌 이미지를 벗는 데 성공했다. 저예산으로 제작된 <솔라리스>는 당시 박스오피스에서 제작비도 거두지 못하는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으나, 일부 평단에게서 호평을 얻었다. 특히 일렉트로닉이 가미된 클리프 마르티네즈의 음악은 레전드로 남았다.
디파티드
감독 마틴 스콜세지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맷 데이먼, 잭 니콜슨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디파티드>는 2002년의 홍콩 영화 <무간도>를 원작으로 한다. 경찰의 스파이가 된 범죄 조직원을 연기한 유덕화의 역할은 맷 데이먼이, 범죄 조직의 스파이가 된 경찰을 연기한 양조위의 역할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했다. 두 주연 배우는 물론, 잭 니콜슨, 마크 윌버그, 마틴 쉰, 베라 파미가 모두 에이스다운 연기를 선보였다. <인디와이어>는 <디파티드>를 이렇게 설명하기도 했다. 아카데미와 통 인연이 없던 마틴 스콜세지에게, “마침내 감독상과 최우수 작품상을 동시에 안겨준 영화”. 그간 마틴 스콜세지는 <좋은 친구들> <성난 황소> <갱스 오브 뉴욕> <에비에이터> <휴고> 등의 작품으로 여러 번 이름을 올렸지만 매번 트로피를 얻지 못했다. 현재까지의 수상 실적도 <디파티드>가 유일하다.
리플리
감독 안소니 밍겔라 출연 맷 데이먼, 기네스 팰트로, 주드 로
안소미 밍겔라 감독의 섹시한 범죄 스릴러 <리플리>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 씨>를 원작으로 한 르네 클레망 감독의 1960년작 <태양은 가득히>를 리메이크한 영화다. 일확천금을 꿈꾸는 청년 톰 리플리가 자신은 닿을 수 없는 상류 사회의 일원인 부잣집 외아들 딕키에게 콤플렉스를 느끼고, 그를 닮기 위해 거짓으로 제 삶을 꾸미는 과정을 담은 작품. 1960년작에서 알랭 들롱이 연기했던 톰 리플리의 바통은 맷 데이먼이 이어받았고, 그의 동경과 질투를 한 몸에 받는 딕키는 주드 로가, 그의 연인 마지는 기네스 펠트로가 연기했다. 오늘날의 대형 스튜디오 영화에선 상상할 수 없는 충격적인 결말이 인상 깊은 작품이다.
씨네플레이 유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