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마이크 배닝 혹은 빅 닉이라는 이름을 들어봤나? 처음 들어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에단 헌트나 잭 리처라는 이름은 어떤가? 에단 헌트와 잭 리처는 <미션 임파서블>과 <잭 리처> 시리즈의 주인공 캐릭터 이름이다. 이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는 잘 알다시피 톰 크루즈다. 그렇다면 마이크 배닝과 빅 닉은 누군가? 그 주인공 제라드 버틀러를 만나보자.
태초의 캐릭터는 스파르타(?)
제라드 버틀러는 잭 스나이더 감독의 ‘역사 파괴’ 영화 <300>에 등장하면서 국내 영화팬들에게 유명해졌다. 버틀러는 스파르타의 국왕 레오니다스를 연기했다. 터질 것 같은 근육질의 남자인데 손바닥만한 숏팬츠(?)를 입고 있는 캐릭터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레오니다스라는 이름을 기억하기보다 그냥 “스파르타!”라는 대사가 더 인상적으로 남았다. 근육질의 섹시한 이미지는 덤이다.
바람둥이 VS. 싸움꾼
2006년 <300>부터 2013년 <백악관 최후의 날>에 이르기까지 대략 7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제라드 버틀러는 여러 영화에 출연했다. 장르는 한정적이다. 크게 볼 때 로맨틱 코미디 혹은 액션 두 가지였다. 즉, 바람둥이거나 싸움꾼이거나 둘 중 하나를 연기한 것이다. 이 시기 가장 눈에 띄는 영화가 <모범시민>이다. F. 게리 그레이 감독이 연출했으며 제이미 폭스가 출연한 영화다. 버틀러는 가족을 잃은 아버지 클라이드를 연기했다. 그는 법의 심판을 받지 않는 범인들에게 직접 복수하는 캐릭터다. 로맨틱/멜로영화 장르로는 힐러리 스웽크와 함께 출연한 <PS. 아이 러브 유>, 캐서린 헤이글과 호흡을 맞춘 <어글리 트루스>, 제니퍼 애니스톤과 커플이 된 <바운티 헌터> 등이 있다.
마이크 배닝의 탄생
2013년. 제라드 버틀러는 마이크 배닝으로 다시 태어났다. 바람둥이와 싸움꾼 캐릭터 가운데 싸움꾼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겠다. 혹은 나이가 점점 들면서 더 이상 바람둥이 캐릭터를 하지 못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뭐가 됐든 그는 이제 마이크 배닝이다. 국내에 <백악관 최후의 날>(2013)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올림푸스 해즈 폴른>(Olympus Has Fallen)이 마이크 배닝을 주인공으로 한 <폴른> 시리즈의 시작이다. 2016년에는 <런던 해즈 폴른>이 개봉했고, 2019년 11월 <엔젤 해즈 폴른>이 공개됐다. 제라드 버틀러가 연기하는 마이크 배닝은 미국 대통령 경호실의 특수 요원이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마이크 배닝은 과거 미 육군 제75레인저 연대, 육군특수작전사령부 소속이었다고 한다. 최근 시리즈의 제작자 앨런 시겔은 “제라드 버틀러가 연기하는 마이크 배닝의 <폴른> 시리즈는 앞으로 적어도 3편이 나올 것이며 TV 스핀오프도 기획 중”이라고 발표했다.
빅 닉의 탄생
에단 헌트보다 잭 리처가 덜 유명하듯, 마이크 배닝보다 빅 닉이 덜 유명하다. 빅 닉 오브라이언은 <크리미널 스쿼드>(Den of Thieves)의 주인공이다. LASD(Los Angeles County Sheriff's Department,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보안관 부서) 소속 수사팀장으로 지능적이고 대담한 은행강도 집단을 쫓는다. 그는 보안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매우 거친 남자다. 범인이 “오늘 절대 수갑찰 일은 없을 거”라고 하면 “수갑 따윈 안 가져왔다”고 말한다. 생포하지 않고 총으로 쏘아 죽이겠다는 뜻이다. <크리미널 스쿼드>는 마이클 만이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와 함께 만든 걸작 범죄영화 <히트>의 영향 아래에 있는 영화다. 뛰어난 범죄조직의 리더와 집요한 수사조직의 리더의 대결 구도라는 점에서 그렇다. <크리미널 스쿼드>는 현재 속편 제작을 발표한 상태다.
킬링타임 영화으로 제격
이제 마이크 배닝과 빅 닉이라는 이름이 어떤 캐릭터인지 알게 됐다. 제라드 버틀러는 <300> 이후 스타가 된 뒤 로맨틱 코미디와 액션 가운데 액션으로 노선으로 굳히고 마이크 배닝을 주축으로 빅 닉이라는 서브 캐릭터도 구축하고 있다. 그 사이 <헌터 킬러>라는 오랜만에 나온 잠수함 영화에 참여하기도 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다. 아직까지는 제라드 버틀러의 캐릭터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영화가 (상대적으로) 재미없기 때문이다. <폴른> 시리즈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만큼 예산이 크지도 않고, <본> 시리즈 만큼 정교한 액션 연출도 없고, <존 윅> 시리즈의 액션 만큼 신선한 맛도 없다. 그 결과, 로튼토마토 기준으로 <폴른> 시리즈 3편 모두 ‘썩은 토마토 점수’를 받았다.
그럼에도 이 시리즈는 꾸준히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제라드 버틀러만의 매력이 있다는 뜻이다. <엔젤 해즈 폴른>은 북미 박스오피스 1위에도 살짝 오른 적이 있다. 제라드 버틀러에겐 <300> 이후 첫 박스오피스 1위 영화가 됐다. <크리미널 스쿼드> 역시 속편 제작이 발표된 걸 봐서 그럭저럭 흥행에 성공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제라드 버틀러의 액션영화 연대기는 이제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시간이 더 지나면 에단 헌트처럼 마이크 배닝도 유명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의 영화를 보면 시간을 죽인 팬들의 응원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