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허문 행보로 40년 넘게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시네아스트 빔 벤더스의 새 다큐멘터리가 절찬 상영 중이다. 2013년 선출된 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가 그 주인공이다. 2014년 바티칸으로부터 받은 서한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는 교황과의 인터뷰와 더불어, 그가 세계 곳곳을 방문해 사람들을 마주하는 순간들을 기록했다. 빔 벤더스가 지금까지 다큐멘터리 작업을 통해 존경을 바친 인물들을 살펴본다.


니콜라스 레이

<물 위의 번개>

Lightning Over Water, 1980

빔 벤더스의 첫 번째 다큐멘터리 <물 위의 번개>는 미국의 가장 위대한 감독으로 추앙 받는 니콜라스 레이(Nicholas Ray)와 공동연출한 작품이다. <미국인 친구>(1977)에 그를 배우로 초대한 바 있는 벤더스는 1979년 봄 폐암 말기였던 레이의 마지막 날들을 기록했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화법을 오가는 <물 위의 번개>는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듯한 육체의 레이가 전하는 영화와 삶에 관한 번쩍이는 통찰과 더불어, 레이의 걸작 <러스티 멘>(1952)과 끝내 완성되지 못한 마지막 작품 <우린 집에 돌아갈 수 없어>의 장면들이 드문드문 배치됐다. 레이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 칸 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됐다. 벤더스의 SF영화 <이 세상 끝까지>(1990)의 제목을 레이가 1961년 발표한 대작 <왕중왕>의 마지막 대사에서 따왔다.


오즈 야스지로

<도쿄가>

Tokyo-Ga, 1985

빔 벤더스는 대표작 <베를린 천사의 시>(1987)의 마지막에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郎, Yasujiro Ozu)를 향한 추모의 문구를 띄운다. 하지만 벤더스는 그 이전에 다큐멘터리 <도쿄가>를 통해 오즈를 향한 경외를 드러냈다. <동경 이야기>(1953)로 열고 닫는 다큐멘터리는 차라리 '영화 일기'에 가깝다. 오즈의 총애를 받았던 배우 류 치슈와 1920년대 무성영화 시절부터 유작 <꽁치의 맛>까지 오즈와 작업한 촬영감독 아츠타 유하루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사이사이, <물 위의 번개>에 이어 <도쿄가>도 작업한 카메라맨 에드워드 라크만이 도쿄 곳곳에서 찍어놓은 일상(빠칭코 장의 풍경과 음식 미니어쳐 제작 과정에 유독 많은 시간을 할애한 이유가 무엇일까?)을 담았다.


요지 야마모토

<도시와 옷에 관한 노트>

Notebook on Cities and Clothes, 1989

이어지는 빔 벤더스의 '영화 일기'는 '꼼 데 가르송'의 레이 카와쿠보(Rei Kawakubo),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와 함께 1980년대 패션계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은 일본의 디자이너 요지 야마모토(山本耀司, Yohji Yamamoto)를 향했다. 평소 벤더스가 패션에 관심이 컸던 건 아니다. 그저 파리의 퐁피두 센터로부터 패션 디자이너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받아, 갑옷을 입는 듯한 인상을 받았던 요지 야마모토를 주인공으로 택했다. <도시와 옷에 관한 노트>는 제목처럼 옷만큼이나 도시에 무게를 뒀다. 요지 야마모토가 파리에서 컬렉션을 준비하는 가운데 자신의 철학에 대해 이야기 하면, 벤더스는 발화하는 야마모토를 단순히 보여주기보다, 야마모토의 인터뷰가 담긴 '디지털' 기기와 파리의 풍경을 나란히 놓은 모습을 비춘다.


쿠바의 음악가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Buena Vista Social Club, 1999

데뷔작 <도시의 여름>(1970)을 영국 밴드 킹크스(The Kinks)에 바칠 만큼 음악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빔 벤더스는 1999년에야 처음 음악 다큐멘터리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내놓았다. <파리, 텍사스>(1984)의 음악을 만들기도 했던 오랜 친구인 라이 쿠더(Ry Cooder)가 프로듀서를 맡아 세계적으로 '월드 뮤직' 열풍을 일으킨 쿠바의 전설적인 아티스트 그룹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프로젝트의 활동을 기록했다. 이브라힘 페레(Ibrahim Ferrer), 오마라 포르투온도(Omara Portuondo), 콤파이 세군도(Compay Segundo) 등 각 멤버들이 쿠바 아바나에서 생활하고 작업하는 모습과 암스테르담과 뉴욕에서 진행한 콘서트 현장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그동안 미국과 쿠바의 정치적인 문제로 자유로이 왕래할 수 없었던 현실을 무색하게 만드는 구성이다. 90년대 들어 내리막을 걷던 벤더스의 커리어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성공으로 터닝포인트를 맞았다.


빌리 윌리 존슨, 스킵 제임스, J.B. 르누아르

<더 블루스 - 소울 오브 맨>

The Soul of a Man, 2003

<소울 오브 맨>은 마틴 스코세이지가 프로듀서를 맡은 블루스 다큐멘터리 프로젝트 '더 블루스'의 일환으로 제작됐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마이크 피기스, 찰스 버넷이 참여한 연작에서 벤더스가 연출한 <소울 오브 맨>은 빌리 윌리 존슨(Blind Willie Johnson), 스킵 제임스(Skip James), J.B. 르누아르(J.B. Lenoir) 세 블루스 명인을 파고든다. 1960년대 말 세상을 떠난 스킵 제임스와 J.B. 르누아르는 생전의 푸티지를 활용한 데 반해, 1945년 사망한 빌리 윌리 존슨의 파트는 <매트릭스>의 모피어스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로렌스 피시번이 내레이션, 코엔 형제의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2000)에도 출연했던 블루스 뮤지션 크리스 토마스 킹 연기를 맡아 구현했다. 세 거장의 남긴 곡을 닉 케이브(Nick Cave), 티본 버넷(T-Bone Burnett), 루 리드(Lou Reed), 루신다 윌리엄스(Lucinda Williams) 등 후대 뮤지션들이 재해석해 선보이는 모습 또한 곳곳에 배치됐다.


피나 바우쉬

<피나>

Pina, 2011

독일의 무용가 피나 바우쉬에 바치는 다큐멘터리 <피나>는 촬영 시작 이틀 전, 바우쉬가 암 진단을 받고 5일 만에 사망하게 되면서 난항에 부딪혔다. 벤더스는 프로젝트를 접으려 했지만, 바우쉬가 이끌던 부퍼탈 시립무용단 멤버들의 설득으로 방향을 바꾸어 진행됐다. 부퍼탈 무용단원들이 그들이 바우쉬에 대해 이야기 하고 바우쉬의 대표작 <봄의 제전>, <카페 뮐러>, <콘탁트호프>, <보름달>을 부퍼탈의 여러 공간에서 시연하는 모습을 담는 방식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아녜스 바르다와 알리체 로르바케르 등과 작업한 엘렌 루바르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쿠바 파트를 찍었던 요르그 비드머가 촬영한 이미지가 3D 효과로 구현돼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세바스티앙 살가두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

The Salt of the Earth, 2014

브라질 출신의 다큐멘터리 사진가 세바스티앙 살가두를 그린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은 벤더스가 이전에 발표한 것에 비해 훨씬 정석적인 다큐멘터리의 문법을 따른다. 살가두의 강렬한 흑백 사진들이 전시처럼 나열되는 가운데 그의 내레이션이 얹어지는 오프닝을 지나면,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사진을 찍는 현장을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살가두가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부터 차근차근 그의 작품들과 저마다의 설명이 덧붙여진다. 영화 작가로서 벤더스의 야심보다는 철저히 살가두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는 코멘터리의 역할이 훨씬 두드러지는 형식이다. 살가두가 사람들과 벗 하며 작업에 몰두하는 모습과 그때 얻어낸 작업을 교차해서 보여주는 후반부가 특히 인상적이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