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음악의 전통 안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냈다.” 뮤지션 밥 딜런이 올해 노벨문학상의 주인공이 됐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 버트런드 러셀과 전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 등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적이 있긴 하지만, 저서가 아닌 노랫말로 받은 건 이례적인 일이다. 가수가 문학상이라니, 의외일지 모르지만 철학적이고 시적인(예명인 딜런은 영국 시인 딜런 토마스에서 따왔다) 표현으로 정평이 나 있는 그의 가사를 떠올린다면 금세 수긍이 된다. 밥 딜런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뮤지션으로 칭송되는 인물이지만, 그 명성에 비해 한국에서 그의 존재는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밥 딜런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영화들을 정리했다.


<돌아보지 마라>
(Don't Look Back, 1967)

밥 딜런과 영화를 연출한 D.A.페네이커

<돌아보지 마라>는 다큐멘터리 감독 D.A.페네베이커가 밥 딜런이 1965년 봄 투어를 위해 영국에 머물던 당시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라이브 실황과 기자회견 등 공식적인 자리뿐만 아니라 차를 타고 이동하고, 호텔에서 시간을 죽이고, 소녀 팬과 대화하는 모습 등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밥 딜런의 일상을 보여준다. 고정된 카메라로 단정하게 구도를 맞추지 않고 핸드헬드 카메라로 당장 벌어지고 있는 걸 즉흥적으로 촬영해 당시의 공기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영화가 다루고 있는 영국 투어는 밥 딜런이 어쿠스틱 공연을 펼친 마지막 콘서트다. 그는 두 달 뒤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밴드와 함께 일렉트릭 기타를 들고 나타나 팬들을 경악시켰다. <돌아보지 마라>는 의도치 않게 바로 그 중대한 변화 직전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당시 연인이었던 조안 바에즈와 라이벌로 불리던 뮤지션 도노반의 모습도 만날 수 있다. ‘Subterranean Homesick Blues’와 함께 종이에 쓴 노랫말을 하나하나 넘기는 오프닝은 음악 다큐멘터리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장면이다. <러브 액츄얼리>의 종이 고백이 바로 그 신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Bob Dylan - Subterranean Homesick Blues

<노 디렉션 홈: 밥 딜런>
(No Direction Home: Bob Dylan, 2005)

더 밴드, 롤링 스톤즈, 조지 해리슨 등 뮤지션 다큐멘터리를 만든 바 있는 마틴 스콜세지의 밥 딜런 다큐멘터리. 미국의 공영 방송국 PBS의 프로그램 <American Masters>의 일환으로 제작된 <노 디렉션 홈>은, 밥 딜런이 뉴욕에 도착하는 1961년 1월부터 1966년 7월 오토바이 사고로 잠적할 때까지의 시기에 초점을 맞춘다. 3시간을 훌쩍 넘는 방대한 러닝타임을 이전에 공개되지 않았던 영상들이 채우고 있는 가운데 시인 앨런 긴즈버그를 비롯 데이브 반 롱크, 피트 시거 등 동료 뮤지션들, 옛 여자친구 수지 로톨로 등 여러 인물들의 인터뷰가 배치됐다.

<노 디렉션 홈>이 특별한 건 평소 외부에 자신의 사생활이나 견해를 드러내지 않던 밥 딜런이 1960년대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들려준다는 점이다. 스콜세지는 <갱스 오브 뉴욕>(2002)과 <에비에이터>(2004)를 연출하던 당시 제작사와의 예산 문제로 씨름하던 때에 <노 디렉션 홈>을 작업함으로써 창작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제목은 밥 딜런의 명곡 ‘Like a Rolling Stone'의 가사에서 따왔다.


<아임 낫 데어>
(I'm Not There, 2007)

밥 딜런의 일대기를 다룬 최초의 극영화.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도 밥 딜런이란 인물에 대해서는 여전히 오리무중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70년대 록 음악에 대한 영화 <벨벳 골드마인>을 연출한 바 있는 토드 헤인즈는 특정한 사건과 시기를 정확한 사실을 토대로 극화하기보다, 밥 딜런의 개인사가 미지에 놓여 있다는 것 자체를 형식으로 삼아 <아임 낫 데어>를 만들었다. 그래서 케이트 블란쳇, 벤 위쇼, 크리스찬 베일, 리차드 기어, 히스 레저, 마커스 칼 프랭클린 등 나이, 인종, 성별을 가리지 않고 여섯 배우를 기용해 밥 딜런의 일생을 구성했다.  각 인물에게 묻어 있는 흔적을 통해서 그들이 각자 어느 시기의 밥 딜런을 구현하고 있는지 추리해보는 재미(?)를 제공한다. 밥 딜런 팬들에게도 만만치 않은 독해를 요구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밥 딜런을 둘러싼 ‘팩트’보다는 21세기 전기(傳記)영화의 정점을 목도하고 싶은 이들에게 권한다. 영화의 형식처럼, 사운드트랙 역시 밥 딜런의 노래 33곡을 수많은 뮤지션이 커버한 트랙들로 채워졌다.


<리날도 앤 클라라>

음악뿐만 아니라 시를 쓰고 그림도 그리며 다재다능함을 뽐냈던 밥 딜런은 1978년 연출, 각본, 연기, 편집을 모두 직접 담당한 <리날도 앤 클라라>를 내놓았다. 얼마나 야심차게 만들었는지 러닝타임이 232분에 달하는데, 상업적으로나 비평적으로나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칼잡이로 등장한 샘 페킨파의 걸작 <관계의 종말>에서는 OST를 담당하기도 했다. 아마 한국인에게 가장 잘 알려진 밥 딜런의 노래인 ‘Knockin' On Heaven's Door'가 바로 이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곡이다. 1987년엔 한물간 로커로 분한 <하트 오브 파이어>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영화나 그의 연기나 그다지 주목받지는 못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부장